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 말하자면, 나는 저것이 호감도인지 확신하지도 못한다.

평소와 다름없이 잠에서 깨어나, 가장 먼저 본 것은 식탁 앞, 아침 식사를 차린 채 내게 인사를 건네는 내 어머니.


"웬일로 깨우지도 않았는데 일어났데?"


그녀의 머리 위로 보이는, 작지만 큰. 검은 테두리에 새하얀 색을 띠는- 적당한 크기의 숫자.


'87'

"왜 그래?"


이내, 어머니는 자신의 머리 위쪽을 멍하니 바라보는 아들의 낌새를... 심상치 않게 여긴다.


"아니, 아무것도... 아직 잠이 좀 덜 깬 것 같아서..."


나는 약간 쉬어버린 목소리로 대답한 후 눈을, 비비적대었다.


"너 또 늦게 잤지?"


어머니는, 마땅치 못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타박하기 시작했다.

제아무리 수능이 끝난 고3이라곤 하나... 최근 들어 새벽까지 여가 생활을 즐기느라 잠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었다.

때문에, 아침마다 들을 수 있는 어머니의 잔소리는 이젠 나만의 알람이 된 지 오래다.

세상에, 자기 아들이 게임을 즐기느라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는 것을 용인할 부모는 없을테니. 제아무리 그가 자유를 만끽하는 신분이라 한들.


"아니... 그렇게 늦게 자진..."

"제발, 게임 하는 것도 좋고, 노는 것도 좋은데, 잠은 늦게 자지마. 너 아직 학교 가야 되는 거 몰라?"

"아니, 알아..."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없다는 말을 충실히 대변하듯, 어머니는 이내 한층 풀어진, 나를 걱정하는 듯한 표정과 함께 내 어깨를 두드렸다.


"수능 치느라 고생했고, 신나게 놀아도 되는데, 제발 건강은 챙기면서 놀자. 알았지?"

"응..."


사람과 대화를 할 땐, 서로 눈을 마주봐야 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나는 지금 미덕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봐야할까.

아니면, 지킬 수 없다고 봐야할까.

나를 걱정해주는 어머니의 따뜻한 한 마디 보다, 내 눈길을 끈 것은...


'89'


2가 추가된, 어머니 머리 위의 숫자였다.



***



'56'

'49'

'18... 쟤랑은 별로 말 섞어 본 적이 없었지.'


머리 위에 갑자기 숫자가 생겨났어!

이게 뭐지? 아, 혹시 거짓말을 한 횟수가 아닐까? 

아니야! 만약 정말 그렇다면 네 머리 위의 숫자가 이렇게 낮을 리가 없잖아!

아하! 앞으로 살아갈 날이 분명해! 그러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수명인거지!

뭐? 그럼, 너는 21살에 죽는다는... 거야?

자, 잠깐! 그건 싫어! 무효! 무효! 수명은 아닐거야!


까지- 일반적으로 여겨지는, 창작물의 클리셰...

이런 비현실적인 일이 주인공에게 닥쳤을때, 나는 딱히 그것을 빠르게 수용하거나, 그것의 정체에 대해 바로 눈치채는, 그러한 주인공을 본 적이 없었다.

대부분 헛다리를 짚으며, 실제 사실과는 다른 자신의 신념을 믿고 행동하기 일쑤이다. 흔히 말하는 착각물.

그것의 묘미는, 창작물 내의 등장인물들은 알지 못하는 사실을, 독자들은 알며 그들의 행동을 지켜 보는... 그런 재미.


아쉽게도, 세상이 만화나 소설이라면, 그리고 만일 이 전기적인 일을 다루는 소설의 주인공이 나라면...

아마 내 소설의 독자들은 내 소설에 대해 전혀 재미를 느끼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시작부터, 이 비현실적인 장치의 정체에 대해 알고 시작한다니.

그것을 중점으로 다루는 또다른 재미의 소설도 있다만... 그를 원치 않은 독자들에 한해서 말이다.


숫자의 정체를 알아차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의외로 현실에서 2D속에서나 보던 일이 펼쳐지자, 나는 놀랍도록 차분하고 냉정한 시각을 선보였다.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느끼는 호감의 정도.'


