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에게 선택권이 있으리라 생각했는가? 어찌하여 그대는 하늘의 말에 의문을 가지는가?"


......


기나긴 내전이 끝이 났다.


황제의 사후, 귀족을 중심으로 한 입헌군주제로 새로운 나라를 만들고자 한 이들과 기존의 제정군주제를 유지하고자 한 이들의 싸움은 기존의 틀을 유지하고자 한 이들의 승리로 끝이 났다.


갑작스러운 황제 사후, 새로운 황제로 추대받은 에멜드 황녀는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와 경험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귀족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이것이 내전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지금와서는 의미가 없다.


반 황녀의 편에 든 이들은 죄다 숙청당했으며, 삼대가 멸문하게 되었다. 이 중, 스스로 머리를 조아리며 가문이 내린 성씨와 재산을 포기 한 자들은 '평민' 으로서 살 수 있도록, 에멜드 황제는 크나 큰 자비를 배풀었다.


강력한 힘을 가진 황제의 어명에 반대 할 이는 그 누구도 없다.


황제가 죽으라고 하면, 그 자리에서 혀를 깨물어 죽던지, 기둥에 머리를 박아 죽던지 무조건 죽어야 한다.


황제가 옷을 벗으라고 하면, 수 많은 인파 속에서도 옷을 벗고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


그 누구도 황제의 권위를 넘을 수 없다.


에멜드 황제의 말이 곧 하늘의 말이며, 그녀의 손짓은 곧 하늘의 뜻이다.


눈 조차 마주쳐선 안된다. 그것은 하늘에 대한, 황제에 대한 '도전' 이며 '반역' 이다.


"미천한 이가 지고한 황제 폐하의 부름을 받고 왔나이다."


"어서 들어오게나."


에멜드 황제, 에멜드는 자신에게 온 몸을 숙이며 고개를 박고 있는 어떤 한 사내를 보고 미소를 띄웠다.


대다수 귀족들이 자신을 허수아비로 만들어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할 때, 유일하게 자신의 편을 들어 지금의 황제로 만들어준 이였다.


세상 누구보다 믿을 수 있는 자 이며, 동시에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


그 남자가 자신에게 몸을 납작 엎드리며 낮추고 있다.


내전 시기에는 자신의 눈을 마주보며, 희망을 가지라며 조언도 해주고 가끔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격려도 해준 그 남자가 지금은 자신에게 몸을 납작 내리고 있다.


"어서 일어나 앉게나. 차가 식을 터 이니."


"허나..어찌 폐하와 같.."


"지금 짐의 뜻을 거스르겠다는 것이더냐?"


에멜드는 그의 손을 잡아 자신의 앞 자리에 앉혔다.


황제와 같은 자리를..즉 겸상하는 것은 지금으로는 상상도 못할 일 이다.


황녀 에멜드를 황제로 옹립하는데에 큰 업적을 새운 그는 같은 자리에 앉았음에도 절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고개를 들라."


"네 폐하."


그는 에멜드의 어명에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자신을 향해 미소를 띄는 황제는, 동굴에서 피신하며 육포를 나눠먹으며 웃었던 그 미소와 똑같았다.


"그대는 나를 위해 수 많은 고초를 겪고, 나의 칼이 되어 수 많은 반역자를 처단했다."


하지만 그것은 잠깐, 미소를 거둔 에멜드는 싸늘한 표정으로 책상 위에 무언가를 올렸다.


그는 그것을 보자 동공이 흔들렸다.


"허나, 어찌하여 사직을 하겠다고 하는 것이더냐?"


그는 황제가 이제 두려웠다. 정확하게는 자신이 알고 있던 '그 시절의 황녀' 가 아니였다.


수 많은 죽음의 고비를 넘은 그녀의 마음은 따스함과 자비가 없었으며, 하늘 그 자체가 되었다.


겉 모습은 동일했지만, 더 이상 자신이 지켜주던 존재가 아니였다.


더더욱, 아무리 반역무리라 할 지라도 같은 국민들이었다. 그들 중에는 그와 친하게 지낸 이들도 있었다.


