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 시점==================


태초의 때, 위대하신 신들의 아버지께서 우리를 만드시고 각각에게 관리할 임무를 부여하셨다. 누군가는 바다를, 누군가는 꽃을, 누군가는 인간을, 누군가는 가축을, 누군가는 맹수를. 그 새끼는 새를, 그렇게 다들 자신만의 임무를 부여받았다. 내가 부여받은 임무는 저들이 관리하는 것을 거두는 것. 그들이 관리하는 생명에게 죽음을 내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럴까 모두에게 미움을 받는 것은 일상이었다. 자신이 아끼고 총애하는 인간에게 요절하는 운명을 부여했다고, 자신이 아끼는 늑대가 사냥당해 죽게 했다고 전부 각각의 이유로 날 싫어했지만 대부분 비슷한 것들이었다. 애초에 그다지 어울리고 싶지도 않았고 주어진 일을 하기에도 시간은 빠듯했다. 그리고 누군가하고 어울려 다니는 것도 시간이 아까울 터인데 내 앞에 있는 친구놈은 입을 다물지를 않았다. 유일한 친구였던 새의 신은 나하고 어울리는 별종 중 하나였다.


"그래서 넌 여자 생각 없냐?"


"있어보이냐?"


"미안하지만 난 여자를 좋아하는걸 밝혀두지."


"오늘 한번 죽어볼래?"


"농담이야 농담, 신들 대부분이 제 반려 찾아서 결혼했는데 너 혼자 그러고 있으니 이 친구께서 몸소 걱정해주시는거다,"


"애초에 그럴 생각도 없고 나하고 그럴 생각을 가진 여신도 없다."


"비융신, 맨날 칙칙하게 검은색 로브 뒤집어쓰고 머리 길게 길러서 헝클어뜨리고, 게다가 가장 최악인건 그 병신같은 가면이아. 제발 좀 벗어 볼때마다 답답해 뒤져버리겠어."


"까마귀처럼 생겨서 넌 괜찮아 할 줄 알았는데 별로였나?"


"그건 그렇고 너 진짜 진지하게 구혼 대상 좀 찾아봐. 내가 중매해줄까?"


"필요없어 먼저 일어난다 일해야 한다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 조금새끼를 뒤로 하고 넓은 평원을 향해 걸어갔다. 꽤 걸었다고 생각할 무렵, 옅은 금색의 머리칼을 지닌 아름다운 여신이 보였다. 금색 머리카락은 햇빛을 반사시켜 마치 보석을 보는듯한 느낌 마저 들게 했다. 그녀는 꽃의 여신, 플로라였다. 그녀 역시 나의 존재를 인식했는지 매만지던 꽃을 뒤로한채 내게 도도도 달려오려고 했다 넘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할 수 없이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일어나시지요 꽃의 여신이여."


"하하 고마워요 음 아 또 일하러 오신거군요?"


"오늘 여기 사는 짐승들의 목숨을 거두러 왔을 뿐입니다. 요즘 왜 이렇게 일이 많은지도 모르겠지만."


"조금 쉬었다 가지 않을래요? 차라도 준비해 올까요?"


아름다운 미소. 이 아름다운 얼굴과 순진무구한 미소 덕에 그녀를 향한 구애와 청혼도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 누구도 선택하지 않고 제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그 점에 있어서는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귀찮은 놈들하고 어울리느니 차라리 일이나 하는 편이 편하니까. 아 나와 그녀의 차이점은 나는 그쪽에서 거절 당한다는 것과 그녀는 그녀 쪽에서 거절하는 걸까. 


"미안하지만 오늘은 일이 많고 차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쉽네요 그럼 다음에 또 뵈요, 좋아하시는 과일을 준비해올게요!"


"과일은 꽤 좋아합니다만, 뭐 다음에 뵙는다면 그때는 일정을 보도록 하죠."