일례로, 아들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숫자는 90을 웃돌았다.

후에 만난 아버지의 숫자도, 어머니보단 못하다 한들 80대에 가까웠다.

...물론, 나를 지독히도 싫어하는 우리 집의 고릴라는... 어머니의 절반을 겨우 채울까 말까 했지만.


학교로 오는 길에, 수많은 사람들을 지나쳤다.

대체로 손에 들린 작은 직사각형에 얼굴을 파묻고, 나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

혹여 그들의 머리 위에도 숫자가 보일까 했으나, 아쉽다고 해야할지.

길거리를 지나쳐 가는 모르는 사람들의 머리 위엔, 숫자가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어떤 의미일지를 곰곰히 생각해본 결과... 나라는 존재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내게 느끼는 호감도 없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나를 모르는데 어떻게 나한테 호감을 느끼는 건지. 쉬운 문제였다.


"야, 우리 축구하러 나갈건데 같이 하실?"

"아니... 좀 피곤해서 자려고."

"오케이."


방금 나를 마주하고 지나간 남자아이의 머리 위엔...


'69'


부모님을 제외하고, 지금껏 만난 사람들 중 가장 높은 수치였다.

물론, 10년지기 부랄친구라면... 그 정도 수치는 적다고 해야할지, 많다고 해야할지.


"후우..."


거의 대부분의 남자아이들이 빠져 나간 교실 안엔, 나를 비롯해 조용한 아이 몇 명 뿐이 남아있었다.

수능 끝난 고3에게 인생의 절반을 지내온 비좁은 교실은, 당연히 벗어나고 싶은 공간일 터였으니...

평소대로라면 나 또한, 저 잔디밭에서 아이들과 함께 뜀박질을 하였을 터였으나... 하루아침에 나를 찾아온 비현실적인 일. 

...어머니의 잔소리대로, 새벽 3시즈음에 잠들어 버린 수면 내역.

그 모든 것이 맞물려 생긴, 지끈거리는 두통이 나를 교실에 붙잡아 두고 있었다.


'대체 왜 이런 일이 나한테...'


차라리 인생을 완전 뒤집어 버릴만한 일이었다면, 이렇게까지 멍하게 앉아있지만은 않았을 터였다.

앞으로의 남은 삶을 살아가는데 전혀 피해가 가지 않는다. 오히려, 이득이 된다면 이득이 된다.

하지만, 원인도, 대가도, 주모자도 모르는 일에, 마치 가만히 있다가 머리를 한 대 얻어 맞은 듯 이상하고 꿀꿀한 기분이 좀체 지워지지 않았다.


책상에 머리를 박고, 잠시 가만히 있었다.

이마를 눌러오는 통증에, 상하체는 그대로 둔 채, 고개만을 조금 들었을 때였다.


-방학식 전에 도서관 대출 서적 모두 반납하기


아파오는 머리에 움직이긴 싫었으나, 칠판에 적힌 문구를 보고도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시기, 생기부에 기록될 독서 점수를 챙기기 위해 손에 집히는 대로 빌렸던 학교 도서관의 책이 있었다.

연체를 한다고 해서 무언가 처벌이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빌린 책은 모두 목차만을 내게 선보였고, 그대로 사물함 어딘가에 처박혔다.


'곧 종례니까...'


아이들이 하교를 위해 바글대는 시간대에, 그들을 비집고 1층에 위치한 도서관까지 힘들이고 싶진 않았다.

결국, 내가 선택해야 하는 것은 한산한 시간대인 지금,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것 뿐이었다.



***




-탁탁탁


"네!! 네..."


책으로 도서위원의 책상을 몇 번 두드리자, 고개를 푹 숙인 채 내 인기척도 듣지 못한 듯한 도서위원이 허둥지둥 고개를 들었다.


"이거 반납."

"아, 아아...? 아! 응..."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바라 본 도서위원은, 눈에 띄게 당황하며 내가 책상에 내려 놓은 책을 자신 쪽으로 끌어 당겼다.


'후...'


