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나와 두 살 터울의 여동생 그리고 아빠로 이뤄져 있다.

어머니는 어렸을 적 돌아가셨다.

그렇기 때문에 일 때문에 바쁘신 아버지를 대신해 오빠인 내가 여동생인 이은지를 잘 돌봐줘야 했다.

그랬기 때문일까?

 

“오빠가 너무 좋아. 나중에 결혼하고 싶어! 꼭!”

 

이런 소리를 하며 귀여운 강아지마냥 내게 달라붙어 잘 놓지 않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건 과거 이야기다.

 

여동생이 언제부터인가 이상해졌다.

정확히 말하면 고등학생이 되고부터 쯤 일까?

공부밖에 모르던 아이가 화장에 손을 대보기도 하고 노래에 관심없던 애가 최신 아이돌 노래를 흥얼거리곤 했다.

뭐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교복 치마가 짧아져 보기가 아슬아슬해진 것도 브라우저를 실수로 떨어뜨린 건지 내 빨래바구니에 있는 것도 아슬아슬하지만… 좋다.

잔소리 하고 싶지만 그런 나이니깐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다.

 

“…저기 은지야.”

“…….”

 

평범한 집의 저녁 시간.

이 시간이 되면 나와 여동생은 거실에 모여 TV를 보곤 했다.

원래라면 각자 한 시간씩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보며 떠들고 웃던 즐거움만 있는 시간이었지만…

 

“오빠 리모컨 좀 줄래? 보고 싶은 게 있는데….”

“…….”

 

안 그래도 이뻤는데 요새 부쩍 이뻐진 동생 이은지는 얼굴을 돌리지도 않은 채 TV 프로그램에 집중했다.

벌써 2시간 째다.

우리 남매끼리의 룰대로 였으면 1시간전에 나한테 리모컨이 넘어왔어야 했다.

하지만 이은지는 대답도 하지 않았다.

명백한 무시.

이것이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여동생이 최근 이상해진 변화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시 말을 꺼냈다.

 

“저기, 은지야…?”

“…….”

 

픽.

TV가 꺼지고 이은지는 탁상에 리모컨을 올려놓고 자기 방으로 걸어갔다.

쾅!

문 닫히는 소리의 울림이 거실에까지 퍼졌다.

 

나는 그런 방문을 멍하니 바라보며 말했다.

 

“사춘기인가?”

“사춘기?”

“응. 고등학교 올라오고부터 쭉 그래.”

“흠. 그렇구나.”

 

다음 날 학교의 점심시간.

고등학교 친구인 허승혜랑 책상을 붙어 앉아 밥을 먹으며 나는 하소연했다.

 

“다른 친구들 이야기 들어보면 맨날 싸움박질하는 애기만 하곤 그랬는데 우리 남매는 안 그랬거든. 그래서 멘탈에 금이 갈 것 같아.”

“…하긴 여동생을 아끼는 이범수 너니깐. 그럴 법도 하겠다.”

 

허승혜는 쏘세지를 입에 넣으며 우물우물거렸다.

 

“넌 공부도 전교 1등이고 가족이랑도 사이 좋고 걱정 없어 보여서 좋겠다. 야.”

“…내가?”

 

건드리면 안 될 것을 건드린 건지 허승혜의 흥얼거리던 분위기가 갑자기 팍 식었다.

허승혜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차분히 말했다.

 

“악의가 없는 건 알지만 그걸 네 입으로 들으니깐 갑자기 열받네.”

“…내가 뭘 잘못 했는데? 어떤 부분이 널 화나게 했어?”

“그걸 모르는게 네 잘못이야. 너는 여자 마음을 너무 모른다.”

 

허승혜는 어깨까지 내려오는 갈색 머릿결을 손가락으로 꼼지락거리며 한숨을 쉬었다.

 

“아까 여동생 관련해서 나한테 물었지? 착하게만 자란 아이는 사춘기가 늦게 온다고들 하더라고. 범수 네가 한 말에 동생이 민감할 때니깐 상처받을 수도 있고. 지금의 나.처.럼.”

“…그 화를 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그래서 여자인 너한테 묻는 거잖아.”

“여자는 말이야.”

 

허승혜는 능글맞게 웃었다.

 

“사랑과 떡볶이에 약해. 사랑을 담은 떡볶이라면 그걸 싫어하는 여자는 없을 걸?”

“…네가 먹고 싶다는 거 아니야?”

“아니. 난 떡볶이 파에서 마라탕파로 바뀌었거든. 물론 네가 사주는 거라면 군말없이 먹을 테지만… 후후후.”

 

허승혜는 눈을 깜빡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떡볶이라….’

 

학교가 끝나고 귀가하는 길에 마트에 들러 재료들을 샀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떡볶이는 질색이다.

 물렁한 떡을 뭐 이리들 환장하는지 이해가 안갈 정도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여동생과의 사이를 조금이라도 회복할 수 있다면 내 몸과 시간과 돈은 얼마든지 바칠 수 있다!

 

“이건… 이렇게… 먼저 부재료들 넣고……”

 

열심히 휴대폰에 켜놓은 너튜브를 보며 따라했더니 제법 겉모습은 그럴싸한 떡볶이가 완성됐다.

