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 10분 이 시간까지 키보드로 타이핑을 하고 있는 나다.

 "아... 짜증 나. 증말."

 펜이나 종이 등의 잡화로 어질러진 책상 위에 조잡스러운 페인트로 꾸며진 미지근한 에너지음료를 빨대로 쪽쪽 마시며 업무를 보고 있다.

 이전에는 딱히 꼬투리 잡지도 않던 원청에서 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해달라 요구가 많아져 야근하는 일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특히, 오늘 같은 금요일이면 빠지지도 않고 여기에 있게 된다.

 "9월 11일 자로 요청하신 수정본 보내드립니다. 확인해 주시고 변경사항이 더 필요하시다면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딱딱하면서 내 기준에 예의 있는 언어로 꾸민 메시지를 보내고 음료 캔을 손에 쥔 체 의자에서 일어났다.  

 "설마, 다시 바꿔달라고는 안 하겠지."

 간지러운 귓가를 살살 긁으며 화면이 깜깜한 스마트폰에 무슨 답장이 올지 기다리고 있었다. 제발 부탁이다. 원하는 대로 변경했으니까 그대..

 띠링!

 어두웠던 디스플레이가 밝게 빛나면서 메시지가 왔다. 답변 하나만큼은 빠르네.

 "감사합니다. 빠르게 확인하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o^)↗"

 내 기준으로는 남자들이나 쓸법한 딱딱한 어투의 문자가 아닌 특수문자를 이용한 깜찍한 문자가 보였다. 오늘만큼은 저, '빠르게 확인하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라는 문구가 보이지 않길 굉장히 바랐는데, 오늘도 글러먹은 것 같다.

 이모티콘을 보며 보낸 사람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그려지고 있다. 

 키가 172 정도인 내 앞에 서면 고개를 살짝 아래로 내려야 보이는 키를 가졌고, 아나운서들이나 할법한 단발 C컬 펌이 어울리는 둥근 얼굴과 그와 비슷하게 동그랗고 큰 눈이 귀엽게 생긴 사람이다. 얼굴처럼 깜찍한 목소리와 체형으로 내 직장 동료들이 그 실물을 보았을 땐 업무 상대가 나라는 것을 많이 부러워하기도 하지만.

 문제는 야근하게 만드는 원인이라는 것 때문에 그런 쪽으론 생각 하나도 안 해보았다. 외모가 중요하겠나. 이렇게 치이면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고 해도 악감정 생긴다고.  

 "꼼짝없이 기다려야겠네."

 도로 내 책상 쪽으로 걸어가 의자에 앉아 등받이에 강하게 기댄다. 아, 오늘도 최소 10시 이후 퇴근이군. 음료 캔에 꽂혀있던 빨대를 입에 기대어 마시며 허여멀건 천장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고 나 혼자에 조용한 우리 집 컴퓨터에 비해서 유난히 시끄러운 바람 소리를 내는 회사 똥컴 녀석 정도.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동안 아무런 조작을 하지 않아 내 컴퓨터는 난잡한 쿨링팬 소리를 줄이고 주변의 고요함에 묻어가고 있었다.

 "30분."

 자동으로 절전 모드로 들어가는 시간은 30분으로 측정해둔 것이라 대략 몇 분 정도가 지났는지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럼, 지금 시간이 10시 40분쯤 되었을 것이라는 것이고 그렇다는 것은...

 "앞으로 10분 뒤면 문자 오겠네."

 이전과 같다면 아마도 그럴 확률이 굉장히 높다. 원청업체 사람 말하는 거다. 진 수영. 아까부터 수정 건으로 내 머릿속을 이리저리 뒤집어 놓는 사람의 이름이다. 

 버리기엔 아깝고 빨대로 마셔버리자니 소리를 크게 내야 해서 그렇게는 마시고 싶지 않던 터라 빨대를 빼버리고 입으로 마신다. 탄산도 빠지고 미지근해서 정말 더럽게도 맛이 없다. 아까워서 먹은 것이지만.

 띠링!

 책상 위에 올려둔 스마트폰에서 메시지가 왔을 때 나오는 알림음이 들렸다. 손을 뻗어 스마트폰을 잡고 메시지의 내용은 제쳐두고 보낸 사람의 이름과 현재 시간부터 확인했다.

