연쇄 살인을 저질러서 체포된 남자가 있었다. 다른 사람을 유혹해서 데려온 뒤 질식시켜 잔인하게 살인을 가했던 인물이었다. 그가 사형 집행을 받은 것은 12 25일 오전 12시. 크리스마스 정각이었다. 앞으로 24시간 정도가 남아있었다.



“이제 당신이 마지막으로 먹고 싶은 것을 말하십시오. 마지막 식사입니다.”

“이런 부끄러운 인생에서 대체 무엇이 맛있겠습니까? 입맛이 있을 리가 없잖소.”

“죽기 전에 드리는 마지막 식사요. 먹고 죽은 귀신이 떼깔도 좋지 않겠소?”

“내가 죽인 사람들은 마지막 식사도 못했을 것인데 내가 무엇을 감히 먹을 수 있겠습니까.”



남자는 체념하듯 말했다. 그것을 안타깝게 보던 교도관은 그에게 어떤 말을 해야할지 몰랐다. 사형수가 어떤 말을 해야 될 지 의아했다.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 지 어느정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원칙대로 진행해야만하는 가엾은 교도관이었을 뿐이었다.



“진정 아무것도 먹고 싶은 것이 없다는 것입니까? 당신은 곧 차가운 의자에 앉아있다가 뜨거운 전기에 지져질 겁니다. 살아있을 때 하지 못했던 것들을 마지막에라도 해봐야지 않겠습니까?”

“내가 그런 것을 느낄 자격이 있는 지가 궁금하구려.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봐도 죽은 사람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마지막으로 사치를 누리다니 가당키나 하답니까?”



교도관은 사실상 포기한 상태였다. 더 이상 실랑이를 하고 싶지도 않았고 주방장에게 일반배식을 부탁할 예정이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줄 호의였지만 그가 호의를 거부하면서 더 이상 호화로운 식사를 대접해야될 이유는 없었다.



“정 그렇게 내가 무엇을 먹기를 바라면 몇 가지를 반드시 제가 먹고 죽어야 하는 것이 있긴 합니다.”



교도관은 기다렸다는 듯 남자에게 물었다.



“오호라. 그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말하는 것을 준비해줄 수 있겠소?”

“물론이오. 마지막인데 뭔들 못하겠는가.”



남자가 요구하던 것은 정말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그는 돼지의 쓸개, 소금 한 숟가락 그리고 복어의 내장을 교도관에게 요구하였다. 교도관은 이 목록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에는 그는 그리 지혜롭지도, 창의적이지도 않았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식단을 요구한 것인지 교도관은 “대체 무슨 말도 안되는 식단이요?”하고 남자에게 물었다. 남자는 조용히 물으면 될 것을 고함을 지르면서 물어보는 교도관이 탐탁치 않아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전부 내가 겪어야 할 것들이라우.”

“그게 무슨 소리이십니까?”

“살아서 너무 큰 죄를 지었소. 나는 해서는 안 될 짓을 하였고, 그로 인해 피해를 본 이들이 내가 행복한 것을 보지 않았으면 하오.”



그렇게 말하더니 그는 주변에 있던 막대기 하나를 집어들더니 바닥에 ‘씁쓸함’ 이라는 세 글자를 쓰고 말을 이었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돼지의 쓸개는 굉장히 쓰기로 유명하다우. 보약으로 쓰이긴 하지만 그 쓴 맛 때문에 보약이 아닌 다른 용도로는 거의 사용하지 않지. 헌데 곧 죽을 사형수가 건강을 챙기겠소? 나는 그 쓴 맛을 통해서 난 행복하지 않다고, 씁쓸히 살아남아있다고 말하고 싶소.”



교도관은 남자를 보곤 이상하게 생각하였을 터였다. 그가 보고 있던 것은 이상한 의미부여나 하면서 억지스러운 말을 하는 사형수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잠시 입을 다문 남자는 막대기를 내려놓고 왼쪽눈을 비비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금은 그들이 흘렸을 눈물이오. 살아생전 흘리지 못했을 눈물이 많을 그들에게 내가 그 눈물을 짠 소금으로써 대신 느낄 테니 편히 잠들라고 말하고 싶소.”



남자는 한참동안 눈을 비비더니 눈이 벌겋게 충혈되고 나서야 손에서 눈을 뗐다. 벌겋게 충혈된 눈에서는 눈물이 몇 방울 떨어졌다. 그 눈물도 그의 ‘피해자’가 흘려야했을 눈물인지는 확실하지 않았지만 남자는 이 말을 한 이후에 습관적으로 눈을 비비기 시작했다. 교도관은 점점 한심하게 보이는 남자를 무시하고 그냥 사형을 집행하는 방안을 생각하였다. ‘왜 굳이 저러면서까지 피해자에게 속죄하려는 것인가. 애초에 속죄할 생각이었다면 그런 일을 벌이지 않았으면 될 것을’ 하고 교도관은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복어의 내장은 내가 그들에게 저지른 죄요. 난 그들을 질식사 시켰지. 그렇기에 독이 있는 복어의 내장을 먹어 나도 같은 방법으로 죽어야하오.”



교도관은 그의 마지막 이야기를 듣고 넋이 나갔다. 그 전까지의 재료들은 터무늬 없고 말이 안되긴 해도 최소한 사형수에게 제공할 수 있는 식재료였다. 하지만 그가 마지막으로 제시한 복어의 내장은 사형을 당하기 전 스스로 독살되겠다는 말도 안되는 얘기였다. 당연히 이 의견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리고 더 지켜볼 수 없던 교도관이 말했다.



