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과 싸우는 자는, 그 스스로가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너가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도 널 들여다보기에.


- 니체 <선악의 저편에서>





1. <공동묘지의 손님>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 이동 수단이 들어갈 수 없는

어느 깊은 숲에 차가 멈춰섰다.


철퍽-

포장되지 않은 흙길은 벌써 질척질척했다.

72년식 포드의 차문이 벌컥 열림과 동시에,

혼탁한 흙탕물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하아, 젠장할.」


차 문을 열자 바로 물웅덩이가 반겨주었다.

포드의 주인은 한숨을 푹 쉬곤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것마저 잘 되지 않아 몇 번이고 라이터를 달칵대었다.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나무들 너머로,

무덤과 비석과 덩쿨이 얽힌 음산한 장소가 펼쳐졌다.

아무도 기억 못 하는 공동묘지에 손님이 찾아온 것이다.


허리춤에 은색으로 반짝이는 리볼버를 찬 채,

영국제 검정 코트를 걸치고 중절모를 눌러 쓴 '손님'은

묘지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탕-  

얼마나 걸었을까. 저 멀리 하얗게 늙은 묘지 관리인이 

기척을 듣고 나오더니, 냅다 엽총을 발사했다.


텅 빈 묘지에 총성이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자

깜짝 놀란 까마귀 무리가 푸드덕대며 날아올랐다.

간신히 피한 총알이 코트에 구멍을 뚫고 나무에 박혔다.


「뭐 하는 짓입니까!」

급하게 비석 뒤로 몸을 숨기며, 묘지의 손님이 소리쳤다.


「가르시아?」

관리인의 목소리가 못 믿겠다는 듯 갈라졌다.

재장전과 함께 탄피 떨어지는 금속 소리가 들렸다.


「그래요! 접니다!」

「망할 괴물 새끼. 이제는 사람 목소리도 흉내를 내?」


퍽-

비석 앞으로 총알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박혔다.

관리인은 고래고래 소리치며 새로운 총알을 집어넣었다.


「썩 꺼져! 다음은 은장탄을 먹여 줄 테다.」


폭주하는 관리인과 대화로 풀기는 어려워 보였다.

묘지의 손님이 리볼버를 뽑아 하늘로 발사하자

무시무시한 폭음과 함께 총구에 십자가 불꽃이 치솟았다.


공동묘지 일대 산의 새 때가 놀라 푸드덕대자

그제야 늙은 관리인의 총성이 멈추었다.


「신부님! 이걸로 충분하십니까?」

「오, 이런. 진짜 자네로구먼.」


묘지의 손님은 한숨을 푹 쉬고 자리를 털며 일어났다.

관리인은 멋쩍어하며 막 쏘려던 은장탄을 빼내었다.


잠시 소란이 있었지만, 아무튼 그는 

아주 오랜만에 찾아온 손님을 자신의 숙소로 안내했다.


수명이 다해가는 침침한 백열등만이 안을 비추고,

낡은 침대, 탁자, 의자 하나만이 초라하게 자리를 지켰다.


「이 묘지에 인적이 끊긴 지도 아주 오래되었다네.

   찾아오는 거라곤 시체 냄새를 맡고 온 데블뿐이었어.」


묘지의 손님은 코트를 벗으며 장난스레 농담을 던졌다.


「실력은 여전하시군요. 거의 죽을 뻔했어요.」

「크흠, 미안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혼자 오래 살다 보면 매사가 불안해진다네.」


묘지의 손님이 깊게 눌러 쓴 중절모를 벗자, 

아까는 잘 안 보였던 젊은 여성의 모습이 드러났다.


왼쪽 눈을 비껴간 십자가 모양 흉터를 감안하더라도, 

깊은 푸른색 눈동자와 금발 머리칼을 지닌 상당한 미모였다.


노인의 눈에 어느새 눈물이 고였다.

그녀도 환하게 웃으며 노인을 바라보았다.

둘은 그제서야 오래된 인사를 나누었다.


「가르시아, 정말 오랜만이구나. 몰라보게 컸어.」

「가폰 신부님. 몰라보게 더 늙었네요.」






2. <신앙의 위기>



「바쁜 와중에도 여기까지 왔다는 건, 무슨 일이 있는 거지?」


「사실, 교황청에 보고도 안 한 독단적 외출입니다.」


그는 깜짝 놀라며, 의자 등받이에 기대었다.