 "거봐. 매번 이런다니까."

 스마트폰 디스플레이에 출력되고 있는 시간은 10시 50분. 그리고 보낸 사람의 이름도 진 수영. 스마트폰 홈 버튼에 내 엄지손가락을 올려 지문인식 시스템으로 잠금을 풀고 메시지를 보았다.

 "매번 늦게까지 남아 처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

 메시지를 보낸 사람의 행동이 그려지며 머릿속에서 당사자가 말해주는 것 마냥 말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래도 이렇게 답변 온 것을 보면 이쯤에서 퇴근해도 된다는 것이겠지.

 "제가 보내드린 것이 맞았다고 말씀해 주시니 다행입니다. 늦게까지 고생하셨습니다."

 메시지의 답장을 보내고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드디어 업무 끝인가. 컴퓨터를 조작해 전원을 끄고, 주변을 살짝 둘러보고 혹시나 다른 사람이 놓치고 간 것이 있는지 확인하고 전등 스위치를 내려 불을 끄고 회사 바깥으로 나왔다. 물론, 방범장치도 잘 해두고 나왔다.

 "후우. 이젠 금요일마다 11시 퇴근이 확정이네."

 깊게 한숨을 쉬고 문밖을 나와 팔목에 걸쳐두었던 양복 재킷을 입으며 터벅터벅 걸어갔다. 퇴근할 때는 번화가 쪽에 있는 승차할 수 있는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편이다. 그래야 편히 가기도 하고, 무엇보다 출근 시간도 아닌데 답답한 지하철은 타기 싫기도 하기 때문이다. 

 시끌벅적한 번화가 거리를 걷고 있었다. 주변에는 벌써부터 술에 취해 인사불성인 사람도 보이고, 조그마한 술집에서 커플들끼리 오붓하게 즐기는 모습도 보인다. 특히, 커플들이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보면 매우 기분이 좋다. 이런 말을 하면 너도 그래보아라라고 할 테지만, 딱히 그럴 사람도 없고 그러고 싶은 사람도 없다. 보는 쪽이 더 좋기도 하고.

 띠링!

 스마트폰을 주머니에서 꺼내 누가 보낸 메시지였는지 확인해보니... 수영 씨였다.

 "잠시 전화 통화 괜찮으신가요?"

 전화라고? 무슨 일 때문에 그런 거지? 

 "예."

 딱히 할 말도 없는지라, 단답으로 끊어버리고 내 쪽에서 전화를 먼저 걸었다.

 "크흠. 네. 여보세요."

 상대방도 목을 가누고 전화 통화에 임한다. 조금 전에 문자를 주고받으면서 생각했던 이미지 그대로의 귀여운 목소리. 그게 그녀다.

 "예. 안녕하세요. '유지프로'의 김 얀붕입니다. 실례를 무릅쓰고 어떤 급한 일이 있으신 것 같아서 제가 먼저 연락드렸습니다. 무슨 일이신가요?" 

 최대한 예의 바르게, 상대가 기분 나빠하지 않을 정도로 선을 그으면서 평상시보다 목소리 톤을 낮추면서 전화 통화를 하였다. 그냥 힘 풀고 말하다 보면 목이 쉽게 피로하기도 하고 약간 높은 톤의 말을 하는지라 내가 듣기에도 조금 싫어서이다.

 "아, 네... 실은... 요즘 들어 자꾸 번거롭게 해드린 것 때문에 너무 죄송해서 걱정되었거든요. 그것 때문에 전화드렸어요." 

 "괜찮습니다. 필요한 일이라서 요청하신 것이니 당연히 응해드리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힘들게 한 것 같아 죄송해서 식사라도 한 번 대접해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제가 봐둔 곳이 한 곳 있는데, 꼬치를 아주 맛있게 하는 곳이거든요. 같이 가시겠어요? "

 밥이라... 그건 좋지. 요즘 점심때 회사 직원들과 밥 먹을 때 빼곤 따로 누군가랑 먹었던 적이 거의 없었으니 바깥공기도 좀 마실 겸 좋겠군.

 맛있는 음식 생각에 나도 모르게 살짝 입꼬리가 올라가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회사 다니기 시작하면서 편의점 닭꼬치도 안 먹은 지 아주 오래되었는데 잘 된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에...

