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들락거리는 펜 끝을

바짝 미동 없는 종이 면에 갖다 대며,

물고기가 어항 속을 누비는 듯이

목적은 없고, 물음만 남는 생각들을

그 꼬리에서 머리까지, 어떻게든

형상 입은 모습으로 그려내려 한다.


그 빼입은 너의 모습은

중섭의 황소처럼 굴곡지고 유려해,

머릿속에 잠시 드러눕는 것도 숨 가빠하며

내게서 빠르게 달음박질치는 모습일까.


아니면, 수근의 아낙네들같이

제 자리에 바짝 눌려, 그 모습처럼

입에 담을 말들을 보따리 채 쥐고 서서

내게는 등만 비추는 냉랭한 모습일까.


뼈대를 갖춰갈 나의 구상은,

어느 화가의 굵직한 뼈를 추려내

시종일관 느낌표만 그려내던 일생을

마침표로 잔잔히 눈 감긴 사내의 글 같이,

뇌를 긁는 목청만큼은 가져야겠지.


그러니, 내 펜이 긋는 너는

중섭의 황소같이 잉크 마를 듯 달려나가

절대 내게 의탁하지 말아야 한다.


난 너의 겉껍질만 빚어낼 테니,

넌 날 돌아보지 말고 초토를 나아가라.

날 돌보는 건 발 안 보이는 너의 나아감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