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비.


검은 비.



검은 비.




검은 비.



검은 비.

검은 달.

검은 해.

검은 땅.

검은 산.

검은 바다와

검은 하늘.


검은 날.


검은 너.

검은 나.




황혼이 물든 하늘에

검게 타오르는 태양을

검은 달이 가리우고.


검은 일식이 세상을 뒤엎으매.

그림자가 온 세상을 덮으리라.


순리는 역리가 되고.

빛은 어둠이 되며.

산 자와 망자가 뒤섞이리.


생명이 있는 자 울부짖고

희고 어린 양은 검은 늑대의 이빨에 유린당하노니.





그대여.


영원한 안식에서 깨어나

이 세상에 다시 부름받은 그대여.


어머니 대지신이 허락하신 잠에서

다시금 이 땅에 끌려나온 그대여.


영겁의 평온과 무의식의 왕국에서

다시금 고통과 쾌락과 감각과 감정의 영역에 발을 들인 그대여.



내가 이리 부르짖노니.

그대를 애타게 찾는 내 목소리를 따라

부디 내 눈 앞에 다시금 나타나기를.


그대의 잠을 방해한 나를 부디 용서하기를.


그대를 잊지 못했던 미련한 이 여인을 용서하기를.

그대를 놓지 못했던 가련한 이 여인을 돌아보기를.





그대여.



일어나. 걸을 수 있겠어?



그대여



정신 차리고. 이것 좀 먹어.

포기하기엔 아직 일렀으니까.

지금까지 잘 했어. 잘 버텼어.


그대여



내가 누구냐고? 

...나는 용사야.

그런 사람이야.



그대여



여기까지 왔네. 더는 돌이킬 수 없겠군.

하지만 적어도 후회는 없어.

너는?



그대여




내 꿈? ....별로 생각해 본 적은 없어.

모든 게 마무리된다면? 아마 그냥 시골에서 농사나 짓고 살지 않을까?

그냥 해 가는대로 살다가...가끔씩 생각나면 술병 하나 들고 밤하늘을 보는거야.

오늘처럼. 

그리고 오늘의 일을 추억하겠지.




그대여




거의 다 왔군.

이제 곧 끝이야.

이 지긋지긋한 전쟁도, 피 볼 일도. 전부 다 끝이야.





그대여





나도 알아...! 마왕성에 홀로 들어가는 게 자살행위란 거 따윈....!

하지만, 하지만 이 길만이 모든 것을 끝맺을 수 있어!

...

넌 할 수 있어.

나 없이도 할 수 있다고. 

나는 널 믿어.

...

그러니까 마음 굳세게 먹어.

이젠 네가 저들을 이끌어야 해.

이젠 네가 저들을 책임져야 해.





그대여





아냐. 그런 영웅은 내가 아니야.


그런 영웅은 지금 여기 있잖아.


굶주려 죽어가던 어린 거지에게 손을 내민, 작은 영웅 말입니다.





그대여





그러니, 엘 레아 황녀 전하.

부디 눈물을 그치십시오.

전하의 손길에 구원받은 하찮은 숨을 다시금 되갚는 것 뿐인 것을, 어찌 그리 슬퍼하십니까





그대여






그러니 이제 다녀오겠습니다.

맹세컨대 반드시 돌아오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눈물을 그치시고.

부디, 만수무강하소서.


















폐하-! 승전보입니다! 

마왕이 목숨을 잃었고, 마족들의 군세가 와해되었습니다-!

그가...그가 해냈습니다..!!










...송구하옵니다, 폐하.

사제단이 최선을 다하였으나...너무..

...예, 폐하....전부 물러나라.














아니되옵니다, 폐하! 절대로 아니되옵니다! 그것은...그것은 금기가 아니옵니까!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영면에 든 망자를 다시 일으키는 주술이라니! 아니 될 말씀이옵니다, 폐하.

마탑은 이 논의를 더는 좌시하지 않을 것이외다!



폐하. 조정과 민심이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폐하. 용사는 그 모든 목숨을 바쳐 이 세상을 구원해냈습니다!

정녕 그의 희생과 용기를 모두 물거품으로 만드셔야겠습니까...!














폐하-! 폐하-! 

즉시 피신하셔야 하옵.....폐하..?




...결국...결국 이런 짓을 저지르고 마는구나, 이 마녀야...!

하늘에서 지켜볼 용사가 지금 널 보면 어찌 생각할...크아악-!




폐하.

부디 용서하십시오.

감히 옥체에 검을 겨누는 불경을.

폐하를 진즉에 막지 못한 불충을.

지금이라도 이렇게나마 속죄하려는 저의 과오를.





그래...!

그럼에도 나는 네년을 막아서겠다!

이 세상을 지키려는 한 명의 검객으로써!

이 세상을 지켰던 용사를 지켜본 한 명의 인간으로써!


















황혼이 타오르는 하늘에

검게 물들어버린 태양을

검은 달이 가리우고.


검은 일식이 세상을 뒤엎으매.

그림자가 온 세상을 덮으리라.


순리는 역리가 되고.

빛은 어둠이 되며.

산 자와 망자가 뒤섞이리.


생명이 있는 자 울부짖고

희고 어린 양은 검은 늑대의 이빨에 유린당하노니.







그대여.


영원한 안식에서 깨어나

이 세상에 다시 부름받은 그대여.


어머니 대지신이 허락하신 잠에서

다시금 이 땅에 끌려나온 그대여.


영겁의 평온과 무의식의 왕국에서

다시금 고통과 쾌락과 감각과 감정의 영역에 발을 들인 그대여.



내가 이리 부르짖노니.

그대를 애타게 찾는 내 목소리를 따라

부디 내 눈 앞에 다시금 나타나기를.


그대의 잠을 방해한 나를 부디 용서하기를.


그대를 잊지 못했던 미련한 이 여인을 용서하기를.

그대를 놓지 못했던 가련한 이 여인을 돌아보기를.




그대여.


용사여.


나의 그대여.

나의 용사여.

나의 정혼자여.


나만의 그대여.

나만의 용사여.

나의 정혼자여.






이제 그만.

눈을 뜨세요.


그대의 아내가.

이리 슬피 울고 있지 않습니까.




"......?"




이만 눈을 뜨고 일어나

그 강인한 팔뚝으로 저를 안으소서.




"....레..아..?"




빛바랜 영광의 왕관을 머리에 쓰고

오래토록 그대를 기다려 온 저에게 입맞춤하소서.




"...나는 분명....?"




저무는 해의 왕국을 뒤로 하고

심연과 망자의 제국을 이끄소서.




"...이게 다 어떻게 된 거야...!"




제국의 군주가 될 그대 곁에

내가 그 배필로 기꺼이 서리다.







아아.

 

그대여.

그대여.



내가 이리 부르짖노니.


그대의 잠을 방해한 나를 부디 용서하기를.


그대를 잊지 못했던 미련한 이 여인을 용서하기를.

그대를 놓지 못했던 가련한 이 여인을 돌아보기를.







설령 그대에게 죽도록 미움받더라도.




".....이게....이게 대체....."





나는 그대 없이는 절대 살아갈 수 없으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