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때문에 눈이 아파 잠에서 깼다. 그다지 별 볼일 없는 아침이고... 오늘은 좀 더 잘까 생각도 해본다. 침대에서 상체만 일어섰던 나는 그대로 창문으로 스며들어오는 밝은 햇빛을 막고, 다시 누워버렸다.


스르르 다시 눈을 감으니 이런 편안함을 느낀 적은 별로 없다. 이 적당한 크기의 오두막에 지내는 것은 나 혼자뿐이고, 누가 들어올 일도 없다. 주변에는 드넓은 초원지대와 적당한 하천이 흐를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한마디로 외딴집이지..


쿵. 쿵.


문 쪽에서 들리는 소리에 다시 눈을 떠버렸다. 좀더 잘 생각이었는데, 이번엔 누구냐? 내가 여기에 은신이라도 한다는 걸 쉽게 눈치챘을리가 없는데. 바깥으로 뭐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여성의 굵직하고 기 쎄보이는 목소리가 들린다. 창문도 닫아놓았고 문도 걸어 잠궈두었으니 제대로 들릴 리가 없지.


아무도 없는 척 하면 아마도 그냥 갈 것이다. 희망이지만... 아무튼 몇일 전에도 여기 누가 사나 누군가 노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냥 갔었지만. 아마도 그때처럼 그냥 조용히 넘어가길 바랬다.


쾅!!


하지만 갑자기 무슨 굉음과 함께 나무문이 부서져버렸고, 문을 너머 들어온 햇빛 때문에 순간적으로 눈부셔서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이 자식들, 결국 문을 부수고 들어온거냐고.


녀석들 뒤에서 강렬한 빛 때문에 순간적으로 실루엣만 보였지 구체적인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내가 아직 잠에 덜 깨서 눈이 침침한건가?


" 이제 그만 돌아오시지요...!! "


이윽고 아까 문 너머에서 희미하게 들었던 그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아마도 성질 한번 굳센 녀석이겠지. 침침한 눈이 조금이나마 풀렸는지 드디어 그들의 외관이 눈에 제대로 비춰졌다.


이들은 금색빛 체인이 한줄 엮여있는 검붉은색 키 높은 모자에, 같은 색의 복장을 입고 있었다. 딱 봐도 군복이네... 척 보면 안다. 왜냐? 저기에 나무 개머리판을 가지는 화승총을 들고 있으니까.


이들 중 내 앞에 가장 가까이 있으며 가운데에 있는 녀석은 딱봐도 높아보이는 녀석은 포니테일 머리에 운동 꽤나 할거같은 여성인데, 나보다 조금 어려보이는거 같지만 아무래도 그런건 나한테 별로 중요한게 아니다. 키 높은 군용 모자를 안쓴 것을 보니 아마도 이녀석은 장교인거 같은데... 음, 내 기억이 맞다면 이 군대의 장교들은 저 딱봐도 높이 솟아보이는 군용 모자는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라서.


아무튼 이것도 지금으로써는 썩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진짜 문제는, 왜 이 군바리들이 나를 찾아왔는 지에 대해서다. 만약 '그 이유' 때문이라면 아마 오늘 내 목이 광장에 내걸리겠네.


당연히 갑작스러운 상황인지라 나는 침대에서 벗어나지도 못하고 기대있으며, 이녀석들도 나를 노려보며 더 이상 들어오지 않고 있다. 그 몇 초 동안의 침묵이 무슨 주마등이라도 되는 것처럼 훨씬 길게 느껴지고, 그 침묵을 깬 건 아까 그 목소리의 주인공인 이 여성이다.


" 예비역 소령, 루카 마르가트. 지금 즉시 복귀하라는 명령이다! "


이런, 다행히 '그 이유' 때문에 온 것은 아닌거같지만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다른 이유 때문에 오고 만 것 같다. 


뭐, 따지고 보면 나 역시 이 왕립군에서 복무를 했었다. 그 몇년의 시절은 솔직히 기억하기도 싫은데, 이녀석 때문에 또 기억나버렸네. 


