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앞에 선 여자는 울먹거리며 나를 바라보곤 긴 시간 동안 내 옆에 앉아 영문모를 소리를 해댔다.


내가 결혼을 했었고 죽은 자식도 있었을 정도로 오랫동안 같이 살아왔다며 잠결에 일어나 보니 젊어졌다며 나에게 얘기를 했다.


반복적인 단어와 문장들이 계속 한 귀로 흘러들으며 주위를 살피자 이제껏 들어오지 않던 환경들이 보인다. 소설에 나올법한 이야기를 하지만 지금 껏 지내오던 주변이 눈에 밟히니 제법 신용이 생기는 얘기같다.


당황스럽지만 일딴 밖이 추으니 집에 들어가고 싶다. 라는 생각이 약간 든다. 말이 안되는 소리처럼 느껴지니 현실에 괴리가 느껴지니 이 상황을 피하고싶다.


" 저기, 잘은 모르겠지만 일딴 스페어 키좀 주시겠어요? "


" 무슨 소리야••• 여보, 내 말이 말처럼 안느껴져? 여기 집에 들어갈 키를 내가 어떻게 알아••• "


내심 아니길 바랬지만, 반쯤은 맞다고 생각을 해야하나. 일딴 상황을 두곤 생각할 시간을 갖고 싶어졌다.


" 그•••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소설 같은 얘기를 들으니 현실처럼 안느껴져서 잠깐만 생각할 시간좀 갖을 수 있을까요? "


여자는 울먹거리는 목소리가 자츰 가라앉더니 무언갈 골똘히 생각한 뒤엔 자기를 이얀순 라고 얘기하고 그 뒤에 알겠다고 말을 붙였다.


" 얀순씨, 정말 죄송하지만 연락은 닿으니까. 한 이틀 시간을 갖도록 해요. "


말을 더 붙이려던 중 얀순씨는 지갑을 열어 주민증을 보여주더니 이걸 보면 조금이나마 믿을 수 있지 않겠냐며 약간은 들뜨게 내 말을 잘랐다.


' 이얀순, 09년생에 늙은 노인이 찍혀있는걸 보면 진짜인가 '


나도 지갑을 꺼내 내 주민증을 보았다. 김얀붕이라 적힌 내 이름 옆엔 진짜로 늙은 노인이 보인다. 심지어 주민등록번호도 똑같다.


이젠 반쯤 받아들여야할 것 같다. 한국에서 트루먼 쇼가 방송하지 않는 이상 진실이겠지 싶었다. 그거와 별개로 나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서 일딴을 거리를 두고 싶었다.


얀순씨는 이런 초연히 받아들이는 내 모습을 보며 웃다가 조금 뒤엔 다시 울음을 갖더니 몇 분이 흐를 적엔 그쳤다.


" 그치셨으면, 잠깐 시간을 갖도록 해요. 얀순씨가 하는 말들이 거짓은 아니라는게 맞지만 도리어 믿어지지 않을 만큼 현실이라는게 두려워서요. "


조근조근 말을 이어가는 나를 보던 얀순씨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 얀붕•••씨라고 불러야겠죠? 사실 그렇게 부르고 싶진 않지만 기억을 잃은듯 해서••• "


얀순씨는 조심스레 나에게 말을 붙이는 모습을 보인다. 일딴 서로에게 인사를 보내고 이 야심한 방에 모텔이라도 들어가 체크인을 했다.


방 안에서 이것저것 내가 기억했던 것들을 떠올리며 차츰 차츰 과거를 생각하는 시간을 갖었다. 확신을 갖을 수 있을 증거들을 찾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니까.


그렇게 하루를 밤새우고 하루 더 연장한 오늘까지 날새워 얻은 증거물들이 점점 더 확실해졌지만, 받아들여야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두렵다.


일딴 얀순씨에게 연락을 취했다. 통화음이 잠깐 울리더니 금세 울리는 목소리가 제법 밝다. 아무래도 얀순씨가 날 걱정했나보다.


" 그••• 죄송하지만 진짜인 것 같더라구요, 얀순씨. 혹시 내일 뵐 수 있을까요? 자세한 얘기들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


" 정말로요? "


얀순씨가 잠깐의 호흡을 가다듬었다


" 그러면 어제 뵙던 집 근처에서 오후••• 두 시에 만나요. "


대답을 듣곤 이제껏 잊었던 수면을, 그리고 이내 배고픈 속을 달래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두서없는 소설처럼 현실을 받아들이니 감각이 돌아온 것 같다.


" 네 알겠습니다. 그럼 그때 뵙죠. "


밖에 나가서 내 것도 아닌 카드를 긁어댔다. 내 돈도 아닌 것을 사용하는 기분. 이게 도둑아닐까, 속으로 헛소리를 해대며 배를 달랬다.


그렇게 방으로 들어와서 내일을 조금 생각하다 잠에 빠졌다.



오후 12시


사회인들이 정신없이 일을 끝내고 이제 막 밥을 먹을 시간


백수였던 내가 사실은 1회차에 결혼에 자식도 있던 노인에서 2회차로 살아간다? 말도 안되는 현실이라 개소리만 늘어간다.


그래도 어떤가 얀순씨도 제법 이쁘고 듣기론 서로가 진득히 사랑한 부부라고 하지 않았던가. 뭐 근데 맘이 끌려야지.


기억을 잃은 지금은 얀순씨는 사랑하는 연인보단 그냥 이쁜 여자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뭐••• 이쁘면 어지간한건 용서가 되지만. 


물론 생각만 했다, 생각만.


2시가 다 될 무렵


얀순씨와 서로를 마주보며 내가 어떻게 지냈고 우리가 뭐 사랑하던 사이네 마네 살을 붙이며 과거의 나에 대한 얘기를 해댔다. 단답과도 같은 대답을 하며 한편으론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서로에 대해 얘기했다.


얀순씨도 갑작스레 젊어져서 회사에서도 시끌시끌 거렸다며, 직급이 있으니 주위 남자들이 날 괴롭히지 않으니 망정이라며 한탄을 했다.


그러나 기어코 다시 같이 살아야하지 않겠냐고 했지만 나는 조금 생각이 달랐다.


" 얀순씨, 죄송하지만 기억을 잃은 지금은 곁에 있어 드릴순 있어도 부부처럼 행동하긴 어려울 수 있어요. 아무래도••• "


얀순씨는 내 말을 듣곤 한숨을 뱉으며 기억이 돌아오면 충분히 이해할거에요라며 대답했다.


어렵게 결혼하고 오랫동안 서로 사랑했으니 이런 시련 넘길수 있다면서 나에게 조곤조곤 얘기를 했다.


나도 만약 기억이 돌아온다면 잘된 일이겠지 싶어, 서로 자리를 떠 얀순씨네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