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제프는 눈을 떴다. 무언가 살아있는 것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시야가 탁한 물에 눈을 빠트린 것처럼 흐렸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했다. 그러자 위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진정하세요.” 


걱정을 담은 다정한 목소리였다. 미약하게 화약 냄새가 났다. 꿈이 단순한 기억의 재생이 아니었단 말인가? 그의 머릿속에선 여전히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맥박의 폭탄 같은 울림이 뇌를 죽이고 있었다. 후각은 화약을 쫓고 있었다. 입에서 침이 돌았다. 파괴된 바르샤바의 모습과 기다란 참호의 연속이 그의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양손은 수전증 환자처럼 떨리고 있었다. 돌격 소총의 반동이 느껴졌다. 총성이 귀에 들리고 곧 이음 소리가 청각을 지배했다. 비가 내리고 있었고 진흙이 온몸에 묻어 있었다. 자살하고 싶었다. 생존하고 싶지 않았다. 요제프는 자신이 죽어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정말 갑작스럽게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 벌레가 얼굴에 날아들듯이 문득 비가 다리만 적시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요제프는 다리에 감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 사실을 늦게 알아차렸다. 의구심을 품고 고개를 들어보니 그를 내려다보는 수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검은 털에 왼쪽 눈에 흉터가 있고 정장을 차려입은 데다 낮은 실크 햇을 썼고 우산을 들고 있었다. 주둥이가 앞으로 쭉 나와 있고 검은 코와 입술도 보였다. 수염도 몇 가닥 나 있었다. 아마도 늑대 같았다. 


요제프는 어지러웠고 그의 말대로 진정하기 위해서 무릎을 꿇고 한참동안 그렇게 하고 있었다. 우산 아래에서 비는 맞지 않았지만 바람은 젖은 그의 몸을 더 차갑게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었다. 손 떨림이 어느정도 사라졌을때 요제프가 말했다.

 

“당신이.. 네가 날 구했나?” 


“예 내가 당신을 구했습니다.” 


그의 오른손에는 M1900 전장식 머스킷 권총이 들려 있었다. 총구가 두개였다. 요제프가 물었다. 


“그 장난감으로?” 


“네 이걸로 밧줄을 쐈죠.” 


“하지만.. 왜...?” 


“당신을 구해야만 했으니까요.” 


그가 권총을 품속에 넣었다. 그리고 편지를 하나 꺼냈다. 


“읽어요.” 


그건 단순한 명령이었다. 요제프는 명령에 따르고 싶지 않았다. 그는 자살하고 싶었고 죽고 싶었으며 편지 따위 읽을 기분도 아니었다. 목과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아마 실제로 끊어지기 직전까지 갔을 게 틀림없었다. 상태가 영 좋지 않아서 요제프는 사실 자살보다는 잠을 더 자고 싶었다. 그는 검은 반점 같은 것들이 시선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걸 보았다. 그는 기침했다. 피를 뱉어냈다. 입속에 비릿한 맛이 감돌았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속이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읽어요.” 


다시 명령이 내려왔다. 요제프는 반항했다. 


“싫어.” 


그가 웃었다. “이게 뭔지 알고 싫다는 거예요? 당신에게 좋은 것일 수도 있잖아요.” 


“아무튼 싫어. 싫은 것에 이유가 필요해? 나는 그냥 쉬고 싶어 편지 하나 읽을 힘도 없다고.” 


“그래요? 그럼 내가 읽어드리죠.” 그가 헛기침했다. 그리고 편지를 뜯고는 읽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요제프.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모두 말하지 못해서 미안해요. 정말로 미안해요. 만나서 얘기하고 싶어요. 자유의 땅으로 와요. 그곳에서 우리 예전으로 돌아가요. 언제까지나 당신의 것인 메리.’ 라고 적혀 있고 아래에 주소가 있네요 추신도 읽어드릴게요. ‘당신을 위해서 내 종복 빅터를 보내요. 그가 당신을 인도하고 지켜주고 안전하게 아메리카로 이끌 거예요.’”


