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얀데레 1화에 처음으로 이름이 언급되고, 바로 어제 올린 4화에서 풀네임이 나온 하타노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지금 글은 쓰고 싶은데 세부적인 전개가 완성되지 않아서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하려고 함. 다음 화가 올라올 때까지 이걸 보면서 기다려 줬으면 좋겠다.


1. 간단한 정보.


하타노 요시하루(秦野吉春、はたのよしはる), 다이쇼 9년(1920년) 3월 13일 생이다. 교토에서 태어났고 도쿄로 온 건 17세 때. 도쿄로 오고 처음 1년간 제국중학교에 다니다가,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 이사를 간 이유는 스포일러라 말할 수 없음.


2. 이름에 대해서.


성씨인 하타노(秦野)의 하타(秦)는, 중국의 진(秦)나라의 국호와 한자가 같다. 실제로 일본에 있는 하타(秦)씨는 중국에서 일본으로 넘어온 도래인들, 진나라 황족 자손들의 성씨라고 함. 진나라의 황족처럼 많은 부를 바탕으로 조선에서 일본으로 넘어온(=도래)한 것은 같지만, 하타노처럼 일본인이 될 수 없는 얀붕이의 상황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이 성씨를 채용했다.


이름인 요시하루(吉春)의 하루(春)는, 문자 그대로 봄을 의미한다. 실제로 하타노는 봄이 생일이기도 하고 얀붕이의 이름인 케이나츠(景夏)의 마지막 글자는 여름이기에 작품의 전개를 대입해 봄이 끝나고(=하타노가 집을 떠나고) 여름이 찾아왔다(=얀붕이가 일본에 유학을 옴)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음. 이는 동시에 얀순이와 얀붕이의 일생이 계절이 바뀌듯이 한순간에 변화를 맞이했다고도 볼 수 있고.


3. 하타노 가(家)


하타노 가는 얀순이가 들은 소문대로, 교토를 고향으로 하는 대부호 가문이다. 자세한 가문의 유래는 알 방법이 없다고 하며, 일본의 4대 본성 귀족인 후지와라씨의 분가 중 하나라는 것만이 전해지고 있다. 가문 대대로 상속받은 막대한 재산을 쥐고 있었지만 하타노 씨가 속한 후지와라씨의 슈고류(秀郷流)* 분파는 다른 분파들보다 힘이 약했기에 교토 조정의 청화가(清華家)**에 들어갈 수 없었다. 정치에는 영향력을 크게 행사하지 못했지만 강력한 부를 바탕으로 하타노 가문은 시대가 흐를 때마다 세를 조금씩 불려 나갔다. 메이지 유신 이후에 창설된 화족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교토와 교토 근방의 지역에서는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4. 외모


나름대로 평범하게 생겼지만 딱히 못생긴 건 아니고, 어느 정도 귀티가 흐르는 고급스러운 도련님의 이미지이다. 실제로 부잣집에서 자라났기도 하고. 얀순이는 하타노의 외모에 딱히 관심이 없었기에 잘 알지 못하지만, 살짝 날카롭고 지적인 이미지의 사람이다. 녹차나 보리차 같은 차 종류를 좋아한다.


5. 얀순이(마토이 아이코)와의 관계


본편에도 서술했듯이 하타노는 얀순이와 친하게 지내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외지에서 와서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기에 친절하게 보이는 얀순이와 친구 정도로 사귀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고 얀순이의 생각대로 그 이상은 갈 생각이 없었다. 실제로 자신의 부만을 보고 가깝지도 않으면서 친한 사람이 되려고 하는 여자들에게 염증을 느껴 평소에도 사람들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경향이 있다. 이사를 간 후로는 지금은 서로에 대해 관심이 완전히 끊겨 아무런 연락도 하고 지내지 않고 있다.


6. 성격


깔끔한 것을 좋아해서 평소에도 청소를 자주 한다. 독서나 서예처럼 높은 지조를 요구하는, 높은 사람들이 즐기는 여가 활동을 많이 한다. 그 외에는 딱히 말할 건 없고 주변 사람들에게 친절한 편이다. 공공 시설을 이용할 때에도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깔끔하게 사용한다.


7. 얀붕이에게 줬던 편지


1화에 얀붕이가 신발장 위에 놓인 편지를 읽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로 이건 하타노가 집을 나가기 전에 직접 써서 신발장 위에 올려 둔 것이다. 다음에 이사를 올 사람이 얀붕이라는 사실은 몰랐고, 그저 친절을 베푸는 의미에서 정성스럽게 펜으로 종이 위에 깔끔한 글씨체로 써 두었다. 얀붕이가 조선인이라는 걸 알았다면 어땠을지는 또 모르지만.


* 후지와라씨 북가, 헤이안 시대의 인물인 후지와라노 히데사토(藤原秀郷、891(혹은 미상)~958(혹은 991))를 시조로 하는 후지와라씨의 분파. 후지와라노 히데사토는 타이라노 마사카도가 939년에 일으킨 텐교의 난을 진압하여 공을 세웠다. 이 때 히데사토는 우츠노미야 후타라 산 신사에서 내린 영검을 가지고 출정하였다는 일설이 있다.


**천황을 모시는 조정의 귀족을 칭하는 공가(公家)에서 가장 높은 고셋케(五摂家) 다음의 지위를 가진 가문들을 칭하는 말. 초기에는 태정대신과 황후 자리를 차지했으나 시간이 지난 뒤 에도 시대에는 영향력이 줄어들어 좌대신까지로 권력이 제한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