가르시아는 고개를 숙이고 말을 이어나갔다.


「신부님. 제 신앙이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가슴속에서 십자가 이외의 것이 계속 절 어지럽게 합니다.」


가폰 신부는 수십 년간 데블과 싸워온 배테랑 신부였다.


지금은 전선에서 은퇴하여 묘지 관리직을 맡고 있지만,

한때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던 이었으니 

그녀의 고백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는 한숨을 푹 쉬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오랜 생각 끝에, 그녀만 혼자 알고 있으라는 당부를 덧붙이며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난 십자가 하나를 믿고 지금껏 싸워왔고

  신의 뜻을 행하는 성스러운 역할이라 믿었다네.

  하지만 그 참혹한 살육의 현장 속에서 내가 찾은 길은 없었어.


   하나씩 죽어가는 동료들 사이에서 나 혼자만 늙어갔고, 

    나는 점점 믿음에 의문을 품었지. 전쟁에서 계속 지는데, 

   신, 당신은 대체 뭘 하고 있느냐고 말이야.


   광기의 시대이네, 가르시아.

   내가 자네에게 올곧은 신앙을 가르칠 수는 없겠군.」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대답이었다.

가폰 신부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조용히 흐느끼고 있었다.

평생 믿은 것에 의심을 품은 순간, 그는 이미 무너지고 있었다.


가르시아는 충격에 할 말을 잃었다.

그녀는 조용히, 떨리는 그의 손을 꼭 붙잡고

마음속으로 이 무너진 신부를 위해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도움이 못 되어 미안하네.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말야.」


「아닙니다. 오랜만에 신부님을 뵈어서 좋았어요.」


잠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가르시아는 복귀를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창 밖으로 엔진음이 들렸다.

저 멀리 오토바이를 타고 누군가 오고 있었다.


「찾았다~ 신부니임!」


신부 제복을 입은 누군가가, 

묘지 저편에서 힘차게 손을 흔들며 달려오고 있었다.

가르시아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하아, 안젤라.....」


어느새 두 신부 앞에 도달하여 헬멧을 벗자,

활짝 웃고 있는 귀여운 소녀가 앞에 서 있었다.


「신부님, 여긴 안젤라. 견습 신부로써 제게 배우고 있어요.」

「처음 뵙겠습니다!」


가르시아는 한숨을 푹 내쉬며 소개했다.

소녀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가폰 신부에게 인사했다.


「난 어떻게 찾았어?」


「숲 앞에 72년식 포드가 서 있더라구요? 

   그런 고물차 주인은 신부님 뿐이니까 딱 알았죠!」


가르시아가 노려보자, 아차 싶은 소녀는

황급히 다시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가, 가서 시동 걸어놓고 있을게요!

   지금 교황청 완전 뒤집어졌어요. 신부님, 빨리 오세요!」


그러고는 모래먼지를 날리며 금방 사라져 버렸다.

가폰 신부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일과는 어울리지 않는 아이군.」


「네, 안 어울리죠.」


때 묻지 않은 순수함과 명랑함을 지닌 소녀.

일상이 피투성이인 신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가폰 신부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곧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자네의 신앙이 흔들리는게, 

   저 아이 때문인가보군.」


「네? 아니, 그게 아니라.....」


「하하하. 그렇게 놀랄 것 없네.

  자네의 눈빛이 다 말해주고 있어.」


가르시아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얼굴만 새빨갛게 물들였다.

가폰 신부는 그녀의 두 어깨에 손을 얹었다.


「가르시아, 내 말 잘 듣게. 신은 성경의 글자가 아닐세. 

   나는 글자의 가르침에 따라 맹목적으로 죽여 왔지만,

   결국 아무것도 안 남은 채 이렇게 되었네.」



그의 얼굴에서 희망이 점점 번져 나갔다.

그녀가 보기에, 신부는 무언가 깨달은 듯 했다.  


 「저 아이를 아껴 주게.

    자네 가슴 속 새로운 십자가가 되어 줄 거야.

    나는 그런 확신이 드네.」


그녀는 멍하니 그의 말에 반응하지 못했다.

무언가 물어보려 했지만, 아무것도 안 나왔다.


가폰 신부는 껄껄 웃고는, 그녀를 배웅했다.

「신앙에 의문을 품다니, 우리 둘 다 이단자로군.

   자, 어서 가보게.」









소설 처음 써보는 창문챈 뉴비.....

실력은 조잡하지만 예쁘게 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