그 무렵 요제프는 편지의 내용 절반도 듣지 못한 채 의식이 끊어지고 말았다. 그는 그대로 죽어버린 듯했다. 늑대는 쪼그려 앉아서 요제프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의 얼굴은 흉측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총상과 화상자국 자상 자국은 하늘의 별처럼 그의 얼굴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고 인위적으로 가죽이 뜯겨나간 부위까지 없어 넋 놓고 보기 힘들었다. 그는 자신이 타고 온 로드스터에 요제프를 위한 여벌 옷과 두건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이 상태로 옮기면 분명 죽을 게 틀림없다고 생각한 늑대는 요제프를 이끌고 그의 집으로 들어가서 침대에 눕혔다. 


그는 모닥불에 불을 지폈다. 깡통 같은 주전자를 보고는 처음에는 폐품인가 싶었지만 곧 그것의 용도를 파악하고는 집을 살피다가 발견한 항아리에 있는 오래된 생수를 퍼담아서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집 안에 있는데도 밖의 찬 공기가 모두 들어와서 건물 내부는 밖이나 다름없었다. 비마저도 뚫고 들어오고 있었다. 유달리 심한 장소엔 양동이가 놓여 있었다. 습하고 벌레가 있는 데다 비까지 새는 장소에서 불까지 피웠으니 연기가 밖으로 나가면서 멀리서 보면 건물 안에 화재라도 난듯했다. 늑대는 이런 곳에서 여태까지 어떻게 산 건지 궁금해졌지만 굳이 물어볼 생각은 없었다. 실례가 될 것 같았다. 


건물은 낮아서 늑대는 몸을 웅크리고 있어야 했다. 그는 다리가 역관절인데도 키가 컸다. 본래 역관절이 아닌 종들이 역관절인 종보다 키가 더 큰 경향이 있다. 수인 중에서도 이렇듯 차이가 있는 경우가 있는데 크게는 가죽이 인간의 것을 닮고 꼬리조차 없는 데다 얼굴만 동물의 것을 닮은 반 수인부터 그냥 짐승이 다름없지만 말을 할 수 있고 지능도 똑같은 반짐승도 존재했다. 동물주의는 정말로 인간처럼 가죽에 털이 나지 않고 얼굴만 짐승의 것을 닮는 경우가 아닌 이상 죄다 인간 혹은 동물이라는 이분법으로 정의했다. 그래서 수인,인간 이분법이 기능했다. 


빅터는 그런 이분법이 마음에 들었다. 인간이나 수인이나 따지고 들어가면 복잡하다. 그냥 간단한 게 좋다고 빅터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딱히 인간이나 반 수인을 혐오하거나 하진 않았다. 그는 그저 간단한 게 좋은 수인일 뿐이었다. 


물이 다 끓었고 빅터는 끓인 물을 가지고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서질 않았다. 그냥 무턱대고 끓인 것이라 그대로 내버려 둘까 하는 생각도 했다. 빅터는 습기가 몸에 좋다는 말을 어디서 들어본 적이 있었다. 적어도 


지금 같은 날씨에 건물 온도를 조금이라도 높여줄 무언가를 할 수 있으면 빅터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인간은 털이 없으니까. ‘털’. 빅터는 손가락을 튕겼다. 그리고 옷을 벗었다. 


요제프는 늘 그렇듯이 새벽 일찍 새들의 울음소리와 함께 일어났다. 비는 멈췄다. 그는 부드럽고 따스한 것을 껴안고 있었다. 그가 눈을 떴다. 검은 털 뭉치가 있었다. 요제프는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그것을 걷어찼다. 빅터가 밀려나면서 침대 밑으로 떨어졌다. 요제프는 자기 몸을 살폈다. 누군가에게 납치라도 된 것처럼 온몸을 샅샅이 뒤졌다. 흙이 조금 묻어 있다는 점만 빼면 온기가 있는 평범한 몸이었다.


그가 물었다. 


“뭘.. 뭘 한 거야?” 


