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또 쓰러졌다.

 

이번엔 얼마나 의식을 잃었던 걸까, 침상 옆으로 들려오는 조용한 숨소리를 좇아, 시선을 옮겼다.

 

자신의 곁에서, 웅크린 채 새우잠 자는 유나가 맺혀온다.

 

잠자리가 불편할건데도, 조용히 자는 유나의 모습에 가슴이 시렸다.

 

유나가 깨지 않도록, 조용히 상체를 일으킨다. 이윽고 오른손을 살폈다.

 

몇 번 쥐었다 핀 오른손은 그때와 다름없이 조금씩 떨려왔다.

 

평생 안고 가야하는 걸까 ....... 그렇게 생각할 무렵, 유나가 몸을 뒤척이며 일어났다.

 

그녀에게 이런걸 보여줄 수 없다는 생각에 서둘러 숨기고, 유나의 행동을 기다렸다.

 

비몽사몽하던 유나가 침상을 보더니 눈을 비빈다.

 

비빈 눈으로 다시 침상을 확인한 그녀가, 자신을 불렀다.

 

“단!”

 

자신이 일어난 게 그토록 기뻤던 걸까, 그리 자신을 부르던 유나가 자신에게 엎어지듯 몸을 껴안는다.

 

그러곤 울먹이며 말했다.

 

“나, 단이 이대로 못 일어날 거 같아서 .......”

 

“그래서 무서웠어”

 

“괜찮아”

 

인공호흡기를 통해 내보내지는 자신의 목소리가 어색하다.

 

“괜찮아”

 

“어디도 가지 않아”

 

그녀의 머릴 손으로 쓰다듬었다.

 

겨우 울음을 참아낸 유나가 시선을 마주했다.

 

“사랑해”

 

“나도”

 

더 이상 울음을 참기 힘들었는지, 다시 자신의 품속을 파고든 유나가 어깰 들썩였다.

 

유나의 눈물이, 옷을 적시고 자신에게 닿는다.

 

말없이 그저 유나의 등을 쓰다듬었다.

 

눈물을 그친 유나가 자신을 보더니 자신이 얼마나 쓰러져 있었고,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잘 조잘 떠들었다.

 

조잘 조잘 움직이던 입이 자신을 찾았다.

 

“단”

 

“응?”

 

“나, 소연 씨에게 들었어”

 

“뭐를?”

 

그렇게 운을 뗀 유나가 머뭇거리고 주저하더니, 화제를 돌린다.

 

“단, 퇴원하면 내가 밥 해줄게”

 

“응, 기대할게”

 

붉게 상기된 얼굴에서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무슨 말이었을까, 말하기 곤란했던 걸까,

 

그렇게 밤이 깊어가고, 조곤조곤 말하는 유나의 말들이 자장가처럼 다가온다.

 

다시 누워 바라보는 천장이, 어스름했지만 달빛을 머금어 조금 푸르러 보였다.」

 

 

「나른한 오전, 혜은이 하던 일을 그만 두고 상념에 빠졌다.

 

활동 한계 판정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움직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거듭하는 동기율 검사와 신체에 대한 검사는 그가 평범하지만, 조금 뛰어난 조종사라는 사실밖에 알려주지 않았다.

 

그 날, 단이 보여준 경이로운 전투력은 절대 그 수준이 아니었다. 

 

그 외에 뭔가가 더 있다고 생각 들지만, 짚이는 부분이 없다.

 

실마리 없는 수수께끼, 그것이 혜은이 소년에게 느끼는 감정이었다.

 

복잡하지만, 도저히 알 수 없는 문제

 

“너, 도대체 뭘 숨기고 있는 거야?”

 

조용히 속삭이던 혜은이 커피를 한 모금 머금는다.

 

쓴 맛이 입안을 감돌았다.

 

그렇게 혜은이 쓴맛을 음미하며 생각을 정리할 즈음, 조용히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섰다.

 

“......실례”

 

낯익은 목소리다.

 

“유나 왔어?”

 

“네”

 

“그래, 단은 요즘 어때, 오늘 퇴원이잖아”

 

잠깐 시계를 훑어본 혜은이 다시 말을 잇는다.

 

“가기 전에 잠깐 들린 걸까?”

 

“네 .......”

 

“뭣땜에?”

 

“퇴원 기념으로 파티를 하기로 했습니다.”

 

“응?”

 

“모쪼록 와주셨으면 해서 .......”

 

고갤 숙이며 부탁하는 유나에게 의구심을 느낀 혜은이 곰곰이 생각했다.

 

왜, 갑자기 오라는 걸까, 단이 입원하고, 홀로 남은 유나를 곁에서 지켜보며 도와줬지만 그간의 경험을 미뤄봤을 때 유나가 생각해낼 수 있는 것, 이리라고는 절대할 수 없는 행동이다.

 

“단의 부탁이야?”

