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https://arca.live/b/yandere/7968453 


1편처럼 3편에는 3인칭 쓸거라 했었는데 그냥 스승제자 쓸 때처럼 하는 게 더 술술 잘나와서 그렇게 씀. 구린 필력은 언제나 미안.


 

 

 

 

 

 

 

 

 

 

 

경보도 울리지 않고 괴물이 나타난 지 두 달이 지난 지금, 당사자인 얀붕이에게는 여러 변화가 있었다.

 

일단, 첫 번째로 자신에 대한 불신, 의혹이 없어졌다.

부모님처럼 그 능력이 뛰어나지 않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 성과가 빛을 발하지 못한다. 

이런 내가 과연 영웅이 될 수 있을까? 라며 스스로에게 던지던 의문.

막상 직접 괴물과 부딪히면 무서워 벌벌 떨면서 도망치고,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것에 책임을 전가하지는 않을까 두려움.

그때 괴물을 향해 몸을 던지면서, 얀붕이는 그러한 부정적인 것들을 모두 떨쳐낼 수 있었다.

 

두 번째로는 지역에서 용감한 시민상을 받았다.

이게 뭐가 중요하냐고 할 수도 있는데, 영웅은 사람을 구하는 일. 그런 면에서 괴물에게서 몸을 바쳐 시민을 지키려 했다는 이 시민상은 차후 얀붕이가 영웅이 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수고하셨어요. 선배. 여기 이거라도 마시세요.”

 

영웅 관련한 전문적인 교육을 하는 학교에 재수하는, 친구 없는 얀붕이에게 후배가 생겼다.

그녀의 정체는 이전 괴물 사건에서 얀붕이가 구해낸, 그리고 영웅을 호출 해 얀붕이를 구한 여자애 얀순이였다.

 

“됐어. 나도 마실 거는 가지고 있으니…… 어?”

“왜 그러세요? 선배.”

 

왜냐고 물어오는 얀순이. 그에 얀붕이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파란색이 상징적인, 어렸을 때부터 좋아해 자주 마셔, 집에 박스로 구매를 해놓은 이온 음료.

분명, 오늘도 병에 담아와 가져왔을 텐데, 자리를 다시 살펴보니 어디로 갔는지 사라져 있다.

 

‘분명 여기다 뒀는데...’

“뭘 그렇게 생각을 오래 하세요. 자. 이거 드세요. 미지근해진 음료는 미련 버리시고.”

 

곧바로 손에 들린, 차가운 이슬이 맺힌 음료를 얀붕이의 목에 대는 얀순이.

온몸의 근육이란 근육, 신경이란 신경을 다 쓰는 훈련을 하고 난 뒤라 예민해져 있던 얀붕이는 당연히 갑작스러운 차가움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하. 뭐에요. 그게. 영웅 지망이라면서 그런 거에 놀라면 어떡해요.”

 

얀순이는 그런 얀붕이를 바라보며, 재밌다는 듯 활짝 웃었다.

얘가 나를 놀려 먹는 게 그리 재밌나. 하고 한 대 쥐어박을까 생각했지만, 병원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녀의 웃음이 헤프다는 것을 아는 얀붕이는 조용히 음료만 가져갔다.

 

“다음부턴, 갑자기 이렇게 차가운 거 갑자기 대지 마. 얼음을 목 뒤에다 넣어버리기 전에.”

 

“그렇게 여자를 상대로 특정 신체 부위 운운하는 발언은 조심하는 게 좋아요. 선배. 최근 말 잘못 했다고 이미지 완전 나락으로 떨어진 영웅 기사 안 보셨어요?”

 

“봤어. 왜 고소라도 하게?”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영웅은 세상 소식에 밝아야 한다고 말한 거 때문인지 뉴스나 신문을 정독하는 얀붕이.

당연히 얀순이가 말한 그 뉴스도 알고 있었기에 말에는 조심한다. 아니, 애초에 다른 사람들과는 대화를 잘 나누지도 않는다.

얀붕이의 주변에 사람은 잘 모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여럿이 있었지만 가장 큰 것은 부모님을 욕한, 일반인 동급생의 멱살을 잡고 폭행에 이르기까지 한 것.

