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돌림이 왜 일어나는지는 고대부터 내려온 흥밋거리였다.

저명한 학자들이 수도없는 토론과 연구를 통해 증명해 내긴 했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다.


그냥


이것 말고 다른 이유가 있을까.


갓 걸음마를 땐 애새끼들도 따돌림을 자행한다.

그보단 대가리가 좀 굵어진 청년들도 마찬가지다.

개념이란게 어느정도 박혀있을 어른들도 물론이다.


굳이 인간에게만 국한된게 아니다. 

사회적 환경을 갖추고 산다면

짐승이든 곤충이든 따돌림이 생긴다


이 정도면 그저 생물에게 새겨진 본능이 아닐까 

벗어날 수 없는 굴레가 아닐까.


내가 한 행동을 정당화 하려는 게 아니다.

난 당하는 입장이었으니까

정당화 할 건덕지도 없다.


그럼에도 그런 생각을 가진건

그렇게라도 안하면 견딜 수 없었다.

억지로 이유를 찾으며, 개선하려 해 보았자 

달라지는게 없었으니까.


게다가 가장 많이 들은 이유는 내가 고아 였다는 점인데

무덤에서 유골을 파내어 소꿉놀이를 할 순 없는 노릇이고.


차라리 체념하고, 이번 생에 주어진 운명이라 여기며 

담담히 받아들이는게 편했다.

물론 그런다고 베개에 묻힌 눈물이 줄어들진 않았지만

그러고도 편해지지 않던 시절 보단 낫지 않은가


그렇게 사니, 나도 어른이 되긴 했다.

은근한 따돌림은 여전하지만 상처를 줄 정도는 아니었다.


“이 씨발년, 또 기웃거리고 지랄이지?”


물론 나를 향한 괴롭힘이 줄었다는건

다른 이를 향한 괴롭힘이 늘었다는 뜻이다.


가게 주인이 소녀 하나를 길바닥에 내던지고는

자기 아들과 함께 후려까는 꼬라지를 보라.


머리를 발로 차고, 배를 짓밟고, 팔다리를 돌로 찍는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걸 보고도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에이 저 재수 없는년“


“손 더러워지게 뭐해? 몽둥이 빌려줄까?”


아니, 신경 쓰지 않으면 다행이다.

근처의 가구 가게 주인이 각목을 저것들 한테 넘겨준다.

아예 껴들어서 같이 패는 애새끼도 보인다.


“한번만 더 우리 가게 앞에 서성거려 봐, 그땐 다리를 콱 분질러 놓을거야.”


두들김이 만족스러웠는지, 가게 주인이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고 들어간다.

지나가던 이들은 길바닥에 나자빠진 소녀를 비웃고

찢어진 옷 위로 올라온 푸르스름한 멍을 가래침으로 덮어준다.


인간의 두뇌가 뛰어나서 생기는 반작용은

어떤 상황에서도 변명거리를 찾는다는 점이다.


저 아이는 마물 혼혈이다.

겉보기엔 평범한 인간과 다를바 없지만

멀리서도 확실히 느껴지는 오싹한 살기는

소녀가 순수한 인간이 아님을 상기시켜주곤 했다.


그래, 마물이 언젠가 인류를 멸망시키리란 격언도 존재하며.

실제로 저 아이는 주변에 흉흉한 기를 잔뜩 뿌리고 있으니

그런 소녀를 넉살 좋게 받아준다는 건

필시 위인의 반열에 들 업적이겠지만.


그렇다고 저 꼴로 만드는게 정당하단 뜻은 아닐텐데.

이 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여기는 것 같다.


소녀의 상처는 벌써 아물기 시작했다.

이 점도 분명 괴롭힘이 끊이지 않는 이유일 것이리라.

무슨 짓을 당해도 상처가 금방 사라지니

자신들이 저질렀던 짓도 없어진 걸로 생각하니까


-쏴아아-


그 때였다. 난데없이 쓰러진 소녀 위로 액체가 쏟아진건

처음엔 늘상 들이붓던 구정물 같은 건가 싶었지만


잔뜩 취한 동네 건달 몇몇이 주점에서 나오며

지들끼리 낄낄거리다 불을 킨 라이터를 던진 순간


아뿔싸


머릿속에 생각 하나가 푹 찔려들어왔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악!”