 

“...... 네”

 

“그렇다곤 해도, 갑자기 무슨 이유로 그런 걸까”

 

혼자 있듯이 내뱉은 말에, 유나가 대답했다.

 

“혼자 있을 때 혜은 씨의 도움을 받았다고 말해줬습니다.

그래서 보답해야한다고 단이 그랬습니다. “

 

혹여나 유나가 그런 기특한 생각을 했던 걸까, 내심 기대했지만 역시나 아니었다.

 

그래도, 이렇게 차츰차츰 배워 나가는 거겠지 속으로 생각한 혜은이 싱긋 웃었다.

 

“그래, 알았어, 시간은 언제?”

 

“19:00 .......시에 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렇게 말을 마친 유나가 자신의 대답도 듣지 않고 사무실을 나섰다.

 

“역시나 쌀쌀 맞구나, 단에겐 꿀 떨어지듯 하면서”

 

홀로 남은 사무실에서 쌓인 종이더미를 죽 살피던 혜은이 조금 식은 잔을 매만진다.

 

‘그래, 이번에 다시 한 번 더 물어보는 거야, 그 애 뭔가가 있어’

 

그렇게 남은 커피를 홀짝였다.」

 

「“갈까?”

 

바깥 공기를 마시던 단이 옆에 선 유나에게 말했다.

 

말 대신 수줍게 고갤 끄덕이는 유나와 나란히, 집으로 걸어가는 그 걸음이, 한 없이 가벼운 듯하다.

 

쏟아지는 물줄기 사이로, 떨리는 오른손을 쥐어보다 멈추지 않는 떨림에 크게 낙심한 단이, 한숨 졌다.

 

지금까지는 잘 속였지만, 언제까지 속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언젠가는 말해줘야 할 부분이겠지만, 걱정할 유나의 모습에 꺼려지는 것도 사실이다.

 

문 밖에서 나는 소리에 황급히 손을 거두고 말했다.

 

“유나?”

 

“수건 가져왔어”

 

수건, 안 챙겨왔구나

 

“그래 고마워”

 

어떻게 해야 할까, 정답이 없는 문제를 푸는 느낌에 머리가 아파왔다.

 

다시 오른손을 들어 힘을 줘본다.

 

의식적으로 힘을 준 오른손이 조금 떨림을 멎는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이런 식으로 숨길 순 없다.

 

항상 힘주며 살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만약에 이게 후유증이고 언젠가는 사라질 수 있는 거라고, 낙관적으로 볼 수 있다면, 제발 빨리 사라져주길 빌었다.

 

무엇보다, 이래서야 보행기 조작에 지장이 생길 테니까,

 

강철의 거인, 자신의 모든 것을 앗아간 그것에게서 도망치려고만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거인을 받아 들여야 한다.

 

여기까지 와서 도망칠 순 없다.

 

지켜야할 세상이 있고, 지켜야할 사람이 있다.

 

‘도망쳐선 안 돼’

 

그렇게 생각할 터였는데, 죽음 앞에서도 초연히 이런 결심을 지킬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실제로, 마지막으로 싸웠을 때조차, 끊임없이 갈등 했으니까 .......

 

그렇게 향한 거실에서 부산스런 소리와 함께 유나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세 큰 술, 세 큰 술?”

 

“이것과 같은 크기의 숟가락은 없는데 ......”

 

“이 정도면 될까, 설명이 애매해서 힘들어”

 

자신이 지척에 다가온 줄도 모르고, 간을 보며 인상을 찡긋 한다.

 

“뭐야?”

 

“응?”

 

“된장국 .......”

 

쭈뼛거리며 어렵사리 대답한 유나가 맛있을지 자신이 없다며 끝말을 흐렸다.

 

그녀의 말에, 대뜸 숟가락을 들고 냄비에서 조금 떠 맛을 본다.

 

맛있다.

 

“맛있어”

 

걱정스레 자신의 반응을 살피던 유나가 눈을 크게 떴다.

 

“응?”

 

“정말로 맛있어, 유나”

 

“고마워 .......”

 

쑥스럽게 고갤 숙이며 볼을 밝히는 유나가 귀엽다.

 

그렇게 생각할 즘, 초인종이 울린다.

 

“오셨는가 봐”

 

그렇게 말하기 무섭게 유나가 쪼르르 현관에 갔다.

 

시계를 돌아보니, 약속 시간보다 약간 이른 시간이다.」

 

「현관문을 연 유나에게 달갑지 않은 얼굴이 서 있었다.

 

부른 기억도 없는데,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지?

 

유나가 얼어붙은 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자 소연이 입을 뗐다.

 

“오늘, 단이 퇴원했단 말을 들어서 말이야”

 

“...... 네”

 

유나가 싸늘하게 대답했다.

 

혜은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내가 불렀어, 혼자 오면 좀 심심할 것 같아서, 안될까?”

 

어렵사리 입을 뗀 유나가, 문에서 말없이 비켜섰다.

