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소개하기를, 아브도티야 라조르펜.

 제약회사를 빙자한 무력 집단인 로도스 아일랜드에서의 사원명으로는 파죰카.

 손재주가 뛰어나고, 싸움이라고는 모르는 순박한 소인족들인 두린족의 도시, 쎄루에르차에서 온 문학인ㅡ 이지만 그녀는 두린족이 아니다.

 아브도티야는 신체능력이 뛰어난 편에 속하는 늑대의 형질을 갖는 루포족 출신이다. 그런 그녀가 어떠한 사유로 소인족들의 도시에서 문학대표의 자리를 맡고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건 두린족을 제외한 만인에게 극도의 경계심을 보이며, 그러한 태도 때문인지 그녀가 극진히 대하는 ㅡ잠들어있는 사원에게 손수 담요를 덮어주거나, 정리정돈이 서투른 사원에겐 그런 일들을 도맡아 처리해준다ㅡ 두린족을 포함한 모두가 아브도티야를 어려워했다.

 그리고 나는 요즘 그녀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있었다.

 
"박사?"


 흐음- 이 부근에서는 아무래도 코어 캐스터 직군의 사원들 보다는ㅡ


"데생 한 장 그려도 괜찮을까요?"


 이 로도스 아일랜드 내에서 인사 결정등의 권한을 가진 채, 상당히 고위직의 자리에 앉아있는 내가 사내에서 사용하는 이름은 '박사' 였다. 

 나는 종종 움직이지 않은 채 생각에 잠길 때가 있는데, 아브도티야는 어느 날인가부터 줄곧 귀신처럼 나타나선 내 상념을 깨트려버리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웃고, 사진찍듯 종이에 담아 사라져버린다.

 자연스럽게 내 책상에는 해결하지 못한 업무들이 쌓이게 되었고, 그에 따라 야근이 잦아지며 스트레스를 받고있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그녀는 찾아왔다.


"박사-?" 


 말하며 내쉬는 숨이 목을 간지럽히는 기분이 든다. 아니, 기분이 아니라 정말 닿고있었다.

 그녀치고는 너무 가까운 거리감이다.

 분명, 자신에게서 거리를 둬달라는 말을 한다거나- 조금만 몸에 닿아도 기겁을 했었는데.


"제 말은 제대로 듣고 계신건가요? 데생 한 장, 그려도 괜찮겠는지를 여쭈었는데요?"

"아, 그럼요. 물론 괜찮습니다..."


  항상 하던 말을 하고있지만 그 행동은 기이할정도로, 내가 겪어왔던 아브도티야라는 인간의 그것과는 맞지 않다.

 루포족 특유의- 세로로 갈라진 동공이 평소보다 부각되어 보였고, 내쉬는 숨은 격렬한 운동을 하다 온 사람처럼 거칠다.

 그 모습이 마치 루포족들의 도시인 시라쿠사에서 본 마피아들 같았기에, 움직이지 말아달라는 그녀의 부탁을 잊고 자리를 피했다.


"갑작스럽게 급한 일이 생각나서 말입니다, 죄송합니다만 오늘은 어울려드리기 힘들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흐음- 그렇다면 아쉽지만 보내드려야겠네요..."


 고개를 숙이고 황급히 자리를 피하는 나를 보며 입맛을 다시듯 침을 삼키고 있다.

오늘의 그녀는 어딘가 이상했다. 

 그대로 데생을 그리기 위해서 내 집무실에 둘만 남아있었다가는 내 신변에 문제가 생겼을 것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하여, 오늘 하루쯤은 모든걸 내려놓고 내일의 나에게 모든걸 맡겨보기로 했다.

 평소에도 집무를 방해하던 그녀의 상태가 오늘따라 이상했고, 내가 다시금 들어가 일을 시작한다면 마주하게 될 것임은 틀림없다. 따라서 오늘은 더이상의 업무 진행이 불가능함은 자명한 사실이라, 이는 열심히 살아온 내게 주는 하루쯔음의 휴가를 줄 명분으로선 충분했다. 아마도.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아브도티야에게 몰려 인적드문 훈련실에 갇혀있었다.

 어쩌다가 이런 일이 되어버렸지?

 내가 평소 일하는 집무실은 본함의 2층의 우측에 위치해있다.

 반면 지금 내가 주저앉아있는 훈련소는 지하 3층 우측, 이 우측에 위치한 방들은 모두 인적이 드물다. 선박으로 치면 후미에 위치했다 볼 수 있는데, 보통의 사원들은 본함의 전면부에서 부터 중앙쯔음에 있는 숙소까지만 이용하기 때문.

 오늘은 특이하게도 지하 4층의 숙소를 관리하는 두린족 오퍼레이터, 머틀이 내게 도움을 청했다.

 아브도티야를 조금 어려워하는 면이 있어 두린족들의 신체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일들을 종종 내게 도와달라 말하곤 했으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기에 곧바로 수락했었지.

 이상한 일은 머틀을 도와준 직후에 일어났다.

