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설거지를 하는 내내 뼈가 시리다.


지금껏 고생해서 우리 곁을 떠나 하늘로 올라간 손녀가 아빠를 도와준다고 작은 손으로 나 대신 설거지 해주던 때를 회상하며 허리를 쭈욱 펴본다.


고운 아내는 칠순을 바라보는데도 나 대신 바깥 일을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는지 하루가 멀다하고 고생하니 내가 대신 주부노릇을 한다.


설거지를 끝내고 쓰레기를 비울겸 잠깐 외출을 하고 돌아오니 아내가 오래된 조각상을 들고 거실 소파에 앉아서 싱글벙글 웃고있었다.


" 우리 자기, 뭘 들고 온거에요? "


" 이게 비익조 형태로 만들어진 조각상이라서 사왔어. "


이제는 죽는 날을 바라보며 살아왔지만 결혼하기까지 꽤 험난한 시기를 보내서 그런지 우리 부부는 늙어서도 주책이다. 예전에도 한없이 날 부끄럽게 만들던 아내의 사랑은 현재 진행형인가보다.


" 어디서 사온거야, 오밀조밀하게 나무로 잘 만들었다. "


" 요~앞에서 팔길래 사왔어. 자기 선물이야. "


조각상을 이리 저리 만지다,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 제법 멋지게 조각된게 꼭 우리 같아서 약간 부끄러워졌다. 나도 아내를 여전히 사랑하는가 보다.


" 회사는 어때? "


아내는 정장을 벗어두곤 침대에 눕더니 별 일 없었다며 작게 얘기하곤 누웠다. 괜스레 피곤한가보다. 씻고 누워야할텐데. 여전히 귀찮은 일은 미뤄두다니 내일은 조금 잔소리를 해야할듯싶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나 대신 일을 볼 아내를 위해 나도 일찍 자야겠지 싶어. 아내의 등을 토닥 토닥 거리며 잠을 청했다.



" 여보 여보 "


잠결에 시끄럽게 누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비몽사몽한 내가 눈을 떠보니 누군지 모를 여자가 불안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 여보, 여보 맞지? "


다급히 떠드는 여자에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둘러보니 어딘지 모를 공간에서 잠을든 모양이다. 다급히 정신을 차리곤 죄송합니다 제가 술이라도 마셨나봐요. 급하게 내놓은 생각, 어제 무슨일이 있었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가족이 나를 무참히 무시해서 어제 술이라도 먹은 느낌이다. 그거 외엔 마실 일이 없으니 급하게 자리를 뜨려고 하니 이쁜여자가 정신을 차린듯 나를 붙잡았다.


" 여보, 무슨 소리야 나 누군지 기억이 안나? "


' 두려움에 떤 목소리를 내며 나를 바라보는 이 여성은 누굴까. 내가 술을 먹고 사고라도 쳤나. '


급한 마음에 일딴 한 없이 죄송하다고 말을 외치고 손을 뿌리치곤 자리를 떴다. 나를 애타게 불러도 누군지 모르는데. 나중에 생각해 대문 밖을 나와 바깥 정경만 기억하곤 후다닥 집으로 뛰쳐나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택시를 타고 도착한 내 자취방에 굳게 잠겨있다.

주머니를 뒤적뒤적 거렸지만 스페어 키가 안보인다. 그 여자집에 두고왔나 싶을 때에 전화가 울렸다.


우리 와이프라고 찍힌 누군지 모르는 번호


누구지. 아직도 정신을 못차려서인지 맘이 급하다. 긴 생각없이 전화를 받자마자 방금 전 같이 있던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를 찾는듯이 어디냐고 부르는 소리


누구지 이 여자, 대답을 대신해 짧은시간 침묵하며 생각을 가졌다가 대답 했다.


 " 와이프라고 찍혀있던데, 제가 어제밤 무슨 일이라도 저질렀나요. 여자친구를 사귈만한 친구도 없었는데. 제가 잠깐... "


" 여보, 무슨 소리야. 지금어디야 나 애타게 찾고있잖아. 화 내기전에 장난 그만둬. 나 울 것같으니까. "


울먹거리는 목소리. 여보라고 나를 부르는 단어. 뭔가 사정이 숨겨진 것 같다. 꽃뱀일수도 있으니 경계는 해야겠지라는 생각이 맴돈다


" 일딴 그쪽 집에 열쇠를 두고 나온 것 같으니 잠깐 만나서 뵐까요. 죄송하지만 진짜 아무런 기억이 안납니다. 혹시 제가 나쁜 일이랃 저질렀다면 사과드릴게요. "


" 장난 그만해 여보.. 말 잘 들을테니 이런 짓 하지말아줘.. "


왠지 말이 길어질 것 같아서 단호하게 얘기 해야겠다.


" 일딴 만나뵈죠, 여기가 어디냐면... 얀진 마트 옆에.. "


주소를 불러주곤 기다리겠다고 연락을 끊고 집 앞에서 앉아서 시간을 보내자 20분이 넘었을 무렵 아까 만났던 여자가 모습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