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말로 할 수 있다면,


너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나는 너의 종이비행기가 되어


그녀에게 네 사랑을 전해줄게



* * *



"얀붕아,오늘 동아리 선택하는 거 있잖아..."


"같이 들어가자고?"


"응응! 역시 우리 얀붕이가 내 마음을 가~장 잘 알아주네."



해맑게 웃고있는 이 여자애의 이름은 얀순이.

나와 초등학생 때부터 만났으며,중학교 3학년이 된 이때까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번엔 꼭 우리 둘이서만 가입되면 좋겠다!"


"응,그러면 좋겠네.."


어리고 어린 초등학생때부터 만난 얀순이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였다.

말주변이 없고 공부도 못하는 나에게 처음으로 다가온 단 하나의 빛줄기이자 유일한 희망 그 자체.

얀붕이가 있었기에 얀붕이의 친구의 친구들과도 만나서 처음으로 해본 "친구"다운 얘기를 할 수 있었다.


ㅡ위이잉-


"앗. 얀붕아! 네 머리위에 벌레 앉았어!"


짝-


"우리 얀붕이한테 들러붙는 벌레들은 다 내가 처리할테니까.. 위험하지 않게 내 옆에만 있어줘야 해?"


배시시 웃는 그녀에게서 나에게만 보이는 감정의 편린이 느껴졌다.

그 사건 이후부터, 그녀를 볼 때마다 심장의 한 부분이 계속해서 아팠다.


아프고,또 아파서 집에 돌아가면 여린 마음을 지니고선 창문 앞 나뭇가지에 서있는 새가 눈치채지 못하게 숨죽여 울었다.



* * *


"영화감상부가 하고싶은 사람? 정원은 3명이다."


"저요!!"


선생님이 인기있는 동아리인 영화감상부를 말하자 순식간에 8명이 넘는 인원이 손을 들었다.


물론,이미 얀붕이와 심사숙고한 동아리를 정해놓았기에 나는 손을 들지 않았다.



"세명 이름이.. 순붕,후붕,후진. 이 세명 맞지?"


지목된 세명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내렸다.



"얀붕아,그거 알아?"


"무슨 일이야?"


옆자리에 앉은 얀순이가 조용히 귓속말로 나에게 말을 전달했다.


"네 오른쪽에 있는 후순이 표정 좀 봐봐."


"어..?"


평소 사람들의 얼굴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는 나조차 지금의 감정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내 오른쪽에 앉은 후순이의 얼굴이 심각하게 일그러졌다.

영화감상부에 떨어진게 저렇게 화날 일인가..?


"후순이 쟤 말이야,사실 후붕이 좋아해서 영화감상부 떨어진거에 저렇게 화난거야."


"뭐? 하지만 분명 저번에.. 후붕이를 찼다고 들었는데?"


"그게 말이지히..크흡!"


귓속말을 전달하던 얀붕이가 겨우 넘쳐흐르는 웃음들을 참고 아무도 듣지 못하게 다시한번 내 귀에 입을 가져다댔다.


"내가 들어봤는데 지 말로는 밀당 어쩌구 그러면서 한번 차면 알아서 더 집착하면서 들러붙는다 어쩐다 하더니,지금 일주일 지나서도 후붕이하고 말 한번 못했어."


"같이 말 안할만도 하네. 사람 마음가지고는 장난치면 안 되는게 당연하니까."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참~ 내 옆에있는 여자애들은 전부 다 바보라니까."


그렇게 말하는 얀순이가 알게모르게 내 옆에 조금 더 밀착해서, 순간 진한 라벤더향이 코 끝을 맴돌았다.

라벤더향이 내 입속으로 들어가자,입 안엔 쓴 맛이 감돌았다.


"나같이 누구를 사랑스럽게 봐주는 사람은 이 세상엔 아마도 없는 것 같다~"


이번에도, 한번 더 미소를 지어주는 그녀의 모습은 분명히 아름다웠다.

하지만 어딘가가 망가진 듯한 미소,이것조차 나에게만 허락된 가치이다.