 다시금 집무실로 복귀하기 위해 승강기를 이용하던 도중 지하 3층에서 볼 일이 거의 없는 미친 녹색 고양이, 켈시가 승강기에 타려고 앞에 서있던 것.

 안그래도 승강기에서 만나면 피곤한 상대인데, 나는 어제 나 스스로에게 포상휴가를 내린 참.

 승강기를 조금 기다리게 되더라도 놈과 같은 장소에 오래있는 것을 피하는 일이 옳음은 그간의 경험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현명한 판단이다.

 나는 자연스럽게 3층에 볼 일이 있는척 내려 승강기를 보냈고,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차분하면서도 뇌리에 꽂히는 목소리를 듣고 흠칫 놀랐다.

 
"두린양, 혹시 박사님을 보셨나요?"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조금 멍청한 선택을 해버렸다. 나는 그 자리에서 숙소로 들어가 다른 직원들과 함께 있었어야만 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녀가 내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알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불꺼진 훈련실로 들어왔다.

 하지만 내가 간과했던 사실이 몇가지 있었는데- 가장 큰 실수를 두 가지 집어보자면 첫 번째는 그녀의 전술 계획력이 우수한 편에 속한다는 사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순혈 인간인 나와는 달리 루포족인 아브도티야는 희미한 체향조차 민감하게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각 층 숙소 우측의 엘레베이터를 사용하는 습관이 있다는 사실부터 평소 자신의 집무실 밖으로 나오는 일이 적지만 규칙적인 켈시의 동선, 어제 이후로 자신과 켈시를 피할 것이라는 확신. 3층에는 사람이 안오는 훈련실이 있다는 것도.. 모두, 4층의 숙소 관리인인 머틀을 이용한 아브도티야가 계획한 상황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딸칵- 위이잉-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보이는건 평소보다 더한 노출도의 옷을 입은 아브도티야였다.

 그녀는 평소와는 달리, 먹잇감을 눈 앞에 둔 짐승같은 기세를 흩뿌리며 다가왔다.


"어제의 급한 용무는, 잘 해결하셨을까요?"

"아, 아. 덕분에, 제시간에 잘 맞추어 처리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헌데, 그 급한 용무가 무엇이었는지을 여쭈어도 괜찮으시련지요?"

"아하하, 그건 아무래도 조금,"

"1층의 숙소에서 텍사스양과 술을 가까이 하셨던 일? 아니면, 직후에 프로방스양을 찾아가셨던 일이, 저와의 시간보다도 더욱, 중요한 약속이었을까요?"


 모두 아브도티야에게서 벗어난 뒤의 일들이다. 나를 미행하고 있었던건가? 그 누구도 내게 그런 사실들을 귀띰해주지 않았는데, 어떻게?


"저는, 참으로 속상하답니다. 박사님. 지상의 야만속에서도 자신의 고결함을 증명한, 단 하나뿐인 쉼터이신 당신이 제게 거짓을 속삭이셨다는 사실이."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도, 조금씩 뒤로가던 몸이 벽에 부딪혔다.

 그러자 아브도티야는 곧바로 다가와 내 위에 내려앉았다.





"..박사님?"

"예, 예!"

"이렇게나 향긋한 냄새를 흩뿌리고 다니시는 것은, 저를 유인하고싶으셨다는 것으로 알아도 괜찮겠지요?"

"아니, 그건-"

"굳이, 박사님의 명령 없이는 아무도 출입하지 않는 이 방음실로, 저를 불러오신 이유가, 제가 생각하는 그것이 맞을까요?"

"아, 저는 그저-"

"자신보다 신체적으로 월등히 뛰어난 루포족 사원을, 인적 드문 장소로 불러내며, 입구까지 닫아? 믿을 수 없네요. 이리도 음탕하고, 달콤한, 모습으로, 저를 유혹하고 계시다니."

"나, 나는 당신을 이곳으로 유인하려는 의도가 아니었ㅡ"


 그녀는 벽에 등을 기대고 있던 내게 밀착하고는 다시금 그 부드러운 입술로 내 입을 막아버렸다.


"쪼옥- 다 알고, 있답니다. 박사님께서 하읍- 다른 루포족의 사원분들께 루포족또한 발정기를 겪느냐는 질문을 하셨다는 사실쯤은."


 형언할 수 없는 불길함을 느낀 내가 도움을 청하고자 외치는 비명이 거슬렸던 것인지, 곧 부드러운 손이 입을 막아버렸다.


"으읍!"

"후우. 다른 사우분들께 실례를 범하실 필요는 없답니다, 박사님. 이제부터 제가 루포족에게 발정기가 있는지에 대한 여부를, 그 몸에 직접 새겨드릴터이니."

"으으읍!!!"

"당신을 만나기 이전엔 느껴본 적도 없었던 생소한 감각. 이 감정을 알게된 이후로는 오롯이 당신만을 생각하며 지켜온 순결한 몸이기에, 다소 미숙하다 느끼실지도 모르겠지만ㅡ 잘, 먹겠습니다."




진짜루 루포족한테 발정기가 있는지는 몰?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