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꿉친구랑 사귈리가 없잖아?"


내가 얀순이의 고백을 거절하면서 한 말. 물론 100퍼센트 진심은 아니다. 

인기 아이돌 그룹 얀챈에서 활동하는 얀순이. 남자라면 한 번쯤 꿈꿔봤을 아이돌과의 연애.

하지만 내 두근거림은 얀순이에 대한 연애 감정이 아닌, 아이돌과 사귈 수 있다는 기대감이었다.

10년 이상 이어진 관계를, 내 어설픈 마음으로 애매하게 가져가고 싶진 않았다. 


"그러니까, 우리 전처럼 좋은 친구 사이로 지내자."


눈물을 흘리는 얀순이. 하지만 위로해줄 틈도 없이, 그녀는 내 눈앞에서 사라졌다.

분명 이걸로 된 거다. 저 눈물을 닦아줄 남자는 내가 아니겠지. 


~~~

다음 날.

나는 얀순이의 집 초인종을 누른다.


"얀붕이 오랜만~ 근데 어쩌지? 얀순이 집에 없는데."


문을 열고 나를 맞아준 건 얀순이의 누나인 얀진 누나였다.


"아... 그럼 됐어요. 다음에 다시 올게요."


"아냐~ 이왕 온 김에 편하게 있어. 그리고 누나한테 말 좀 해봐. 어제 얀순이 너랑 만나러 간다고 나가선 울면서 돌아오던데."


"사실은요..."


나는 얀진 누나한테 어제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내 생각과 마음까지 전하고 나니, 마음에 박혀있던 무언가가 빠진 느낌이 든다.


"지뢰 밟았네."


"네?"


"그거, 고백한 여자한테 절대로 하면 안 되는 말이라고."


"그래도..."


"만약."


"네?"


"만약에 말이야. 내가 널 좋아한다면 뭐라고 말해줄 거야?"


"지금은 장난칠 분위기가..."


순간, 내 입술과 얀진 누나의 입술이 서로 체온을 공유하고, 그녀의 혀가 내 입 속에 들어온다.

어쩔 줄 몰라하는 내 혀를, 그녀는 놓치지 않는다.


"... 이래도 장난 같아 보여?"


"누나, 저는...!"


다시 한 번, 누나의 입술이 나를 덮쳐온다. 계속된 키스에 저항할 정도로 나는 키스에 익숙하지 못했다.

그야, 방금 첫 키스를 빼앗긴 직후니까. 


"얀붕아."


"ㄴ헤?"


"좋아해."


귓가에 속삭이는 달콤한 목소리. 두 번의 진한 키스로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 이젠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몸이 뜨겁다. 눈 앞에는... 얼굴과 귀를 살짝 붉힌 얀진 누나가 있고, 나에게 사랑의 말을 속삭여 준다.

내 입에서 무언가 말이 나오는데...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또 한 번의 키스. 키스 도중에 누나는 나를 넘어뜨려서, 내 위에 올라타다시피 했다.

누나의 손길이 느껴진다. 그 부드러운 손끝은 내 가슴부터 흝으며 내려가다, 그곳에서 멈췄다.


"얀붕아, 옷 벗겨도 돼?"


"누나.. 잠ㄲ.."


누나의 손이 내 그곳을 자극한다. 옷 위의 감촉임에도, 분명하게 느껴지는 누나의 손길.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다. 그냥 이 흐름에 몸을 맡기고 싶다. 


"벗긴다..?"


"...네.."


그때였다. 얀순이가 집에 돌아온 건. 


"언니... 이건.. 무슨..."


얀순이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곧이어 나에게 향하는 그녀의 눈동자.

'왜?' 라고 물어보는 듯한, 슬픔이 느껴지는, 그런 눈빛.

나는 견딜 수가 없어 눈을 피했다. 그리고 얀진 누나와 눈이 마주친다.


그리고 이어지는 키스. 나에게 이미 저항할 힘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누나가 이끄는 대로 얽혀 가는 내 입술과 혀. 

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얀붕아... 그랬던 거야..?"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얀순이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도 얀붕이한테 고백했어."


얀진 누나가 얀순이에게 말한다.


"얀붕이는 소꿉친구에 아이돌인 네가 아닌, 평범한 대학생인 나를 받아들여 준거야."


나는 도저히 얀순이의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좋은 친구 사이로 지내자고, 어제 그렇게 말했는데. 얀순이의 눈을 보면 그 관계조차 깨진 게 보일 것 같아서.

이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일 자신이 없었다.


"...가."


흐느끼며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 


"나가라고!!"


얀순이가 떨리는 손으로 나를 현관 앞까지 끌고 간다. 그러고는 나를 문 밖으로 밀치고 문을 세게 닫는다.

차가운 공기가 폐에 들어온다. 머리와 몸이 냉정을 되찾는다. 그리고 나를 덮쳐오는 현실.

아. 나는 얀진 누나와.


밖에는 비가 오고 있었다. 나는 그 비를 맞으며 걸어갔다. 

신발도 없어서, 그 축축함이 걸을 때마다 발끝에서부터 전해져 온다.

앞으로 얀순이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대답은 없고, 비만이 내리고 있었다.


