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다.


내 친구는 나를 무서워하며 떠났다. 어젯밤 까지만 해도 같이 즐겁게 술을 마시던 친구인데.


직장에서 내쫓겼다. 나는 회계서류란 것을 써본적도 없는데. 퇴직금은 내때문에 생긴 손익을 매꾸는데 사용되었다.


부모님이 비행기 사고로 돌아가셨다. 난 여행상품권을 보내드린적이 없는데.


모든 것이 날 부정한다. 마치, 내 존재가 쓸모없듯이.


그래도, 딱 하나. 딱 하나 남아있다.


"얀붕아. 아침먹어."


왜인지 모르겠지만, 언제부턴가 같이 살고있는 얀순이.


사실 이 여자를 알게 된지 오래 된 것도 아니다.


왜인지 아무도 오지 않던 장례식장에, 그녀만이 왔었다.


그녀는 자신이 어머니와 직장에서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녀 눈에는 내가 많이, 엄청 많이 측은해보였나 보다.


그때부터, 그녀는 사람으로써의 역할을 잊은 나를 챙겨주기 시작했다.


의, 식, 주, 그 외에도 원하는 것 전부를.


돈이 많은지 자신의 집으로 내 짐을 전부 옮겼다. 당연히 나 또한 거기서 살기 시작했다.


내 삶은 더더욱 망가져갔다.


가만히 있어도 돈이 생기고, 먹을 것이 입으로 들어온다.


나의 힘으로 위기를 극복해야 회복도 하겠지만, 누군가 날 구제해주니 회복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집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다. 휴대전화도 필요 없다.


그렇게 나는 내 자신을 외부와 단절시켰다.


그렇게 매일 살아가던 찰라였다.


문득, 내 머리로 어떤 생각이 들게 되었다.


나는 이 여자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런데 이 여자는 나를 어찌도 이렇게 잘 아냔 말이다.


어머니에게도 말씀드린 적 없는 것들을.


의심은 매우 작은 씨앗에서도 피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씨앗은 이윽고 커다란 나무가 된다.


그녀가 집을 비운 사이, 나는 나태해진 몸으로 집 이곳 저곳을 뒤진다.


그 나무는 불씨를 만나, 불타오른다.


어쨰서 그녀의 집에 내가 다니던 회사의 회계 서류가 있을까.


왜 그녀 집에 나의 부모님의 여행 티캣 영수증이 있을까.


왜?


왜?





.....


나는 깨닳았다.


상자를 다시 열어 여러 장의 종이를 다시 집어넣는다.


마치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처럼.


나는 틀렸다.


나에게 남겨진 것을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혼자 남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