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있을리가 없지 않은가.

나는 항상 반에서도 겉도는 아이인데..


선생님도 선생님이다.

내가 항상 혼자 조용히 지내는 걸 알면서 모두의 앞에서 나만 적지 않았다며 3명을 호명하라고 한다.


괜히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이런 심약한 성격이랑 어린애같아 보이는 외모 때문에 남들이랑 어울리지 못하는건데, 억울하다.


"씨발 그걸 뭘 그리 고민하냐"


내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쩔쩔매는 와중에 뒤에서 약간 걸쭉한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학교 뿐만이 아니라, 소셜 네트워크에서도 유명한 일진인 얀순이.

항상 학교에서는 엎드려 잠만 자던 그녀가 고개를 들더니 벌컥 일어나 앞으로 걸어나왔다.


선생님도 당황했는지, 아니면 얀순이의 기새가 무서워서일까 나와 같이 덜덜 떨면서 그녀를 제지하지 못하고 바라만 보았다.

그 사이 얀순이는 내 종이를 낚아채더니 친구 이름 세칸을 자기가 다 차지하면서 [ 얀순이 010-8263-1725 ] 라 적고는 돌아가버렸다.


짧은 순간이였지만 학급 모두가 어안이 벙쪄있었고, 이내 그녀가 자리에 앉자 평소에 그녀와 어울려다니던 무리가 그녀를 놀려대기 시작했다.


"얼~ 얀순이 뭐야~ 얀붕이 좋아하는거야? 그런거야?"


"천하의 철면피 얀순이가 얀붕이가 그렇게 좋았어요?"


"얀순이 이 자식 일진 주제에 꾸준히 학교는 절대로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이유가 얀붕이 보려고 그러는거였어?"


얀순이가 뒤이어 "뭐래 병신들이" 하는 말을 듣기도 전에 나는 부끄러워 얼굴이 토마토처럼 붉게 물들었고, 모두의 놀림거리가 됐다.

아무튼, 이걸로 친한 친구를 적어서 내라는 사건은 일단락 됐기에 나는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


[학교에서 그런 일이 있었어요]


소심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소통은 얼굴도 나이도 성별도 알 수 없는, 익명성에 가려진 인터넷 세상 속이다.

조금 더 대담해지고 싶어 시작한 게임에서 어느덧 친하게 지내는 파티가 생겼고, 두 명정도지만 내 마음속 고민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


[진짜로 관심있는거 아니야?]


시크한 검은 단발머리의 여자도적은 내게 항상 조언을 해준다.

학교에서는 이렇게 나가라며, 대담해지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누군지도 모르는 그 도적은 일진녀의 좋은점을 장장 일주일에 걸쳐 얘기를 한적이 있을만큼 일진에 대해 우호적이지만,  그 점만을 제외하면 최고의 파트너다.


[한번 고백해보는게 어때?]


[고백이라뇨, 그녀가 저 같은걸 어떻게 알겠어요. 보나마나 시끄러워서 나온거겠죠]


[바보야! 내가 널${^*£$+£ ]


[네?]


[몰라!]


항상 이런식이다.

꼭 용감한 남자가 되기 위해서는 일진에게 고백을 해야한단다.


[그런것 말고 학생회에 드는 거는 어때?]


그런 우리의 대화를 끊는 파티장.


[저같은게 학생회에 어떻게 들어요..]

이 사람은 반대로 모든 일이 학생회에서 돌아가는 사람이다.

모든 고민의 결론은 <학생회로 들어가면 해결!>이란다.

직업도 성기사를 골라서는 뭔가 거부할 수 없게 이야기를 끌어간다.


우리학교 학생회는 진학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도전했지만 번번히 탈락하는 무시무시한 집단이다.

학생회장은 혼자서 원맨쇼를 하며 자기가 승인하지 않는 자는 받지 않겠다며 여자 혼자서 모든 일을 헤치우는 괴물이다.

그런곳에 지원하라니, 보나마나 서류부터 탈락할 것이다.


[한번 서류만이라도 넣어보라니까? 강한 남자가 되고 싶다며]


[서류 넣는것 만으로 용기가 생길까요?]