 "예. 아주 좋네요." 

 "이자카야라서 분위기도 좋아요. 그...... 시간 되시면 오늘이라도 좋아요!"

 기분 좋은 상상에 조금씩 올라가던 입꼬리가 갑자기 축 처지고 행복한 상상으로 풀려있던 눈에는 힘이 들어가며 내 정신이 머리에 위험신호를 보내 알맞은 답변을 찾아내고 있었다. 그것도 최대한 빠르게. 

 "아, 그렇군요. 오늘은 자택에 볼 일이 있어서 굉장히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음에 시간 될 때 뵙도록 하겠습니다." 

 어차피 오늘은 너무 늦었기에 거절하고 나중으로 약속을 잡을 생각이었지만, 술 약속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아... 네... 그럼, 다음에 시간 되는 때를 알려주시면 그때 꼭 같이 가고 싶어요."

 "예. 다음을 기약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쉬세요."

 "네! 주말 푹 쉬세요!"

 기분 나쁘지 않을 선에서 다음을 기약하는 식으로 거절을 하고 통화를 끝마쳤다. 

 삑!

 통화가 끝난 스마트폰을 그대로 쥔 체 능동 소음 제어 기능이 달린 무선 이어폰을 귀에 꽂아 음악을 들으면서 버스 정류장 쪽으로 걸어갔다.  

 대부분의 소음이 없어진 체 음악소리만 내 귀에 남겨둔 체로 그대로 쭉 걸어갔다. 다른 사람들이 듣기에 어르신들이나 들을 법한 구닥다리 팝송이나 듣는다고 애늙은이 같다 할 테지만, 난 이게 좋다. 어렸을 때부터 가요나 그런 쪽보단 어머니의 라디오 테이프에 나오는 이런 음악들을 듣고 자랐으니까.

 부드러운 기타 소리와 마음속까지 깊게 울려 퍼지는 보컬의 음색이 정말 대...

 콕콕!

 누군가가 기다란 것으로 내 어깨를 두드린다. 누구지? 무슨 일일까. 오늘따라 가만히 내버려 두질 않네. 

 이어폰 한 쪽을 빼며 뒤를 돌아보니 그곳에는...

 "오~ 야아안붕이~ 어디 가? 이제 퇴근이야?"

 나보다 조금 더 키가 큰 여성이 한 명 서있었다. 물론, 내가 누군지 알아보고 어깨를 두드린 것이니 나에게도 구면인 사람이다. 이름은 서 예진. 나이는 나와 동갑이고 내가 방금 전까지 일한 회사로 소개받고 들어가기 전에 있던 아르바이트하던 곳에서 같이 일했던 직장 동료들 중 한 명이다.

 이마를 머리카락으로 확실히 가린, 어깨까지 내려오는 검은 생머리. 쌍꺼풀이 진한 편이라 큰 눈을 가졌지만, 여우처럼 눈꼬리가 올라간 편이라 도도하고 카리스마 넘친다는 말을 자주 듣는 편이였다. 얼굴에 점이 많아 코에도 복점이 하나. 그리고, 보기 힘든 왼쪽 눈 아래에 조그마한 검은 점이 둘이나 있어 인상도 뚜렷한 편이다. 본인은 점이 눈물점이 두 개라 싫어하는 것 같지만.

 성형한 것처럼 코가 오뚝하고 나올 곳 나오고 들어갈 곳 들어간 마냥 몸매가 이쁘장해서 병원에서 살다 온 줄 알고 남들한테 오해도 많이 받는 자연 미인. 그게 얘의 인상이다.

 "응. 갑자기 수정해달라고 원청에서 요구한 것 때문에 회사에 좀 더 있었어."

 "으음... 그렇구나."

 내 기억 속에 있던 평상시의 얼굴에 비해 불그스름한 모습으로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내 말에 응답하는 예진이. 우리 둘 다 아무 말 없이 눈만 깜빡이며 상대방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건가. 

 "얀붕아."

 "응?"

 부드럽고 청아한 목소리의 그녀가 오른손을 쭉 내밀어 내 얼굴에 가져다 놓는다.