"자 마지막으로.. 연극 동아리,이번에도 세명!"


멍하니 감상평을 머릿속에 끄적이고 있자,나와 얀순이가 선택한 동아리의 이름이 나왔다.


"""저요."""


한번에 세명이 손을 들었다. 그 세명은..


"음,이번엔 딱 세명이구나. 세명 이름 얀붕,얀순,얀진 맞지?"


"네,맞아요. 그런데..."


"그런데?"


"아니에요 선생님,다른 게 생각나서 말이 헛나온 것 같네요."



얀순이가 순간적으로 손을 든 얀진이 쪽을 바라봤던 건 그저 내 착각이였던 걸까.


"저 걸레년이.."


순간적으로 얀순이의 입에서 굉장히 험한 말이 나왔지만,다른 생각을 하는 나에게는 닿지 못했는지 그 소리는 자연스레 바스라졌다.


* * *


"자 마지막으로.. 연극 동아리,이번에도 세명!"


나와 얀붕이는 동시에 손을 들면서 서로를 마주본 뒤 주변을 둘러보았다. 분명 한 명의 소리가 더 첨가된 것 같아서 소리의 근원지인 곳을 정확히 짚어내니, 거기엔


'얀진....'


하필이면 가장 같이 만나면 안 되는 년과 붙어버렸다.

저년이 내가 사랑하고,아끼고,좋아하고,안고싶고,놓고싶지 않으며 항상 곁에있고 싶은,그런 얀붕이를 나에게서 훔쳐가려는 영악한 년이다.


저번에만 해도 자신은 착하다는 이유로 공부에 허덕이는 얀붕이를 지도해주며 가르치고.. 공부를 가르치는 것 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그 년의 눈빛은 정직했다.


'하.. 어떻게 봐도 호감을 품은 눈빛이잖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얀진 저 걸레같은 년이 나의 얀붕이에게 좋아한단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냐면,얀붕이를 생각할때마다 거울에 비치는 내 표정,눈빛과도 완벽하게 일치했기 때문이다.

얀진.. 이 년의 순수한 호의한척 하는 더러운 술수가 얀붕이에겐 어떻게 다가왔을까?


차라리 이 년이 안경이라도 끼고 있었으면 어땠을까,초등학생 때 얀붕이의 취향을 물어봤었는데 그 때의 대답이 장발에 안경 없는 순수한 스타일이 좋다한 걸 듣고 그 외모로 지금까지 이어왔다.


그런데,자신과 비슷하다 볼 수 있을 정도로 그 년의 모습은 여자인 내가 보아도 상당히 아름다웠다.



"아니에요 선생님,다른 게 생각나서 말이 헛나온 것 같네요."



말을 마치면서 얀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 년은,분명히 날 비웃고 있었다.



* * *


최근들어 나에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행운이 찾아오는 것 같다.

나에게 있어 구원자였던 그녀인 얀순이와, 시험이 코앞인 위험한 순간에 나를 도와줬던 얀진이와 같이 동아리에 들어오게 되었다.


"얀순아,나 요즘 운이 너무 좋은 것 같지 않아?"


"응? 운이 좋다고? 내가보기엔 악운에 악재를 겹친 것 같은데. 대체 요즘의 어느 부분이 운이 좋았던거야?"


"아,그.그렇게 생각해? 그럼.."


"설마 얀진이 그 년..아니 걔랑 같이 동아리 들어와서 운이 좋다고 말한건.... 아니지?"


"아니,그..."


얀순이는 잠시 할 말을 잃고 땅을 쳐다보는 나에게 어떤 감정을 느꼈는진 모르겠지만 상당히 무서운 기운을 내뿜었다.


"왜 말이 없어? 네가 아무말없이 땅을 쳐다볼 땐 거짓말을 할 때나 찔릴 때 밖에 없었던 것 같은데. 설마 정말이야?"


"얀순아,그게 아니라..."


"아니야? 아니라고? 그럼 그 년을 봤을 때 밝아지던 네 표정은 뭐야? 날 볼때는 거의 무표정이면서..!"