고기타는 냄새가 순식간에 퍼져나간다.

날카로운 비명이 사방을 들쑤시지만


“푸하하핫! 꼴 좋다 쳐죽일년”


“어디 돼지기름 모아둔 것 없어?”


“히야, 이건 생각도 못했네”


터져 나오는 건 부추김, 환호성, 박수갈채

그걸 받고 어깨를 으쓱거리는 놈들.


보고도 믿을 수 없다.

마녀사냥도 이 같은 반응은 없었다.

이게 정말 분살 현장이 맞단 말인가.


괴로움에 몸부림 치는 소녀의 얼굴이 보인다.

가혹한 열기가 금방 시커먼 연기로 바꾸었지만.

분명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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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욱…”


등 허리가 쑤셔온다.

이 정도로 격하게 맞은게 얼마 만인지

구경거리를 망가뜨렸다는 죄목은 

생각보다 높은 형량을 지녔구나.


가까스로 집 까지 걸어와 침대 위에 소녀를 뉘였다.

기절한 소녀의 몸엔 맞은 상처는 물론 화상자국도 사라져 있다.


이런 생각 하면 안되는건 알지만,

어렸을 때 부러진 어깨를 제때 치료 못해

아직도 만세를 못하는 내가 보기엔 

조금 부러운건 어쩔 수 없다.


눕고 싶은 마음을 뒤로하며 부엌으로 왔다.

스튜 정도면 무난하겠지, 고기와 야채를 아낌없이 손질한다.

국자로 휘젓는게 조금 힘들 정도로 그득하게 쌓인 건더기들.


혼자 먹을 땐 최소한만 넣고 양을 불려 먹었지만 오늘은 다르다.

일주일치 식비를 쏟아부은건 걱정되긴 하지만

오랜만의 특식이라 생각하자.


“…당신 뭐야”


요리가 다 완성될 무렵 소녀가 깨어났다.

단지 눈을 떳을 뿐임에도 피어오르는 살기에

소름이 조금 곤두서긴 하지만.

애써 마음을 다스리며 완성된 스튜를 그릇에 담는다.


“마침 잘 일어났어, 더 먹고 싶으면 말해“


최대한 건더기 위주로 푸짐하게 담으며 소녀에게 가져갔으나


-철푸덕-


스튜를 먹은건 소녀가 아닌 방바닥이었다.

내 손을 쳐낸 소녀가 살벌하게 눈을 치켜뜨며 씩씩거린다.


”치워… 내가 모를 것 같아? 이딴 거나 쳐 먹이려 들고…“


고기나 야채를 못 먹는건 아닐거다.

불과 어제 정육점 근처 쓰레기통을 뒤적거리며 

뼈다귀에 붙은 살점을 뜯어먹는걸 봤으니까


그럼 대체 왜 이런건지 원인을 추적하자

언젠가 본 광경 하나가 머릿속에 스친다.


식당주인이 소녀에게 따뜻한 스튜를 대접한 적 있었다.

푸근한 미소로 가득 담아 준 스튜를

소녀는 눈물까지 흘리며 허겁지겁 퍼먹었고.


잠시 후, 피를 토하며 나뒹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음흉하게 웃던 식당 주인의 손에는

곰을 죽일때나 쓰는 맹독이 들려있었다.


‘그것 때문이구나…’


내가 준 이 스튜에도 분명 독이 있으리라 짐작했겠지.

그렇다면 그 의심을 해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뭐… 뭐 하는거야?”


소녀의 눈이 못볼 걸 봤다는 듯 일그러진다.

물론 땅바닥에 버려진 음식을 그대로 주워먹는 꼴이니

경악스러운 시선은 이해가 간다.


그래도 재료값이 얼만데

그냥 버리긴 아깝잖아.

흙먼지가 좀 씹히긴 해도, 맛은 나름 괜찮은걸.


”봐, 나 멀쩡하지?”


자랑스럽게 웃어준 후, 새 그릇에다 스튜를 또 퍼서 가져왔다.


“뜨거우니까 조심해서 먹어”


하지만 이번에도 내 호의는 무시당했다.

그릇을 또 엎지르진 않았지만

소녀는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문으로 걸어갔다.


“배 안 고프면 누워 있어. 먹고 싶을 때 다시 뎁혀줄게“


”필요 없어“


-꼬르르륵-


제법 호기로운 대답의 끝을

소녀의 배가 사족을 덧붙여 망가뜨린다.