 "왜 이렇게 말랐어. 전에 봤을 때보다 얼굴이랑 목 차이가 더 심하네... 밥은 먹고, 다니는 거야?" 

 볼을 살며시 톡톡 건드리기도 하며 꼬집기도 하고, 손가락으로 광대를 스쳐 턱 선까지 쓸어내리기도 한다. 예전부터 아는 사람들한테 스스럼없이 스킨십을 하는 편이라 그러려니 하면서 받아주고 있었다. 대신, 이렇게 대놓고 하는 거면... 아무래도 술이 조금 들어간 듯싶다.

 "음. 뭐, 밥이야 먹고 싶을 때 먹는 거지. 맛있는 것이 생겼을 때나."

 어차피 어느 정도 안 먹고 일해도 일하는 것에는 지장도 없고 오히려 배불리 먹고 업무를 보면 나태해지거나 느려져서 더 불편할 뿐이다. 가볍게 먹고 팍팍 움직이는 게 더 좋고.

 "야. 너 그러다가 진짜 죽어. 누가 끼니를 그런 식으로 때워?"

 "내가."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는 그녀에겐 미안하지만, 난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살았거든.  

 "진~짜 신기하다. 어떻게 그렇게 먹고도 몸이 굴러 가?"

 "너도 나처럼 먹어볼래? 속에 있는 에너지 끌어다 쓰는 느낌이라서 편해. 텅텅 비어서 움직이는데 편하고."

 "정말 그렇게 살지 마. 그러다가 나중에 몸에 힘없어서 밥 안 먹으면 못 움직일 수도 있어."

 다른 누군가에게 식사때문에 걱정 된다는 말을 들으면 "이게 정말 좋지 않은 방법인 거구나" 하기는 해도 이런 방식으로 하지 않으면 일을 하게 될 때 효율 차이가 너무 커서 어쩔 수가 없었다. 나라고 내 몸 억지로 망가뜨려가며 하고 싶은 것은 절대로 아니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학력 낮은 내가 다른 사람들의 업무를 따라가기는 힘들기도 하니까 1분 1초라도 아끼고 싶은 마음이 크기도 하다.  

 "주의할게."

 걱정하지 말라는 말투로 대답하는 것이 전부다. 

 "언제 밥 한 번 먹자. 불안해서 안되겠어."

 "식사 정도야 시간만 잡히면 언제든 가능하지."

 "그럼, 이번 주 토요일 바로?"

 중지와 엄지손가락을 마주 보게 하고 팔목을 살며시 흔들며 눈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얘도 술 얘기였나. 술 좋아하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 같은데... 어쩔 수 없나.

 "너 혼자 마시고 내가 어울려 주는 것만으로도 괜찮다면, 어울려 줄 수는 있어."

 "아, 왜. 야아... 심심해서 어떻게 혼자 마시냐. 그런 게 어디 있냐. 오랜만이기도 하고 또 같은 알바 다녔던 친군데."

 "친구시면 이해해 주셔야죠. 나 장례식장 아니면 거의 안 마시는 거 너도 잘 알잖아.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 몸에 안 맞기도 해서."

 "그렇긴 해도... 오랜만인데..."

 뾰로통하게 입술을 내밀며 아쉬워하는 예진이에게는 미안하지만, 술은 너무 싫다. 아무리 반갑고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다 해도 그 자리에 술이 끼게 된다면 소름이 끼치고 자리를 뜨고 싶다.

 "뒤에 계신 분들이 기다리는 듯한데 안 가봐도 괜찮아? 굉장히 오래 기다리시는 것 같은데."

 "아!"

 예진이가 몸을 살짝 돌려 손바닥을 세우고 일행 쪽을 바라본다. 저쪽이 일행이 맞았던 거구나. 계속 보고 있었는데. 인사라도 하는 게 좋겠지.

 나는 그쪽 분들을 향해 눈을 감고 일행의 시간을 뺏은 것에 대한 미안함에 고개를 숙여 목례를 하였다. 그쪽에 계신 분들도 나에게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를 해주시는 것 같았다.

 얘도 바쁘고 그럴 테니, 이만 헤어지는 것이 좋겠지.

 "네게 일행 있으니까 다음에 만나기로 하자. 약속 잡고 다음에 만나면 되니까."