"얀순아..."


"하,미안해. 말이 이번에도 헛나왔나 보네."


얀순이가 내게서 점차 멀어져간다. 

안 돼. 이래서는 안 돼.


"오해야. 난 널 볼때마다 그... 두근거려서 잘 웃지 않는 것 뿐이야."


"...어? 정말이야?"


"응. 한치의 거짓도 없이 정말로."


"그런 거였으면 미리 말하지 그랬어~!"


멀어지려 했던 얀순이가 몸을 돌려서 내게 안겼다.

얀순이와 가깝게 붙었지만, 얀순이의 심장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 * *

시간이 지나ㅡ,가입했던 연극 동아리를 할 시간이 되었다. 나와 얀순이는 연극에서 필요한 복장을 준비하고 무대 뒤 준비장으로 이동했다.


"어,얀붕아 안녕!"


어딘가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주시하던 얀진이가 날 보자마자 웃으며 손을 흔들어줬다.


"안녕,준비는 잘 되어가?"


"딱 너희만 오면 대본 나눠주고 시작이라는데,이거 우리학교 교복 아니야?"


그러고보니 연극이라면서 우리학교 교복을 나눠주고 그걸 가지고 오라 말했었던 것 같다.


"우리는 거의다 체육복 입고 학교를 가니까,아마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을 연극으로 만든 것 같은데?"


"정답이다 얀진."


연극부 선생님이 대본을 가지고 준비장에 들어왔다.


우리가 받은 대본의 제목은, '학교에서 피어나는 사랑의 불씨'였다.


* * *


"음, 그럼 얀붕이가 남주, 얀진이가 여주,얀순이는 그걸 방해하는 빌런격 서브히로인,그 외는 전부 옆에있는 엑스트라 학생으로 결정된거지? 공정하게 했으니까 무르기 없기."


"아니,인정 못하겠어. 왜 내가 빌런격 서브히로인같은 역할을 맡아야 해?"


"어.. 이미 가위바위보로 승부가 낫잖아. 처음에 이걸로 걸린사람은 말 없이 하기로.."


"이런 씨..."


제일,가장,안 되는 전개.

얀붕이와 얀진이가 각각 남주와 여주가 되어버렸다.


아마 대본대로라면.. 둘이 손을 잡고,마지막엔 얀붕이와 얀진이는 안는걸로 끝난다.


'절대..절대로 안 돼."


저 자리에 있을 건 얀진이가 아니라 바로 나다. 이대로 비참하게 얀붕이를 빼앗길 순 없다.


분명히 저 여우같은 년이 연극을 하면서 순진한 얀붕이를 꼬실 게 분명하다. 수년 간 해온 여자의 촉이 빛을 발한다.

고민하는 나에게 추가타를 날리려는 듯 얀진이가 머리를 부여잡고 구석에서 생각을 하는 나에게 다가왔다.


"얀순아,네가 선택한 연극부야. 악으로 깡으로 버텨야지."


한숨 섞인 그 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내 주머니에 있는 호신용 커터칼의 날을 세웠다

하지만 사랑하는 얀붕이가 보고있는 눈 앞에서 얀진이를 수차례 찌르는 건 도저히 보여줄 수 없었기에,다시 흥분을 가라앉히고 날을 다시 집어넣었다.


"얀순아.. 연극은 이것만 완성시키면 끝이라고 했으니까,동아리 끝날때까진 우리 같이 힘내보자?"


얀붕이가 나에게 격려하듯 손을 꼭 잡아줬다.

역시나,나는..

절대로 이 손을 놓기 싫다.


* * *

수 개월의 준비 끝에, 나와 얀순이와 얀진이는 연극을 실패없이 완성시킬 수 있었다.


주변 엑스트라들의 도움도 없지않아 있었기에 그들에게도 찬사를 보낸다.


"오케이,난 준비 끝났어. 너는 어때?"


"완벽 그 자체. 컨디션도 완벽. 퍼펙트!"


얀진이에게 질문을 보냈더니,답장이 많이 왔다. 아마도 드디어 완성시키는 연극이라 많이 흥분한 것 같다.


