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는 말에 눈이 살짝 커졌다.

내가? 너랑?

왜?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쳐다보자 이세연이 우물쭈물 말했다.

 

“너 돈도 많아 보이고…… 그,그리고 귀엽다고 할까…… 멋있다고 해야 하나……. 암튼 싸가지 없는 것만 빼면 재밌을 것 같아. 뭔 말인지 알지?”

 

“…….”

 

이세연의 볼이 사과처럼 익었다.

무슨 말인지는 안다.

내가 마음에 든다는 뜻일테지.

내 겉모습만 보고 연상,연하 가릴 것 없이 호감을 표하는 건 익숙했다.

하지만 대부분 내 오만한 말투에 상처를 입거나 거리를 두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 고딩은 오히려 재밌다는 듯 내게 말을 걸고 있다.

신선했다.

잠깐이지만 어울려 줄까.

나도 남자인지라 예쁜 여자가 싫은 건 아니었다.

 

“좋아. 그래서 어디 갈건데?”

 

나는 간판 뒤에 다시 숨은 최서윤을 보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저리 가’

 

최서윤은 입에 머금은 사탕을 와그작 깨물고 더 멀리 떨어져 숨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세연이 나를 보며 말했다.

 

“뒤에 뭐 있어? 아,일단 노래방부터 갈래? 누나가 노래 좀 하는데. 후후.”

 

이세연이 자연스럽게 손을 잡자 그 부드러운 감촉에 소름이 돋았다.

황급히 손을 쳐냈다.

이세연이 당황하며 말했다.

 

“아. 몸 만지는 거 싫어하는 구나. 아까 어깨도 그랬지……. 미안.”

 

“알면 됐어.”

 

손이 잡히지 않는 애매한 거리를 유지하며 우리는 상가가 들어선 거리로 걸어갔다.

얼마 안 있어 지하실 계단이 보이는 건물로 이세연이 내려갔다.

세워진 간판에는 ‘코인 노래방’이란 문구가 적혀있다.

아래로 내려가 문을 열었다.

주위가 살짝 어둑하면서도 천장에 달린 조명빛이 주변을 밝혔다.

이세연이 도서관에 온 것처럼 내 귀에 소근거렸다.

 

“여기가 주변 코노 중에서 제일 싼 곳이야. 4곡에 천원이니깐. 누나 때문에 좋은 곳 알았지? 후후.”

 

쓸데 없는 정보를 한 귀로 흘리고 나는 구석진 방으로 들어갔다.

평일 낮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노래방 답지 않은 적막함이 공기에 흘렀다.

자연스럽게 지갑을 꺼내 충전을 하려는데 이세연이 막았다.

 

“누나가 놀자고 했으니깐 누나가 충전 할게.”

 

그러면서 치마 주머니에 손을 집어 넣어 천원 짜리를 꾸깃꾸깃 꺼낸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투입구에 지폐를 집어 넣었다.

아까 시계도 그렇고 손에 돈을 들고 있으면 덜덜 떠는 것 같았다.

집이 가난한가? 

말과 행동이 다른 점이 귀여웠다.

 

“훗.”

 

이세연이 고개를 돌았다.

 

“너도 웃을 줄 아는 구나. 웃으니깐 진짜…… 귀엽네.”

 

그 말에 얼굴이 금방 정색됐다.

이세연이 그런 내 얼굴을 보며 힛 하고 웃었다.

 

“쑥쓰러워하긴. 이렇게 이쁜 누나랑 노는데 얼굴 좀 피자. 아. 일단 나부터 부를게.”

 

이세연이 번호를 누르자 모니터 화면에 ‘사건의 지평선’이란 글자가 떠올랐다.

이세연이 몸을 일으키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굳이 날 보며 안 불러도 되는데 내 눈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그렇게 되니 괜시리 이세연의 입술에 집중이 됐다.

반주가 흘러나오고 이세연이 입을 벌렸다.

 

“생각이 많은건 말이야~ 당연히 해야 할 일이야~”

 

“…….”

 

발랄하고 미려한 목소리와는 별개로 노래 실력은 꽝이었다.

고음을 부르면 신나하면서도 숨이 차서 헐떡거리는 딱 그 수준.

한 줄로 말하자면 들어줄만 하지 않았다.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하아. 힘들다.”

 

이세연이 열창을 하며 흘린 땀을 닦았다.

내게 마이크를 내미는데 그것이 너무 불결해 나는 다른 마이크를 집었다.

이세연의 볼이 빵빵해졌다.

 

“깔끔한 척 하긴……. 어땠어?”

 

솔직하게 말했다.

 

“연습한 거 맞아?”

 

이세연의 볼이 더 빵빵해졌다.

입을 열자 쏘아붙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너 얼마나 잘 부르나 보자.”

 

“…….”

 

마이크를 지그시 내려보며 생각에 잠겼다.

엄마가 노래를 좋아했기 때문에 나는 어렸을 때부터 곧잘 따라 했었다.