 "자, 잠깐만. 너. 번호 그대로야?"

 "나야, 번호는 그대로지. 연락 올 사람도 할 사람도 거의 없어서 바꿀 일이 거의 없어."

 머쓱 어깨를 움츠리며 말할 뿐. 업무와 아는 지인 몇 명, 가족 정도 아니면 없다고 봐도 되니까.

 "너 그 말 진짜지? 막, 누구 만나는 사람 있는 건 아니고?"

 "적어도, 아는 사람한텐 가능하면 거짓말 안 해. 지금이나 예나 만나는 사람도 없고." 

 "예나 지금이나 넌 그대로구나."

 그렇지.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으니까. 너도 예전처럼 내가 먼저 행동해야 움직이는 것처럼.

 "음. 버스 시간이 많이 위험하네. 다음에 보자. 다른 사람들이랑 재미있게 놀고. 꼭 연락할게."

 이렇게 억지로 하지 않으면 계속 대화만 하다가 날 셀 것만 같아 내 쪽에서 먼저 헤어지는 것을 택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 것 같았지만, 계속 이야기를 주고받다간 막차시간이 위험한 편이라 이렇게 해서라도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좀 뛰어야겠는데 오늘."

 스마트폰 어플을 통해 확인해보니, 마지막 버스 도착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재빠르게 가지 않으면 택시 타고 가야 하는 엄청난 손해를 겪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급하게 뛰어다녔다.


 부르릉~


 다행으로 막차를 타고 집 근처까지 도착하였다. 밤에 특히 더 나는 가축 변 냄새인지, 사료 공장 냄새인지의 구린내는 내가 집에 무사히 왔다는 것을 반겨주는 증거이기도 하였다. 

 아파트 입구를 통해 들어가는데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려있었다. 아무래도 누군가가 먼저 들어가 있는 듯싶다.

 "죄송합니다. 동승하겠습니다."

 급하게 뛰어가 문을 억지로 열기 위해 엘리베이터 셔터를 눌러 열리게 하고 재빠르게 탑승하였다.

 "......"

 그곳엔 아무 말씀 없이 가만히 나만 보고 계신 이웃집 분이 계셨다. 

 짙은 회색 바탕에 거미줄처럼 생긴 옅은 회색 장식이 있는 아주 긴 드레스 입고 계셨고, 유일하게 파인 가슴 부분을 가리기 위해 속에는 까만 니트를 입은 사람이다.

 평상시에 관리를 잘 안 하시는지 엉덩이 윗부분 척추 라인까지 내려오는 윤기 없는 치렁치렁한 머리와 창백한 피부, 그리고 아주 큰 눈이 다른 사람에겐 이쁘게 보일 수 있을 테지만 나에겐 오싹하게 느껴질 뿐이다.

 그 이유는, 이 분. 나랑 눈 마주칠 때는 눈을 안 감는 것 같아 보여서 나에게 화가 많이 난 것처럼 느껴진다. 이런 식으로 내가 엘리베이터를 탔던 적이 기분이 나쁠 법하다. 안 하고 싶긴 하지만, 집에 빠르게 들어가고 싶은 욕구가 컸기 때문에... 조금 예의 없는 행동을 했다. 

 "오, 올라가는 게 좋겠죠? 네?"

 "......"

 입술을 다문 체 무표정한 얼굴로 계속 쳐다보는 이웃분의 얼굴 보니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아 무안한 상황을 모면하고자 억지로 웃으면서 내가 살고 있는 층을 누른 후 버튼으로 문을 닫았다.

 한 번도 감지 않던 눈을 감으시며 그제서야 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셨다. 이웃분도 방금 타셨는지 층 버튼이 눌러져 있지 않았다. 예전부터 이런 식으로 자주 마주치기에 신기하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퇴근 시간이 비슷한 거였던 것이라고 생각하면 또 대수롭지도 않다.

 "......"

 쿵. 우웅.

 엘리베이터 펌프 소리와 숨 쉬는 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내부에 둘 만 있었다. 사람을 이런 식으로 보면 안 되지만, 이웃집 분처럼 전체적으로 볼륨감 있는 편을 많이 좋아하는 편이다. 다른 사람이 듣는다면 밝히는 변태 놈이라고 욕을 들을지도 모른다. 특히, 내 기준에 본능을 거부하기 힘든 저 가슴이... 아, 아니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야한 생각을 정리하고자 검지와 중지를 모아 미간을 두 번 툭툭 찔렀다. 옆집 분이 이 사실을 알았으면 얼마나 기분 나빴을까. 미안하게... 

