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모르모트군. 마침 잘 왔네. 물어보고 싶은 게 생겨서 말이야.”


아그네스 타키온, 내가 담당하고 있는 우마무스메. 


‘가능성을 보고 싶다면 자네도 협력해 주게나.’


라는 말과 함께 시작되었던, 그리고 정체 모를 약품들을 들이키며 괴짜 과학에 어울려 주었던 나날들. 


그녀는 나를 컴퓨터가 놓여 있는 책상으로 끌고 가더니, 이내 화면을 가리키며 말을 이어 나갔다. 


“흥미로운 글을 읽어서 말이야. 그, 담당 트레이너와 우마뾰이를 했다는 내용이었는데 - 어라?”


“ㅁ, 뭐?”


타키온은 내 어깨를 한손으로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분주히 마우스를 움직이고 있었는데, 마우스 스크롤을 굴리던 그녀는 별안간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상하군. 분명 단기간에 많은 추천을 받아 흥미롭게 읽었던 내용인데 말이야. 없어졌군, 안타까워. 이래서야 나와 자네의 반응을 대조하는 방법을 시도할 수는 없지 않나.”


“아니, 뭘 읽었다고? 우마 - 뭐?”


“우마뾰이일세, 모르모트군. 혹시 귀에 이상이 생긴 건가? 청각이 예민해지는 약은 일주일 전에 만든 것이 있으니 그걸 가져다 주지.”


“아니, 청각이 문제가 아니야. 타키온. 그 글을 도대체 왜 읽은 건데?”


당황스러워하는 내 얼굴을 잠시 지긋이 바라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커피 메이커로 발걸음을 돌리는 그녀. 


발에 채이는 구겨진 이면지들과 다 쓴 펜들을 주워 쓰레기 봉투에 집어넣으며 그녀의 뒤를 따라가자, 내게 머그컵을 건네며 책상 쪽으로 고개짓을 하는 그녀가 눈에 들어왔다. 


엉망이 된 책상을 대충 손으로 밀어 치우며, 컵을 놓을 공간을 만든 그녀는 내게 컵을 건네 주고는 말을 이어 나갔다. 


“말했다시피, 단기간에 수많은 이용자들의 이목을 끄는 글이었기 때문이네, 모르모트군. 혹시나 모르지? 우마뾰이가 기록을 세우는 것에 도움을 준다는 주장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럴 리가 있나.”


“해보지도 않고 단정지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


그 말에 나는 입 안에 머금고 있던 뜨거운 커피를 홀라당 삼켜 버렸다.


“뭐 - 어흡?! 콜록, 콜록 콜록!”


“아, 그건 나중으로 미뤄 두고. 내가 자네를 부른 건 번식 행위를 위해서가 아니야. 안심해도 좋네. 부른 이유는 다름아닌 - 해당 글에서 반복되어 사용된 ‘사랑’ 이라는 단어에 대해서야.”


내게 냅킨 하나를 들어 건네는 그녀의 눈은 반짝거리고 있었다. 


탐구심이 발동할 때면 항상 그녀는 저런 눈을 하고는 한다. 


평소에는 죽은 눈으로 차분하게 뭐든지 넘겨버린다면, 흥미가 돋는 일에는 눈을 번뜩이며 파고드는 저 성격. 


…아마 그녀의 담당을 기꺼이 맡겠다고 한 내 결정에는, 그녀의 저 성격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해서, 나는 사랑이라는 것을 검색하고 탐구해 봤지만… 그러니까, 지금 설명하는 것은 가족이나 친구 간의 우정이나 가족애 같은 류가 아니네. 암컷과 수컷, 이 둘 사이에서 일어나는 교류에 의해 일어나는 뇌의 화학적 반응이자, 번식욕을 촉구하는 그런 류 - 라고 결론을 내렸네.”


“과학적으로 설명하자면 그쪽이 정답이겠지?”


“하지만 그것으로는 무언가 부족하지 않나? 그 글은 사랑을 특별하게 여기고 있는 것 같았고, 다른 이들도 그 감정에 대해 깊이 동조하고 공감하는 반응이었어. 단순한 건 아니란 말이지. 설령 그 존재가 눈 앞에 없어도, 그 상대가 내 상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데, 나는 그게 안 된다는 것이 의아하군.”


“안 된… 다고?”


