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굴지의 우마무스메들이 모여 교육받는 일본 트레이닝 센터 학원의 시설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놓여있는 기구들이나, 인테리어 수준을 보며 탄성을 뱉지 않을 수 없었지만, 미노루는 그런 것들을 영 탐탁찮게 바라보며 혀를 찼다. 


성능만 생각해서 가격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사비를 들이는 이사장의 행동이 낭비벽에 가깝다나. 그래도 이사장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한껏 온화해지는 것이 짜증을 부린다기보단 진심으로 이사장을 걱정해주는 것이겠지.


그 뒤엔 교직원 전용 기숙사에 배정받았다. 1층의 사감실 옆에 붙어있는 방을 배정받았는데, 다른 트레이너들은 어디서 지내냐고 묻자 모두 자취방을 구해 출퇴근하기에 실상 기숙사에서 지내고 있는 것은 이사장님과 미노루가 전부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듣게 되었다. 


실상 교직원 전용 기숙사라는 것도 피치 못할 사고로 트레센에서 지내야하는 인원을 위한 시설일 뿐, 너처럼 아무 대책도 없이 보따리를 싸들고 오는 멍청이는 없었다고.. 


월세가 너무 비싸던데, 월급의 절반을 내가면서 지내고 있는 거야?


라고 묻자 숱한 사립 학원 중에서도 제일로 꼽히는 트레센의 트레이너들이 아무 기반도 없는 가문의 인물들이겠냐며 코웃음쳤다. 그러니 지방에서 아무 연고도 없이 이사장의 특채로 채용된 널 향한 시선이 곱지 않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래도 그런 일이 있을 경우엔 이사장님이나 내게 말해. 출신지로 차별받는 것만큼 끔찍한 일이 없으니까."


스스로에게 말하고 있다는 듯한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그러고 보면 미노루도 나와 같은 홋카이도 출신이었지… 아무리 지방을 차별하는 기조가 줄고 있다 하더라도, 외부인이 한 집단에 받아들여지는 건 힘든 법이다.


"바보라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알려줬다 생각하는데, 물어볼 건 없어?"


여러 가지 궁금증이 있었다. 아무 말도 없이 훌쩍 중앙 트레센으로 전학을 가버렸던 일이나, 국제 G1을 노려볼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우마무스메였던 네가 왜 G1 레이스에 출전하지 않았냐. 하는 의문이라던가. 나는 고개를 저었다.


"사적으로 궁금했던 것도 괜찮아."


순간 혹했으나 다시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개인적인 일들이 엮여있을 텐데 꼬치꼬치 캐묻는 건 예의가 아니겠지. 이상한 걸 물어본다면서 꼬집힐 것을 무서워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흐응, 그래."


제 옆머리를 살짝 꼬아보이던 미노루는 미간을 좁히며 불만이 있다는 듯 내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꼬치꼬치 캐묻는 건 그러니, 하나만 물어볼게. 어릴 적만 해도 트레이너가 될 생각이 없다 했잖아?"


"그걸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던 거야?"


너무 오래된 일이라 언제였는 지는 기억이 안 난다. 어딘가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던 중 지루하다며 뭐라도 이야기해보라고 했던가. 국제 G1 레이스에 출주하는 우마무스메들을 이야기하면서, 언젠가는 국제 G1 레이스를 꼭 보러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진학조차 희미한 우리 집에서 국제 G1 레이스를 보는 방법은 TV 중계 뿐일거야. 라고 자조하며 웃었던가.


'그럼 네가 국제 G1 레이스에 출주하는 우마무스메의 트레이너가 되면 되는 거잖아? 아무리 지방 출신이더라도 그런 재능을 가진 우마무스메는 있을거야.'


사춘기를 보내던 시절 무슨 일이던 냉소하며 깎아내는 것이 멋이라고 믿었던 소위 '쿨찐'이었던 나는, 트레이너라니 어림도 없다. 나는 지방에서 소소하게 취미생활이나 하며 사는 독신 선생님이 꿈이다. 라고 답했었다..


"어떤 우마무스메가 전학 가고 시간이 지나니까, 트레이너라는 것도 해볼만 하지 싶더라고."