등을 돌리고 있긴 했지만

떨리는 어깨만 봐도 솔직히 어떤 표정일지 뻔하다.

결국 먹을거면서 오기부리긴


“천천히 먹어, 그러다 체 해”


걱정하는 사람한테 보내긴 너무 살벌한 눈빛 아닌가

솔직히 쫄았다.


“켁… 켁…”


에휴, 그니까 천천히 좀 먹으라니까.

황급히 물을 떠다 소녀의 곁에 두자

그대로 벌컥, 시원하게 비운다.

그 뒤의 숟가락질은 확실히 좀 느려졌다.


잘 먹는 모습을 확인한 이후

나 역시 식사를 위해 스튜를 퍼 담으러 왔다.


“응? 왜 그래?”


근데 소녀가 갑자기 고개를 돌린다.

나와 눈이 마주친 직후 도로 시선을 돌렸지만

그 뒤에도 계속 힐끔거리며 입술을 달싹거린다.

빈 그릇을 든 채


“…더 먹고 싶으면 그냥 말 하라니까”


하긴 애 한테 자존심 빼면 뭐가 남겠어.

그나저나 이 스튜, 이틀은 먹을 줄 알았는데

휘젓는데 벌써 바닥이 느껴지다니

이거 하루도 못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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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몇번째야

골목에 널브러진 소녀를 데려와 침대에 눕히는게


요 며칠 내내 그랬다.

밥을 먹이고, 재운 다음 날 아침이면

소녀는 감쪽같이 사라져 있고


어딜 갔나 싶어 마을을 둘러보면 

골목 어딘가에서 쓰러져있다.


그런 소녀를 데려와 다시 씻기고, 먹이고, 재우면

다음날 또 사라져 있고

갈거면 좀 곱게 가던가, 길바닥에 쓰러져 있고.


“자고 싶으면 좀 침대위에 가서 자라니까…“


오늘도 밥을 먹자마자 그 자리에서 쓰러지듯이 잠든 소녀를 침대위에 눕히고 

나는 방바닥에 이불을 깐다.


처음엔 좀 불편했지만, 이젠 익숙하다.

뭐 일부러 돌침대에서 자는 이상한 사람도 있다던데


‘그건 그렇고… 쟨 진짜 왜 이렇게 거부하는거지…’


물론 소녀가 무작정 내 호의에 감격하리란 생각은 안했다.

당연히 의심스럽고 꺼림칙 하겠지.

모두가 손가락질 할 때, 혼자 손을 내밀어 준다는 건.


그래도 계속 쏟아붓다 보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싶었다.


너는 내 어린 시절 처럼.

누구도 손내밀지 않던 유년기를 

보내지 않았으면 했는데.


그냥 괴롭히는 인간만 있는게 아니라

그냥 도와주는 인간도 있음을 알아주길 바랐는데


‘대체 어떻게 해야…’


-푸욱-


느닷없이 옆구리가 뜨거워진다.

덮고있던 이불이 갑자기 축축해지고

무슨일인가 싶어 일어나려는 순간 머리가 어질하다.


”허억… 허억…“


찔린건 난데 왜 찌른 니가 더 숨을 몰아쉬고 그래.

옆구리가 아프긴 하지만 깊게 찔리진 않았다.


잠시 상처를 확인한 후 칼을 든 소녀를 바라봤다.

어설프게 칼을 쥔 탓에, 찌른 순간 칼이 밀린건지 

소녀의 손에서도 피가 나고 있었다.


“야, 너도 다쳤잖아. 반창고 가져올게.”


“도와주는 척 하지마…”


”뭐? 척이라니 그게 무슨…“


”다, 다 알아… 좀 도와주다 너도 나 버릴거잖아… 모, 모를 것 같아…?“


생각을 안해본건 아니다.

혹시 예전에 한번 

나 처럼 호의를 베푸는 사람을 만났는데

결국 버려지고 다시 나도는 신세가 되기라도 한건가


내가 생각해 놓고도 너무 어이없는 발상이라

그래도 설마 그러진 않았겠지 했는데.


가까스로 촛점을 맞춰 소녀의 표정을 본다.

눈물로 얼룩졌음에도

흉흉한 살기를 뿜어내는 독한 눈빛


하지만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다.

