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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응급구호시설에 손님이 찾아왔으나, 오웬이 부른 적 없는 손님들이었다. 병에 걸렸다거나, 부상을 입었다기에는 너무 활력이 넘치고 건장한 청년들이었다. 저들끼리 모여서 북부 지역 말로 웃고 떠드는 모습은 환자, 보호자, 직원 그 어느 쪽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그들은 병원 한 구석에서 묵묵히 대걸레질을 하고 있던 동양인 청소부를 발견하자 손가락질을 하며 무어라 씨부리더니 다 같이 폭소를 터뜨렸다. 북부 지역 말을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그 노골적인 손동작과 어조 때문에 조롱과 멸시라는 걸 모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동양인 청소부는 반응하지 않고 맡은 일을 계속했다.


"그쯤해두십시다, 젊은이들."


보다 못한 오웬이 나섰다. 어차피 운영중이지도 않은 시설이니 그냥 비를 피해 갈 수 있도록 열어둔 휴게실이라 치고 내버려뒀는데, 직원을 향해 무례한 언사를 했으니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어차피 영업도 안 하니 영업방해라 말하기도 뭣해서 지금껏 소란을 피우셔도 넘어가 드렸습니다만, 이런 식이라면 퇴거를 요청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웬의 말을 들은 북부 청년들은 말없이 자기들끼리 시선과 표정을 주고받더니, 오웬에게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병원 밖으로 나갔다. 표정도 몸짓도 빈말로라도 예의를 갖췄다곤 말하기 어려웠다.


"이러다가 환자는 안 오고 시정잡배들 모여서 시간 죽이는 곳이 될까 겁나는군."


오웬이 밖에서 담배를 꼬나물고 연기를 뱉어대는 북부 청년들의 뒤통수를 보며 염려를 표하고 있는데, 관리자 헉슬리가 말을 걸어왔다.


"닥터 오웬, 잠시 얘기 좀 할까요?"


"무슨 일이시죠?"


"그냥... 티타임입니다. 차라도 한잔 하면서 할 얘기가 있어서요."


"....그러시죠."


오웬은 헉슬리가 자신을 찾아와서 티타임을 제안하는 게 의외였던지라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별다른 이유 없이 거절하기도 뭣해서 수락했다. 그는 헉슬리를 따라 집무실로 자리를 옮겼다. 이 집무실에서 헉슬리에게 예산 명세서 공개를 요구했다가 거절했던 게 얼마 전의 일이다. 오웬에게도, 헉슬리에게도 서로 껄끄러운 첫대면이었다.


"차를 좋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닥터 오웬."


"그저 티타임이라는 명목으로 하루 중 잠시나마 여유로운 시간을 챙기려는 것일 뿐입니다."


"좋은 차를 준비했습니다. 부디 입맛에 맞았으면 좋겠군요."


"잔은 따로 있습니다. 여기에 따라주시겠습니까?"


오웬은 상업연합회의 끽차점에 들렸을 때 앨리세벨이 선물로 사줬던 도자기 찻잔을 꺼냈다.


"독특한 찻잔이로군요. 역시 조예가 깊으신 분은 잔부터가 다르군요."


"딱히 그런 건 아닙니다만."


헉슬리는 차주전자에 담긴 차를 오웬의 잔에 가득 채워줬다. 유달리 농후한 향을 풍기는 차가 잔을 채워나갔다.


"닥터 오웬.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 사이가 껄끄러운 건 사실입니다만, 그건 전부 서로에 대한 이해의 부족과 소통의 부재가 낳은 오해라고 생각합니다. 어쨌거나 저희는 같은 목표를 가진 동료 아닙니까? 그러니 조속히 서로의 오해를 풀고 이해로 나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아, 예.... 음?"


오웬은 찻잔이 안쪽부터 회색으로 변색되어가는 걸 발견했다.


"....."


"닥터 오웬? 왜 그러시죠? 안 드시나요?"


"아, 아아. 동쪽의 찻잔은 손잡이가 없기에 알맞게 식을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습니까? 찻잔에 손잡이조차 붙여두지 않다니. 동양것들은 역시 미개하군요."


"실례지만 잠시 일어나도 되겠습니까?"


"어디 가시죠?"


"받기만 해서는 성에 차질 않아서요. 관리자님께서 차를 내주셨으니, 저는 차에 곁들일 과자를 가져오겠습니다."


"그럴 필요까진 없는데 말이죠."


"잠깐이면 됩니다. 금방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오웬은 걸음을 재촉해서 자신의 집무실로 향했다. 집무실 문을 벌컥 열고 주변을 살폈으나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웬을 향해 장난스런 눈웃음을 흘겨야 할 엘리세벨은 집무실에 없었고, 텅 빈 간이침대만이 그녀의 부재를 암시했다.


