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




1.

"진작에...이럴 걸 그랬어."


희열에 가득찬 웃음과 함께 내뱉은 말은 어째서인지 잔뜩 분노를 짓씹은 듯 서늘한 말투였다.


"처음부터 내 마음대로 했으면 금방 끝났을텐데...왜 멍청하게 이리저리 끌려다녔을까?"


바보처럼.

자조서린 말로 흐느끼듯 중얼거리며 흔들흔들 걸음을 내딛는다.


"그래도 늦지 않아서 다행이야. 내 남편을, 내 사랑을, 내 남자를 이제라도 지킬 수 있어서 정말...정말로 다행이라 생각해."


한 발짝, 두 발짝.

멍한 표정으로 다가가 이지를 상실한 채 눈만 껌뻑거리는 남편을 끌어안고선, 그 체취를 담뿍 폐에 담아내었다.


"하아-"


그로 하여금 내 안이 가득 차오른다.

그 작은 행동만으로도 제 마음은 달뜨고, 머리는 붕 떠오르며, 혈관은 거칠게 맥동한다.


부족해.

부족해.

턱 없이 부족해.


파고들듯, 더 깊이 품에 안는다.

더 정확히 느끼기 위해 눈을 꼭 감고는 남편의 모든 체향과 온기에 신경을 집중하였다.

그것이 완전히, 제 것이라도 되는 것 처럼.

원래 제 안에 있기라도 했던 것 마냥, 다시 제 안으로 집어넣을 기세로, 정우를 온 몸으로 꽉 껴안는다.


"흐윽- 흐읍...하으으..."


그리고 제 안,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거대한 갈증을 아주 약간이나마 채웠다고 생각될 무렵.

희수의 감았던 눈은 이글거리는 증오를 담아 바닥을 기는 강지혁을 노려보았다.


"벌레같은 새끼."


경멸을 담은 한마디.

그 말에 제 눈 앞의 벌레가 희미하게 몸을 꿈틀거린다.

당장이라도 산산히 해체될 자신의 운명을 아는 것처럼.

뇌진탕으로 흐리멍텅해진 두 눈으로도 뒤룩 뒤룩 눈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다.


"긴 말 안 해. 지금 내 남편의 저 상태. 네가 말하는 그 잠재 의식 상태에 빠져있는 거 맞아?"


"........"


"하. 말 안 해?"


피식- 멍청한 반응을 비웃어주는것과 동시에 곧장 그 대가가 벌레의 신체에 새겨진다.


콰직!


"아아아아악!"


섬뜩한 소리와 함께 터져나오는 끔찍한 비명, 그를 제압하고 있던 시궁쥐의 손에 어느새 들려있는 것은, 피묻은 대검과 손가락 하나.


"두 번 말 안한다고 했어."


"응끄으윽...맞아...!"


"저 상테에서 듣는 모든 말은, 상대에게 있어 모두 진실이 된다. 이것도 사실이야?"


"그, 그래...크으윽...맞다고...!"


손가락이 잘려나가는 비싼 대가로 의식을 겨우 차린 강지혁은 제 손에서 울컥울컥 뿜어지는 피를 보며 턱을 덜덜 떨었다.

그러나, 아직 제 질문은 끝나지 않았다.


"그럼."


한 발자국.

희수가 벌레에게 다가가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기억들도 없앨 수 있나?"


그 질문은 다른 것과는 달랐다.

순간이지만 고통조자 잊은채 경악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본 지혁.

그제야 그녀가 자신을 왜 당장 죽이지 않았는지 지혁은 완전히 깨달아 버렸다.


"서, 설마..."


"질문에나 대답해!"


사족따위는 허락치 않아.

누가 멋대로 의견따위를 달라고 했어.

넌 그냥 닥치고 대답이나 해.


으르렁 거리며 씹어뱉는 말은 그의 대답을 종용하고 있다.


"......"


아주 잠깐의 적막.

그러나 그것마저도 허락치 않은 희수의 눈이 곧장 대검을 든 시궁쥐로 향했다.


스릉-


"가, 가능해! 가능하다고! 제발 더이상은 그만...!"