그리고,왠지모르게 내 등이 따가웠다.



* * *


"자! 이제 실전이다. 다들 조명 켜지면 처음부터 진행해!"


선생님의 지시가 내려지자 잠시 조명이 꺼지고,이내 다시 켜졌다.



"야,김얀진. 너 요즘 우리 얀붕이한테 많이 들이댄다?"


"왜 그래 얀순아.. 나는 그저 얀붕이가 불쌍해서 그랬던거야.."


"개소리."


연극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마지막 하이라이트 부분이 나왔다.


"얀붕아, 나 사실 너를.."


"나도 알고 있어."


얀붕이가 떨리는 듯한 얀진이의 손을 잡고 사랑을 속삭였다.


아무리 연극이라지만,가슴이 너무도 아팠다.

저 자리에,언젠가 내가 있기는 할까?


그 둘은 오랜만에 재회한 연인처럼 꽉 끌어안았다. 


그리고,엑스트라들은 박수를 치며 무대에서 퇴장했다. 



이빨이 부르르 떨렸다. 괜찮아. 이정도면 버틸만 한...데?


갑작스레 얀붕이에게 안겨있는 얀진이와 눈이 마주쳤다.


"왜 쳐웃.."


-쪽


조명이 완전히 꺼지고 10초가 지나자 불이 켜지고,방금 입을 맞춘 그 둘의 자리엔 적막만이 감돌았다.


"저..얀진아,이건 대본에 없었는데.."


"괜찮아,진정한 연극동아리 학생이라면 이정도 애드립은 가지고 있어야지."


"난 괜찮은데.. 하지만,"


ㅡ쾅!


누가 문을 발로 차는 소리가 들리더니 신경질적으로 다시 문이 닫혔다.


나는 그 존재가 얀순이라는걸 직감할 수 있었다.


"얀순..얀순아!"


나는 당장 안겨있는 얀진이의 품에서 벗어나 발로 까인 문을 열고 얀순이가 향했던 그곳으로 달려나갔다.



"얀붕아..."


아무도 없는 무대 위에서는,작은 소망이 들려졌다.


"둘이..반드시 행복해야 해."


그렇게,연극은 모두 끝이 났다.


* * *

"얀순아~ 이거봐라~"


얀붕이는 종이비행기를 들고 얀순이의 앞에가서 자신이 만든 종이비행기를 자랑했다.


"우와! 이거 어떻게 만든거야?"


"히히,나한테도 다 방법이 있지!"


둘의 사이는 매우 친근해 보였다. 초등학생인 두 남자애와 여자애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놀았다.


종이비행기가 선생님의 부탁을 받고 물건을 들고가던 내 발 아래쪽에 닿고,난 그 종이비행기를 밟고 넘어지게 되었다.


"으핫!"


"야! 거기 너!"


내 발 아래에는 형편없이 밟혀 찢어진 종이비행기가 보였다. 난 방금 남자애가 자랑한 종이비행기를 밟고 찢어버린 건가?


"제..제발 때리지만은 말아줘!"


무서워서 소리친 나한테 다가온 그 남자애의 얼굴은 분명 죄책감을 가진 얼굴이였다.


어째서? 나는 네가 소중히 여기는 종이비행기를 발로 밟고 찢었는데?



"괜찮아? 내가 괜히 종이비행기를 날려서 애꿏은 너만 피해를.. 젠장,당분간 종이비행기는 못 접겠네."


"어..어?"


이 아이는 종이비행기는 안중에도 없는건지 나를 보면서 걱정하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그 때, 내 가슴이 강하게 뛰었다.


처음 만났을 때 이 애의 정신연령은 이미 성인이 된 것 같아 보일만큼 성장한 것 같았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 때 얀붕이한테 반했고,그를 보고싶어 맨날 그의 반 옆에서 얼쩡거렸다.


"얀붕아,넌 취향이 뭐야?"


"나? 안경은 일단 별로고, 머리가 긴 게 좋아."




"아...!"