머리를 한 번 쓸어넘기고, 코로 한숨을 한 번 내쉬었다.

혹자는, 내게 걱정이 너무 지나치고 할 수도 있다.


'딱히 뭔가 피해를 입은 것도 아니고, 오히려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초능력을 하루아침에 얻게 되었는데 무엇이 그리도 걱정인가?'


사실, 그 말이 아주 옳다.

물론 나는 아직 이 현상의 정체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

사실 이 능력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악마와 계약하여 얻은 능력이고, 그 대가로 영혼을 바쳤다거나...

뭐 그런, 보이지 않는 요소가 존재할 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요소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내가 이리 마음이 편치만은 않은 것에 대해 핑계를 댈 수 있었겠지만... 

아직, 그런 것이 진짜 있다고 밝혀지지도 않았다.


'...생각해보면 나한텐 실 없는, 오직 득 뿐만인 일 아니야...?'


그에 걸맞게,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머릿속의 생각도 점차 긍정적으로 변해가는 듯 했다.

정체 모를 능력을 갑작스레 얻게 되어 혼란스러운 것도 맞지만, 뭔가 원인이 될 만한 일을 내가 벌인 것도 아니고, 일단 내게 주어진 능력을 즐기는 것이 먼저가 아닌가.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나 또한 그렇고, 다만, 떠올리는 것이 조금 느렸을 뿐.


'일단, 능력에 대해 조금 더 알아 봐야 하겠지.'


조금 전엔 걱정과 혼란, 그리고 당황으로 점칠된 감정이었다면, 홀로 오랫동안 생각을 해 본 결과 어느정도 안정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걱정은 걱정이고, 일단 능력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 먼저 아닌가. 

걱정은 나중에 실컷해도 상관없다. 이미, 실컷 한 것 같긴 했어도.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비로소 마음이 조금 편해진 나는 한층 펴진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저... 채, 책..."

"어?"

"책... 아, 아니. 내가 갖다 놓아야 하는데..."


나는, 내 뒤에 선 채 나를 바라보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내가 생각을 정리할 동안 화장실이라도 다녀왔던 것인지, 도서관 입구 문 쪽에서 다가온 그녀였다.

검은 생머리로 눈썹과 눈을 가린 소녀. 

나는 그녀를 알고 있다.


'윤지민...'


학급의 부실장을 담당하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반 아이들의 이름은 모두 알고 있었다.

윤지민. 14번. 우리 반, 3반의 학생이었다.

학기 초부터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이라, 1년 동안 말을 섞어 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반의 부실장인 나조차도 그러한데, 다른 아이들은 어떠할 지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런 아이는, 약 12년 동안 학교생활을 하며 아주 흔하게 봐왔다. 

딱히 친한 친구도 없고, 있는 듯 없는 듯 반의 구석에서 생활하는 아이.

왕따 같은 것도 아니고, 그저 존재감이 없을 뿐한 아이. 


그런 아이였다. 윤지민은.


"...왜 그러는데?"

"아, 아니... 책..."


횡설수설하던 윤지민은, 이내 내게 건네려던 책을 도로 자신의 품 속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오늘 하루 내내 나를 괴롭히던 그 숫자들.

하루종일 그것에 대해 갖은 생각을 했다. 주위를 둘러보면 머리 위에 숫자가 없는 사람들이 없다시피했고, 그럴 때마다 나는 온갖 상념에 잠기곤 했다.


당연히, 그녀의 머리 위에도 숫자가 적혀있었다.


'72'


다만, 그 정도가 너무나도 기형적이었지만.


'...72?'


자그마치 10년이었다.

10년 동안 얼굴을 봐오며, 이 새끼 저 새끼 못하는 말이 없었고, 서로가 서로에 대해 너무도 많은 것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런 내 10년지기 부랄친구, 이성훈의 숫자가... 69였다.


기형적이라는 단어 선택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학기 내내 말을 제대로 섞지도 못했고, 얼굴을 제대로 본 적조차 없는 이 아이가.

...내게 느끼고 있는 호감의 정도는, 부모님의 숫자보다 조금 낮았을 뿐.


