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 사는 부족들은 강인하다.

그들은 목마름을 미덕으로 여기고 거친 모래 바람을 풍요롭게 여겼다.

잔인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부족들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부족은 에나 족이었다.

그들은 잘 훈련된 전사 부족이었고 특히 검술에 천부적이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강했던 만큼 오만했기에 다른 부족의 미움과 원망을 샀다.

그렇기에 어느 순간 들이닥친 연합 부족들에게 멸망 당했다.

단 한 명만 빼고.

 

"에나 족의 유일한 생존자! 그 먼 사막에서 이곳 노예 시장까지 어떻게 흘러들어왔는지! 그 길을 생각하면 매우 매우 싼 가격입니다!"

"500골드!"

"550골드!!"

"700골드!!!"

 

목과 사지에 쇠사슬이 감긴 한 초췌한 검은 머리 청년이 사회자의 말에 눈을 빛내며 자신의 값어치를 매기는 구경꾼들을 멍하니 바라봤다.

벌써 넉 달이 지났다.

죽어 버린 가족과도 같은 부족인들과 부모님, 시신을 찾을 수 없었던 여동생까지.

눈앞이 아른거리고 안타까움이 목구멍까지 찼지만 그렇다고 해서 죽은 사람이 돌아오지 않는다. 

 

'…….'

 

레온은 자신의 처지를 이해했다.

억울하고 반항하고 싶지만 자신의 손에 검이 들리지 않은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그저 자신을 욕망에 찬 시선으로 바라보는 구경꾼들에게 팔릴 운명이라는 것을.

레온은 이해했다.

 

"1500골드에 낙찰됐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스라나 부인!"

"호호호!"

 

뱃살이 툭 튀어나온 뚱뚱한 추녀가 레온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호위병으로도 쓸 수 있고 무엇보다 얼굴이 내 취향이야. 호호호!"

 

그러자 사회자가 말을 받았다.

 

"하하하! 이번엔 망가뜨리면 안 됩니다. 스라나 부인께서 사간 남자 노예들은 모두 정신착란이 일어나 버려버리는 걸로 소문이 흉흉하다고요."

"!"

 

순간 레온의 몸이 경직됐다.

스라나 부인이 호기롭게 웃었다.

 

"호호호호! 그 애들이 약한 거라니깐? 그리고 사막의 전사족이이 그 꼴을 당하며 무너지는 모습이 얼마나 황홀할까? 그래도 오래 갖고 놀 수 있겠지?"

"취향은 참 여전하십니다. 부인. 아 참."

 

사회자가 다른쪽에 서 있던 까마귀 가면을 쓴 은발의 소녀를 위로했다.

 

"휼륭한 레이스였습니다. 남자 청년이 이정도까지 팔리는 건 드문 일입니다만. 혹시 스라나 부인께 양보해주신 겁니까?"

 

가면의 은발 소녀가 혀를 찼다.

 

"흥. 돈이 1300골드밖에 없을 뿐이다."

"호호호! 그 정도 돈 갖곤 저에겐 못 이긴답니다."

"좋습니다! 스라나 부인께선 뒤편으로 오시고 노예 경매는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천막이 닫혔다.

레온은 경비병 둘에게 목줄이 질질 끌린 채 뒷편으로 끌려갔다.

뒤편에서 기다리던 스나라 부인이 레온의 몸과 얼굴을 보자 눈을 희번득스럽게 떴다.

 

"가까이서 보니 돈이 더욱 아깝지 않구나!"

"……."

 

레온은 이 추녀에게 더욱 기가 질렸다.

현실은 암담했다.

이제 노예의 종속이 이뤄지면 평생 반항도 하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괴롭힘을 당하며 살 것이다.

얼마나 우울한 인생인가?

차라리 그때 같이 죽어버렸더라면…….

 

'내 손에 검만 들었다면… 하아.'

 

그때였다.

 

"에나 족? 그 부족은 뭐로 유명한 부족이지?"

 

스라나 부인이 옆에 있는 경비병에게 물었다.

경비병이 어깨를 으쓱했다.

 

"검술로 유명하다고는 하는데 뭐 저 멀리서 온 소문은 허풍이 많지 않습니까? 기대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스라나 부인이 얼굴을 찌푸렸다.

 

"너가 뭔데 우리 노예를 평가해?"

"예? 그게 아니고 답변을……"

"됐고. 네가 쥔 검 애한테 쥐어줘 봐."

"하지만… 그럴 수는…"

"어서! 설마 양손이 묶인 애한테 당할까봐 두려운 건 아니겠지?"

 

레온의 양손과 양발은 짧은 쇠사슬 줄로 연결되어 있었다.