“그 말이 맞네, 모르모트군. 나는 사랑을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네. 물론 나는 정상 범주에서 벗어난 개체이니 그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겠지만, 엄연히 번식욕은 느끼고 있는데 사랑을 못 느끼는 것은 이상하지 않나?”


또 다시 충격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그녀의 말에 마시고 있던 커피를 도로 컵에 뱉어내 버렸다. 


“모르모트군도 정상은 아니군 그래. 매번 당황하거나 놀랄 때마다 이상한 행동을 반복하는 것을 보니 말이야.”


“다, 다른 사람들도 이러거든?”


“그러기에는 보통 다들 하던 행동을 멈추거나, 목소리의 높이 정도를 높이거나, 평소보다 과장된 몸짓과 표현을 한다만은 - 자네는 언제나 액체류를 머금고 있을 때는 그것을 용기로 도로 뱉거나, 급하게 삼켜 기침이나 고통을 일으키더군. 그건 다른 사람들과 차별되는 점이 아닌가?”


저런건 또 언제 보고 있었을까. 


타키온이 마음에 드는 이유 중 또 다른 한가지. 바로 세심하다는 점. 


물론 마구간도 아니고 완전히 난장판인 그녀의 방을 본다면 어디가 세심하냐… 는 말이 나오는 것은 분명 당연한 일이지만, 그녀는 사람들의 특징을 잘 기억하고 분류한다. 특히 내 것을 많이, 다양하게 알아준다는 점은 나름 뿌듯하고 감사한 일이었다. 함께한 시간을 증명해주니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음료, 온도, 설탕의 양, 좋아하는 브랜드 등, 상당히 다양한 것들을 기억해 주고 있다. 자주 일정을 잊어먹거나 사람의 이름을 틀리게 기억하는 일이 생기는 그녀에게 있어서 저런 부분들을 기대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뭐어… 그렇게 말해주니 고마워. 그런데 그 사랑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아, 그게 말이야.”


탁, 하고 내 양 손을 붙잡은 그녀는 내게 담담하게 말해 왔다.


“나는 자네를 상대로 생각하고 있는데, 사랑이라는 것이 없으면 당연히도 자네가 응하려 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그게 무슨 - “


“아아, 걱정 말게. 이쪽은 아무런 경험이 없어. 그, 흔히 남성 쪽은 여성 쪽이 순결이라는 것을 지켰을 때 정복욕이 더 거세진다고들 하던데,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자네와 관계를 맺는 것에 아무런 거부감이 없으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충격적인 내용을 서슴없이 읊던 그녀의 모습에 나는 문득 이상한 거부감이 올라왔다. 


“자네는 훌륭한 번식 상대가 될 것임에 틀림없어. 그도 그럴 것이 남에게 호의를 잘 얻는 성격이고, 몸은 튼튼하고 건강하며 각종 약품에 노출되었음에도 그 회복력이 대단했지. 체력과 육체적 구조 면에서도 그 효율성이 뛰어나며… 외모 역시 평균 이상이라는 개인적인 평가를 내렸네.”


잡고 있던 따뜻하고 여린 손은 어느새 내게 이물감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그 글을 보고 자네와 우마뾰이를 언젠가 시도하게 된다면 말이야, 사랑이라는 것이 분명 필요하지는 않나 - 하는. 그런 생각이… 모르모트군?”


그녀의 단점은 이것이겠지. 


“타키온,”


탐구욕에서는, 사람들이 으레 가지고 있는 선이 없다는 것.


“그만해. 선을 넘었어.”


꽤나 경직된 목소리로 그녀에게 진중하게 이야기하자, 그녀는 잠시 눈을 크게 뜨고 한 바퀴 굴리더니,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아하하, 내가 또 선을 넘었군. 미안하네, ㅁ… 아니, 트레이너. 이 부분은 여전히 어렵군…”


머리를 살짝 긁적이다, 이내 내게 다시 말을 건네는 그녀.


“그러니까, 음… 그래도 내가 자네를 좋게 보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니까. 모르모트군? 부디 긍정적으로 검토해주기를 - “


“타키온, 아니… 으음…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까.”


그녀는 번식 상대로 나를 점찍어 두었다는 폭탄 발언을 내뱉었다. 


하지만 나는 맞선 상대가 있다. 얼마 전에 잡힌 일정이긴 해도 말이다.


때문에 단순한 호기심이었다면 넘어가려 했지만, 이건…


그래서 나는 사랑을 설명했다. 