독기보다 눈빛에 더 많이 깃든건

슬픔, 두려움, 절망


지금 짓고있는 얼굴과 쏘아붙이는 말투는

결코 천성이 아님을 증명하고있다.


“당신 알고 있어… 나 얻어맞을 때…

안타까운 척 보기만 하다 고개 돌렸던 놈인거…

 그래놓고 이제와서 왜 이래…


너 같은 인간이 제일 역겨워…

어차피 버릴거면서… 착한 척 하지 마…

당신은 뭐 다른 것 같아…?”


그것마저 알고 있었구나.

내가 비겁한 방관자였다는 걸


그런줄도 모르고

나는 네가 왜 안 바뀌는 걸까 고민 했었는데

어설프게 너의 아픔을 가늠한거였어

나도 당해봤으니까, 너도 그 정도겠지 하고.


직접 괴롭히지만 않았을 뿐.

널 망가뜨리는데 일조한거야.


“미안해…”


“뭐… 뭐?”


“네 말이 맞아… 더 일찍 도와줬어야 하는데…

네가 이런 아이가 되지 않게 할 수 있었는데…

이제 와 버려서… 정말 미안해…”


무릎을 꿇은 내 모습이 어지간히도 충격적이었는지

소녀 역시 주저앉아버렸다.


“그래, 니 말대로… 난 그냥 비겁한 쓰레기였어.

이런 놈이 보살피려 들다니, 역겨웠겠지.

이젠 잡지 않을게… 혹시 마을을 떠나고 싶으면 말 해… 길을 알려줄게


그래도… 마지막으로 딱 한번만 부탁하고싶어.

내가 널 도울 수 있게 해 줘…

방관자를 벗어날 기회를 줘…

절대, 널 버리지 않을거니까.

한번만 날 믿어줘…“


이마를 바닥에 쳐박았다.

내 진심이 부디 통하기를 간절히 빌면서.


-덜그럭-


그 순간, 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기가찬걸까, 어이 없는걸까.


“지금… 뭐 하는거야…

당신 지금 칼에 찔렸잖아… 

내가 찔렀잖아…


근데 왜 화 안내는데…?

왜… 왜 사과하는데…“


소녀의 말이 끝난 이후부턴

그저 울음소리만이 들려왔다.

난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았다.

아직, 대답하지 않았으니까.


한참이나 들려오던 울음소리가 조금씩 잦아들고.

소녀의 목소리가 드디어 들려왔다.


“…지, 진짜… 진짜야…?

버, 버리지 않는다는거…

나, 마물 혼혈이야… 그런데도…?”


그제야 난 고개를 들었다.

독기라곤 찾아볼 수 없이

그저 눈물 범벅이 된, 가녀린 소녀.


“당연하지.”


와락.


그 작은 몸뚱이가 내 품에 날아들었다.

배에 얼굴을 파묻은 소녀는 같은 말을 끊임없이 뱉었다.


”약속한거야… 버리면 안돼…“


그리고 난, 같은 말을 끊임없이 말해주었다.


”절대 안버려… 걱정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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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얼굴이 왜 그래…”


“하하, 내가 칠칠맞아서 오다 넘어졌어”


거짓말은 아니다.

난데없이 뒤통수에 깡통을 맞고 

진짜로 넘어지긴 했으니까


”미, 미안해… 나 때문에….“


”에이 내가 넘어진거라니까 뭘 미안해

배고플텐데 늦어서 미안, 얼른 밥 해줄게“


당연히 예상했고, 각오했지만

부녀가 된 이후의 삶은, 영 순탄치 않았다.


원래도 박봉을 받고, 하루 벌어 하루 살던 나였기에

아이 한명이라 해도 늘어난 식구를 챙기는건 너무 빠듯했다.


게다가 다니던 공장에서도 짤린 탓에

일용직을 전전하는 신세가 되어 부담은 더욱 컸다.

그렇다고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


괴물의 피가 섞인 역겨운 년

그런 년 아니면 어울리지도 못하는 쓰레기.

마을을 10분만 돌아다녀도 비슷한 말이 10번은 들려왔다.


솔직히 그건 아무 상관 없었다.

같은 일을 해 놓고도 훨씬 적은 일급을 손에 쥐는것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손가락질을 받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딸에게 해줄 수 있는게

남들은 줘도 안먹는 돼지 비계에

산나물 따위를 넣고 끓인 스튜와


찬바람이 새어 들어오는 들어오는 낡은 침대.