엄마는 그런 나를 무척 귀여워해서 하루에 두 번은 늘 같이 노래를 불렀다. 

……소중한 추억이다.

엄마가 죽은 뒤로는 노래를 부른 적이 없다.

즐겁지도 않고 노래를 부를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리운 감각을 느끼며 엄마가 즐겨 부르던 노래를 찾아 눌렀다.

모니터에 ‘행복하지 말아요’란 자막이 떴다.

이세연이 깔깔 웃으며 말했다.

 

“그걸 부른다고? 엄청 어려운데 그거.”

 

나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어렸을 적 나를 무릎에 앉혀놓으며 엄마와 같이 노래하는 추억을 떠올렸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노래하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떠올려야 했다.

복잡한 감정이 치솟자 감정이 목소리에 담겨졌다.

 

-왜 이리도 이 세상엔 이별이 많은지…….

 

“…….”

 

이세연의 입이 점점 벌어졌다.

그러는 동시에 문 쪽에서 누군가 서성이는 소리가 들렸지만 노래 소리에 금방 묻혀버렸다.

음악이 클라이막스로 치닫고 고음이 울리자 이세연이 손으로 벌려진 입을 틀어막았다.

덜컹덜컹.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문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지만 이세연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감동적인 환희가 마음속 깊이 끊어올라 김시혁의 목소리에 정신이 매몰됐다.

잠시 후 반주가 끝나고 김시혁이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

 

가수가 부른 것 같은 노래 소리에 감정이 동요됐다.

자세히 보니 김시혁이 눈물을 흘리며 손으로 닦고 있었다.

안아주고 싶다.

그 감정이 마음속에 가득 차올라 이세연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때.

뒤에서 갑자기 문이 열리며 검은 정장을 입은 최서윤이 눈물을 흘리며 김시혁을 껴안았다.

이세연은 깜짝 놀라하면서도 왜인지 그 광경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주인님. 세화 언니를 보는 줄 알았어요. 정말. 흑흑흑…….

 

한세화.

우리 엄마의 이름이다.

나를 껴안고 있는 최서윤은 우리 엄마의 친동생같은 고용인이고.

근데 왜 너가 여기 있는 거야?

내 의문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최서윤이 당황하며 몸에서 황급히 떨어졌다.

 

”아니 그게 아니라…… 처음으로 노래방을 가시는 걸 보고 저도 모르게……. 하하하…….“

 

”나가.“

 

최서윤이 밥 달라는 강아지처럼 내게 시선을 매달렸다.

 

”다른 노래 한 곡만 더…….“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가 접근하지 말랬지? 포상 받기 싫어?“

 

”!“

 

최서윤이 주머니에 막대 사탕을 꺼내 황급히 입에 넣었다.

입을 열자 사탕이 위아래로 움직였다.

 

”죄,죄송해요……. 그럼 저는 이만…….“

 

최서윤이 내게 고개를 조아리고 멀뚱히 서있는 이세연에게 다가가 작게 속삭였다.

 

”건방 떨지마. 너.“

 

”히끅.“

 

이세연이 어깨를 움찔하며 최서윤이 문을 닫고 나간 자리를 멍하니 쳐다본다.

나는 짧게 한숨을 뱉고 가방을 맸다.

모든 게 귀찮아졌다.

이세연과 어울리는 게 아니었다.

노래를 부르고 울어버리다니…….

그 사건 이후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내 마음은 병들어 있고 약해 빠져있다..

이세연이 딸꾹질을 하며 말을 더듬었다.

 

”히끅. 누,누구야? 주,주인님은 히끅. 뭐고?“

 

”알 것 없어. 이제 됐지? 갈 거니깐 혼자 놀아.“

 

하지만 이세연이 뻔뻔한 여자라는 걸 잊고 있었다.

싫어하는 걸 알면서도 기어코 문을 향하는 내 손목을 붙잡으며 발걸음을 막았다.

내가 불쾌한 시선으로 이세연을 쳐다보자 황급히 손을 떼어내면서도 나와 문 사이를 몸으로 가로막았다.

얼마나 더 귀찮게 할려는 거지?

분노가 살그머니 목소리에 담겼다.

 

”뭐야?“

 

이세연이 울 듯이 말했다.

그러면서도 딸꾹질이 멈추지 않았다.

 

”히끅. 누나랑 더 놀자……. 히끅. 안되면 번호라도 알려줘. 히끅. 부탁이야…….“

 

”…….“

 

이세연은 문을 가로막고 비킬 기세가 보이지 않았다.

체격도 열네 살인 나보다 훨씬 컸고 육체운동은 내 특기가 아니었다.

최서윤을 불러야 하나. 경찰을 불러야 하나.

차라리 경찰을 부르는 게 나아보였다.

전자를 고르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가 있다.

분노를 삭히며 휴대폰을 꺼내 경찰을 부르려는데 이세연이 번호를 교환하는 줄 알고 웃으며 내 휴대폰을 뺏어들었다.

