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はあー。。。』


소녀는 자신의 방, 다다미 위의 이불에 누운 채로 눈을 뜨며 하품을 했어. 이제 막 동쪽의 하늘에서는 태양이 떠오르며 하늘과 구름을 밝히고 있었어. 소녀의 방 안에도 조금씩 햇빛이 비쳐 들어오기 시작했지.


『一時間ぐらいしか寝て無いみたいだけど、もう朝だね。。』


소녀의 체감 상으로는 한 시간 정도밖에 잠을 청하지 않은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벌써 아침 해는 밝아 오고 있었어. 소녀는 어떻게든 피곤함을 억누르며 잠자리에서 일어났어.


『洋服、洋服ー。』


소녀는 주말에 외출할 때마다 입는, 자신의 흰 블라우스와 검은 치마, 그리고 리본이 달린 모자를 찾으며 벽장의 문을 열었어. 이내 벽장 안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양복과 속옷이 보였지. 


양복을 벽장에서 꺼낸 뒤, 소녀는 화장실로 향해 차가운 물을 받아 놓고 세수를 했어.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잠에서 완전히 깨어나지 않은 듯한 부유감은 완전히 사라져 있었지. 세수가 끝나자 소녀는 방으로 돌아와 잠옷으로 입는 분홍빛과 흰색 그라데이션을 한 색의 유카타를 벗어 정리한 뒤 속옷과 양복을 입었어.


『人々は、今頃は起きたろうかな。。』


도쿄의 사람들은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지 생각하며, 소녀는 화장대에 앉아 긴 흑발을 정돈하고 화장을 시작했어. 지금쯤이면 다들 일어났을까? 아니면 나보다 일찍 일어나서 가족들의 식사를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자신과 같아 보이는 나이대의, 귀한 도련님 같은 수려한 외모를 가진 그 사람을 떠올리며 소녀는 창 밖을 보았어.


『朝日がどっぷり昇って来た。』


이제 아침 해는 완전히 지평선 위로 떠올라 일본의 아침을 밝게 비추고 있었어. 오늘은 주말인 데다 아직 새 학기가 시작되지 않아서 학교도 쉬고 있었기에 소녀는 산책을 나가 보기로 했어.


『ううん、完璧だね。』


소녀는 거울 앞에 서 자신의 모습을 확인했어. 옷매무새는 흐트러짐 없이 깔끔했고 머리카락은 엉키지 않고 윤기가 흐르고 있었지. 소녀는 완벽하다고 중얼거리며 방을 나왔어.


『愛子御嬢様、何処へ行くんですか?』


자신의 방에서 나와 복도를 지나쳐, 계단을 내려 오고 현관에서 구두를 신던 중 하녀 한 명 - 분명 이름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았지만, 히라사와라는 어린 여자아이 - 이 소녀의 이름을 부르며, 어디에 가시냐고 말을 걸었어. 소녀의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가지 않는다면 자신이 혼날 것 같다고 걱정하는 듯했지.


『散歩に行って来るよ。遅く無いように帰って来るから心配しないで。』


소녀는 산책을 다녀 올 거라고 말한 뒤, 하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늦지 않게 돌아올 거라고 하며 흰 양산을 챙긴 후 집을 나왔어. 소녀는 자신의 피부가 햇볕에 타지 않도록 양산을 쓰고 걸음을 옮겼지.


『日本橋に行ってみようかな。』


니혼바시에 가 보자. 그 생각을 하며 소녀는 발걸음을 옮겼어. 소설이나 만화 같은 걸 읽어 보자. 메이지좌(明治座)에서 연극도 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시답잖은 혼잣말을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소녀는 세련된 양복을 입은, 모던 걸의 차림으로 거리를 걸어가고 있었어.



(bgm - 사랑은 바닷가에서(恋は海辺で) - 와타나베 미츠코(渡邊光子), 1920년대 후반) 


니혼바시의 번화가에는 여러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어. 하카마와 기모노를 입은 사람들이나, 소녀처럼 양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들과, 일본인으로 보이지 않는 색의 머리카락과 눈을 가진 외국인들과 도로를 달리는 검은 자동차들 같은 것이 보였지.