시선을 받자마자 곧장 시궁쥐가 남은 손가락 하나를 더 자르려 하니, 파랗게 질린 지혁이 그제야 울부짖듯 답했다.

그러나 대답을 늦춘 대가는 남아있다는 듯, 점차 대검에 놓인 손가락은 점차 압력에 눌리며 서서히 핏물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아아악! 정말이야! 가능하다고! 잠재의식에 도달한 상태에서는 그 어떤 말도 '진실'로 받아들여! 설령 오늘부터 개가 되라는 말 조차도! 숨을 쉬는 법을 잊어버리라고 해도! 전부! 전부 가능해!"


필사적으로 내뱉는 추가 정보에 대검이 멈춘다.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대답.

그녀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시궁쥐가 대검을 치웠다.


"잠재의식에서 깨울 방법은?"


"...방아쇠...일정 행동을 취하면 돼...정우...씨의 경우에는, 박수를 두 번 치면 벗어날 수 있다..."


그 말을 끝으로 점차 쇼크가 오는지 지혁의 낯빛이 파랗게 물들었다.

떠듬떠듬, 말은 제대로 튀어나오지 않고 눈은 너무나도 무거워 점차 처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죽는 것마저도 허락되지 않았다.


"흥, 살려요. 이렇게 편하게 죽게 둘 수 없습니다."


"네."


결국 의식을 잃어버린 강지혁의 손가락을 손쉽게 지혈한 시궁쥐들은 능숙하게 그를 데리고 방을 나섰다.

누군가를 죽이는 것 만큼, 살리는 것 마저도 그들에게는 숨 쉬는 것보다 자연스러운 일.

바닥에 떨어진 피마저 깔끔하게 처리한 시궁쥐들은 언제 있었냐는 듯, 어느 흔적도 남기지 않고 희수의 집에서 사라졌다.


"하아-"


다시금 둘의 집에 고요한 적막이 찾아왔다.

여전히 멍한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정우와, 그런 그의 뺨을 사랑스레 쓰다듬고 있는 희수.

그렇게 한참을 이리저리 남편을 쓰다듬던 그녀는 이내 그의 앞에 서서는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 목소리가 들리시나요?"












2.

"당신은 원래대로 돌아올 거에요."


"원래...대로..."


첫 암시는 중요했다.

원래대로.

누군가의 의도대로, 제가 아닌 남의 의지대로 행동하는 남편이어서는 안돼었다.


"강지혁이라는 의사와 만나며 있었던 모든 일들은 잊어요. 당신은 그런 치료도 상담도 받은 적이 없어요."


"의사...없어...그런 일..."


의사라는 존재를 지워버린다.

자신을 제외하고 신뢰받는 인물은 존재해서는 안되었다.

그러니 가장 깊은 곳에 파묻어버리자.

다시는 튀어나오지 않게,


"그리고..."


그리고.

이제 끝.

그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 때의 정우로.

자신에게서 떠나간 정우로.

자신에게서 지쳐버린 정우로...

더는.

더는.

더는...

더는....

더는.......


날 사랑하지 않는 정우로.




















뭐?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그럴 수 없어.

그러지 마.

이럴 수는 없어.

버리지 마.

떠나지 마.

왜? 어째서? 제발.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버리지 말아줘, 내 곁에만 있어줘.

싫어하지 많아줘. 제발...부탁이야.

부탁입니다. 떠나지 말아주세요.

가지 마.

아니 못 가.

가슴이 아파...

찢어지는 것 같아.

여기가...여기가 너무 아파서...

그래서 널 떠나 보낼 수 없어.

죽어버릴 것만 같아.

네가 없으면 단 하루도, 한 시간도 일분 일초도 살아갈 자신이 없어.

이렇게 널 사랑하는데, 지금이라도 다시 시작하고 싶은데.

기회를 줘.

너에게 내 사랑을 보여줄...하루도 빠짐없이 너만을 생각하고 있는 나를 바라봐 줘.


사랑해.


널 사랑해.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


세상 모든 것을 바꾸어서라도 너만을...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러니...






















"...당신은 절대로 제게서 떠날 수 없어요."











--------------------------------------------------




아주 오랜만에 찾아온

희수의 광기타임(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