 

마지못해 움직인 그 모양이, 퍽 달갑지 못한 모습이다.

 

그런 유나를 지나, 상을 차리고 있던 단이 혜은과 소연을 발견하더니 반갑게 맞이했다.

 

혜은이 손에 든 케이크 상자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파티잖아, 케이크 없어서야 말도 안 돼”

 

그리고 검은 비닐봉지를 조심스레 흔들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알콜도 좀 있어야하지 않겠어?”

 

“아니 저희 아직은 .......”

 

“뭐야, 빼는 거야? 이렇게 좋은 날에 알콜 없으면 무슨 재미야? 빼지 마”

 

지켜보던 소연이 한숨 졌다.

 

“애들한테 뭘 먹이려는 거야.......?”

 

“너도 좋으면서, 괜히 그러네?”

 

“사는 것도 몰랐어”

 

그렇게 말한 소연이 힘없이 소파에 앉았다.

 

유나의 시선이 찌릿, 그녀에게 꽂혔지만 지친 소연에겐 닿지 않았다.」

 

「식탁 위로, 빈 맥주 캔이 나뒹군다.

 

파티에 된장국이 무슨 말이냐며 소란 피우던 혜은 씨가 어느새 맥주 캔을 다섯 개나 비워냈다.

 

“영웅이라고 해야 할까”

 

기세 좋게 캔을 들이키던 혜은이 말했다.

 

“영웅, 싸구려 소년 만화에나 나올 것 같은 .......”

 

“저는 영웅 같은 게 아녜요.”

 

단이 조심스레 캔을 매만지며 조금 홀짝이자, 혜은이 식탁에 기대어, 얼굴을 가까이 한다.

물끄러미 살펴보던 혜은이 말을 이었다.

 

“...... 영웅은 겸손한 법이니까”

 

단은 이어지는 혜은의 칭송이 못내 거북했다. 본인 혼자서 지켜낸 도시가 아니었음을 스스로가 뼈저리게 알고 있으니까, 자신은 영웅일 수 가 없다는 걸, 아니까

 

“그런데, 이상해”

 

그렇게 칭찬일색이던 혜은이 정색했다.

 

“넌 어떻게 그렇게까지 싸울 수 있는 거지?”

 

얼굴색이 변한 혜은이 단을 쏘아봤다.

 

“저번 같은, 얼버무리는 대답은 듣지 않겠어, 이번엔 확실히 말해”

 

어수선했던 분위기가 삽시간에 싸늘해졌다.

 

어느새 혜은에게 떠밀려 맥주를 홀짝이던 유나도, 분위기를 읽은 건지 가만히 캔을 쥐고 움직이지 않는다.

 

한동안 말없이, 혜은과 단의 대화를 지켜보기만 하던 소연이 말했다.

 

“이해할 수 없는 동기율, 활동 한계에서의 움직임, 넌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야”

 

단의 퇴원을 기념하던 파티가, 어느새 단을 죄어가는 취조실로 변했다.

 

혜은이 씁쓸한 눈빛으로 쥐고 있던 캔을 바라봤다.

 

“그때는 그냥 얼버무리며 넘어갔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어”

 

"자각 없는 어른들이라는 건 알고 있어, 말이 좋아야 세상을 위하는 거지, 결국 애들 등 떠밀어서, 기생충 마냥 살아가는 책임감 없는 어른들, 하지만 말이야, 그런 우리들, 아니 적어도 나는, 그 애들을 위하고 싶어, 이렇게 물어볼 자격조차 있을까 싶지만 그럼에도 나는 알아야 해, 너의 강함, 그 아이들이 너의 발끝이라도 따라갈 수 있다면 더 이상 그렇게 죽지 않아도 될 테니까”

 

착, 가라앉은 혜은의 모습이 낯설다.

 

미동도 없는 단의 모습에 혜은이 자조했다.

 

“자격 없는 걸까 .......”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전과 같은 물음, 전과 같은 대답, 

 

“하지만, 그런 걸로는 설명할 수 없어, 보통은 죽는다고!”

 

캔을 거칠게 내려놓은 혜은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덜 마신 맥주가 튀어 오른다.

 

 

 

“그만 해”

 

소연이 혜은을 말렸다.

 

차갑게 올려다보는 소연에게 무어라 말하려던 혜은이 곧 들려오는 유나의 목소리에 멈췄다.

 

“단을 괴롭히지 마 ....... ”

 

꽤 취한 듯,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그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렇게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단을 향하는 유나가 아슬아슬하다.

 

“단, 괜찮아?”

 

자신이 들어야할 말을 태연하게 내뱉었다.

 

“단, 그렇게 움직이면 위험해 ......”

 

술이 잔뜩 오른 유나의 눈에 자신이 어지러이 흔들리나 보다.

 

“유나?”

 

유나가 기어이 발을 삐끗하더니 넘어지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