그 모든 것을 다 저버리고 '황녀를 위해' 칼을 휘둘었던 그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았다.


그러기에 사직서를 낸 것이다.


"많이 지쳤는가?"


에멜드는 자비로운 미소를 보여주며, 그의 손을 붙잡았다. 부드러운 감촉과 함께 두려움이 느껴졌으나 그것을 거부 할 수 없다.


"....."


라고 생각했으나, 그의 생각과 달리 몸은 에멜드의 손길을 거부했다.


감히 자신의 손길을 내친 그의 행동에 에멜드는 괘씸함을 느꼈지만, 사랑하는 이였기에 참고 미소를 유지했다.


"....짐의 손길을 뿌리친다라..그대는 그것이 어떠한 의미인지 잘 알터인데..?"


"폐하! 송구하옵니다. 이 미천한 이가 죽음으로도 갚을 수 없는 큰 죄를.."


"괜찮다. 그대이니 용서 해 주도록 하겠다. 결론을 이어가겠다..이 사직서는 윤허 할 수 없다."


에멜드는 보란듯이 그의 앞에서 사직서를 불태웠다.


그는 고개를 숙였다. 이제 죽음 이외에는 황제의 곁을 떠날 수 없다.


하지만 황제는 죽음조차 윤허하지 않을 것 이다.


"그대는 언제까지나, 그 목숨이 다 하는 그 날까지 내 곁에 벗어 날 수 없다."


에멜드는 살짝 격양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대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내 곁을 벗어나지 않겠다 약속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내 곁을 벗어나겠다라...그것은 변절인 것이더냐? 그대 역시 반역무리와 한 뜻이던거이더냐?"


"그..그렇지 않습니다! 신은 언제나 황.."


"감히..감히....짐의 말을 끊고 큰 소리를 낸 것인가?"


에멜드는 상을 내리쳤다. 그는 그 순간 경직이 되었다. 만일 다른 이였으면 그 자리에서 목이 잘렸을 것 이다.


감히 황제의 윤허 없이 대답을 한 것과, 황제의 말을 끊은 것은 너무나도 큰 중죄였다.


하지만 에멜드는 그를 사랑했기에, 그를 굴복시키고자 철저하게 자신의 권력을 이용했다.


"만일 짐에게 벗어나고자 한다면, 그 두 다리를 자를 것 이다. 그리고..."


에멜드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띄우며, 자리에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그는 움직일 수 없었다. 거부할 수 없었다.


그저 자신이 앉은 자리에서 에멜드의 채취를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때처럼 나를 안아주지 않겠다면..그 두 팔을 자를 것이다."


그는 두 팔로 에멜드를 안아주고 있었다. 황제의 지고한 뜻이지만 그것과 달리 무언가..형용할 수 없는 기운이 자신을 조종했다.


"하아..따스하구나..그대의 품..난 이것이 너무나도 그리웠다..왜..나에게 벗어나려는 것이냐?"


에멜드는 황홀한 표정으로 그를 끌어안고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대어 그의 채취를 탐닉했다.


"후후..지금 짐에게 욕정을 품은 것 이더냐? 그대 역시 나를 사모하고 있었 던 것이구나..기쁘구나.."


곧 이어, 에멜드의 손길은 그의 사타구니로 향했다. 그는 결코 움직이지 못했다.


"감히 짐에게 욕정을 품다니..용서 할 수 없는 일이지만..오직 그대에게는 허락하도록 하지..하지만..나 이외 다른 이에게 이와 같은 짓을 저지른다면, 그대가 보는 앞에서 모든 것을 불 태울 것이다."


황제는 탐욕스러운 미소로 그의 얼굴을 두 손으로 붙잡으며 바라봤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그 어떠한 권력도 사용할 것 이다.


그녀는 지고한 자신의 권력으로 평생의 짝을 자신의 품에 감금했다.


그는 황제의 뜻을 거스르지 못한 채, 황제의 흐름에 몸을 맡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