나는 탄식했다. 얀붕이의 취향은 정확히 나와 정 반대였다.

나는 안경을 끼고,짧은 머리를 가지고 있는데..


그때부터,그때부터 시력에 좋다는 음식들을 먹고,머리는 최대한 기르는 방향으로 만들었다.


얀붕이는 모르지만,중학교 3학년이 된 그때까지 난 오직 얀붕이만을 바라보며 초,중학교 학창생활을 보냈다.

하지만 가장 거슬리는 존재가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같이 다니던 얀순이라는 존재였다.


얀순이는 초등학생인 처음엔 안 그랬지만,중학생이 된 이후로부터 갑자기 얀붕이에게 들이대기 시작했다.

처음엔 착한 얀붕이에게 당연하게 끌리는 거라 생각했지만,그 도가 너무 지나쳤다.


얀붕이의 옆에 달라붙는 여자들에게 협박을 서슴없이 하고,얀붕이에게 나쁜 말을 하는 남자애들은 사회적으로 매장시키기까지 했다.


물론,내가 얀붕이를 지켜보고 있는 걸 들켰을 때부터 얀순이가 내 간을 보고있는 걸 눈치챘다.


얀순이가 저런 걸 알고 나는 바로 얀붕이에게 가 말을 전달하려 했지만,그와의 대화가 너무나도 행복하여 할 일마저 잊고 말았다.


얀붕이는 항상 이런 식으로 공부를 하는구나.


얀붕이는, 항상 만나는 모두에게 친절을 베푸는구나.


하지만,공부를 도와준 나에게 칭찬을 서슴없이 하며 미소를 짓던 그 웃음이 뭔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 미소를 볼 때,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고,얼마나 혼자 생각하는 걸까.



며칠 뒤,얀순이와 눈이 마주친 얀붕이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미소는 짓지 않았지만,분명히 웃고 있었다.


미소를 짓지 않고 웃음을 짓고있는 그를 보니 다시한번 가슴이 아팠다.


얀붕이가 얀순이에게 반한 걸 단번에 알 수 있었지만,얀붕이는 무언가 죄책감이 있는지 얀순이를 볼 때마다 속으론 미소를,그리고 슬픔을 자아냈다.


"어째서..."


무언가, 큰 사건이 둘 사이에 있었겠지.


얀순이를 쳐다봤다. 눈을 쳐다보니 진심으로 얀붕이를 사랑하는 느낌이 내 몸까지 전달되었다.


하지만 여기에도 어딘가..뭔가 사라진 기분이다.


대체 무엇이 빠진걸까? 대체 무엇이 사라졌기에 둘은 저렇게 아무도 없는 바다에서 허우적대는 해달같이 행동하는 거지?



나는 굉장히 답답해서 나서고 싶었지만..선뜻 나서기란 쉽지 않았다.


얀붕이가 얀순이를 만날 때 마다 느끼는 감정이 나에게는 보였다.


그것은 분명,사랑이라 할 수 있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어딘가가 망가진 그를 위해서 나는 그가 일어설 계기를 줘야했다.



길게 고심한 끝에,나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굉장히 위험한 도박에 가까워서 가장 마지막으로 생각해냈지만, 잘만하면 둘의 관계 진척에 굉장한 도움이 될 수 있었다.


자신의 사심이 조금..아니 상당히 많이 담겨있지만.. 그걸로 자신의 마음을 깨달을 수 있다면,


"네가 행복하다 말할 수 있다면.."


내가,너의 사랑을 이루어줄게.




* * *



달리고 또 달렸다. 비가 와서 질척거리는 진흙이 내 바지를 더럽히며 붙잡았다.


비는,그칠 줄 모르고 계속해서 내렸다.


"얀순아..!"


벤치에 눈물을 뚝 뚝 훌리는 얀순이가 눈에 밟혔다.


"얀..붕아?"


눈물 콧물로 얼굴이 더럽혀진 얀순이를 보고 난 주머니에 있는 휴지를 꺼냈다.


"미안해,주머니에 손수건 같은 물건이 없어서.."