거지도 버릴 후줄근한 옷 뿐이라는 건

진짜 미칠것 같았다.


차마 딸 앞에서 울 순 없어

억지로 마음을 가다듬고 억눌렀지만


“기다렸지? 얼른 먹어”


“…아빠는 왜 안 먹어”


“난 이미 먹고왔어. 회식이 있… 우웁…“


“딸 한테 거짓말 하면 못 써. 아빠”


자기 먹으라고 갖다준 스튜를

한 숟갈 크게 떠다 내 입에 먼저 물리고


“아빠가 나 안 버린거 

그거 하나면 만족해. 진심이야.“


해준것도 없는데 이런 소릴 하며


”그러니 아빠, 나한테 미안해 하지마

내가… 나중에 꼭 아빠 보살펴줄게…“


믿으라고 큰소리 쳐 놓고

다 지켜줄 수 있을 것 처럼 굴어놓고

뭐 하나 제대로 해주지 못하는 무능한 새끼를

원망조차 안하며.


나를 그 작은 품으로 감싸주는 순간엔

도저히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일주일, 한달이 흘러가다.

정말 갑작스럽게


”아, 아빠…. 나… 몸이 이상…해…“


우리의 삶에 변화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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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는 사람들의 고개, 모아지는 시선

잠깐 산책을 나온 것 뿐인데.

이건 너무 부담스러운 주목 아닌가


물론 나도 구경꾼이었다면

넋이 나갈 만큼 아름다운 여인과

그 미인의 품에 대롱대롱 안긴 남자를 보면

필시 저런 시선을 던졌을 것 같긴 하지만.


”저게 예전 그 년이라고…?“


”씨이벌… 저 새끼 복 받았네…“


그래도 이렇게 대놓고 

자기들 속마음을 뱉어내는 건

역시 좀 심한 것 같다.


“있잖아 딸… 아빠도 걸을 줄 아니까 그냥 내려줘…”


“우우웅…”


내 목덜미에 얼굴을 콕 박고는

우는 소리를 내며 칭얼거리고 있다.

세상 어느 아빠가 딸의 이런 애교를 꺾을 수 있을까.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해”


목 위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와

내 몸을 더 거세게 끌어안는 두 팔.

그 순간 등 뒤를 꾸욱 눌러오는 가슴.

더욱 격렬해지는 구경꾼들의 눈빛

딸, 조금만 빨리 걷자.


1년 전, 딸의 몸에 흐르던

마물의 피가 각성했다.


정말 그때의 충격은 아직도 선하다.

전 날까지만 해도 어린 소녀였던 딸이

하루아침에 성숙한 여인의 모습으로 성장해 있었고.


인간과 비교도 안되는 강대한 힘을 얻은 뒤.

제일 먼저 한게 고작 나 한테 밥을 차려준 후.

드디어 아빠에게 받은걸 갚아나갈 수 있게 됐다고.

더 이상 아빠는 고생할 필요 없다며.

눈물을 쏟아내던 모습.


‘무슨 소리야 딸… 내가 뭘 해줬다고…’


‘나를 안아주고… 놓지 않았잖아…

아빠, 너무 고마웠어…

이젠 내가 놓지 않을거야… 사랑해 아빠…’


그 때부턴 내가 딸을 보살핀게 아니라

딸이 나를 보살피고 살았다.


내 눈에는 당연히 예쁘고

남의 눈에도 예쁘게 성장한데다

나에게 지극 정성을 다하는

효녀의 정석과 같은 딸.


남들은 수십년에 걸쳐 얻는 

자식 키우는 보람을

몇년 걸리지도 않고 얻은 덕에.

처음엔 매일이 흐뭇했지만.

최근엔 다른 고민이 생겼다.


“에이 씨발… 이럴 줄 알았음 나도 잘해줄걸…”


“저 새끼, 다 알고 키우겠다 나선거구만? 하여간 역겨운 새끼…”


우뚝, 갑자기 딸의 발걸음이 멈췄다.

달라진 공기, 말을 멈추고 시선을 피하는 사람들.

일순간 단단하게 긴장된, 날 끌어안은 팔의 근육.

목뒤를 찌릿하게 스쳐 지나가는 살기.


