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


일어나자마자 한숨이 나온다.

답답하거나, 슬퍼서 나오는게 아니다.


오히려 웃음이 나온다.


"읏차."


평소와도 다르게 몸이 가벼웠다.

결심을 한 날이여서 그런가?


평소와는 다른 생기가 몸에 감돈다.


희망이라는게 있으면

사람이 이 정도로 바뀌는구나.


"어디..보자.."


초라해 보이는 냉장고를 열었다.

안에는 역시 별게 없었다.


대충 아침을 차려먹으며, 혼잣말을 계속했다.


"드디어 오늘이네."


억지로 턱을 움직여, 음식물을 삼켰다.

상쾌한 몸과는 달리

머리는 무거웠다.


위장에 무언가가 들어간건

꽤나 오랜만이였다.


"그럼 어디.."


나갈 준비라도 하는듯

말끔해 보이는 정장을 찾아 입었다.


옆에는 한 드레스가 놓여져 있었다.


"..."


드레스에 묻은 얼룩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몇분을 드레스만 바라봤다.

얼굴에는 어떠한 감정도 비추어지지 않았다.


"씨발."


아무도 없는 허공에 욕을했다.

분노를 표출하는게 아니다.


이건 나름대로의

작별인사다.



"후우.."


한참을 고민했다.


정말 내가 이런짓을 해도 될까?

그녀는 날 용서해줄까?


확신이 서질 않았다.


하지만, 핸드폰을 꺼내어 보고나니, 생각은 바뀌었다.


'왜 욕해? 기분 안좋아?'


기분이 안좋아졌다.

그리고 확신이 섰다.


"크흠흠."


일부로 거창하게 목을 풀었다.

그래야 더 잘 들릴테니까.


계속 목을 푸는척 하며, 나는 쓰레기통으로 다가갔다.


"있네."


그 안에는 길고 빨간 노끈이 있었다.

말없이 나는 그 노끈을 가져왔다.


그리고..


책들을 쌓기 시작했다.

천천히, 무너지지 않게.


아, 물론 무너질 예정이다.


천장에 미리 봐두었던 자리를 찾았다.

이유는 모르지만 못이 박혀있다.


오늘을 위한 자리구나.

속으로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고작 박혀있는 못 하나에 행복해지다니


"흠흠."


마지막으로 목을 풀었다.


이제 무대가 시작된다.


"들리나? 들리겠지 개같은년."


아무도 없는 집안이 울릴정도로 큰 목소리로 말했다.

핸드폰이 미친듯이 울리는게 보인다.


그러다 지쳤는지,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여치닝❤'


"여친? 지랄하네."


더 크게 목소리를 높였다.

울리던 핸드폰은 이내 조용해졌다.


아마 이곳으로 오는거겠지.


"니가 오면서 이걸 들을지는 모르지만."


"난 니가 너무 싫다."


침을 한번 삼켰다.

계속 입이 바싹바싹 말랐다.


"난 분명 행복한 놈이였는데."


매듭을 묶으며 말을 했다.

거의 다 완료되었다.


"너 때문에. 내 인생은.."


"하아.."


말하면서도 한숨이 나왔다.

후련했던 아침과는 달리 무거웠다.


"욕할 힘도 안나온다."


"니는 분명 너가 무슨잘못을 했는지도.."


"모를거야."


쌓아두었던 책을 옮겼다.

끈을 묶은 바로 밑이였다.


"니 마음만 마음이냐? 지랄하지마."


떨리는 손으로 매듭을 지은 끈을 천천히 들었다.

천천히 머리를 매듭 안으로 집어넣었다.


"학교에서 나만 왕따 시키니까 재밌었냐?"


목에 줄이 감겨있는건

그닥 좋지는 않았다.


"도망간 나는 또 어떻게 찾았냐."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났다.


당연한 질문일텐데.


"또 스토킹하고, 수소문해서 난 왜 찾았냐?"


다리가 점점 떨리는게 느껴진다.

책 위에서, 죽음을 맞이한다니.