그렇게 그녀 뒤에 날 노려보는 네명? 아니.. 다섯명 정도 되는 병사들을 한번 쭉 훑어보고, 그녀를 다시 제대로 노려보았다. 어깨에 달린 견장을 보아... 은색 육각형 2개? 내가 지금은 군인 신분이 아니라서 그렇지, 딱 봐도 나보다 높은 계급은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녀를 올려다 보는 것을 멈추고는 잠시 눈을 감더니, 한숨을 쉬고 혀를 내두르며 다시 눈을 떴고, 침대에서 천천히 일어나며 우선은 이들을 진정시킬 필요가 있었다. 적당히 농담따먹기나 던져주고 천천히 얘기나 들어야지.


" ... 하아, 요즘 왕립군은 상관한테도 반말하냐. "


" 지금의 넌 내 상관이 아니다. 잔말 말고 따라와! "


" 아니아니, 이봐. 뭐가 그리 성질이 급해? 니 뒤에 애들이 살아있는게 퍽이나 신기해. 에휴... , "


" 더이상 반론은 듣지 않겠...! "


" 뭐 가기전에 미리 얘기를 해줄 수는 있잖아? 차라도 내줄테니까 좀 가라앉혀. 그러다 혈압 올라서 쓰러질지 누가 알아. "


진정시키긴 글렀다. 이녀석, 너무 고집이 쎄... 제대로 발끈했는지 이녀석은 그대로 날 죽일듯이 째려보다가 표정이 일그러지며 결국 한번 제대로 폭발해버린다.


" 난..! 고혈압 환자가 아니란 말이야!!! ... 뭣들 하고 있어.. 끌어내! 한시가 급하다! "


" 예..! "


이런 높은것들은 자기가 화날거 같으면 왜 밑에거를 시켜서 잡아오라느니 끌어내라느니 이러는데, 솔직히 그녀 정도면 별로 높은 것도 아니다. 


그녀 양옆으로 병사들이 그대로 내 앞으로 다가와 두명은 내 양쪽 팔목을 잡고, 나머지 한 녀석이 내 뒤로 내 양쪽 손목을 그대로 밧줄로 묶어버린다. 아픈데 살살 좀 묶어주면 어디가 덧나나? 보이진 않지만 묶인 것이 느껴진다.


" 다 묶었습니다, 중위님, "


" 얼른 끌고가! 폐하께서도 상부께서도 기다리는걸 좋아하지 않으신다! "


" 예! "


" 아니 그래서 얘기 좀.... "


내 말은 안중에도 없구나. 도통 알려줄 생각을 하질 않는다. 결국 이렇게 뒤로 팔이 묶인채 병사들 그리고 이녀석들과 같이 범죄자 유배시키는 꼴로 이동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수치스러움을 느끼거나 하지는 않는다. 왜냐? 익숙하니까.


그래서 대체 어디까지 가는 것이지? 걸어서 이동하고는 있지만 왕도는 너무 멀다. 아니 마차를 타도 몇일은 걸린다고.... 제발 거기까지는 가지 않기를 빌어야 한다.


얼마나 걸었을까...


" 그래서, 어디로 가는 건데? 그리고 왜 나야? "


" 거참 말 많군! 입다물고 얌전히 걷기나 해라! "


" 이봐, 난 저질체력이라서 벌써 지칠거 같거든. 하다못해 물이라도 좀 주면 안돼? "


" ....듣던 바와는 틀리군. 도착하면 제공할테니 조금만 참아라! "


듣던 바라니?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이지? 애초에 내가 뭐 군 내에서 소문이 퍼질정도로 유명인인 것도 아닌데. 아무튼 고의로 힘들어 죽겠는 척 하려고 했으나 먹히지 않았다. 


이후 얼마나 걸었는지 어느새 마을에 들어선다. 꽤나 넓고 큰 마을이지...


그리고, 예상한 대로 난 한복판 길에서 연행되는 듯한 모습으로 끌려가고 있었으니 당연히 이 마을 주민들의 시선들이 양옆에서 여기저기 보이고, 느껴진다.


누군가는 나를 경멸하는 눈빛을,


누군가는 내가 도대체 뭘 해서 잡혀가는 걸까 하는 눈빛을, 


또다른 누군가는 그냥 그러려니 하는듯한 눈빛을.


이런 날선 대우도 오랜만이구나 싶다. 그래서, 이 마을 어딘가에 목적지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지나가는 경유지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해답은 곧 알게 되었다.


회색 잿빛 벽돌로 견고하게 만들어진 어느 건물의 커다란 문 앞에 도착했는데, 이게 성인지 군사기지인지 아니면 무엇인지 긴가민가 했다.


드르르륵...


이윽고 커다란 철제 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