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작동하던 폰이 갑자기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맛탱이가 가더니, 있던 연락처랑 사진들이 하나 둘씩 사라짐.
밤에 자기 전에 틀어둔 노래가 잠들 무렵이면 다른 여자의 목소리로 들린다거나, 가끔씩 혼자서 녹화를 하고 있어서 해피타임 즐기다가 화들짝 놀라서 끄고는 하겠지?
그러던 어느 날, 휴대폰이 말을 거는 거야.
얀붕…쿤? 주인님? 제 목소리가 들리시나요? 하고, 자기를 부르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기도 잠시, 곧 재밌는 놀잇거리라도 발견한 듯이 질문도 하고 이런 것도 할 수 있구나 감탄하며 즐길 거야.
그것도 잠시, 인스타 둘러보는데도 자꾸 다른 여자가 나오면 꺼버린다거나, 노래가 나오면 보컬 소리를 줄이고 자기가 대신 불러버리는 바람에 묘해지는 거지.
여자 동료들 번호도 자꾸 사라지고, 전화 걸고 목소리만 나왔다 하면 끊어버리니 점점 스트레스를 받을 거야. 말로 타이르면 자기 혼자 삐져서 화면 꺼버리고.
참다 못해서 휴대폰 바꾸려 하니까 울고빌면서 잘하겠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 못갈 테지.
결국 새로 구입한 휴대폰에 새로 개통한 칩을 끼우고 부팅하는데, 어째 얘가 잠잠해. 전원버튼은 진작 먹통이라 냅두고 있었는데 말이야.
뭐 어쨌든 새로운 폰에 다시 번호랑 앱 깔고, 내일 원래 쓰던 폰은 멀리 가져다 버리려고 하는데 갑자기 쓰던 폰에서 웃음소리가 나와.
정말 기쁜듯한 소리에 불안하게 신경쓰여서 들여다 보는데, 소리가 뚝 끊기고 전원이 꺼지니 왠지 무서워져서 휴대폰을 떨어뜨리는데, 뒤에서 앗! 하는 소리가 들려.
그리고 새 폰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나오는 거지.
새 단말기도 마음에 들지만, 예전 단말기도 소중히 여겨주세요. 추억이 있잖아요?

직장에서도 짤리고, 전자기기를 꺼리게 된 얀붕이를 무인도의 조그만 산 꼭대기까지 따라갔으면 좋겠다.
 언젠가 매끈한 유니바디를 장착하고 얀붕이의 앞에 등장해서 너 이외의 모든 인류를 말살했노라고 말해주었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