낭만은 있으려나?


"찾은것도 다 좋은데..."


"..."


고개를 돌려, 정장을 꺼낸곳을 보았다.

먼지가 수북한, 더러운 얼룩만 있는

드레스가 보였다.


"... 왜죽였냐?"


붉은빛만 감도는 드레스의 이름은

웨딩드레스 였다.


"니가 죽였잖아."


"니가 분명 죽인게 맞는데."


"어떻게 빠져나왔냐?"


손의 떨림이 점점 멈추는게 느껴진다.

말하다보니, 자신감이 생기는걸까?


"..또 니 아빠 빽이나 썼겠지."


"더러운 세상."


마지막으로 방을 둘러보았다.

벽에는 무언가의 사진만 가득했다.


그것이 가장 증오하는 사람인걸 알고있다.

그렇기에 지금 몸의 힘을 푼다.


"마지막으로 말할게."




"잘있어라 씨발년아."


그대로 나는 발밑의 책들을 전부 차버렸다.

후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목이 위로 향했다.


고통에 몸부림 치는것도 일순간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꽤 오랫동안 몸부림 친것같다.


누군가 황급히 문을 여는 소리가

의식 저 너머에서 들렸다.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생각했다.

그것마저도 나에겐 사치였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다음생에는 반드시.

반드시 이 지옥에서

벗어나..

야..







*


"우..윽.."


의식은 꿈속에서 있었다는듯

빠르게 회복되었다.


눈도 금방 뜰 수 있었다.


눈에 들어온건 우선

밝은 불빛.


그 불빛 덕분에 눈을 뜨는건 쉽지 않았다.


"아윽.. 으.."


몸부림치던 자신이 생각났다.

그리고 동시에 생각했다.


드디어.

드디어 해방이구나.


굳이 눈을 뜨지 않아도 되겠지 하며

뜨려던 눈을 감았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행복하게 눈을 감으면 좋겠는데.



"환자 의식 돌아왔어요."


그 말 한마디에

감으려던 눈을 바로 떴다.


불빛에 빠르게 적응하자, 낯선 향기가 났다.

그와 동시에, 병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입술이 떨렸다.


"여..여기.."


"환자분 일어나셨으면.."


"왜 내가 여기.."


말을 끊은게 불편했는지 옆에 있던 누군가는

헛기침을 한번 했다.


"크흠, 자 환자분? 정신은 잘 드셨죠?"


내 옆에는 하얀가운을 걸친 한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는 행복해보였다.


"환자분, 다행이네요. 일어나셔서."


내가 아닌, 그 자신에게 하는 기분이였다.

어쨌든, 지금 상황에 머리가 아팠다.


"환자분 의식이 없을때, 여자친.."


"크흠!"


크게 헛기침을 하고, 남자는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아내분..이 잘 간호를 해 주셨어요."


설마


"그 사람.. 이름.."


입술이 떨리며 목이 막혔다.

겨우 몇단어를 끄집어내어, 질문을 완성 시켰다.


"아 그분 성함은 김얀순씨."


안돼.


"혹시 환자분 기억이 안나거나.. 그러면 안되는데.."


안돼안돼.


"이름은 기억 나세요? 본인 이름?"


팔에 꽃혀있는 튜브를 빼고,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격한 운동을 한것처럼 심장이 쿵쾅거렸다.


"환자분? 지금은 안정을.. 취해야.."


눈을 부릅뜨고, 침상 위에서 천천히 내려갔다.

입으로는 '안돼, 안돼.' 란 말만 나왔다.


세상을 부정하고 싶었다.


"선.. 선생님.. 안락사.. 아니 죽여 그냥.. 날.."


그때

누군가가 들어왔다.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로 중얼거리던 나는

그녀를 보았다.


"아."


나온건 한번의 탄식이였다.

다시 돌아갈 수 없다.


그녀는 아무말없이, 날 껴안았다.

꽈악.


"돌아가자."


다정한척.


".... 그래."


못난놈.


"얀붕아. 사랑해."


진심.


"응."


거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