 띠잉!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같이 문을 나와 각자의 집 앞으로 갔다.

 "주말 잘 보내세요."

 평일 마지막 인사를 보냈지만, 아무런 말씀 없이 전자 도어록에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셨다. 이전부터 인사나 다른 말씀을 드리려고 해도 말씀은 거의 안 하시고 그냥 들어가신다. 내가 싫으신 건지 아니면, 낯을 많이 가리시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예의상 인사하는데 답변이라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곤 한다. 바로 옆집이라 친해져서 나쁠 것은 없을 텐데...

 삑삑삑삑삑삑, 삐리릭!

 찰카닥

 먼저 손바닥으로 눌러 터치를 개방하고 암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다. 드디어 집이구나. 

 "아이구. 우리 못난이 꼴통! 또돌이! 깜씨!"

 "헥헥."

 3마리의 하얀 푸들이 빠르게 내 곁으로 다가왔다가 다른 곳으로 가는 식으로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그중에서 제일 어린 막내가 내게 가까이 오며 반긴다. 혼내는 것을 담당하는 내가 무서워 평상시엔 보기 만해도빨빨 거리며 멀리 도망가는 녀석이 일 끝나고 올 때면 제일 먼저 쏜살같이 뛰어들어 내 품으로 들어온다.

 "이럴 때만 좋아하네. 나쁜 녀석."

 안아준 체 손가락으로 몸을 긁어주다가 놔주면, 몇 번 자기 몸을 부비다가 휙 돌아서 엄마 방으로 돌아간다. 하긴 산책 자주 가주는 사람을 제일 좋아하겠지. 내가 돈 벌어오는 것으로 사료 먹는 것을 쟤가 어떻게 알아.

 "왔냐."

 열려 있던 방문에선 무협 드라마를 열심히 보고 계셨을 엄마가 나왔다. 보통의 아주머니들보다 많이 야리야리하고 키도 많이 작은. 살면서 고생을 굉장히 심하게 한 울 엄마다.

 "응. 오늘 형이랑 갔다 온 병원에서 뭐래?"

 "끊어졌단다. 포기하래."

 끊어졌다는 말을 듣고 입술을 콱 깨물고 말았다. 

 "원래 가망 없다고 했었어. 이제부터라도 나빠지지 않게 막기로 하자."

 "..."

 양쪽 어깨의 회전 근개 파열. 아니 정확하게는 따지자면 오른쪽은 끊어지기 직전, 왼쪽은 4곳 중 하나가 끊어졌다고 보면 된다. 수술해서 이어붙였다곤 해도 손상이 심해 근육이 거의 없었던 터라 도로 끊어졌다는 뜻이다. 

 대학병원에 계셨던 전문의께서도 사람이 이 지경까지 가려면 통증을 모르고 살 정도로 강한 진통제를 매일 매 순간 달고 살지 않으면 그랬을 거라고 하였다.

 그럴 수밖에, 술에 곯아떨어지거나 생활비도 제대로 못 보태주는 주제에 술 먹고 깽판 치는 아버지가 떠안긴 부담과 형과 나를 키우기 위해 다른 사람보다 많이 작고 약한 몸을 이끌며 일과 살림 그 둘을 동시에 하려면 그만큼 자기 자신의 시간도 아껴가며 억지로 움직이지 않는 한 불가능하니까.

 진통과 몸에 억지로 힘을 끌어내기 위해 정해진 투약 양을 무시해가면서 진통제와 신경안정제를 하루 허용치 이상을 복용했고, 그로 인해 모자란 양을 충당하기 위해 비급여로 또 타면서 한 달 타먹는 약도 비급여로 2회씩이나 매월 추가해가며 드시며 생활했던 울 엄마.

 그렇게 고생만 한 몸은 작았던 키는 허리 수술과 무릎 수술의 영향으로 키는 더 작아진 체 수술 자국과 상처투성이의 신체만이 남았다. 또 단순히 살이 없어서 마른 것이 아닌 대부분 근육이 없는 상태이기도 하고.