“따, 딸… 진정해. 무시하고 그냥 가자…”


“하지만 아빠… 저것들이 지금 아빠를…”


“난 괜찮으니까 응? 얼른 집에 들어가자. 아빠 배고프다.”


“…알았어”


나를 향한 사랑은 그야말로 절대적이지만.

타인에게는 그 어떤 마음도 주지 않았다.

아니, 혐오하는 것에 가까웠다.

물론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죽도록 괴롭힌 마을이니

좋은 감정이 있을리 없다는건 나 역시 이해한다.


그나마 딸 자신을 향한 반응은 거의 무시하는 편이었지만

나를 향한 욕설이나 비웃음엔 그냥 넘어가려 하지 않았다.

겉보기엔 평범한 사람이지만, 엄연히 딸은 마족 혼혈이다.

군대조차 참살가능한 힘을 가진 존재다.


나보다 수명이 훨씬 긴 만큼

분명 타인과 사회적 관계를 분명히 맺을 날이 올텐데  

나 외의 모든 인간을 악으로 보고

기분에 따라 죽이거나, 고문하도록 내버려둘 순 없었다.


그래서 정말 간곡히 빌었었다.

다른 사람들 중에도 분명 좋은 사람은 있으니

부디 힘을 함부로 쓰지 말아달라고.


’난 아빠 하나면 되는데…‘


‘그래도 우리 딸… 정말 부탁이야…’


‘아빠는 너무 착해서 탈이야...

 참을테니까 울지마 아빠.’


분명 복수하고 싶을텐데, 복수할 힘도 생겼는데

정작 내가 그걸 막아서는 꼴이었다.


그렇지만 제대로 된 인격을 갖추게 하는 것도 

부모의 역할이기에.

미안함을 삼키고 부탁해야만 했다.


그렇게 오늘도 무사히 산책이 끝나고, 집에 돌아왔다.


”헤헤, 그럼 아빠! 곧 밥 해줄테니까 좀 쉬고 있어!“


이마에 쪽, 볼을 부비부비, 양 팔로 쓰담쓰담.

나를 침대위에 앉힌 후

애정 삼종세트를 쏫아부운 딸이 부엌으로 걸어갔다.


후우우, 그저 딸에게 안겨 돌아다닌 주제에 갑자기 피로감이 몰려왔다.

지금까지는 딸의 인내심이 견뎌주고 있어 다행이지만

혹여나 딸이 폭주 해버리면 어떡할까, 하는 걱정이 낮이고 밤이고 들어찼다.


어렸을 때 부터 지독한 괴롭힘에 시달려 온 탓에

나를 제외하고 극도의 인간불신을 가진 딸


물론 나 역시 비슷한 과거를 지녔지만

그저 힘이 없어 참고 견딘 것이기에

그럴 힘이 있는 딸을 계속 통제하는건 분명 좋지 않으리라

없어서 못하는 것과 있는데 안 하는건 느낌이 다르니까.


‘뭔가… 방법이 없을까…’


아직 서른도 안됐는데 벌써 늙었나

분명 바로 서 있던 등은 어느새 침대에 맞닿아 있었고.

끔뻑, 끔뻑. 점점 느리게 덮이던 눈꺼풀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다시 떠지지 않았다.


——————————————————



“아빠! 소금이 떨어져서 잠깐 나갔…“


그녀는 급격히 목소리를 낮췄다.

곤히 잠든 아빠를 깨우면 안되니까.


’후후… 많이 피곤하셨나봐‘


문득, 그의 몸에 시선이 갔다.

남자 치고는 왜소한 체구

1년 가까이 쉬게만 했음에도 

여전히 손과 발에 자리잡은 굳은살

그녀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삶을 떼어준 흔적들


그녀의 뺨을 가르고 눈물이 뚝, 바닥에 떨어졌다.

입술을 깨문 후 다급히 몸을 돌렸다.

혹시 소리를 내면, 그가 듣고 깰지 모르니까.


‘내 평생을 바쳐 갚을게… 사랑해 아빠…‘


다짐을 마친 그녀는 배시시 웃으며 문을 열었다.

하지만 조금씩 마을이 보이기 시작할 무렵

그녀의 표정엔 미소가 있던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역겨운 새끼들‘


자신을 죽도록 괴롭혔던데다, 아빠까지 모욕하는 쓰레기 집단.