나는 치기 어린 중2병 시절을 회상해버린 부끄러움에 장난스레 답했다. 아무 말도 없이 전학 가버린 미노루에 대한 불만이 섞인 농담이기도 했는데, 말을 끝내고서 생각해보니 미노루 때문에 우마무스메 자체를 싫어했다는 이야기로 알아들을 수도 있을 것 같아 수습하고자 변명들을 주워섬겼다.


"아니, 너 때문이라는 건 아니고. 아무 말도 없이 전학을 가버렸잖아. 그 뒤로도 한참 시간이 지났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그랬던 건데."


"… 그래."


미노루는 내 말실수에 대한 별다른 제재 없이 등을 돌리더니, 그녀가 지내고 있는 2층으로 올라가버렸다.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자니, 층계 쪽에서 무미건조한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은 그대로 쉬어도 좋아. 네가 그렇게 좋아하던 오구리 캡의 훈련을 보러 가도 좋고. 외출하려면, 통금 시간이 있으니까 적어도 10시… 아니, 8시 전엔 학원 안으로 들어오도록 해."


쾅!


1층에서도 들릴 정도로 크게 들리는 문소리에 눈 앞에 없는 미노루의 눈치를 살피던 나는 배정받은 방으로 들어가 짐을 풀기 시작했다. 기숙사 방은 비상용이라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훌륭했다.




⏰




대화를 곱씹어보다 분노한 미노루가 찾아와 날 괴롭히는 불상사가 벌어질 수도 있기에, 기숙사에서 벗어나 내가 향한 곳은 이사장실이었다. 처음엔 타즈나와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라는 이야기로 떠보았는데, 응? 타즈나가 어릴 적이라면… 이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것으로 이사장님도 미노루가 우마무스메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경악! 특별 채용한 트레이너가 미노루와 알고 지내던 사이라니, 이 무슨 기구한 인연이!"


"미노루가 처음에 절 보며 놀라거나 장난을 친 것도, 단순히 어릴 적 소꿉… 친구는 아니고, 꼬봉 같은 느낌이라서 그런 거에요. 예전엔 저런 성격이 아니었어서."


"둔감! 이리 눈치가 없을 수가!"


"그건 이사장님이 미노루와 알고 지낸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렇다니까요."


나는 어릴 적 미노루의 극악무도한 행각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이사장님은 탄식! 이라는 문구가 적힌 부채를 펼치고선 남은 한 손으로 이마를 짚어보이며 어지럽다는 시늉을 해보였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제자리로 돌아오는 듯한 느낌에 나는 화제를 돌렸다.


"아무튼 몇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직접 물어볼 만한 질문은 아니라."


"음! 그녀에게 곤란한 질문이 아니라면."


"제가 알고 지내던 토키노 미노루란 우마무스메는 레이스에 출전조차 하지 못할 정도가 아니었어요. 당장이라도 G1의 우마무스메들과 달려도 1착 경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재능 넘치는 아이였으니까요. 그런데도 출주 기록조차 없이 트레센의 비서가 되어있는 건… 부상입니까?"


이사장님은 무슨 질문을 하냐는 듯 내 이야기를 듣다가. 아. 하는 소리를 내며 팔짱을 끼곤 고개를 주억였다.


"우문! 이 질문은 미노루에게 직접 답을 듣는 것이 옳다 생각하네!"


확실히 부상인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그 뒤로도 신입 연수 기간이라던가, 트레이너의 통금 시간에 대한 것을 물어보았지만 이사장님은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생소하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이사장님은 실제 업무에 대한 정보는 부족했던 모양이다…


허기사 상급자에게 실무를 물어서 제대로 된 답을 들을 확률이 얼마나 높겠는가. 나는 대접받은 녹차와 다과에 대한 찬사를 마지막으로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다.


"어릴 적 누구보다 가까이 하던 벗에게 이런 충고를 하는 것도 우습다는 생각이 들지만, 내가 보았던 미노루는 누구보다 여린 아이야. 함께 식사를 할 때면 늘 자신이 지내던 홋카이도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였지."


이사장님은 촌지! 라 적힌 부채를 펼쳐보이며 그녀의 책상 위에 있던 다과 상자와 찻잎 상자를 내 쪽으로 밀었다.


"레이스를 은퇴한 아이인 만큼, 우마무스메들을 도우며 여러 생각이 들 테지. 그 아이를 잘 부탁하네!"


한사코 선물들을 내게 안긴 이사장은 씩 웃음을 지어보였다. 미노루는 좋은 상사 밑에서 일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