역시 모두에게 사랑받는 여신은 달라도 어딘가 다르다고 해야할까. 하는 말들이 하나같이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배려하는 흔적이 묻어났다. 그런데 내가 과일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어떻게 안걸까? 뭐 대충 지레짐작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뭐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감으로 떄려 맞히는 것고 사교성의 힘이라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오늘 이 많은 짐승들의 목숨을 거두면 짐승의 여신과 사냥의 여신이 와서 한바탕 지랄을 할텐데 그쪽이 더 머리 아팠다. 일을 끝내고 나면 어디 동굴에서 낮잠이라도 자야겠다. 


================플로라 시점======================


오늘도 만날 수 있었다. 역시 짐승들이 오고가는 길목에 맹독을 머금은 꽃을 피게 한 건 헛수고가 아니었다. 오늘도 검은 로브를 바닥에 끌며 긴 검은 머리를 헝클어뜨린 그가 내 앞에 나타났다. 아아 어찌 이리도 사랑스러울까, 저 걸음거리도, 저 음산한 기운도, 저 숨소리도, 저 세상 만사가 귀찮은 듯한 태도와 그러면서도 성실하게 일하는 모습까지 전부 사랑스러워서 견딜 수 가 없었다. 뭐 주변에는 그의 가치를, 사랑스러움을, 멋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보들 천지였다만 상관없었다. 그의 사랑스러움을 이해하는 것은 나 하나로 충분했다. 그의 주변에 얼쩡거리는 새의 신, 자타유가 거슬리긴 했지만 알아본 결과 그냥 그하고 얘기나 하는 순수한 우정의 친구였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감정을 품었다면 배제했을 것이지만, 그에게 여신을 만나라고 권하는 등 아주 흡족한 짓만 해주니 상이라도 내려주고 싶었다. 게다가 아직 내가 그에게 닿지 못했으니 조금이라도 말벗을 해주는건 바람직하다. 아무튼 오늘도 그분을 만날 수 있었으니 아주 흡족한 날이 될 것이다.


바보에 순진한 연기를 하는 것은 익숙했고 그는 그런 내 손을 잡고 일으켜주었다. 아아 이 따듯함, 이 향기, 이것을 보존할 수 있다면 천년, 만년을 지옥불에 불타 보일 것이다. 



"일어나시지요 꽃의 여신이여."


아아 이름으로 불러주시면 좋을텐데 이 매정함도, 귀찮아하는 태도도 사랑스러워서 견딜 수 없다.


"하하 고마워요 음 아 또 일하러 오신거군요?"


당연히 알고있다, 최근 그의 일이 늘어난 것도 순전히 내가 꾸민 일이고 그를 만나기 위해 내가 조작한 운명이었으니까. 


"오늘 여기 사는 짐승들의 목숨을 거두러 왔을 뿐입니다. 요즘 왜 이렇게 일이 많은지도 모르겠지만."


"조금 쉬었다 가지 않을래요? 차라도 준비해 올까요?"


그를 위해 특별한 꽃잎으로 우린 차를 준비했었다. 사랑과 애욕 그리고 성욕을 증폭시키는 특별한 꽃이었다.


"미안하지만 오늘은 일이 많고 차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 실수였다, 그러고 보니 그는 천년 동안 단 한번도 차를 입에 대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술로 준비할걸 그랬나, 아니 처음보는 여신이 술을 대접해도 이상하게 생각하겠지. 나는 그 앞에서 상냥하고 순진한 여신을 연기해야 했다.


"아쉽네요 그럼 다음에 또 뵈요, 좋아하시는 과일을 준비해올게요!"


과일에 특별한 조작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그의 호감이라도 살 수 있겠지.


"과일은 꽤 좋아합니다만, 뭐 다음에 뵙는다면 그때는 일정을 보도록 하죠."


그렇구나 과일을 좋아하는구나. 아아 무슨 과일을 준비할까? 최상의 것들을 엄선하여 대접해야겠다. 그것으론 그를 향한 사랑의 만분의 일도 표현하지 못할지라도.


다음은 어디에 독의 꽃을 피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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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의 원인 = 얀데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