오웬은 베르디 경정에게 연락하기 위해 책상 위의 전화기를 집어들었다. 그러나 내선 연결망조차 제대로 깔리지 않은 시설에 외선 전화국 개통이 온전히 되었을 리 만무했다. 오웬은 신경질적으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일단은 이 병원에서 벗어나는 게 우선으로 보였다.


덜컥! 집무실 문이 노크도 없이 열리더니 무뢰배 몇 명이 멋대로 쳐들어왔다. 오웬은 그들의 얼굴을 단박에 알아봤다. 그들은 조금 전까지 시설에서 소란을 피우다가 오웬에게 주의를 받았던 불량한 북부 청년들이었다.


"당신들!! 누가 멋대로 여길 들어와도 된다고 했습니까?!"


오웬이 호통쳤으나 북부 불량배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더러는 조롱섞인 웃음을 지어보이기까지 했다.


"내가 들어와도 된다고 했지. 이 시설의 총책임자는 바로 나니까."


끼이익. 헉슬리가 또 다른 북부 불량배 무리를 대동하여 집무실 안에 들어왔다.


"헉슬리...!! 이게 무슨 짓인지 설명하세요!"


"명령조로 말하지 마라, 잘난 의사 양반. 지금 입장 파악이 안 되나?"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군. 도적을 병원의 책임자 자리에 앉혀놓다니."


"쓸데없이 입 놀리지 말고 선택해. 순순히 따라갈지, 두들겨 맞고 끌려갈지."


"더 나은 선택도 있죠."


"더 나은 선택?"


"차 한잔 대접하기."


휙!! 오웬은 책상에 놓여있던 머그컵을 집어서 냅다 던져버렸다. 오웬의 손을 떠난 머그컵은 거들먹거리던 헉슬리의 이마에 정확히 명중했다.


쨍그랑!


"윽?!! 이 빌어먹을...!! 당장 저 망할 의사새끼 끌고 가!!"


북부 불량배들이 오웬을 둘러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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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이이이익. 엘리세벨은 반쯤 열려있는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자신의 집무실 문을 꽉 닫아두지 않는 건 오웬의 성격에 걸맞은 행동이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엘리세벨이 보게 된 건 난장판이 된 집무실이었다.


"....."


그녀는 포장해 온 도시락을 아무렇게나 내려놨다. 함께 먹을 예정이었던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했다. 주변을 살펴보니 엘리세벨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몸싸움의 흔적이 가득했다.


"흐으음."


엘리세벨은 특유의 콧소리를 내며 의미심장한 감정 표현을 했다. 그녀는 말없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뚜벅뚜벅 걸어와서는 엉망이 된 오웬의 자리를 뒤졌다. 그에게 선물로 줬던 찻잎 바구니는 이 난장판 속에서도 멀쩡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지이익!! 엘리세벨은 바구니를 뜯어서 안에 심어둔 소형 녹음기를 꺼냈다. 귀를 가져다대고 재생 장치를 조작하자 소리가 들려왔다. 엘리세벨은 자신이 도시락을 가지러 가느라 자리를 비웠던 시간대를 추적해서 재생했다.


[당신들!! 누가 멋대로 여길 들어와도 된다고 했습니까?!]


[내가 들어와도 된다고 했지. 이 시설의 총책임자는 바로 나니까.]


[헉슬리...!! 이게 무슨 짓인지 설명하세요!]


헉슬리. 오웬의 목소리는 아주 분명하고, 또렷하게 그 이름을 말하고 있었다. 앨리세벨의 붉은 눈동자는 집무실의 문을 향하며, 저 문을 열고 들어와 건방 떨었을 헉슬리의 모습을 그려냈다.


[명령조로 말하지 마라, 잘난 의사 양반. 지금 입장 파악이 안 되나?]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군. 도적을 병원의 책임자 자리에 앉혀놓다니.]


[쓸데없이 입 놀리지 말고 선택해. 순순히 따라갈지, 두들겨 맞고 끌려갈지.]


[더 나은 선택도 있죠.]


[더 나은 선택?]


[차 한잔 대접하기.]


쨍그랑!


[윽?!! 이 빌어먹을...!! 당장 저 망할 의사새끼 끌고 가!!]


덜컥. 앨리세벨은 녹음기의 재생을 멈췄다.


"으으음."


그녀는 미묘한 콧소리를 냈다.


"으음."


한번으로는 부족했는지 또 한번 콧소리를 냈다. 두번이면 충분한 건지, 아니면 시간이 아까워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녀는 발걸음을 돌려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오웬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 하지만 다행히 앨리세벨은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