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이사벨

검사 엘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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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최악의 남자죠, 살면서 그런 남자는 다시 못 볼 거에요."


따스한 햇살이 내려 쬐는 정원 아래에 인형 같이 아리따운 소녀가 외모에는 걸맞지 않는 야유를 퍼붓고 있었다.


"그럴사한 변명이라도 준비하면 모를까 말도 안되는 이유를 가져와서는 그런 짓을 하니 정이 생길레야 생길 수가 없죠."


화사하고 고운 금발이 바람에 스쳐 휘날린다, 유난히 밝은 날이라 그런지 양산 밑에 있어도 이마엔 이슬 같은 땀이 조금씩 맺혀 있었다.


"때로는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말 궁금하다니까요."


자신이 받은 질문에 성심성의 껏 답을 하는 모습이 자신은 현재 솔직한 본심을 말하는 것 이라고 말하는듯 보였다.


"성녀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구나..."


그리고 조금 아련한 어투로 그녀의 대답에 반응하며 옅은 미소를 지어주는 붉은 머리의 소녀


"검사 님도 저 같은 짓을 많이 당하셨지 않아요?"


"뭐 그렇긴 하지."


조금 심각해보이는 성녀와는 달리 검사는 유난히 여유로움을 내뿜으며 의자에 등을 맡겨 양 손으로 뒷 목을 바친다.


"그래서 엘리아 님? 오늘 무슨 일로 저의 저택에 찾아 오셨나요?"


쉴세 없이 말하느라 말라버린 목을 미지근한 홍차로 적셔내며 이번엔 자신의 의문을 살며시 전하는 성녀 이사벨


"으응~ 그냥 심심해서 말이지, 모두가 힘을 합쳐 마왕도 토벌하고 세상에 평화가 찾아오니 할게 없어서 말이야."


별 큰 뜻은 없었다는 것 마냥 자세 만큼이나 흐느적거리는 말투로 대충 대답한다.


"그래도 여러 전장에서 생사를 같이 오간 전우가 지금은 뭐할까 안부라도 전하면서 같이 다과회라도 열까 하는 마음에 찾아왔는데, 낭패 였을까?"


그런 검사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괜찮다는듯 흐뭇하게 웃는다.


"아니요? 오히려 저도 당신의 근황을 알고 이렇게 시간을 보내게 되서 좋아요."


조금 자유분방해보이는 엘리아와는 성녀라는 직책에 걸맞게 순간순간이 예의 범절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럼 다른 질문을 해볼게, 정확히 용사의 어떤 점이 싫은 거야?"


그러자 아까와 다소 비슷한 맥락으로 한번 더 질문을 던지는 검사


"음~"


검지 끝으로 턱을 찌르며 곰곰히 생각에 잠기는가 싶었지만 그녀가 생각을 정리하는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일단 성희롱이라 해야 겠네요, 좀 안전하다 싶으면 시도 때도 없이 불경스러운 행위를 일삼으니까요."


"아~ 맞아, 나도 의사와는 상관 없이 허벅지를 내준적이 있었지."


성녀가 내뱉는 말에 동기부여와 공감을 해주는듯 검사도 자신의 경험을 되살리며 기억 속에 남이 있는 파편을 떠올린다.


"맞아요! 한 두번도 아니고 매번 그러니 부끄러울 때가 많았다고요!"


그녀의 반응이 기름을 붓는 행위 였는지 더욱 발끈해지며 용사에 대한 비꼼을 이어간다.


"어쩔대는 가슴을 살짝 만질 때도 있고 어깨나 배 부근도 서슴 없이 만지고 다녔죠."


갈수록 점점 목소리가 올라가며 쥐고 있는 찻 잔에 담겨져 있는 홍차도 작은 물결을 일으킨다.


"그런데 이유는 이유대로 또 어이가 없어요! 나는 사실 다른 세상의 사람이라더니 자신이 귀환 하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호감을 사면 안된다느니...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변명으로 내세우면서 정말...!"


결국 원망이 극에 달했는지 테이블을 거세게 내려치며 평화로운 분위기를 깨는 거친 소리가 퍼지게 된다.


"우... 하지만..."


허나 끝 없는 혐오를 낼 것 같았던 분위기도 잠시 성녀의 어깨는 축 늘어지며 다소 여운과 아쉬움 서린 힘 없는 목소리가 되어버린다.


"그런 지크 님의 그런 미운 점도 있지만 마냥 싫지 만은 않아요..."


갑자기 침울한 분위기로 반전되면서 그의 장점을 언급해 간다.


"매번 칠칠 맞고 저희의 원한을 사는 행동만 일삼더라도 그가 지닌 덕목 자체는 누구와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하고 순하신수 분..."


"......"


엘리아는 어째서인지 아까부터 이사벨의 말을 그저 턱을 괴며 가만히 듣기만하는 엘리아


"자신 보단 남을 위하여 스스로를 혹사 시키시키시는 분... 다른 이들을 위하여 자신이 피를 흘리시고, 매번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서 저희를 항상 지지해주시는 분...."