……진짜 열받네.

이세연이 내 휴대폰에 멋대로 자기 번호를 저장하고 전화를 걸어 번호를 확인했다.

웃으며 다시 휴대폰을 돌려주다가 일그러진 내 얼굴을 보며 몸을 흠칫거렸다.

 

”미,미안……. 히끅. 아 왜 자꾸 딸꾹질이야. 히끅. 일단 오늘은 비켜줄게. 히끅. 내일 또 놀자?“

 

이세연이 몸을 비키자 나는 문을 열고 나갔다.

더러운 것이 저장이 됐다.

휴대폰을 꺼내 저장된 번호를 지우고 차단하려는데 뒤에서 문이 열렸다.

 

”차단하기만 해봐! 히끅. 석명중 1학년 명찰 김시혁. 히끅. 찾아가서 대기 탈 거니깐.“

 

”…….“

 

……진지하게 최서윤을 부를까 고민을 했다.

왜 오늘 처음 본 사람한테 저렇게 집착하는 거지?

남자가 했으면 감옥 갈 말을 여자의 신분으로 마음대로 지껄인다.

그 말을 무시하고 차단을 누르려다가 손이 멈칫거렸다.

저 뻔뻔한 년이라면 정말 그럴 것 같았다.

지금은 그럴 기분이 들지 않아 등교거부를 하고 있는 것 뿐이지 어차피 학교는 다시 다녀야 한다.

안 그래도 이상한 소문이 나돌 텐데 괜한 관심을 더 끌고 싶지 않았다.

나는 뒤를 돌아 이세연을 한 번 째려보고 계단을 올라갔다.

거추장스러운 혹이 달린 것처럼 등에서 느껴지는 시선이 불편했다.

그 시선이 괜한 착각이길 마음속으로 빌었다.

 

 

 

****

 

 

 

노래방을 나오고 나는 구석진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차도 없고 어둡고 사람도 다니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말했다.

 

”최서윤. 이리 와.“

 

그 말에 복도를 울리는 발소리가 났다.

키 170이 넘는 장신의 여자가 중학생 남자에게 헐레벌떡 달려왔다.

그 꼴이 우습기 짝이 없다.

최서윤의 입에는 막대 사탕 두 개를 아그작 씹고 있었다.

아까 노래 때문에 벌써 한계가 온 건가…….

마음이 차가워지며 뱉기 싫은 말을 내뱉었다.

 

”포상 줄 테니깐 앉아.“

 

”네…….네…….“

 

최서윤이 막대 사탕을 뱉자 침을 질질 흘린다.

이건 사람이 아니라 개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서는 다음에 일어날 행동을 버틸 수가 없었다.

최서윤의 모습을 내려봤다.

눈이 번쩍 뜨이는 몸매과 각선미를 지닌 그녀는 검은 정장의 오피스 룩이 누구보다 잘 어울렸다. 

하지만 최서윤의 모습에는 이십대 중반에 어울리는 성인 여성의 여유같은 건 없었다. 

옷이 더러워지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듯 네 발로 기며 내 앞에 몸을 숙였다.

내가 한숨을 뱉고 말했다.

 

”자.“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내밀자 최서윤은 막대 사탕 삼킨 듯 입을 벌려 삼켰다.

최서윤이 몸이 덜덜 떨렸다.

 

”쭙쭙……. 하아…… 으흣. 즈이님……“

 

”후우…….“

 

김소연이 돈에 굴복했다면 최서윤은 한세화. 즉 우리 엄마에게 굴복됐다.

엄마가 죽고 난 후 그 대상이 나에게로 옮겨졌을 뿐이다.

하나뿐인 핏줄이라며 집착의 정도가 심해진게 골치 아프지만.

 

”내가 주인님이라고 부르지 말랬지?“

 

최서윤이 처음부터 주인님이라고 부른 것은 아니었다.

정신이 망가지진 않았을 때는 나를 시혁아 라고 불렀었다.

그런데 지금 이 꼴이다.

 

”츄릅……. 쭙쭙……. 으흣…….“

 

”……말을 말자.“

 

엄마가 죽고 난 후 정신이 이상해져 뭔가를 빨지 않고는 살 수 없게 되어버렸다.

평소에는 사탕으로 그것을 버티지만 집착의 당사자인 나를 핥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다나.

이 더러운 손에 뭐가 그렇게 단맛이 난다는 건지 이해할 수도 이해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손가락을 빠는 최서윤의 모습은 더럽게 추잡하고 아름답게 일그러졌다.

그 모습에 시선을 돌리고 하늘을 올려봤다.

하늘은 저렇게 맑고 청명한데 지상은 더러운 욕망을 내는 소리로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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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고해야 되는데 귀찮아서 그냥 올려봅니다. 

많이 안보는 것 같기도 하고 ㅋㅋ 내일 하던가 해야겠네요.

댓글,추천 달아주신분들 모두 감사드려요.

좋은 불금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