검을 쥔다고 해서 두 발과 두 손이 자유롭게 풀어져있는 경비병이 당한다고는 보기 힘들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관리인님께는 비밀입니다. 특별히 VIP님이시니깐 들어드리는 겁니다."

"응응. 난 능력을 확인하고 싶을 뿐이야. 음… 이름이 뭐지?"

 

레온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두근거림을 애써 감추고 대답했다.

 

"레온입니다."

"그래. 레온. 네게 검을 쥐어줄 거야. 그리고 갑옷을 두른 위병들을 상대해봐. 물론 이기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네 실력만 보고 싶은 것 뿐이니깐. 괜찮지?"

"예. 못 이기겠지만 따르겠습니다."

 

스라나 부인이 만족하듯 흐뭇하게 웃었다.

 

"좋아. 난 순종적인 애가 맘에 들거든. 호호호호!"

 

경비병이 혹시나 몰라 이가 나간 검을 레온이 있는 쪽으로 바닥에 던졌다.

 

"주워라. 뭐 상품이니 베지는 않겠…… 으헉!"

"으악!"

 

레온은 떨어진 검을 쥐자마자 순식간에 돌진해 방심한 경비병 둘을 일격에 처치했다.

도저히 두 손이 묶여있다고는 볼 수 없는 신속함과 자연스러움.

레온은 이 나간 검을 경비병의 검으로 바꾸고 다리를 덜덜 떨고 있는 스라나 부인에게 걸어갔다.

 

"당신은 살려주겠소."

"뭐!?"

 

레온이 검을 바닥에 꽝 내리쳤다.

그 기백에 스라나 부인의 얼굴이 헬쑥해졌다.

 

"아직 돈도 내지 않았지 않소? 내게 검을 쥐어줬으니 그 빚으로 목숨을 살려주겠다는 애기다."

 

레온이 차가운 눈으로 쳐다보자 스라나 부인은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다 잡은 욕망이 계속해서 아쉬워 입술을 깨물었다.

 

"쯧…"

 

레온은 스라나 부인을 냅두고 출구로 보이는 방향으로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쇠사슬 때문에 뛸 수는 없었다.

 

 

 

*******

 

 

 

"오,오십 일명째인가……. 헉. 허억."

 

레온이 계단을 오르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경비병들이 앞뒤로 레온을 둘러쌓다.

레온은 악조건 속에서도 기어코 이겨내 계속해서 적들을 쓰러뜨렸다.

상처는 계속해서 쌓여만 갔다.

적들의 피와 자신의 피로 빨갛지 않은 부위가 없었다.

하지만 정신은 또렷했다.

출구가 눈앞에 보였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호오."

 

스라나 부인과 경쟁하며 자신을 사려했던 까마귀 가면의 소녀가 입구를 지키고 있는게 아닌가?

레온은 호흡을 한 번 고르고 말했다.

 

"비켜주게… 나가고 싶으니…."

"내가 왜 그래야 하지?"

"……."

 

까마귀 가면을 벗자 놀랍게도 굉장한 미형의 엘프였다.

 

"20년도 못 산 꼬맹이의 말을 내가 왜 들어야 하지? 훗."

 

은발의 엘프 소녀가 웃자 분위기는 어두워졌다.

절대 비켜줄 생각이 없다.

그 각오가 엘프 소녀에게서 느껴졌다.

 

"자네도 느끼고 있겠지? 그 상태론 날 이길 수 없다는 걸."

"……."

 

사실이 그렇다.

물량만 많던 경비병들과는 달리 만전의 컨디션으로 임해야만 물리칠 수 있는 상대.

지금 상태로는 도저히 무리였다.

 

"하하하하하하하!"

"…?"

 

싸워서 죽을 수 있다면….

그것이 영광이 아니면 무엇이라 말인가?

정신을 잃은 사이 부족이 멸망했던 그 허망함은 정말이지 이루 말할 수 없이 고독했다.

 

"고맙다. 네게 죽을 수 있다면 난 부족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다."

"흐응."

 

엘프 소녀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뭔가 착각하고 있나 본데. 난 너랑 싸우기 위해서 길을 막은 게 아니다."

"뭐?"

"내 이름은 이리안이다. 스라나 부인이 네 권리를 포기했고 너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도망갔다. 악귀라니 뭐니 하면서. 즉."

 

이리안이 레온에게 손바닥을 펴자 순간적으로 빛이 밝혔다.

레온은 혼절했다.

이리안이 입술을 다셨다.

 

"널 돈 한 푼 안들이고 노예로 살 수 있는데 뭐하러 싸운단 말이냐? 후후후."

 

이리안이 쓰러진 레온의 얼굴을 살폈다.

그 고운 손가락으로 피를 닦으며 만족스러운 듯 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