이번엔 목소리가 갈수록 힘을 얻으며 점점 희망과 애정이 곁들어져 갔다.


"그런 지크 님이기에 저를 미소 짓게 해주셨죠. 분명 원망하고 싶은 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분의 도움이 있었기에 지금의 저가 존재 할 수 있어서 고마운 분이시기도 해요."


마치 추억을 회상하듯 눈을 지그시 감고 행복해보이는 미소를 짓는 이사벨


허나 그런 미소는 오래가지 못 했다.


"더군더나 요즘은 그런 짓도 안하시고 그리고 뭐랄까... 마치 이제 곧 영영 떠날 것 같은 분위기라서 한편으론 불안하기도 해요."


걱정스러운 말투로 고개를 떨구고 어깨는 늘어뜨리고는 잠시 괴로워 한다.


"하지만 과거의 죄는 절대로 잊을 수 없습니다! 지나간 과거지만 그런 점이 조금 불호에요!"


그래도 이내 자신의 대한 생각을 마치며 아무 말도 없이 자신의 생각을 끝 까지 들어준 엘리아에게 눈 빛을 던진다.


"흐음... 그렇구나... 그렇다는건 성녀는 지크를 호의적으로 생각하지 않다는 거지?"


이어졌던 침묵 끝에 드디어 다시 말을 꺼낸 검사 엘리아는 성녀 이사벨의 생각을 멋대로 단정지으며 밝게 웃어보인다.


"네? 그게 무슨 말씀 ㅡ"


"잘 됐다! 그렇다면 용사는 내가 가질게?!"


정말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처럼 해맑은 미소로 그녀에게 선고 한다.


"무슨소리시죠...? 지크 님을 가진다니요?"


허나 성녀는 검사와는 달리 급격하게 정색하며 안색을 어둡게 물들인다.


"말 그대로야, 사실 난 지크를 줄곧 좋아 했었는데 혹시 이사벨도 같은 감정이 있는가 싶어서~ 그런데 없는 것 같아서 다행이야!"


가면


마치 가면을 쓰고 춤추는 무용수 처럼

연기 처럼 다가오는 가식적인 미소를 유지한다.


"그게 뭔..."


"그야 요즘 이사벨이 지크한테 자주 접근해서 조금 걱정되었거든, 혹시 나와 같은 심정인가 싶었는데 말이야."


부당함에 항의하듯 눈섭을 찌푸리는 성녀를 무시한체 오로지 자신이 머금고 있는 미소와 분위기를 억지로 이어나간다.


"그래도 오늘 이야기 들은거 보면 큰 걱정은 없겠네! 성녀? 그렇다면 지크는 내가 가질 ㅡ"


"잠깐만요..."


허나 성녀는 어떻게든 이야기를 매듭지으려는 검사의 말을 끊으며 고요하고 서늘한 목소리로 그녀를 제지한다.


"이야기의 주제가 조금 많이 벗어난거 아닌가요?"


엘리아 꾸짖는듯한 이사벨의 말에도 불구하고 이상할 정도로 검사의 얼굴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게 무슨 소리일까~ 성녀가 싫어하는 남자를 자세히 설명했고 나는 그걸 토대로 안심하고 차지 하겠다는게 뭐가 이상하지?"


사악 ㅡ!


어느순간부터 가라 앉기 시작한 분위기, 분명 여름철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이 곳은 마치 한파가 몰아칠 것만 같이 서리낀 온도 였다.


"엘리아 님?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분명 엘리아 님도 지크 님에게 희롱 당한적이 있다고..."


여러 면에서 불리하게 작용하는 증거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허를 찔러보려고 한다.


하지만...


"내가 언제? 지크에게 만져지긴 했지만 싫다고는 안했잖아?"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변명, 돌아보면 엘리아의 말은 잘 못된 점이 없었다, 그녀는 희롱당했다 라고만 했을 뿐 그렇게 되서 용사가 싫다고는 절대 말하지 않았다...


까득


그 말에 무언가 으깨지는 소리가 어려풋하게 들려온다, 성녀는 지금 최대한 평상시의 표정을 유지하려고 노력 중이지만 흘러나오는 분위기는 통제 못하는지 원망의 대상이 바뀌어 버렸다.


"하..."


허나 그런 것도 잠시 희미하게 웃기 시작하는 성녀


"하하..."


대체 왜 웃는 것 일까...


"하하하...! 엘리아 님... 용사의 칼날이라는 이명과는 걸맞지 않게 입발림이 상당히 교묘하시네요~"


이내 그녀도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미소를 활짝 지으며 엘리아에게 야유를 보낸다.


"글쌔~ 난 딱히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닐텐데... 왜... 불만이라도 있어?"


그런 엘리아의 값싼 도발에 홀연히 넘어갔는지 미소는 그대로지만 더욱 거친 단어들이 줄을 이어간다.


