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 우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조용한 밤.

모두가 잠에 들 시간일텐데도, 나는 바쁘게 발걸음을 옮겼다.

-바스락 바스락!

주위에 들리는 소리라고는 낙엽이 부숴지는 소리뿐.

그마저도 날짐승이라고 착각하기 십상일터.

지친 다리를 달래기 위해 속도를 늦춰도 되지않을까, 하고 아주 살짝 안심을 한 그 순간ㅡ


"오늘 밤은 보름달이 떳구나."







부서진 나무위에 앉은 한명의 오니가 나를 비웃든이 쳐다보고있었다.

'... 왜 여기에 그녀가.'

나는 가까스로 놀란 기색을 감추며, 태연한척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이런 시간에 안자고 뭐하는거야 스이카."

이부키 스이카.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작은 소녀로 보였지만 그녀의 진짜 정체는 오니.

평범한 인간은 눈 깜짝할사이에 고깃덩어리로 만들수있는 무시무시한 요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당황하긴했지만 결코 두려워하진 않았다.

왜냐하면.

"무엇을 하냐니."

그녀는 나를.

"남편이 돌아오지 않아 불쌍한 아내가 홀로 달빛을 안주삼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을 뿐이니라."

... 자신의 남편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그건 술기운에 취해서 실수한거라고 했잖아."

며칠전에 저지른 실수가 머릿속에 떠오르자 저절로 한숨이 쉬어졌다.

이변 해결을 기념한 하쿠레이 신사에서 벌어진 연회.

그 연회에 이변을 해결하기 위해 자그마한 도움을 주었던 나도 초대받았고, 평소에 술을 좋아하는 탓에 그녀가 건넨 술을 아무 의심없이 받아들였지만.

'설마 오니들이 그렇게 독한 술을 마실줄이야.'

나름 술에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설마 고작 한잔만에 뻗어버릴줄은 몰랐다.

술에 취한뒤 평소에 '귀엽다'고 생각한 그녀에게 무심결에 반 장난으로 고백을 했었지만.

'설마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줄이야.'

지난날의 나를 죽여버리고싶은 심정이었다.

"처음이었다."

그녀는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수백년동안 살아왔지만 이 나를 여자로 봐준 존재는 네가 처음이었다."
"아니 그러니까."
"그렇기에 이것은 운명, 내가 수백년을 살아온 까닭은 너를 만나기 위함이 틀림없다."

내 말은 완벽하게 무시한채로 스이카는 나무에서 뛰어내렸다.

갑자기 뛰어내린 그녀를 걱정할틈도없이, 나는 나 자신을 걱정해야만했다.

"야, 나는 왜 들고 뛰는건데!?"
"이런 좋은 술과 경치를 혼자 즐기는것은 아깝지않느냐?"

턱- 하고 나무위로 손쉽게 착지한 스이카는 빈공간에 나를 내려놓은뒤 술잔을 건넸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서 나도 모르게 술잔을 받으려고 했지만.

"... 최소한 다른잔에라도 담아줘."
"안타깝게도 지금 내게 있는 술잔은 그것밖에 없구나, 그리고."

그녀는 내가 얼굴은 쑥내밀었다.

젠장 진짜 존나 귀엽긴하네.

"부부사이에 부끄러울게 뭐가있느냐?"

...진짜 이런말만 하지않는다면, 그녀와 나는 몇년뒤에는 멀쩡한 연인관계로 발전하지 않았을까.

최대한 그녀가 입을 대지않았을 만한 부위를 찾아 술을 마셨다.

"...간접키스를 하다니 내 남편은 참으로 대담하구나 후후."

시끄러.

붉어지는 얼굴을 애써 감췄다.

"뭐, 애초에 진작에 모든곳에 입을 대어두었지만."
"좀 그러지좀 말라고!"

그녀의 행동은 도무지 예측할수가 없었다.

도저히 참을수 없어서 분노하듯 소리쳤지만.

"후흣."

그녀는 그런 나를 보곤 마치 사랑스러운 연인을 보는것처럼 바라보았다.

그리곤 허리를 숙여 요염한 자세로 나를 보며 말했다.

"그대가 준비가 될때까지는 얼마든지 기다려주도록 하마."

그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는것도 잠시, '그러나'라고 덧붙여오는 말에 나는 등골이 오싹해지는것을 느꼈다.

"만약 그대가 다른 존재와 깊은 관계를 맺는다면."


나무가 진동했다.

"나에게 한 맹세를 깨트린다면."


스이카의 머리카락이 마치 바람에 흩날리는것처럼 나부끼기 시작했다.

"거짓을 고한거라면."

마지막으로, 스이카의 주홍빛 눈동자가 빛났다.

"그때는 일생의 반려가 아닌, 오니에게 바쳐지는 제물로서 대하도록 하마."


꿀꺽.

그 말에 한참 동안이나 내가 굳어있자, 스이카는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농담이니라! 설령 그대가 나를 배신한다 하더라도 내가 그대를 배신할일은 없을것이다... 아주 조금 벌은 주겠지만."

'그러니까 떨지말고 좀더 이쪽으로 붙거라.' 라고 말하면서 내 품에 파고드는 스이카를 멀리하며 저 하늘에 떨어지고있는 별똥별에 한가지 소원을 빌었다.

부디, 그 벌이라는 내용을 평생 알 일이 없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