~~~

그 후로, 나는 얀순이를 피하게 됐다.

얀진 누나에게도 연락이 몇 번이나 왔지만, 받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얀진 누나의 연락도 끊기게 되었다.


어느 날인가, 얀순이가 아이돌 그룹에서 나갔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전부 나 때문이다. 라는 마음에, 얀순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얀순아... 잠시 만날 수 있을까?"


"..."


"미안해... 내 목소리 같은 건 듣기 싫지?"


"...내일. 얀챈커피숍."


"고마워..."


~~~

다음 날, 나는 얀챈커피숍에서 얀순이를 기다렸다. 

사람이 오지 않는 구석진 곳에 있는 커피숍. 내가 주문한 커피가 나올 때 즈음, 얀순이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


"..."


"저기... 얀순아..."


먼저 말을 꺼낸 쪽은 나였다. 그저 미안하다고, 너를 이렇게 만든 건 나라고, 무슨 말이든 하고 싶었다.

떠나보내기엔 내 인생에서 얀순이는 너무 많은 것을 차지하고 있었기에.


"괜찮아."


"아냐. 많이 힘들었을 거 알아. 그땐 내가..."


"괜찮다니까."


괜찮다는 말을 반복하는 얀순이. 확실히 전과는 많이 달라 보였다. 

초조한지, 계속 시계를 들여다 보고, 손도 많이 떨고 있었다.


"그냥, 미안해. 너를 이렇게 뿌리치는 게 아니었는데..."


"뿌리치다니, 이렇게 다시 만났는데."


분명 얀순이도 많이 힘들었을 텐데, 얀순이는 웃으며 나를 바라봐 줬다.

이제는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얀순이의 마음을.


그때, 갑자기 머리가 아파왔다. 

무언가, 얀순이에게 말하려고 했는데. 뭐였지?

눈꺼풀이 무겁다. 정신이 아득해진다.


"얀순..아.."


그리고 난 정신을 잃었다.


~~~

"...아, 얀붕아..."


저 멀리서 누가 날 부르는 것 같다.

어디서 들어본 목소리. 그 목소리에 이끌려 나는 현실로 돌아왔다.


눈을 떠 보니 나를 맞이하는 건 내가 알지 못하는 천장. 

나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찰그락.


...손발이 구속된 채로.


"얀붕아, 일어났어?"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얀순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나는 상황을 돌이켜 본다. 


분명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얀순이와 이야기를 하다가... 쓰러졌다.

왜?


"왜? 라는 표정이네, 얀붕아.괜찮아. 다 설명해 줄게."


그리고 그녀는 이야기한다.


"그거 사실 내 커피숍이었어. 사장님한테 말해서 네 커피에 마약 성분을 조금? 넣었고.

네가 날 만나자고 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화면 너머의 너로는 더 이상 만족할 수가 없었거든..."


나는 상황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뭐라고?


"얀붕아, 나 정말 깜짝 놀랐어. 소꿉친구랑 사귈리가 없다니, 내 인생을 부정당한 것만 같았거든.

그래서 그 다음날 네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년이 먼저 손을 댈 줄은 몰랐어."


"얀순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얀붕아, 걱정할 거 없어. 그 년은 내가 잘 처리했어. 너한테 연락해서 직접 인연을 끊어주고 싶었는데, 그럴 필요는 없어 보이더라♡

내 얀붕이가 그런 년한테 홀릴 리가 없는데. 많이 무서웠지? 이젠 괜찮아."


" 나 지금 상황이 이해가 안되는데..."


그 순간, 얀순이의 입술이 내 입술을 범한다.

얀진 누나보다 훨씬 진한 키스. 뇌에 산소가 부족해서 사고가 둔해진다.

그저 일방적으로, 범해진다.


"얀붕이는 키스 좋아하지? 그 년은 생각도 안날 정도로 키스해줄게."


나와 얀순이는 그 뒤로 몇 번이나 혀를 섞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졌다. 

나, 정말 키스에 약하구나.


"얀붕아... 나 키스로는 부족해. 이렇게나 젖었는걸. 너도 키스로는 만족 못했지?

지금부터 내가 채워줄게."


그 후는 불보듯 뻔했다. 우리는 끊임없이 몸을 섞었다. 

묶여 있는 채로, 그저 저항할 길 없이. 


"얀붕아... 사랑해♡"


"얀순아..."


절대로 끝날 것 같지 않던 육체적 교환이 끝나고, 얀순이는 나에게 주사를 놓았다.

몸이 붕 뜨는 느낌. 세상이 돈다. 나는 지금까지 뭘 하고 있었더라?

잘 모르겠지만 기분 좋다. 


"며칠 후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되게 해줄게. 넌 그냥 나만 바라보면 되니까♡"


아 그렇구나. 

내 눈앞에는 얀순이가 있다.


ㅡㅡㅡ

사실 제 취향은 얀진 누나입니다 

죽다 살아나서 얀데레화 된 얀진 누나라니... 아직 멀었다 얀순아


어쨋든간에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