 "아무튼, 아까 입꼬리 엄청 올라가던데. 이쁜 애 만났냐?" 

 "응. 예전에 웨딩홀 아르바이트할 때 친구. 괜찮아 보이더라고."

 슬픈 화제로 이야기를 오래 끄는 것을 싫어하는 엄마이기에, 곧바로 다른 주제로 넘어간다.

 "누구길래?"

 "예진이."

 "걔가 그때 그... 이쁘장한 애인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엄마를 쳐다보았다. 의외인데? 

 "하! 그렇게 기억 하는거야? 엄마 눈에는 많이 이뻤는가 보네. 드라마에 나오는 연예인 봐도 그런 말씀 안 하시는 분이?"

 "야! 요즘 드라마 나오는 것들은 다 칼 대놓고 만든 얼굴이라 다 못생겼어. 그런 애들에 비하면 걔는 진짜 이쁘지. 나한테도 싹싹하고 인사도 잘했고 관리도 잘해서 몸매도 이쁘고 얼마나 이쁘냐."

 "칭찬이... 남다르시네. 어? 아주 직접 낳고 키운 딸처럼 자랑만 쭉쭉 나와요."

 수도 적은 인간관계 중 어느 한 친구를 침이 마르게 칭찬하는 엄마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꽃을 피우고 말았다. 약 기운이 있는 탓이지만, 드라마 이야기도 아닌, 가족 이야기도 아닌 타인에 대한 이야기로 말 많이 하는 것도 보기 힘드니까.

 "예진이는 잘 있더냐? 뭐 하든?"

 "안 물어봤어. 술도 들어갔고 일행이 있어서 시간 잡고 있기에 미안하기도 했고... 뭐, 사교성도 좋고 향상심도 큰 애니까 잘... 살고 있겠지. 그럴 거야. 아마도. 적어도 나보단 그럴 테지."

 "그래. 그렇구나."

 퇴근하게 되면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말하며 엄마랑 대화하는 것이 하루의 마지막을 담당하는 일이었다. 

 "형은?"

 "이제 잔다."

 굳게 닫힌 문은 아무런 소리 없이 조용하다. 아무래도 형도 집에서 재택근무에 애들 산책, 집 청소, 엄마 병수발들을 하다가 지쳐 쓰러지면서 잠을 잤을 터. 집안일이 아니어도 형도 요즘 주문이 많이 들어와서 매우 바빠 보이던데 어디 한 곳 아프진 않을지 걱정이 된다.

 내 키보다 높은 곳에 걸려있는 시계를 보고 12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야근 때문이라고 하여도 너무나 늦은 시간이었다. 

 "그렇구나. 근데, 지금 12시 넘었어. 왜 안 주무셔. 애들 데리고 방에 들어가."

 손가락으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엄마만을 멀뚱멀뚱 쳐다보는 꼴통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어휴. 그래. 잔다."

 "편히 주무세요."

 엄마가 방 안으로 들어가자 나머지 3마리들도 따라들어가는 것을 보고 큰 방문을 닫아 주었다. 시간 상으론 다음 날이 되었지만, 아직 뜬 눈으로 있던 상황이기에 잘 주무시라고 말씀드리고 그 뒤에 난 씻으러 화장실로 갔다.

 안경을 벗고 화장실 안 거울을 쳐다보니, 예전보다 커진 눈 밑과 입술 옆의 주름들이 보인다. 얼굴이 작은 편에 속하고,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동안 때문에 복권 사러 가면 신분증 달라고 하는 지금의 얼굴이지만 주름을 보면 또 현실 나이를 실감하게 된다.

 눈도 쳐져서 그런지, 오른쪽 눈의 쌍꺼풀도 두 겹으로 되어버리고 아침에 깎았던 수염도 밤이 되니 자라있고 아주 난리가 아니다.

 "언제 이렇게 된 거지. 기억도 안 나는데." 

 다시금 생각해보면, "두고 봐라! 이 더러운 세상아! 새치가 되었던 흰 머리카락이 되었건 생기기 전에 여자친구 사귄다!"라고 말하면서 다니던 때가 대략 15년 전 학교 다닐 때, 그렇게 말하던 때처럼 용왕매진하던 때의 나는 없고 그저 조용히 살아가길 원하는 겁쟁이가 되어버렸다.  