나는 사랑을 가족이 아닌 타인을, 피가 한방울도 섞이지 않은 누군가를 아끼고 지키고 감싸며, 가족에게 그러듯 모든 관심과 행동을 그 사람을 중심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사랑이 아닌가 -


특히, 그것이 가족을 이룰 수 있는 남녀간의 사이라면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육체적 접촉이 성 관계 - 아마 말딸과 인간의 관계라면 우마뾰이일 것이며, 서로의 취약한 상태인 알몸을 의심 없이 공유하는 것에서 특별한 신뢰 관계가 생기는 것이 아니냐는 식으로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환하게 웃음짓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나는 자네를 사랑하고 있는 게로군?”


하지만 거절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일단 그녀를 그렇게 보지 않았으며, 내가 가지고 있는 감정은 동료애적인 부분이며…


“무엇보다 내일… 모레 즈음에 맞선 상대와의 만남이 있거든.”


그녀는 그 말을 듣고는 순식간에 얼굴이 굳어 버렸다.


살랑거리던 그 꼬리도 순간 풀썩 가라앉아 버렸고,


눈도 생기를 도로 잃어 버리고 말았다. 


“…그 맞선 상대와는 오랜 기간동안 만들어진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아니야, 비교적 최근 - “


“그럼 이쪽이 더 특별하군. 그녀는 자네의 취향에 맞는 암컷인가?”


“그게 무슨 - “


“운동 신경이 뛰어나고, 세심하며, 아름다운 육체를 가지고 있는가? 자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귀여운 외형을 가지고 있는가? 혹은 자네가 힘들때 의지할 수 있는 면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타키온?!”


“나는 알아. 자백제를 우연찮게 만들어 자네의 치부, 자네의 취향, 그리고 자네의 꿈도 모조리 알고 있는게 나야. 나는 분명 자네의 상대로 걸맞는 존재인데, 나를 놔두고 다른 인간 암컷을 - “


“타키온!”


“트레이너!!”


그토록 얌전하고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말투는 흉폭한 고함으로 바뀌었으며,


양쪽 팔을 흐늘거리며 내게 기대 오던 여린 몸은 앞에 놓인 책상을 반으로 쪼개 버렸다.


당황한 나를 잠시 숨을 고르며 바라보던 그녀는 이내 나를 노려보고는, 문쪽으로 시선을 한번 보냈다. 


굳게 닫힌 문, 그러나 얼마든지 내 손으로 열 수 있는 -


누가 뭐라 할 새도 없이, 총알같이 몸이 튕겨 나갔다.


그러나 말딸과 인간의 힘 차이는 압도적. 


쇠가 찌그러지는 소리와 함께, 문고리는 잠긴 채로 우그러져 버렸다. 


“허…”


저런 힘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그동안 내 앞에서 흐느적거렸다고?


“트레이너, 나는 독점욕이라는 것에 큰 관심이 없었다네. 트로피는 그저 내 결과에 대한 증명일 뿐이지, 그 이상의 가치는 없어. 그저 내가 발전한다는, 내가 가는 길이 옳다는, 내가 다른 이들보다 앞서 나간다는 증표로서의 가치를 지닐 뿐. 잃어버리든, 다른 누군가에게 양도하든 별 상관이 없어. 내 속도, 내 방법. 그것만 만인이 알게 된다면 그만인 거라는 거지.”


텁, 하고 팔이 붙잡히고 침대 쪽으로 몸이 나동그라진다. 


침대 위에 떨어진 그녀의 밤색 털이 뺨에 붙었다. 그녀 특유의 체취가 이불에 가득하다. 


“그런데 자네가 알려준 사랑? 그건 안 돼. 1착은 중요하지만, 여러번의 기회가 있지 않나. 자네만 있다면 연구를 계속할 수 있고, 우리가 건강하다면 얼마든지 노릴 수 있어. 그런데 사랑이라는 것의 1착은… 양보하면 안되는 물건이지 않나.”


부우욱, 하고 옷이 찢겨 나간다. 연구 가운이 땅바닥에 떨어진다.


“단순한 번식욕이 아니야, 모르모트군. 이건… 그래. 마킹일세.”


그녀의 눈이 가라앉는다. 더없이 탁한 색을 띄어 간다. 


하지만 분명히 번쩍이고 있다. 


그 눈에 내가 담긴다. 그리고 이내 그녀의 향기가 코를 메운다. 


“자네는 나만의 것이네. 내가 자네의 것이 되기로 결심한 것처럼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