아래쪽에서 웃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을 닦아주고 말려주고 살려줬죠.”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나체였다. 털 덕분에 성기가 보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있어야 할 게 없었다. 


“너 불알은 어디 갔어?” 


“아 전 거세당했어요.” 


그는 이것이 마치 나는 한때 철이 없었어 그랬다는 투의 간단한 문제를 다루는 듯이 말했다. 


“거세당했다고?” 


“네. 그 예기는 됐고 이제 갑시다. 갈 길이 멀어요 로드스터에 가면 옷이 있을 텐데 그걸 걸쳐요 열은 없죠? 없을 거라고 믿을게요.” 

요제프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몸이 무거웠다. 열도 조금 있었다. 그는 과거를 생각했다. 참호에서 일어나는 몸은 항상 무거웠다. 움직이기 싫었고 침대에서 더 있고 싶었다. 그것이 나중의 포탄에 맞고 생매장된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그는 계속 꿈을 꾸고 있었을 테니까. 요제프는 그래도 움직였다. 적어도 이삭을 줍고 노예처럼 일을 하고 또 도리깨를 맞는 것보다는 이렇게 움직이는 편이 더 나았다. 


요제프는 거의 헐벗은 상태로 오두막을 나왔다. 지금은 지붕이 씌워진 상태인 로드스터에 빅터가 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었다. 뒷좌석 문이었다. 그곳에는 서류 가방이 있었고 그 위에 양복이 접혀 있었다. 강도를 연상케 하는 두건도 있었다. 빅터는 이 모든 걸 자신의 주인이 예상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요제프는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물었다.


“그나저나 이름이 뭡니까.”


“갑자기 존대입니까?”


“이름이 뭔데.” 


“들었잖아요 빅터. 편지 읽을 때.. 아니 됐어요 그땐 기절했겠네.”


“그래 빅터. 날 살려준 건 안 고마워 날 죽게 내버려 뒀어야지.”


“그럼 내가 혼나거든요.” 그가 미소 지었다. 요제프는 그 얼굴에 주먹을 박아넣었다. 


“내가 언제 간다고 했나?” 


“거칠게 굴지좀 마요.” 빅터가 터진입술을 닦으면서 말했다. “당신을 대려가야 해요 가면 좋은 일이 있을거라고 재가 장담하죠 갑시다 빨리 옷 갈아 입어요.” 


요제프는 자신이 아무것도 모르는 메리라는 사람과 빅터라는 수인의 인도를 따르기 싫었다. 


“내가 또 명령해야겠어요? 군인 양반?”


요제프가 또 주먹을 날렸지만 빅터는 능숙하게 피하고 그의 복부에 주먹을 박아 넣었다. 요제프가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다시 진흙탕에 얼굴을 묻었다. “오 망할.” 넌더리 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봐요 내가 다시 닦아야 하잖아요.” 


요제프는 숨을 쉬는데 정신이 없었다. 독약 때문에 망가진 장기는 예민했다. 장기가 심하게 아파졌다. 드릴로 파내는 것 같았다. 요제프는 도리깨를 맞는 게 차라리 났겠다고 생각하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수인에게 달려들었지만 그의 허리에 매달려서 바지를 내리려고 애쓰려는 듯한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바지가 내려가기 시작하자 수인은 당황해서 요제프를 때어내려고 했다. 그것은 성공했고 요제프는 뒤로 넘어졌다. 빅터가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서 빈손을 보여주더니 곧 오두막으로 가서 걸레와 물을 가져왔다. 


빅터는 걸레에 물을 먹이고 요제프를 닦였다. 그리고 그를 일으켜 세웠고 다시 물을 들이붓고 걸레로 진흙을 최대한 닦아냈다. 그러나 몸에 묻은 흙이 너무 많아서 그는 포기하고 양복도 입히지 않기로 했다. 


“우리 이제 가는 겁니다?” 


그는 요제프를 뒷좌석에 태웠다. 요제프는 반항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다. 차량이 출발하는 동안 그는 시트의 차가운 감촉에 몸을 묻고 잠들었다. 