“당신이 하는 얘기는 여러모로 얼척이 없구려. 죽기전에 마지막 식사로 독을 달라니, 아무리 사형수라지만 그런 것을 제공하지는 않습니다. 돼지 쓸개랑 소금은 내가 상부에 전하도록 하겠소. 사형 날짜나 기다리라고.”



교도관은 이렇게만 말하고 그대로 가버렸다. 남자는 잠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는 자신이 이렇게 처참하고 초라해진 이유에 대해서, 혹은 자신이 했던 과오에 대한 반성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반성하고 후회해도 그의 죄가 없어지지 않는다. 그 스스로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를 탓할 수도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하소연하며 정당화 시킬수도 없다. 그건 그 어떤 사람보다 본인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잠시동안의 고민은 많은 생각을 불러왔다. 그날 있던 일부터 해서 보였던 사물, 들렸던 소리, 심지어는 맡았던 냄새까지. 그의 머리 속에서 생생히 있었다. 계속해서 자신을 괴롭혔던 자신의 과오가 그에게 상기되었던 것이다.



그가 죽인 사람은 다른 이에게는 가족이었을 것이며, 누군가에게는 좋은 친구였을 것이다. 그는 그저 자신처럼 혼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자신보다 행복하게 길을 걷는 그들이 보기 싫었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그들이 앞으로의 행복할 길을 끊은 것이다. 아예 헛수고는 아니었다. 그가 원했던 ‘아무도 행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그의 바람은 이룬 셈이었다. 유가족들은 그에게 엄벌이 가해지는 것을 원하며 눈물을 흘렸고 그 역시 자신의 잘못을 알기에 하루하루를 고통스럽게 지내야했다. 정말 그 누구도 행복하지 못하는 무의미한 짓거리였다.



남자는 어떤 벌이 내려지더라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심적으로는 이미 준비를 마치고선 판결이 내려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재판이 끝나기 직전. 판사는 판결을 기다리는 피고를 보며 한참을 고민하더니 외쳤다.



“피고…..사형!”



판사봉을 내리치는 소리가 재판장에 울려퍼졌다. 그 위엄있는 첫 소리는 울상이었던 유가족의 얼굴도 자신은 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했던 남자도 입을 벌리게 하였다. 두 번째 소리가 지난 다음 세 번째 소리가 들리며 판사가 마지막으로 판사봉을 내려놓게 되었다. 그렇게 남자에게는 사형이 내려졌다.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생각보다 준비가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판사가 판사가 입을 여는 그 순간에는 그는 자신이라는 것을 부정하고 싶었던 것인지 자신의 이름만을 듣지 않았다. 하지만 이름을 제외한 다른 단어들 ‘피고’와 ‘사형’은 그 무엇보다 또렷히 들려 그는 자신의 과오를 그 자리에서 확실히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먹고 싶던 것으로 말도 안되는 것들을 요구했던 그는 나름의 이유를 부과하며 말했겠지만 사실상 자기합리화였다. 그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나름의 이유를 부과해 속죄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믿은 것, 혹은 그러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교도관이 물으러 오기 전부터 마지막 식사 메뉴를 생각하고 있었고 되려 배가 고프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가 교도관에게 했던 말은 단 한 사람에게라도 악한 사람으로 남기 싫어서 혹은 마지막까지 자신의 죄를 부정하며 망상에 빠진 인물로 보이고 싶지 않아서 했던 말이다. 자신이 죄인이라고 말은 하지만 사실은 그 말을 함으로써 자신이 일말에 착한 천성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교도관이 매몰차게 그에게 비판을 했을 때 그는 재판을 받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 어떤 것도 들리지 않는 그 느낌이었다. 그리고 남자는 이 모든 것이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자신이 해야할 일은 사형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그는 이미 이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행에는 옮기지 않았다. 마지막에 발악하면서까지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는 더 이상 굳이 말도 안되는 이유를 덧붙이면서 황당한 식사를 요구하거나 선해보이려는 행위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차피 그렇게 하지 않아도 그는 악인이었고 선해보이려 하는 것은 욕심이었을 것이다. 그는 그것을 죽기까지 12시간 정도 남아있는 시점에서 깨달았다. 그 시간대는 교도관이 이미 마지막 식사를 가지고 그에게 찾아온 시간대였다. 복어 내장은 없었지만 돼지 쓸개와 소금 한 스푼은 준비되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먹는 것이오. 맛있게 먹길.”



교도관은 그에게 식판을 건네면서 말했다. 남자는 그것을 먹을 수 없었다. 자신의 추한 욕심이 담겨있는 그 식판에 있는 음식이 역겹게 보였고, 그 음식들이 보여주는 인간인 자신이 역겨웠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말없이 식판을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식판에 담긴 음식물과 식판만이 그의 앞에 남아있었다. 그는 사형시간이 되가는 그 시간까지 그것들을 바라만 보았다. 그저 한없이 바라만 보았다. 자신의 욕심의 결과물을 최대한 응시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사형시간이 되었다. 교도관도 답답했는지 식판을 치워버리고 남자에게 말했다.



“더 이상 기다려 줄 시간 따위 없소. 빨리 따라오시오.”



남자는 홀연히 일어나 교도관을 따라갔다. 그를 죽여줄 따뜻하고도 잔인한 전기의자가 그를 반겼다. 그는 홀연히 그곳에 앉아 자신의 인생에 대해 생각하였다. 볼품없는 모습만이 그에게 상기되었다. 자신의 과오가 더욱 선명히 드러나는 볼품없는 모습이었다.



“참, 하찮았구나…”



그가 뱉었던 이 말을 마지막으로 그는 다시 말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