"흐,너,흑 너 좋아하는 얀진이한테나 가버려. 가버리라고!!"


절규하는 듯한 얀순이의 한 손에는 피묻은 커터칼이 존재를 과시하고 있었다.


혹여나,혹시나 해서 소매로 감춘 얀순이의 손목을 보았다.


거기엔 수 차례 그어진 흉터가, 그리고 내 마음의 흉터가 같이 새겨져 있었다.



"얀순아... 나 사실 말할 게 하나..아니 여러가지 있어."


"뭐야,뭐냐고! 얀진이한테 고백한 거? 얀진이랑 키스한 거? 대체..대체 왜..!"


"그런 게 아니라고!!"


처음으로 듣는 나의 호통에 얀순이는 얼어붙었다.


"좋아.. 이제부터 굉장히 중요한 걸 알려 줄 테니까 잘 들어."


나는 그 때의 이야기를 회상했다.



* * *


"얀붕아! 나도 이제 종이비행기 접을 수 있다?"


"난 이제 용도 접을 수 있는데 아직도~?"


우리는 언덕 위에서 어느때와 같이 붙어서 놀고 있었지.


"치,여기에서 더 못 하겠는데.. 그러면 초초초 빠른 종이비행기를 만들어서 보여주겠어!"


"그럼 저기 위 언덕에서 해보는 거 어때? 바람이 엄청 강해서 비행기가 바람만 타면 빠를걸?"


"그런 건 또 어디서 배운거야? 엄청 똑똑하다!"


"과학시간에 자지만 않으면 알 수 있어.."


그리고,그 언덕 위로 올라가서 종이비행기를 여러 개 만들었지.


"자 어때? 하트모양 종이비행기!"


"오와아! 어떻게 만든거야? 나 줘 나나나!"


"나랑 멀리던지기 시합해서 이기면 줄..어레?"


내 손에서 그 하트모양 종이비행기가 바람을 타고 날아갔어.


"어,저건 안 돼!!"



"얀순아 잠깐만 거기는..!"



"아,잡았.꺄아아악!"



내가 언덕의 중턱에서 떨어진 널 발견했을 땐, 내가 만든 하트모양 종이비행기를 잡고 머리에서 피가 흐르며 쓰러져있던 때였어.


너는 내가 주머니에 있는 스마트폰으로 119를 불러 겨우 죽기전에 구해냈지.



"우리 얀순이 불쌍해서 어떡해,돈 많이 빠져나갈텐데.."



너의 부모님은 내가 봤을 때.. 너보다는 치료에 사용되는 돈이 더 중요하단 것처럼 보였어.


그리고,너는 마침내 깊은 잠에서 깨어나 내 눈 앞에서 웃고있는 너를 볼 수 있었지.


나는 진심으로 기뻤어. 하지만 그 희망은 의사의 다음 말에 산산조각이 나버렸지.


"죄송합니다. 따님분은 지금 전두엽과 편도체가 살짝 손상되어.... 기억을 잘 하지 못하고,감정을 조금밖에 느끼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책상에 놓여있던 종이비행기를 창문 밖으로 던져버리고, 당장 병원 밖으로 뛰쳐나가 아무 잘못도 없는 나무에 머리를 계속해서 부딪혔어. 내가 아니였다면 네가 그런 고통은 겪지 않아도 됐었을텐데. 

나 때문이야. 나 때문에....


머리에서 피가 날 정도로 머리를 가져다 박았지. 그 때의 고통이 아직도 내 뇌리에 생생히 남아있어.

그리고 졸지에 쓰러진 내 앞에,네가 환자복을 입고 내 앞에서 날 걱정하듯 바라봤지.


"괜찮아? 네 이름이...맞아,얀붕이였지. 괜찮아? 갑자기 머리는 왜 나무에 박는거야?"


"......."


나는 죄책감에 아무말도 하지 못했어. 내 이름마저 까먹어버린 너에게 죄책감이,속죄해야 한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떠올랐지.


"미안해...."


"어? 갑자기?"


"정말...정말로..."