차량이 멈췄을 때 요제프는 일어났다. 그는 주변을 둘러봤다. 수인들이 가득했다. 고양이 머리의 여인들이 가방을 메고 걷고 있었고 군복을 입은 개들이 순찰하고 있었다. 경찰들도 마찬가지였다. 토끼도 있었고 사슴이나 돼지도 있었다. 곰 같은 이방인들도 있었으며 항만 근처인지 항만 노동자가 많이 보였다. 그들은 거의 상체를 드러내 보인 채로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털 위에 외설스러운 문신을 한 수인도 많았다. 앞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다 왔어요.” 


빅터가 뒷좌석에 팔과 고개를 내밀면서 말했다. 그는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었고 어쩌면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요제프를 보고 있었다. 요제프가 두려움에 떨면서 말했다. 


“난 여기 있으면 안 돼.”


“당연히 안되죠 밖에 나가는 순간 경찰들이 당신을 바다로 던져버릴껄요.” 


“그걸 알면서 날 여기 데려온 건가?” 


요제프가 바닥으로 몸을 숨겼다. 창문에도 그의 모습이 보여서는 안 되는 듯 행동했다. 실제로 그렇게 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수인들에게 죽을 것이다. 동물주의가 지배하지 않아도 인간에 대한 인식은 이 나라에서 좋지 않았다. 아니 사실 이 대륙 전체에서 동물주의가 발흥하기 이전에도 인간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았다. 인간은 군림하든 군림하지 않든 동물과의 다툼이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예전에는 인간이 강자였고 수인이 인간에게 사냥당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은 수인을 먹었다. 인간이 지배계층으로 남아있게 된 건 그때의 유산이나 다름없었다. 


인간이 수인을 먹지 않게 된 것은 거대한 역병으로 인해 인간의 인구 구십 프로가 전멸한 직후에 수인과의 공존을 택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대체제도 있었다. 수인도 인간도 아닌 짐승이 그것이었다. 그들은 최소한의 지성만 있으며 수인들도 짐승을 먹이 삼았다. 덕분에 초식 생물이든 육식 생물이든 서로 공격하지 않고 공존할 수 있었다.


요제프는 대낮부터 누군가에게 맞고 싶지 않았고 덤으로 죽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죽고 싶지 않았다. 그는 자기만의 방법으로 자기 손으로 목숨을 끝내고 싶었다. 다른 누구에게 목숨을 빼앗긴다면 그것은 정말로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요제프가 말했다. 

“당장 차 돌려.”


빅터가 말했다. “아쉽게도 안됩니다. 당신은 뒤에서 양복이나 입어요.” 


요제프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빅터가 쳐다봤다. 둘은 침묵했다. 빅터가 휘파람을 불었다. 요제프는 양복을 바라봤다. 빅터가 손가락을 튕겼다. 요제프는 그가 손톱도 없다는 것을 알아봤다. 손이 놀랍도록 부드럽겠다고 요제프는 생각했다. 


“아 제발 좀 입어요.” 빅터가 패배했다. 요제프는 달리 방법이 없어서 그냥 승자의 품위를 지닌 채 양복을 입었다. 


“두건도 걸쳐요.” 


“정말 이게 먹힐 거라고 생각하는건 아니겠지?”


“걸치라면 걸쳐요 좀.”


요제프는 그렇게 했다. 


둘은 거리로 나왔다. 서로 팔을 잡고 있었고 요제프는 빅터의 빠른 보폭을 어쭙잖게 따라가고 있었다. 그는 몸이 불편했다. 그리고 매우 피곤했다. 더는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빅터가 그를 향해서 괜찮냐고 물었다. 요제프는 아니라고 간략하게 대꾸했다. 그리고 그들은 항만 깊숙이 들어갔고 커다란 배 앞에 섰다. 붉은 화물선이었다. 