 "몰라 그런 거." 

 오래 생각해보았자 바뀌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잊으면서 살자. 피곤하기에 꼼꼼히 씻기에는 몸이 너무 피곤하여 세면, 발, 양치질 정도만 하고 화장실에서 나왔다. 창문에서 나오는 시원한 바람이 물 묻은 곳을 스치고 가는 차가움이 매우 상쾌했다. 역시 씻기 귀찮아도 해놓아서 나쁠 게 없다니까.

 청소를 자주 하지 않아 매캐한 아저씨 냄새가 나는 방 안으로 들어와 침대 위에 누워 찬바람으로 적셔진 시원한 이불로 몸을 가린다.

 눈을 감아도 잠이 안 와 바깥의 커플들이 했던 행동을 내가 알고 있는 이성으로 하나씩 상상해보았지만...

 "와아 아악! 역시 그 누구도 안 어울려. 쓰잘머리 없어. 으으."

 나와 비교하여 너무나도 아까운 상대방이 안쓰러워 머릿속의 쓸모없는 상상을 손으로 안개를 걷히듯 휙휙 치워버리고 내부의 찬기는 사라지고 내 신체의 온기로 따뜻해진 이불에 취하며 숙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눈을 살며시 감으며 매일매일 잠들기 전 하는 생각을 되새기며 숙면을 취하기로 하였다. 



 내 주변이던, 아니던,

 내가 싫어하는 사람일지라도.

 아픔 없이, 슬픔 없이,

 이번에 사귀어 풋풋하고 포근한 사랑을 나누는 새내기 커플처럼.

 오랫동안 사랑하여 인연의 끈이 강하고 다정한 잉꼬부부 같은 노부부처럼.

 나도, 내 가족도, 다른 사람도

 행복한 삶까지는 아니어도, 아픔과 슬픔만큼은 없었으면 좋겠다.

 지금의 나는 그것만 바란다. 


 오로지 그것만.

 제발 그것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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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는 이거랑 다음에 쓸 2 까지라고 생각 중.

1에 비해서 2는 짧을 거니 금방 나올거라고 생각함.

암튼, 쓰고 싶은 방향은 쭉 로~옹 테이크 같은 건 아니고

한 명씩 주인공과 인연의 끈이 굵직해지는 식으로 쓸 거임. 



쉽게 설명하면, 연애 시뮬레이션 마냥 이 사람과 조금 더 연관 되고 분기도 존재 할 수도 있다~

하는 것으로 짜는게 가장 큰 목표.

 


상상으로 해결 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면 여기 아랫글은 안 읽는게 좋음.








난 글을 쓰거나 어떠한 인물을 상상할 때 외형 중에 특히 얼굴이 안 잡히면 시작조차 못하는 편이라,

혹시나 내가 쓴 글을 보아도 캐릭터의 얼굴이 안 그려진다면 참고용으로

진 수영 = 너보다 키가 작고 아나운서들이 할법한 짧은 머리라고 생각하면 됨.

서 예진 = 하이힐 신었다고 쳐도 너보다 크다고 보면 됨. 

https://arca.live/b/tullius/1493441 (뒤에 사람 있나 꼭 확인하고 링크 이동.)

툴리우스 구경 갔다가 얼굴이 매우 이뻐서 쓰고 싶었음. 몸매 말고 얼굴 ㅇㅇ

세팅 잡은 아조씨한테 감사하다고 댓글 하나 올려드렸음.

만에 하나 기분나쁘고 싫다고 하시면 바로 수정해서 바꿀 생각 중.

옆집 사는 이웃 = 너와 키가 비슷한 포켓몬 오컬트 마니아(헥스 마니아)

???? = 나오긴 할 건데 아직 안 정함.


라고 생각하고 보면 윤곽이 좀 잡힐거임. 상상으로 캐릭터를 만드는 능력이 너무 딸려서 외형은 굉장히 많이 복사+붙여넣기 하는 편이라 이게 싫은 사람도 있을 수 있다보니 맘이 조금 걸림...


이쁜 글은 아니여도 끝만큼은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