"하하하, 네!당연한거 아닌가요  엘리아 님? 솔직히 말해서 역겹네요! 어렴풋이 물어보아서 증거를 날조 하시려는 그 행동이 보기만 해도 토가 나올 정도에요!"


정말 미소에는 걸맞지 않는 흉악한 말들, 그녀들은 지금 서로에게 웃어주고 있지만... 사실은 웃고 있는 것이 아니였다...


"그건 좀 말이 심한데? 기껏 찾아와 줬더니 그런말은 조금 상처야, 난 이만 가봐야 겠어."


결국 이사벨을 상대하다 지친 것 일까... 엘리아는 갑자기 이 곳을 떠나려고 한다.


하지만...


"기다리세요 엘리아 님."


성녀의 제지에 급하게 움직이려던 몸이 멈추게 되었다.


"그 마법은 지우고 가시죠?"


여전히 이어져 있는 맑은 미소 허나 그 내면에는 끝 없는 어둠이 서려 있었다.


"무슨 마법을 말하는 걸까~"


다소 부자연스러운 변명으로 넘어가보려는 했으나 순순히 눈감아줄 정도로 성녀는 어리석지 않았다.


"하하하, 제가 모를줄 알았나요? 아까부터 소리를 기록하고 간직하는 마법을 작동하고 계셨던거..."


왼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현현 할 수 없는 살기와 적대감이 이 곳에 감돌게 되며 서서히 소용돌이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신의 품에 감추고 있는 수갑... 드래곤 조차 절대 끊을 수 없다는 황금 사슬과 어떤 이성체든 발정하게 만드는 미약은 왜 가지고 계시죠? 대체 오늘 무슨 짓을 하시려고요?"

  

"......."

  

성녀가 약점을 찌르듯 파고들자 엘리아의 미소가 조금은 무너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엔 여전히 웃음이 가득했다.


"하핫! 사람을 함부로 들여다 보다니, 명색의 성녀 치고는 조금 악취미네?"


"하하하, 당신에게 들을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 그 사슬, 어디에 쓸건지나 당장 말하세요."


마치 심문하듯 냉철하게 깔린 목소리에 에리나는 나무라지 않고 가볍게 툭 내뱉는다.


"그냥 요즘 지크가 작별 인사라느니 영영 떠난다더니 심술 궃은 농담만 해서 조금 장난 칠려던거 뿐 인데."


무언가 순화해도 지나치게 순화한 것 같은 느낌은 왜 일까...


그 말을 마치고 다시 걸음을 옮기기 위해 지면에서 발을 때려는 그 순간... 


"꽤나 반가운 얼굴을 뵈서 좋았는데... 벌써 돌아가시려고요? 저와 좀 더 이야기를 나눠보는거 어때요?"


아직까지도 미소지으며 그녀에게 친절히 권유를 해오는 성녀 이사벨


쿵!


그리고는 청량하게 울리는 소리, 마치 심판을 시작하겠다는듯 성녀의 자팡이가 지면을 찍고 곱게 일어선다.


"저희는 지금 이야기 나눌게 많은 것 같은데요?"


신의 권능으로 수 많은 악을 정화 하고 역겨운 어둠을 물리친 지팡이에서 찰란한 빛을 내며 웅장한 괴음 내기 시작한다.


"흠..."


그런 성녀의 말에 검사는 처음으로 미소를 잠시 잃어버리더니 이내 눈동자에는 끝을 가늠 할 수 없는 공허함으로 채워져 갔다.


"성녀..."


철컥!


깔끔하게 칼집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깨끗하게 닦여진 날이 광택을 내며 모습을 드러낸다.


"하하... 이사벨... 난 너와 정말 오래갈 우정이라 생각했는데..."


몇 백번이고 몇 천번이고 적의 피로 수 없이 얼룩 졌었던 날에는 먹잇감을 노려보듯 성녀의 얼굴이 비춰졌다.


"우린 줄곧 잘 통했었지, 취미라던가 관심사... 공감할 수 있는게 참 많아서 너와는 평생 친하게 지낼 것 같았는데...


어둡고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 눈동자로 다시 옅은 미소를 짓으며 날을 어루만진다.


"내가 잘 못 생각하고 있었나봐?"


날카로운 검 끝이 성녀의 심장을 갈망한다, 다시 한번 빨간색으로 물들여길 바라는듯 날에는 계속 그녀의 얼굴이 비춰져 있었다.


"후훗... 저 역시 당신과 평생을 함께 할 소중한 사람이라 여길 줄 알았는데... 잘 못 생각하고 있었네요."


둘은 서로에게 주고 받는 미소, 하지만 그 분위기는 너무나 차갑고 고요했으며 서로의 눈에는 원망과 증오 섞인 공허가 날뛰고 있었다.


"깔끔하게 도려내 줄게."


"천벌 받으실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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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러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