마음 같아선 다 쓸어버리고 싶었다.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고 싶은 마음이 들 때 까지 고문해도 시원찮을테지만


’…참자, 아빠 부탁이니까‘


후우우, 심호흡을 크게 하며 감정을 다스렸다.

물론 그녀도 그의 심정은 이해했다.

자식이 살인귀가 되는걸 원하는 부모는 없을테니까.


그렇게 저잣거리로 발을 들이자마자

주점에서 거나하게 마시던 건달 셋이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


“뭐야. 혼자왔네? 가출한거야?”


“하긴 그 비리비리한 새끼 뭐가 좋겠어?

아빠랍시고 뭐 하는것도 없을텐데”


“크큭, 나 돈 많은데 어때, 같이 놀래?”


우욱, 현기증과 구토감이 동시에 밀려온다.

자신이 힘이 없던 시절엔 기름을 붓고 불을 던지던 놈들이

지금 와선 온갖 추파를 부리고 있다.

그런 와중에 자신의 아빠는 끝까지 모욕하는 모습.


당장이라도 얼굴을 후려 갈기고 싶어 미칠 노릇이다.

그녀가 꼭 쥔 주먹에서 흐른 피가 바닥에 떨어졌다.


‘됐어… 빨리 소금만 사서 집에 가자’


대꾸조차 하지 않은 그녀는 그들을 피해 걸었다.

자신들을 무시하는 태도에 화가난듯한 건달들이

침을 바닥에 찍찍 뱉어대며, 인상을 팍 구겼다.


“에이 씨벌 비싸게 굴기는…”


“야, 닌 느그 아빠가 진짜 너 사랑하는거 같냐?

그냥 니 와꾸 반반해서 데려간거야“


그녀의 발걸음이 멈췄다.

저 정도면 그냥 짐승 아닌가

인간이 아니니 죽여도 되는 거 아닐까.

온갖 잠념이 머릿속에 들어찼다.


살기가 자신들을 향해 점점 번지는 것도 눈치 못챈 건달들은

여전히 낄낄거리며 떠들기 바빴다.


”진짜 그 새낀 복 받았다니까? 데리고 놀려고 키웠는데 존나 이쁘장하게 자라나고…“


”복권이지 뭐, 우리한테 쳐맞던 새끼가 건방지게 당첨되고 지랄”


“우리가 뱉은 침도 핥던 새낀데 옛날 생각 난…”


그때였다.

그녀가 단숨에 그들에게 다가가

그들 중 한명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고


그들이 아직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

그녀가 손아귀에 힘을 실었을 때

남자의 목이 순식간에 10여 바퀴를 회전해 꼬이더니

같이 돌아가던 머리는 어느순간 뚝 떨어져 

바닥을 굴러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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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오자마자 

그가 누운 침대 앞에서 주저앉았다.

분명 집을 나설 땐 흰 색이던 그녀의 옷은

지금은 불규칙적인 붉은 무늬로 뒤덮여 있었다.


“미안해 아빠… 나 약속 못지켰어…“


그는 아직 잠들어 있어 듣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마치 속죄하려는 듯, 무릎까지 꿇은 채


“아빠가 말 했지? 분명 좋은 인간도 있다고

마을 사람들도 나중엔 분명 반성할 거라고

근데 아닌 것 같아


아빠가 내게 준 순수했던 사랑을 모욕해.

아빠를 괴롭혔던 얘길 자랑스럽게 꺼내들어.

다들 그저 아빠를 괴롭히려 들어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을거야


지금 세상엔 아빠처럼 착한 사람이 없어.

하지만 아빠 혼자 그렇게 착하면 안돼.

모두가 그렇게 되어야 해.

그래야 아빠가 살아갈 수 있어.


그래서 말인데

아빠가 새로운 시작이 되어 줘“


말을 마친 그녀가 일어났다.

그리곤 그의 입술에 키스를 하며

마물의 권능을 그에게 내려두었다.


누군가가 깨워주기 전 까지

결코 깨지 않으며

편안한 숙면을 취하는 권능이었다.


“그럼 아빠, 다녀올게“


그녀가 다시 밖으로 나왔다.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밑에 누가 역키잡물 시나리오 썼길래 갑자기 꼴려서 씀

대회 참가 안되면 탭 옮기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