『何処に行こうかなー、先ずは書店に行ってみよう。』


소녀는 어디로 갈지 고민하며, 우선은 서점으로 가 보기로 했어. 니혼바시에서 가장 번화한 서점인, 아야사와(綾澤)으로 향하며 소녀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어.


『今日は迚も良い天気だね。』


더할 나위 없이 맑고 푸른 하늘과, 그 위로 떠오른 밝은 태양을 보며 소녀는 중얼거렸지. 참 좋은 날씨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소녀는 양산을 쓴 채로 거리를 걸어갔어.


『恋は海辺でふるものよー』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이름을 알지 못하는 유명한 여가수의 목소리가 나오는 유행가를 들으며 소녀는 흥얼거렸어. 방금 전의 노래를 부른 여자는 누구일까.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며 소녀는 계속해서 거리를 걸어 갔어. 


몇 번이고 노래를 들으며, 맑은 날씨를 만끽하며 소녀는 기분이 좋아져 살짝 미소 지었지. 어쩌면 쇼와(昭和)에서 제일가는 미녀는 마토이 아이코 - 円居 愛子 -, 소녀 자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소녀는 방금 전의 생각은 너무 자만했던 것 같다고 느꼈지만, 소녀는 상당히 뛰어난 외모를 가지고 있었어. 길고 찰랑거리는, 윤기가 넘치는 흑발을 가진 데다 깊은 호수 같이 검은 눈에는 약간의 붉은색이 돌았지. 피부는 곱고 하얀 색을 띄었고, 코와 눈, 입과 눈썹의 위치는 완벽하고도 아름다운 비율을 유지하고 있었어. 게다가 5척 2촌 6분 - 약 158센티미터 - 에 달하는, 일본의 여성으로서는 상당히 큰 키를 가지고 있었지.


『赤い薔薇ー 恋の花だね。』


거리를 지나가다 본 꽃집에서 붉은 장미를 팔고 있는 것을 소녀는 보았어. 하지만 집의 정원에도 붉은 장미는 있었기에 사려고 하지는 않았지. 분명 붉은 장미는 사랑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소녀는 떠올렸어. 연인들이 붉은 장미를 가득히 꽂은 꽃다발을 선물하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소녀는 조용히 눈을 감았어.


요즘처럼 따뜻한 봄의 날씨에, 벚꽃이 한가득 피어난 치도리가후치(千鳥ヶ淵)에서 배를 타는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며 밝게 웃고, 노를 젓던 남자가 여자에게 붉은 장미를 선물하며 청혼을 구하는 상상을 -






(bgm 2 - 고토의 예술, 요시무라 나나에(吉村七重). 스페이스 눌러서 이전 브금 끄고 이거 틀어 줘라.)





「誰かを愛した事の無い人が、愛を論じる資格が有る筈は無い。そうじゃない?」


소녀는 어떻게든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그 차가운 사실을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떠올려 버리자 즉시 망상을 중단하고 눈을 떴어.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름답고 로맨틱한 그 감각은 이제 완전히 사라지고, 소녀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어. 어떠한 감정도 느끼지 못한 채로 그저 숨만이 붙어 있는 무기력한 감각만이 소녀의 온 몸을 휘감고 있었지.


맞아. 누군가를 사랑하지도 못한 사람은 사랑을 논할 자격이 없어. 소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로, 약간 슬픈 듯한 감각을 느끼며 거리를 걸어 갔지. 소녀는 마치 자신이 활기찬 거리의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거리의 활발함을 즐기지 못하고 탁류처럼 휩쓸리는 듯한 감각을 느꼈어.

 

소녀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해 본 적이 없었어. 부모님에게 사랑을 받으며, 좋은 것을 먹고 좋은 옷을 입으며 고등학교까지 나온 소녀는 어째서인지 항상 마음 속이 비어 있는 듯한 감각을 느꼈어. 