커다란 배가 붉은 배를 드러내 보인 채 사람들을 향해서 늠름한 자태를 뽐냈다. 그것은 절대 침몰하지 않을 문명의 상징이었다. 많은 수인들이 그 배를 향해서 들어가고 있었고 화물도 적재하고 있었다. 경비 두 명이 선착장을 감독하고 있었으며 허리춤에는 전장식 권총을 착용하고 있었다. 검은 제복을 걸친 둘은 도베르만 견종이었으며 냄새는 독하게 잘 맡는 족속들이었다.  


“들킬꺼야.” 요제프가 말하면서 빅터의 팔을 잡아 끌었다. 


“괜찮아요.” 빅터가 그를 안심시키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그들은 경비앞에 섰다. 


“티켓.” 경비가 말했다. 그러나 갑자기 코를 킁킁거리면서 냄새를 맡더니 요제프의 앞에 섰다. 


“두건 벗어.” 경찰들의 태도가 험악해졌다. 


“신사분들.” 빅터가 요제프와 경찰의 사이를 가로막으면서 말했다. “저한테 티켓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친구는 동승자고요.” 

“어떻게 인간이 동승자일 수 있지 저딴 족속을 감싸고 도는 건가?” 


“일단 서류를 읽어나 보세요.” 


경비견은 떨떠름한 태도로 서류를 하나 받았고 곧 눈을 종이에 처박았다.


“아니... 어떻게.. 이게 말이..”


그리고 잠시 침묵의 장막이 그들에게 드리웠다. 빅터는 여전히 웃고 있었고 요제프는 겁에 질려서 요제프를 뿌리치고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경비견 한 마리는 허리춤에 권총을 집고 있었지만 티켓을 보고 태도가 누그러졌다. 


“죄송합니다. 몰라봤습니다.” 그들은 길게 말하지 않았다. 경찰은 자신의 품위를 지킨 채 자리를 비켰다. 


요제프와 빅터는 함선으로 들어갔다. 요제프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대체 뭘 한 거야?” 


“티켓을 보여줬죠.”


“무슨 티켓?”


“재가 주인님의 종이고 이 배가 주인님 배라는 걸 증명하는 티켓이요.”


“그게 경찰들이 움직일 이유가 된다고?”


“사전에 모두 작업을 해놨죠. 당신을 옮길 계획은 정말 치밀하고 힘들고 자본이 많이 들어갔어요 인간 하나를 옮긴다는 게 쉬운 일이긴 하지만 당신을 찾는다는 게 어려웠죠 그러니까...”


“아니 내가 궁금한 건 하나야 어떻게 저 경찰들을 구워삶은 거지?”


“재 주인님은 여기까지 예상했어요 경찰들에게 미리 뇌물을 받았죠. 그냥 서장한테요 그래서 모두 저희 주인님 명령은 정말 개처럼 알아먹고 행한다니까요?”


“내가 도대체 뭐길래 그 메리라는 사람이 날 찾는거야?”


“질문이 참 많네요 그건 저도 몰라요 일단 둘이 만나야 알겠죠?”


요제프는 메리라는 존재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나지 않았다. 오랜 기억을 뒤집어 봐도 기억나는 게 없었다. 어쩌면 메리라는 존재는 그저 자신을 납치해서 팔아버리기 위한 인신매매 조직의 거짓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의 기억은 수없이 많은 시간 동안 요동쳤고 이제는 부모님의 이름도 잊어버렸을 만큼 마모되었으니 메리라는 사람을 혹은 수인을 알고 있지만 기억하고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요제프는 그렇게 생각했다. 


