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키잡물)

그녀를 본 건 어느 어스름한 뒷골목에서였다.


그녀는 머리까지 허름한 로브를 뒤집어 쓰고 있었다.

이끼 낀 눅눅한 담벼락에 기대어 있는 그녀는 난 처음에는 버려진 쓰레기더미로 착각을 했었다.

그러나 우연히 그 옆을 지나가는 순간 움찔거린 그녀에 의해 그것이 적어도 살아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다.

아마 내 인기척에 놀라서 그랬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놀라 아래를 내려다 보았고, 보이지 않았던 그녀의 앙상한 다리며 팔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타인에 의해 버려진 이들이 그렇듯이 자기방어적인 모습으로 몸을 외부로부터 웅크린 채, 한 없이 스스로를 격리시키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내게 도덕과 양심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나는 그녀의 모습에게서 내 과거를 마주했기 때문에, 이대로 그냥 지나쳐 간다면 꿈자리가 사나울 것임을 알기에 어쩔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잠을 자야 하는데 못 자는 거, 그건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몇 발자국 떼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서 코를 긁적이며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야"


말투가 곱지 않다고 나를 나무라지 마시라.

나는 사람을 정중하게 대하는 법 따위는 모른다. 그건 이 작은 소녀에게도 마찬가지다.

친절은 사회가 내게 가르쳐 주지 않은 항목이었다.

대신 나는 '나 답게' 사는 법을 배워야 했으니.

그건 바로 '숙일 땐 숙이고, 찌를 땐, 찌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날 '송곳날 잭' 혹은 '쑤셔대는 잭'으로 부른다.

나는 후자의 별명보다 전자의 별명이 낫다고 생각한다.

이런 밑바닥 인생에도 멋과 낭만은 있는 셈이니까.


"야, 안들려?"


툭툭, 진창묻은 구둣코가 그녀를 건드렸다.

그것만으로도 그녀는 힘 없이 비틀거렸다.

나는 양심에 털 난 사람마냥, 아이와 여자를 대하는 법 따위는 개나 줘버린 무뢰배 마냥 그렇게 그녀를 불러 댔던 것이다.



여리한 손이 건들거리는 내 발을 잡았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구둣코 위에 얹혀지고, 나는 그 손을 바라보며 처음으로 약한 마음이 들었다.

마치 깃털이나 가벼운 솜이 올라간 것처럼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사람의 감각이 괴리를 일으키고 스스로를 속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눈으로는 그 모습을 보아도 내 다리로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니, 슬쩍 건들거리기만 해도 구름이나 연기마냥 흩어져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그만...해요"


"뭐라고?"


나는 분명히 어떤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힘없이 웅얼거리는 소리, 뱃속에서 깊은 허기가 느껴지는 소리, 세상에 버려진 비주류의 맥없는 울림.

아무튼 간에 내가 들은 것은 헛것이 아니었다.

바로 그녀가 내는 소리였고, 아마도 만년만에 그런 소리를 낸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어색한 목소리였다.


나는 그녀 앞에 쭈그려 앉았다.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지자 보다 많은 것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시큼한 냄새가 확 풍겨왔다.

물론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 냄새라면 나도 비슷한 걸 풍기고 있긴 할 터,

도시에 여럿이 부대끼고 살면 이런 저런 냄새를 맡으며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씻지 않아 풍기는 지독한 암내도 그 중 하나다.


나는 움츠러든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넝마같은 로브가, 아니, 로브같은 넝마가 그녀의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무례한 손길로 나는, 아직 어리다지만 수치를 아는 그녀의 손길을 무시하고 얼굴을 드러냈다.


"뿔이다."


이런, 뿔이다.

아직도 이 도시에 이종족의 혼혈이 남아있었단 말인가? 

뗏국에 젖은 얼굴로 머리 한 쪽에 비스듬히 솟아난 뿔을 가진 소녀는 신비로운 노란색의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의 동공은 특이했다. 홍채는 보통의 인간과는 같지 않았다. 내가 호기심을 느껴 자세히 보고자 했지만,

그녀는 재빨리 내 손에서 그 '넝마'를 낚아채 제 얼굴을 가렸다.

이번에는 절대 보여주지 않을 작정으로, 닫아버린 조가비 마냥 한 치의 틈도 없었다.


그녀의 외관으로 짐작컨데 몽마족 혹은 용족이 아닐까 싶었다.

지난 박해 때, 이들 이종족들 대부분이 죽거나 도시에서 추방 당했다고 들었다.

물론 정확히는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도시의 공동묘지에 가면 주인 없는 묫자리들에 인간의 것이 아닌 뼈들이 수두룩하다고 한다.


나도 본 적이 있다. 물론 내 일 때문이었다.

물론 신에게 맹세코, 나는 정직하지 못한 장사는 하지 않는다.

이건 이를테면 누구도 손해보지 않는 장사다.

피를 볼 필요도 없고, 누군가를 윽박질러야 할 필요도 없다.

그저 조용히 손만 조금 더럽히면 될 일.

땀 흘린만큼 보상을 받는 일이 정직하지 않으면 대체 뭐가 정직하단 말인가?


어떻게 해야하나......나는 천성이 천성인지라 착한 마음에 그녀를 데리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리 생각하나 저리 생각하나, 내 마음이 편하려면 딱 하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어찌 되었든 데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몸에 손을 댔다.

체구도 작고 앙상한 그녀를 데리고 가려면 번쩍 들어 메고 가는 방법이 가장 편했다.

이곳에 있어봐야 어떤 희망도 그녀를 기다리지 않는다.

어쩌면 그녀도 그것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


도시의 뒷골목은 억압 받고 배척 받은 자들의 성지다.

따라서 정상적인 사람이 들어온다면 반나절도 못 가 속옷까지 벗겨져 쫒겨나리라.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새침한 표정을 짓겠지.


그녀나 나나, 도시라는 욕망의 기계가 만들어낸 오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게 내가 그녀를 데려가는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