아무리 부모가 자신에게 사랑한다고 말해도,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배가 부르게 먹어도, 아무리 비싸고 좋은 옷을 옷장에 한가득이 채워 넣어도 소녀는 부모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없었어. 선생님께 칭찬을 받아도, 언제나 친하게 지내던 누군가가 자신을 사랑해 달라고 말해도 사랑을 느끼지 못했지.


「如何して私の告白をこんなにも冷たく断れますか。貴女は氷のように冷血な女だ!」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아주 비정상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소녀가 인지한 것은 정확히 열다섯 살- 중학교 때였어. 소녀는 사이온지라는 남학생이 자신에게 사랑해 달라고 고백하는 것에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표정으로 고백을 거절한 직후, 남학생은 매우 큰 상처를 받은 것처럼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고백을 이렇게나 차갑게 거절하는 소녀에게 얼음처럼 냉혈한 여자라고 말한 뒤 그 자리를 달려 나갔어.


소녀는 남학생과 매우 친하게 지내긴 했지만, 그것은 순전히 그 남학생이 학생회의 사람이기에 친해져 두면 좋을 거라 생각해서 타인들처럼 밝게 웃으며, 감정을 흉내 내며 남학생과 친해졌지. 실제로는 느끼지 못하는 우정과 사랑을 연기하며 남학생과 관계를 이어 갔어. 그것이 잘못이라 생각하지도 않으며, 남학생이 고백을 하자 너무나도 당황스러워 연기를 하지 못한 채로 차갑게 고백을 거절해 버렸지.


하지만 남학생의 감정은 흉내가 아닌, 거짓 없는 진실된 감정이었기에 사람들은 친하게 지낸 주제에 차갑게 고백을 거절해 버린 소녀에게 비난을 쏟아 부었어.


「怖い。今まで全部演じだったんだ?」

「西園寺君もかわいそうだね。」

「本当、あんなに演じをして人を騙す人が嫌いだ。」


사람들은 지금까지 ‘연기’를 하던 소녀를 무서워하고, 완벽하게 ‘속아 넘어간’ 남학생을 불쌍히 여기며, 남을 ‘속인’ 소녀를 비난하기 시작했지. 그리고 괴롭힘은 조금씩 심해져 갔고, 마침내 소녀는 괴로움을 느끼게 되었어.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알지 못했고 사람들은 그것을 더욱 더 비난했지. 더욱 더 심해지는 괴롭힘에 도저히 버틸 수 없게 되어, 소녀는-


「私はー正常じゃ無い。」


소녀는 마침내 자신이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타인처럼 감정을 느끼려 시도해 보았지만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게 되었어. 소녀의 기준으로 남학생과 친해지기 위해, 자신을 위해서 한 행동은 나쁜 짓이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소녀는 자기 자신을 비난하기 시작했어.


「此の嘘つき。 如何してそんな風に君一人だけを考える事が出来るの?」


소녀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지 못했지만, 사람들의 비난을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자기 자신을 거울로 비추며 날 선 비난을 하기 시작했어. 자신을 거짓말쟁이에, 자신 하나밖에 생각할 줄 모르는 파렴치한 자라고 비난했지만-


「私は何も知らない。阿呆らしい、馬鹿らしい女だった。。。」


소녀는 그러고도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달을 수 없었어.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한 자신을 탓하며, 며칠 밤을 눈물로 지새울 뿐이었지.


「演じを、もっと完璧にしよう。愛をするように、誰かを大好きなように。。。」


어떻게든 이 괴롭힘과 지옥 같은 나날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소녀는 이제 진심으로 사랑을 하는 것처럼, 진심으로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처럼 연기했어. 고백을 받아도 당황하지 않고, 차갑지 않게 - 너무나도 당신을 사랑하지만 학업에 집중해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거절하는 것처럼 완벽하게, 언제나 항상 연기를 유지하며 살아 가게 되었어.



이제 괴롭힘을 받지 않게 되었지만 여전히 그 누구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없는 소녀는, 너무나도 맑은 날씨를 한 오늘을 연기하며 살아 가고 있었어. 진심으로 맑은 날씨를, 즐거운 오늘을 사랑하지 못한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