달칵.

때마침 이은지가 화장실로 갈려 했는지 방문을 열고 나왔다.

냄새를 맡았기 때문일까? 내가 뒤돌자 눈이 마주쳤다.

 

“은지야. 떡볶이 했는데 먹을래? 너 떡볶이 좋아하잖아.”

“…….”

 

멈칫.

원래라면 내 말을 무시하고 갈 길 갔을 이은지의 발걸음이 멈췄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떡볶이! 효과 확실하구나!’

 

자세히 보니 이은지가 침을 꿀꺽하는 게 보였다.

눈길이 가스레인지에 올려 놓은 냄비로 향했다.

분명 먹고 싶은 눈치였다.

하지만.

 

“……됐어.”

“뭐?”

“…….”

 

이은지는 힘 빠진 목소리로 그리 대답했다.

 

‘이걸론 안되는 건가?’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먹기 싫다는데.

그런 마음에 툭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럼 승혜 갖다줘야겠네…. 어쩔 수 없지.”

“…….”

 

화장실로 걸어가던 여동생의 발길이 갑자기 멈춰섰다.

그리고는 다시 뒤돌아 내게 다가왔다.

 

“가지마.”

“어?”

“가지마.”

“……?”

 

대체 무슨 소리지?

내가 의문스러워하자 이은지가 계속 말했다.

 

“떡볶이… 먹을 테니깐…. 가지마….”

 

나는 그 말이 너무 기뻐 어깨가 들썩였다.

 

“오! 진짜!? 은지야 너가 먹어주면 나야 좋지!”

“……응.”

 

하지만 승혜 몫은 빼둬야한다.

오늘 왜인지 모르겠지만 기분 나쁘게 한 것 같으니깐 말이다.

내가 떡볶이를 도시락통에 담으려고 하자 이은지가 왜인지 관심있는 듯 내 옆까지 다가왔다.

 

“…내일 도시락으로 먹게?”

 

갑자기 적극적으로 변한 여동생의 모습은 허승혜의 조언이 틀림없이 맞아떨어졌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나는 자동적으로 웃음을 나오며 말했다.

 

“내일 승혜 갖다주려고. 사실 너랑 사이 풀고 싶어서 물어봤는데 승혜 개가 떡볶……”

 

쿵!

그 순간 갑자기 이은지가 식탁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화난 듯한 그 모습에 나는 당황했다.

 

“으,은지야?”

“…….”

 

눈은 울 것처럼 날카롭게 서려있었고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나는 180도 바뀐 분위기에 혼란스러웠다.

내가 뭘 잘못한 거지?

 

“……됐어. 안 먹을래.”

 

화를 참으려는 듯 주먹을 움큼 쥐며 다시 멀어져가는 이은지의 뒷모습을 보다가 어깨를 잡았다.

이은지가 신경질적으로 내 손을 뿌리쳤다.

 

“…뭐야?”

“은지야. 너한테 떡볶이 해주고 싶어서 만든건데 그렇게 행동하면 어떡해?”

“신경 꺼.”

“대체 왜 그러는 거야? 내가 싫은 거야? 내가 너한테 큰 잘못을 했어? 제발 속 터놓고 애기 좀 하자. 우리. 응?”

“진짜 모르겠어?”

“……?”

 

뭔가 점심 시간 때 허승혜랑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그때는 역린을 건드린 것 같아서 더 건드리지 않았지만….

 

‘지금은 한 번 건드려보자.’

 

나는 무섭게 쳐다보는 이은지의 시선을 받으며 말했다.

 

“그래! 모르겠다! 그렇게 나 좋다고 쫓아다녔으면서 왜 갑자기 이러는지! 속 편하게 한 번 말……”

“개새끼.”

 

한 번 건드려본 건 내게 최악으로 돌아왔다.

 

“개새끼. 짐승새끼. 씨발새끼. 넌 진짜 최악이야! 최악!”

 

욕 하나 해본 적 없던 이은지의 입술에서 욕이 튀어나오자 나는 너무 놀랐다.

내가 멍하니 있자 이은지가 나를 걷어찼다.

 

“가버려! 그냥 가버려! 꼴도 보기 싫으니깐! 니가 내 오빠인게 꼴도 보기 싫으니깐! 그냥 안 보이는 곳으로 가버리라고!”

 

온 집안에 퍼질 정도로 어깨를 들썩이며 엉덩방아를 찧은 내게 성토하는 이은지를 보며 나는 입을 벌린 채 아무런 말도,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나에 대한 혐오감이 이 정도였다니.’

 

이은지는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순간 정신을 차린 듯 쿵쿵거리며 자기 방으로 돌아가 문을 쾅 닫았다.

 

“허…….”

 

사이를 풀고 싶어서 떡볶이를 해본건데….

분명 좋은 분위기도 있었는데….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거지?

나는 그런 허망함에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고 식어버린 냄비를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한 편 문 너머에선.

 

“싫어… 이런 내가…… 너무 싫어…. 흑흑흑.”

 

구슬픈 울음소리가 이불 밖에서 새어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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