 

물론, 이는 얀붕이에겐 억울할 뿐이었다.

애초에 그 동급생은 얀붕이가 맘에 안 들어 능력자란 점을 이용해 그의 인생에 흠집을 내려고 일부러 도발한 거였으니까.

그렇기에 얀붕이는 끊임없이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내 상황을 잊고 그 특별함을 이용한 건 잘못되었다.

하지만, 저 동급생이 내 자랑스러운 부모를 모욕한 것 또한 잘못되었다.

그리고, 그런 얀붕이의 항변에 세상은 얀붕이의 잘못만을 인정하였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여럿의 협력을 받아 이루어진, 계획. 그것에 충동적으로, 감정적으로, 대하는 얀붕이는 결코 이길 수가 없었다.

그의 부모님과 연결된, 영웅들이란 인맥이 있었지만, 오히려 그런 영웅들이기에 수세에 몰린 얀붕이를 도와줄 수 없었다.

얀붕이는 합의금이란 명목의 돈을 쥐어주며, 비열하게만 느껴지는 동급생의 웃음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리고 현재. 얀붕이는 영웅 지망생이라면서 화를 못 참아 일반인을 팬 분노 조절 장애로 사람들의 인식에 남았고, 얀붕이는 자연스레 고립되었다.

지역을 총관리하는 영웅의 딸인 얀순이가 그걸 모를 리 없다.

 

“제가 선배를 고소해서 뭐하게요. 그냥 조심하라고 한 말이죠.”

 

그런데도 자신한테 말을 저렇게 계속해서 걸어오는 이유가 뭘까.

그걸 얀붕이는 알 수 없었지만, 뭐가 되든 좋았다.

자신도 누군가를 구할 수 있는 영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너무나도 고마운 존재 얀순이.

그녀가 계속해서 말을 걸어오는 덕분에 얀붕이는 최근 고독함을 덜어낼 수 있었으니까.

 

“그럼 됐네. 나도 어차피 너 외의 다른 사람 하곤 말도 안 섞으니까. 신고당할 일은 없겠어.”

 

“……말을 조심하라는 거잖아요. 진짜. 그보다 운동 그만하고 정리하세요. 벌써 문 닫을 시간이니까.”

 

이상하게 느린 대답에 순간 뭔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던 얀붕이는 얀순이의 말에 급히 시계를 바라봤다.

9시 15분. 문 닫는 시간까지 15분 남아있었다.

 

“진짜네.”

 

“빨리 정리하세요.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벌써 옷도 갈아입고 나갈 준비를 전부 끝낸 얀순이는 밖으로 재빨리 나갔다.

얀붕이 또한 얀순이를 기다리게 하지 않기 위해 바쁘게 움직여 정리를 마치고 그 뒤를 따라 나갔다.

 

“뭐야, 왜 이렇게 빨리 나왔어요?”

 

“평소랑 똑같은데.”

 

“아니, 평소 선배는, 이것보다 느렸던 거 같은데...”

 

“……그나저나, 너 왜 자꾸 날 선배라고 불러? 안 그래도 괜찮다니까.”

 

“운동계 사람들은 선후배 관계에 되게 엄하다고 들어서요. 그리고, 저보다 한 살 나이가 많고 훈련장을 먼저 썼으니 선배는 선배잖아요. 아, 맞다!”

 

늘 하듯이 그녀를 집에 바래다주면서 나누는 대화 도중 뭔가가 떠오른 듯한 얀순이.

얀붕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녀는 자랑한다는 듯 손가락을 내밀었고, 그런 그녀의 손가락에 파박! 하고 작은 불씨가 생겼다.

능력자로서의 힘을 몸이 깨달은 뒤, 그녀에게 없던, 새로운 능력이 생긴 것이다.

 

“이번에 제가 능력이 하나 더 생겼거든요. 그래서 자세히 검사를 받으러 가려고 하는데 선배도 같이 가는 게 어때요?”

 

“내가 왜 거길 같이 가는지 물어봐도 될까?”

