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만나러 나간다는 것까지만 말하고, 결국은 일하던 도중에 나가서 지금까지 나가있던 거 아니야?]

[ㅇㅁㅇ]

[안 넘어가줄건데... 어떻게 할래?]

[어차피 보이는 거면]

"야, 왜 나와서는 폰만 보고 있어!"

"미안해, 갑자기 연락이 와서."

얀진이의 표정이 살짝 진지해진 것을 본 얀붕이가 사과했지만, 얀진이의 표정은 더 굳어졌다.

"연...락? 누구한테?"

'설마, 여자친구한테 연락이 온 건 아니겠지?'

[그 친구, 표정 변하는 게 볼만하네. 어떤 심정인지 알려줄까?]

[필요없어요!!]

얀진이는 술잔을 단숨에 비웠다.

얀붕이가 놀라서 자신을 쳐다보는 도중에, 연거푸 두 번을 더 들이켰다.

"폰 꺼."

"응?"

"폰 끄라고!"

휙-

얀붕이의 폰을 낚아챈 얀진이가 카톡이 오는 와중에 폰을 껐다.

"아."

"기껏 불러내서, 학생때는 못하던 것 좀 해보자는데 굳이 그러고 있을래!?"

얀진이가 원망스럽다는 듯 얀붕이를 째려본다.

"마셔."

조금 큰 소주잔.

거기에 찰랑거릴 정도의 소주를 부은 얀진이가 얀붕이에게 잔을 내밀었다.

"야, 그건 좀..."

"아니, 마셔."

"너..."

"마셔."

얀진이의 눈빛은 진지했다.

"으윽..."

'조졌다!'

마음속으로 그렇게 외치며 입안에 술을 털어넣은 얀붕이에게 얀진이는.

말없이 술을 따라주었다.

'그래, 이렇게 될 줄 알았어.'

얀붕이도 세 번을 더 당하고 난 뒤에야 반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취했냐?"

"어...? 어."

얀붕이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술에 관련해서 자존심을 부리면 좋을 것이 아예 없었다.

"일어나, 가자."

얀진이의 입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리고, 얀순이의 입에도 같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나... 박사님..."

"응?"

얀붕이를 부축하는 척 몸 곳곳을 만지는 얀진이의 뒤에서 누군가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누구... 아, 얀순 선배??"

"오랜만이네, 얀진아."

"여긴 어쩐 일이세요?"

"음... 못 들었어? 얀붕이가 내 일 도와주고 있는 거."

얀진이도 들었다.

한 박사의 일을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만화적인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있을리도 없고, 무언가를 보조하는 것이 얀붕이와 어울리는 느낌의 직업이라 넘어갔던 얀진이.

그녀의 마음속에 불안감이 들이닥쳤다.

"아... 그런데, 그게 왜..."

"그것도 모르겠네, 얀붕이랑 나는 같이 살거든."

"네?"

"당혹스럽지? 불안하고, 화가 살짝 날 거야. 근데 이것까진 말할게."

얀순이는 얀진이의 귀에 속삭였다.

"얀붕이는 내 거거든."

---

모르겠다.

마치 어릴 적 자칭 래퍼들에게 시비가 걸리면 말을 하려 해도 부모님 욕으로 첨철된 빠른 말들과 발길질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듯이.

나는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얀붕이를 넘겨주었다.

패배감.

굴욕감.

내가 느끼는 감정을 무엇이라 말해야 할까?

주저앉아 울고싶고, 화나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는 이 감정을.

내가 좋아해온 사람이다, 잊지 않고 몇 년을 이어온 사랑이다.

그런데, 웬 년이 다가와서 그 사랑을 꺼뜨리려 든다.

'나 예전에 그런 거 본 적 있어. 사랑을 불이라 치면 장작은 세 개라더라, 헌신과 매력과 상대.'

그가 했던 말 그대로, 사랑을 태우는 기분은 너무나 행복해서.

헌신을 때려넣고 나의 매력을 기르려 노력했다.

상대, 얀붕이만 있으면 되는데...

다시는 그것을 불태울 수 없다는 기분이, 내 마음 속에 바람을 불어넣었다.

짜증, 질투.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뒤섞인 듯 느껴지는 바람이, 내 사랑을 더욱 불태워야 하는데.

알코올에 눈이 가려져 내 마음이 보이질 않는다.

그런데, 사랑 옆에 다른 불꽃이 피어오르는 게 보인다.

그래, 저걸 질투라 부르자.

---

"너무하네, 어제까지만 해도 잔뜩 사랑해놓고는 갑자기 다른 년이랑 놀아나다니."

얀순이는 얀붕이의 상의를 전부 벗긴 후 그 위에 누워있었다.

"역시 몸만으로는 마음을 따낼 수 없다는 거지...?"

눈물이 떨어지는 듯 액체가 떨어지지만 그 액체는 얀붕이의 하의에 떨어진다.

"그래도, 네가 다른 년이랑 놀아나지 못하게... 몸은 내가 쥐고 있어야겠어."

"지금은 네 몸뿐이지만, 언제가 마음도 이 손에... 헤헤..."

띵동-

"음, 누구지?"

얀순이는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닫았다.

"뭐야, 저년이 왜 여깄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거 아니었어?혹시 얀붕이가 이미... 아니야, 아니라고... 안돼. 안된단 말야."

"선배, 열어줘요."

문 앞에 선 여자는, 질문으로 말을 이었다.

"얀붕이 여기 있잖아요."

"얀붕이 지금 뭐 하고 있어요?"

"놀다가 갔으니까, 이 정도는 알아도 되는거에요."

"선배가 얀붕이 여자친구라도 돼요?"

"열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