꼴사납게 눈물을 계속 흘러념쳐 내보낸 나는,이내 느껴지는 따뜻한 감촉에 눈을 떴지.


"괜찮아.네가 무슨짓을 한 지는 모르겠지만..나는 전부 용서할게. 그러니까 울음 뚝 그쳐!"


나는 그 말에 내가 구원받은 걸 깨달았다.

설령 기억을 못하는 너에게 받는 허울뿐인 용서라 해도..

이기적이고,주제넘는 인간인 나는 그 용서에 더욱 더 눈물을 참을 수 없었지.


"정말.. 눈물 좀 그만 흘리라니까. 정 미안하면 이거 나 주면 안 돼?"


나는 다시한번 눈을 뜨고 내 눈을 의심했어. 내가 창문 밖으로 던진 하트모양 비행기가 네 손에 들려져있었기 때문이야.



"이건...어디서?"



"네가 갑자기 창문 밖으로 던지고 밖으로 나갔잖아! 이렇게 예쁜 종이비행기를 버리려고 하다니,차라리 나 줘."


나는 당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 종이비행기를 너에게 줬어. 


종이비행기라면 너에게 몇 천. 아니 몇 만개라도 접어 줄 수 있는데.


"진짜? 고마워! 정말정말로!"


네가 그 때 정말로 고맙다고 하였지만, 진짜로 고마운 건 나였어.


그리고,시간이 지나 네 집에도 간간히 놀러갔을 때,집의 한 쪽 구석에 있는 책상 위에 올려져있는 그 종이비행기를 보았을 때,나는 그 때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듯 하며 계속 머리에서 피가 멈추지 않는 너와 지금의 웃고있는 네가 투영되어 보였어.


너의 부모님은 무엇이 걱정되는 건지,너에게 그 사건에 대해서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어. 나에게도 그 일에대해 언급조차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셨지.


마침내 중학교에 입학할 때,너는 뭔가가 달라졌었지.


나에게 미소를 지으며 웃는 너에게 사람으로써 가장 중요한 무언가가 모자라다는 기분이 들었어.


나는 웃는 너를보며 끊임없이 생각했지. 과연 이 위화감은 무엇일지.

그 때,나는 그 의사의 말이 생각났어.



"죄송합니다. 따님분은 지금 전두엽과 편도체가 살짝 손상되어.... 기억을 잘 하지 못하고,감정을 조금밖에 느끼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네 감정이,점점 사라져가는 것 같아 무서웠어.

네가 날 기억 못하게 될까봐 무서웠어.




점점 나에게 의지하는 너에게 나는 계속해서 죄책감을 느꼈어.



내가 너에게 주었던 종이비행기는 점차 색이 바래져가,먼지가 쌓여 세월의 풍파를 맞이했지만,



나는 어릴때와 다름없이 이기적이였어.



너와 함께 있으면서,나는 너를 사랑하게 되었고

너와 함께 있으면서,나는 너를 나에게서 놓아주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네가 점점 망가져가는 것을 애써 무시하며 너의 옆에 붙어있었어.




.......지금까지. 쭉.





"........정말...로?"



"한 치의 거짓말 없이.... 정말이야."



"나는..그런것도 모르고..너의 죄책감을 자극했구나.."



"아니,하지만 이거 하나는 장담할 수 있어."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 같던 비가 그치고,짙은 안개에 가려진 햇빛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너를... 사랑하고 있어."




"흐..아.....얀붕아..."




나는,진실을 듣고 통곡하는 얀순이를 강하다면 강하게,약하다면 약하게 끌어안았다.



그 날 후로부터,나는 얀순이와 사귀기로 했다.

원래 하던짓이 사귀던 짓이랑 별반 다를 게 없어서 체감이 잘 안 됐지만..



이따금씩 나에게 입술을 겹치는 얀순이를 보니 정말, 진심으로 날 사랑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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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한번 써보라해서 처음으로 써보는 소설임


재미로 써본 소설이니 필력 안좋다고 욕하지마라


난 개인적으로 소프트안데레 선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