"그... 왜, 왜 그래...?"

"......"


나는 조금 벌어진 입을 닫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머리 위 숫자에서 시선을 내려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머리카락 틈새 사이로 보이는 윤지민의 눈동자는, 선명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윤... 윤지민?"

"어...? 어! 아, 어! 그... 어...!"


평범하게 이름을 불렀을 터인데, 그녀는 눈에 띄게 당황하며 자신을 몸을 가누지 못하는 듯, 양 팔을 허둥댔다.

더욱이 내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는 것과, 나를 더 소름 돋게 만든것은... 

그렇게 당황하면서도, 뚜렷하게 나를 응시하는, 그녀는 새까만 눈동자였다.

이젠 머리칼에 가려져있던 한 쪽 눈 마저도 삐져나와, 두 동공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아?"

"아흐... 그러니까, 응... 괘, 괜찮아. 난. 그... 걱정 해주는 거야?"


나는 곧, 내 두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75

78

79

81


그녀의 머리 위의 숫자는, 나와 말을 섞기 시작했을 때부터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하여... 이젠 거의, 부모님의 호감도에 가까워진 것이었다.

그만 잊고 있었던 것이 있었다. 호감도를 나타내는 숫자는, 그때그때 상승하거나 하락할 수도 있었다는 것을.


'뭐... 얘 뭐야? 뭐하는 애야...?'


급격하게 상승하기 시작한 그녀의 호감도는, 내 공포를 더욱이 유발하는 효과도 있었으나...

그와 더불어, 호기심 또한 함께 올라오기 시작했다.


'... 나 아직, 이 능력에 대해 잘 모르지...'


잠시 가만히 서서 생각을 정리하는 와중에도, 그녀의 숫자는 점점 더 상승하여, 이내 기어코 90대에 접어들었다.

그와 동시에, 눈에 띄게 늘어난 손가락과 몸을 꼼지락대는 횟수와, 귀에도 들릴 만큼 가빠진 그녀의 숨소리.

삐죽 삐져나와 있던 전과 달리,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한... 밤하늘 같은 색의 그녀의 두 눈동자.


이내 생각을 마친 나는, 그녀에게 몇 마디 말을 더 걸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1년 동안 같은 반이었는데도, 말 좀 섞지 못했었지."

"어, 어! 그, 그렇지...?"

"도서관 일은 혼자 하는거야?"

"그, 그게...! 곧, 종례 시간이라서 다들 교실로..."


딱, 100.

내가 목표로 점찍은 숫자는, 두 자릿 수의 끝. 세 자릿 수의 시작.

100을 바라보고 있었다.


'초능력이라니까... 뭔가 아무것도 없진 않겠지.'


마침 그러한 상황을 마주한 김에, 내가 보고자 하는 것은, '호감도가 100에 도달한다면 생기는 일.' 이었다.


'100에서 멈추려나...? 아니면, 그 이상도...?'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 정체에 대해 알 수 있게 되었다.


"비록 학교는 곧 졸업하지만... 그래도 지금이라도 친하게 지내자. 카톡 하지?"


조금 과한 감도 있었지만, 그녀가 나를 연모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난 뒤, 그것을 이용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었다.


100


곧, 머리 위의 숫자는 바뀌었다.


'...어?'


그리고 그와 동시에, 갑작스럽게 그녀의 머리 위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당황한 나를 마주한 것은, 머리카락이 흘러내려, 학기 처음으로 보게 된 그녀의 얼굴.

황홀함에 물든, 그래서 더 소름이 끼치는, 윤지민의 미소였다.


"...주원아."


❤ 


바뀐 숫자는 검붉은 하트가 되었으며,

하트에선 마치 피가 흘러내리듯, 하트의 색깔과 똑같은 색상의, 정체 모를 액체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우리, 잠깐, 대화 좀... 할까? 그,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아까보다 더욱 더 숨이 거칠어진 그녀가 나에게 다가오는 것과 동시에.

나는 곧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윤지민, 그녀는, 조금 전 화장실에 간 것이 아니었다.

도서관 문에서 들린 소리는, '끼익' 이 아닌,


'찰칵' 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