 

“선배 능력 되게 이상하잖아요. 어떨 땐 몸이 회복되고 어떨 땐 몸이 단단해진다니, 그런 어중간한 게 능력일 리가 없잖아요? 검사를 받아서 제대로 알아내자고요.”

 

“됐어. 검사에 드는 돈도 돈인데, 그걸 또 왜받아.”

 

“비용은 저희 엄마랑 아빠가 내줄 거예요. 안 그래도 선배한테는 매번 감사한다고 이야기하는 데 그거 하나 못 내주겠어요?”

 

“부담스러워. 그리고, 나 시험까지 2달밖에 안 남았어. 운동해야지.”

 

“시험은 결국 자기 어필이에요. 얼마나 가진 능력을 보여줄 수 있냐는. 그런데, 거기서까지 그 애매한 능력을 소개할 거예요?”

 

자꾸 빠져나가려고 하는 얀붕이와 논리적으로 반박하여 그를 차단하는 얀순이.

얀붕이가 자신의 능력이 형편없다는 것에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 그리고 그 능력이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아는 얀순이는 양보가 없었고, 결국 승자는 얀순이로 결정된다.

 

“만약 갔는데 똑같으면, 진짜...”

 

“네. 네. 똑같을 일 없으니까 걱정 붙들어 매세요. 그리고, 능력이 다를 경우 제 부탁 들어주는 것도 잊지 마시고요.”

 

“뭘 부탁하려고. 나 돈 그렇게 얼마 없어.”

 

“그냥 어디 놀러 가자는 거예요. 저희 엄마, 아빠가 훈련장 가는 거에 되게 엄격한데, 가장 착실한 선배가 기분전환 삼아 가자고 하면 설득할 만할 거 같거든요.”

 

그렇게 말하는 얀순이는 웃고 있었다.

순간, 얀붕이는 왜 그렇게 확신하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 미소가 너무나도 밝아서 어영부영 넘어갔다. 

 

 

 

 

 

 

***

 

 

 

 

 

“최근 누군가가 슬쩍 엿보는 느낌이 들더라고, 그래서 주변을 살펴보면 아무도 없고.”

 

“……정말요?”

 

“그래. 그러니까, 너도 조심해. 나야 뭐, 얼굴 삭막한 남정네니까 그냥 내 착각이겠지만, 너같이 예쁜 얼굴의 여자애는 다를 수 있잖아.”

 

당황했던 얼굴이 순간 들려오는 칭찬에 아까 전처럼 달아오르려 한다. 

아니야. 참아야 한다. 내 감정을 지금 과하게 드러냈다가는 그에게 안 좋다. 그런 생각과 함께 안 좋은 기억을 억지로 꺼내 꽃밭으로 변한 감정을 죽인다.

 

“그렇네요. 조심할게요.”

 

“응, 그럼 내일 훈련장…….”

 

“검사하러 간다고 하셨잖아요.”

 

“……그래. 알았어. 여기로 오면 되는 거지?”

 

“네. 그럼 안녕히 가세요.”

 

운동복 차림의 선배는 손을 흔들며 떠났다.

나는 곧바로 집 문을 박차고 열어 안으로 들어갔다. 부모님은 일이 바쁘기에 자리에 없다.

있어도 그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을 나는 곧바로 방 안에 들어가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몸이 깃털처럼 날아갈 거 같은 감각과 함께 눈을 다시 뜨자 보이는 것은 침대에 죽은 듯이 가지런히 누워있는 나.

아직 부모님도 선배에게도 밝히지 않은, 정신만 빠져나가 돌아다니면서, 육체적인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고마운 능력, 유체이탈이었다.

 

곧바로 허공을 가로질러 집을 나선 뒤, 찾는다. 아까까지 내가 놓치고 싶지 않던 사람. 그때 나를 구해준 사람. 거의 말라비틀어진 웃음을 억지로 만들어 내주는, 지금 이 감정, 사랑이 향하는 선배를.

 

찾았다.

 

내가 집에 들어가고 나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매번 그렇지만 내가 없어지고 나서야 근육통을 호소하는 게 참으로 화가 나는 선배.