[그럼! 예를 들어...]


[그것보다 오늘 느낌이나 더 얘기해줘! 어느 부분이 설렜어? 반할것 같았어?]


갑자기 끼어드는 도적.


[저는 그런 말 한적 없는데요..]


[그래도 결국 친구란에다가 얀순이 하나 써서 내버렸잖아]


[네? 어떻게 그녀의 이름을 아는거에요?]


[아, 나 학원가야해서. 내일 보자!]


[저런건 신경 끄고 착실하게 학생회 계획을..]


결국 그날은 하라는 게임은 안하고 설득만 당하다가 종료하게 되었다.

최근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건 그냥 기분탓이겠지?


그래도 이제는 나도 변해야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언제까지 애처럼 귀여움이나 받으며 살 수는 없기에, 다음날 조회 시간 전에 게임 속에서 말했던 학생회 지원서를 꼼지작 거렸다.

나도 이걸 내면 마초남이라 불릴 수 있을까?


"나도.. 변할 수 있을까?"


"없지, 아싸찐따 주제에"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도중, 누가 내 지원서를 낚아채갔다.

저항을 해보려고 뒤를 도는 순간 검은 단발에 얉은 화장을 한 얀순이가 씨익 웃어보이며 나를 비웃었다.


"학생회? 너같은 아싸찐따가?"


그러고는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내 지원서.

그 종이들을 보며 나는 내 자존심도 무너지는 느낌을 받아 눈물이 조금 맺혔다.

그래, 나같은게 무슨 학생회야..


"얀순아, 니 친구 운다"


"얀순아, 니 친구 좀 데려간다? 마침 돈 부족했었는데 잘됐다"


"얀붕아, 가진거 다 꺼내봐"


그런 그녀에게 호응하듯 그녀의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어느새 소위 일진 무리에 둘러쌓인 나는 훌쩍이며 주위를 둘러봤지만 아무도 나를 봐주지 않았다.

인터넷에서는 '폭력 멈춰!' 하면 다 멈춘다는데, 현실은 너무나도 잔혹하다.


"내 친구니까 니들은 건들지 마라"


그때였다. 얀순이가 짜증난다는 투로 나머지 무리에게 말한것은.

흥이 깨졌다며 중얼거리고는 정색을 하며 다른 무리를 물리고는 나보고 "좋은 친구 둬서 좋겠네" 하고는 자랑스러운 얼굴로 돌아가는 모습에 너무 무서워서 당장이라도 전학을 가고 싶었다.


게임 속 도적의 말은 다 거짓말이야.

어떻게 저런 일진, 양아치 같은 여자를 좋아할 수 있어?


아직도 뭔가 만족한 표정으로 날 보는 그녀의 표정에 포식자 앞에 놓여진 먹잇감이 된 것같아 몸이 떨렸다.


"내 전용 찐따니까 아무도 터치하지마라. 나만 가지고 놀꺼니까"


뒤에서 들리는 소름돋는 소리를 애써무시하며 빨리 학교가 끝나기만을 빌었다.

하지만 내 수난은 여기서 끝이 아니였나보다.


종례시간, 선생님께서 웬일로 나를 호출하였다.

저번 일 이후로 모두의 앞에 난 못 나선다고 그렇게 어필했는데!!


"드디어 학생회 맴버가 추가됐다고 하더라구요. 같은 반 학우인데 축하해주세요, 얀붕아. 소감을 말해줄래?"


학생회라니? 분명 지원서는 얀순이가 찢었는데..

같은 생각을 하는지 어쩐일로 엎드려 있지 않고 벌떡 일어나 입을 다물지 못하는 경악의 표정을 짓는 얀순이가 있었다.

의외의 신선한 모습에 웃음이 나오자, 이내 얼굴을 붉히고는 자리에 앉는 그녀.


이윽고 선생님이 가져온 내가 적었던 지원서는 찢어서 버린 모든 조각을 누군가 테이프로 이어붙인채 학생회장의 날인과 이사장의 날인이 찍혀 있는 상태였다.


대체 누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내 학교생활이 내 의지와는 반대로 이리저리 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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