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텨왔던 세월만큼 희뿌예진

희뿌연 유리창을 가진 건물들이

공허의 냄새를 풍기는 거리에는

파란 꿈을 먹고 자라던 나무들만이 우뚝 서 있다


네온사인의 눈총에 가지랄 것 모두 잃고도

덩그러니 남은 기둥에 파랑을 싹틔우던 나무들

그 나무들에게 이 거리에서의 시간은 아픈 추억이었을까


그림자가 지지 않던 거리

갈 수 없는 고향과 잡지 못한 사랑

볼 수 없는 동무와 놓을 수 없던 꿈

어둠마저 아픔과 맞부딪혀 빛이 되던 거리에서

빛바랜 추억에 스민 파랑을 마시며 나무는 하늘로 가지를 뻗었지만


어느새 해는 기울어 

걷을 수 없는 그림자를 거리 위에 드리우고 

붉은 벽돌에 빛을 뺏긴 저녁은 무거운 하늘만을 남기고 갈 뿐 


플라타너스

하늘에 닿고자 했던 나무는

하늘을 받치는 기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