그가 갑자기 고개를 홱 돌린다. 무슨 일일까? 하고 생각해보니, 아까 전 최근 누군가가 쳐다보는 느낌이 든다고 했었다.

이쁘다는 말을 듣고 감정을 억누르는 거만 생각하던 나는 곧바로 능력으로 드러내는 기운을 최대한 낮추었다.

그런데도 계속 뭔가 걸린다는 듯 주변을 살펴보는 선배. 그 뛰어난 감각을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상황에 당황스럽지만, 그와 동시에 이런 상황의 나도 찾아내는 그가 사랑스럽다.

 

이윽고, 집에 도착한 그가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간다. 당연히 나도 따라 들어갔다.

선배의 이후 일과는 별거 없다. 밀린 뉴스를 보며 세상 정사를 파악하고, 질리게 훈련을 했음에도 다시 훈련하다 근육통에 앓는 소리를 내고 샤워한 뒤 쓰러져 잠드는 것. 

처음 이 능력을 깨달았을 때는 이 잠든 선배를 바라보며 시간 가는 줄 몰라 밤을 넘겼지만, 지금 당장 할 일이 있던 나는 아쉬움과 함께 본래의 몸으로 돌아갔다.

 

밤 12시. 간단히 샤워를 마친 뒤, 인터넷 검색으로 편히 쉴 수 있는, 그러면서도 기억에 남을 법한 장소를 찾는다.

누가 보면, 아직 내기에 이기지도 않았는데 오바를 떤다고 하겠지만, 이미 내기는 내가 이겼다.

선배의 능력은 몸이 단단해지고 재생하는 능력이 아니라는 것을, 유체이탈로 수없이 그를 살펴본 나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기에 행복하게 놀러 갈 장소를 검색한다.

 

“아, 목말라.”

 

오랜 육체이탈 탓인지, 아니면 눈에 보이는 사진 속에 선배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때문인지 목이 말라온다.

손을 뻗어 병을 집는다. 오늘 선배가 찾고 있던, 그가 운동에 집중하는 순간, 슬쩍 또 다른 능력을 통해 방으로 이동을 시킨 두 번째 병이었다.

선배의 입이 맞닿았을 것에 자신의 입술을 포갠다. 그의 타액이 섞였을 음료를 목구멍으로 넘긴다.

하지만, 갈증은 더욱 심해진다. 몸속의 수분이 떨어져서가 아닌, 선배를 갈구하는 마음의 갈증이.

병 안의 음료를 비운 나는 한탄하듯 짜증 어린 목소리를 내뱉었다.

 

“……언제쯤 선배는 훌륭한 영웅이 되는 건데요.”

 

참으로 애석하게도 내가 사랑하는 선배는 영웅이 되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내 사랑은 오히려 발목을 붙잡을 것이다. 그렇기에 기다리겠다. 그가 훌륭한 영웅이 되는, 그 옆을 지키면서 이 사랑을 전달할 수 있을 때까지.

 

“어떻게 기다리냐고...”

 

하지만, 그러한 결심에도 불구하고 내 인내심은 고작 두 달 만에 바닥을 보였다.

자기도 무서움에서 떨면서 나를 구해준, 그 사건 이후로 이젠 나를 신경 써주는 부모님을 따위로 만들어버린 그에게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다.

그에게 안기고 싶다. 안겨서 내 사랑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사랑한다는 대답을 듣고 싶다.

이번에 놀러 가자는 내기도 이를 참지 못해서 이야기하고 말았다. 영웅이 되는 선배를 방해했다는 죄책감이 커야 했지만, 함께 놀러갈 장소를 검색할 때마다 내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잠이나 자자.”

 

놀러갈 장소를 찾는 등 해야 할 일을 마친 나는 잠들었다. 꾸는 꿈은 매우 행복했다. 훌륭한 영웅이 된 선배. 그 옆에 내가 있었다.

 

 

 

 


쓸 때는 나쁘지 않았는데 막상 보니가 또 달라서 얀붕이 말투랑 전개를 약간 수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