요제프의 기억은 휴지통 같았다. 그는 뭐든지 빠르게 잃어버리고 몇 년 단위로 기억이 사라지기도 했다. 이렇게 된 원인은 그도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모르핀 중독이 그를 이렇게 망가뜨린 것 같았다. 뇌가 망가졌으니 기능을 하지 않는 것이다. 모르핀은 최근까지도 꾸준히 맞았는데 전쟁이 끝난 직후에 가장 먼저 모르핀 상자를 들고 튀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모르핀을 하면서 계속해서 방랑했다. 방랑 끝에는 마지막 모르핀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마지막 모르핀에 대해서 생각이 옮겨가자 그는 정신이 갑자기 말끔해졌다. 그것은 그가 자살하기 직전에 쓰려고 아껴둔 모르핀이었다. 침대 머리맡에 놔뒀는데 그 존재를 그만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들은 배의 내장을 탐험하고 있었다. 빅터가 앞장서고 있었다. 요제프는 계속 모르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약을 하고 싶었다. 정맥이 간지러워 왔다. 그는 팔을 긁었다. 그리고 피가 날 정도로 긁어대다가 결국에는 쓰러졌다. 시야가 어두워졌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자살하고 싶었다. 격렬하게 자살이 고팠다. “그만둬!” 하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의 목소리였다. 비통하고 애절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제발... 요제프를 놔줘!” 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성의 목소리였고 어린애이면서 익숙한 목소리였다. 차가운 공기가 그를 압박했다. 날씨는 습기가 가득 차서 무더웠는데도 그의 몸에는 얼음 날처럼 싸늘했다. 그가 발작을 시작하자 빅터는 한숨을 쉬었다. 


빅터는 요제프의 모르핀 중독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증세가 심각해서 생명에 지장이 가고 있다는 점 또한 알았다. 빅터는 요제프가 지금 모르핀을 맞지 않아서 일으키는 일종의 발작인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왜 하필 지금일까?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밸트에 매달린 가방에모르핀을 꺼넸고 그의 정맥에 주사했다. 


요제프는 잠들었다. 


그는 꿈을 꾸고 있었다. 


작은 올빼미 한 마리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름다운 흰색 털의 가면올빼미였다. 요제프는 그 앞에 앉아서 목에 쇠사슬을 하고 양손은 의자에 묶여 있었다. 머리도 구속되어 있었다. 전기의자에 앉은 사형수 꼴이었다. 


누군가 들어왔다. 그는 군의 장교였고 돼지머리에 도축업자처럼 앞치마를 하고 있었다. 요제프가 말했다. “제발 더 이상 하지 말아줘요...” 목소리는 닿았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메스와 집게를 꺼냈다. 그리고 요제프의 가족을 도려내기 시작했다. 때로는 원형으로 때로는 큐브 모양으로 그렇게 그의 몸은 점박이가 되었다. 그 위에 소금을 뿌렸고 곧 물을 뿌렸다. 전기 충격이 시작됐고 요제프는 죽지 않을 만큼만 고문받았다. 그다음에는 손톱이 뽑혔고 다음에는 발톱이 뽑혔다. 그런 간단한 고문이 끝난 뒤에도 고통은 계속 이어졌다. 정성스러운 고문이었다. 


요제프가 비명을 지를 때마다 올빼미가 울면서 둘 사이를 맴돌았다. 때로는 요제프의 머리 위에서 깃털을 정리했고 귀가 찢어질 듯이 비명을 지르기도 하고 돼지의 눈을 갈기갈기 찢기 위해서 발톱으로 발버둥 치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요제프에게 가해지는 고통만 더 심해졌다. 결국에는 요제프가 제발 좀 가만있으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의자에서 일어섰을 때 그는 앞으로 엎어졌다. 바닥은 콘크리트였고 정면에는 유리가 있었다. 요제프는 누운 상태로 피를 흘렸다. 누군가 그를 밟고 채찍질했다. 등이 불타오르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꿈틀거리지도 못했다. 요제프는 눈물을 흘렸다. 그러다 눈에 발굽이 날라왔다. 요제프는 눈을 다치고 말았다. 그의 눈에 반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요제프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는 계속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죽었다. 


올빼미가 요제프의 코앞으로 날아와 요제프의 코에 입을 비볐다. 


잠에서 깼을 때 요제프는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좋은 침대에 잠옷을 입은 상태였고 바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빅터가 안락의자에 앉은 채로 신문을 읽고 있었다. 요제프가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출발했어요.” 그가 말했다. 


“출발이라면...” 요제프가 말했다. 


“배가 출발했다고요 신대륙으로 우린 뉴욕으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