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 관련해서 일을 좀 맡기고 싶은데요."


나는 재떨이에 담배를 짓이기고 의뢰인을 바라보았다. 안 그래도 요새 의뢰가 들어오지 않아서 밀린 월세 내기가 빡빡했기에, 일거리가 들어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받을 터였지만, 과연 눈 앞의 남자가 그만한 돈을 낼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꾀죄죄한 양복, 헝클어진 넥타이, 며칠 동안 면도도 하지 않아 부스스해진 얼굴에 잔뜩 헝클어진 머리, 안각 사이에 잔뜩 낀 눈곱, 여기저기 떡진 것을 보아 며칠 동안 머리도 감지 않았을 것이다. 혹시라도 냄새가 날까 봐 방향제를 뿌렸지만, 불행히도 내가 담배를 참지 못한 탓에 사무실 안은 남자의 홀아비 냄새와 방향제 냄새, 담배 냄새가 뒤섞여 끔찍하리만치 지독한 냄새를 풍겼다.


남자가 손을 꼼지락거리며 나를 흘겨보았다. 머리를 숙인 저 각도에서 보니 잘만 씻고 잘만 차려 입으면 본판은 꽤 괜찮게 생긴 것 같다. 내가 만족할만한 돈을 낼 수 있길 바라며, 나는 다시 품 속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 불을 붙였다.


"정확히 어떤 걸?"

"제 아내가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지 확인해 주셨으면 합니다."

"자세히 말해 보쇼."


남자는 잔뜩 풀이 죽은 목소리로 그의 연애사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는 3년 전, 중소기업과 대기업 사이에 껴 있는 한 회사에 입사했다. 그의 아내는 그의 상사였던 부장. 그와는 5살 차이가 나는 연상녀였고, 회사 사장인가 이사인가 연줄이 있는데다 능력도 좋아서 빠르게 승진했다고 한다.


고개를 숙여 그가 건네준 아내의 사진을 보았다. 샤프한 눈초리와 작고 도톰한 입술, 오똑한 콧날이 어우러져 쿨한 분위기를 풍겼다. 검고 긴 생머리가 잘 어울리는 여자였다. 말총머리도 잘 어울리겠군. 입맛을 다시며 남자를 향해 눈을 치켜올렸다. 확실히 이 남자에겐 아까운 여자다. 그는 내가 아내 사진을 보고 입맛을 다시는 줄 알고 눈살을 찌푸렸지만, 담배 때문에 입이 텁텁해져 그런 것이다. 나는 물 한 모금을 넘기며 남자의 말을 계속해서 들었다.


그는 첫 회식 때부터 아내에게 연심을 품었다고 한다. 하지만 소심했던 그는 아내에게 고백하는 것을 망설였고, 처음엔 그녀도 우물쭈물하고 서투른 그를 꽤 안 좋게 봤다는 듯 했다. 하지만 그는 소심하게나마 그의 마음을 전했고, 그렇게 계속 구애를 하니 그녀도 조금은 의뢰인을 돌아보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그들은 크리스마스 이브 날 둘이 남아서 잔업을 했고, 그 날 아내가 먼저 외식을 제안했다고 한다. 그리고 눈이 맞고, 그대로 밥을 먹고 모텔에 들어가 하룻밤을 보냈다고 한다. 연애는 3년, 그리고 결혼은 1년차가 되었다고 한다. 그 뒤엔 어디서 만나서 뭘 했고, 기념일에 무엇을 줬고, 그리고 뭘 또 했고, 아무 의미 없는 이야기가 이어졌고 나는 한 번 크게 헛기침을 했다.


"이보쇼, 얀붕 씨."

"아, 예."


남자가 지나치리만큼 당황하며 말을 끊었다.


"그래서 결론이 뭐요? 왜 당신 와이프가 간통을 하는 것 같냐, 이 말이야."

"아, 네, 네. 지금 말씀드리겠습니다."


남자는 허둥대며 눈썹을 잔뜩 찌푸렸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을 되살리는 게 꽤나 곤욕인 모양이었다.


부부 사이는 좋았다고 한다. 밤일도 1주일에 4번에서 5번 정도 할 정도로 자주 했고, 부부 간에 갈등도 별로 없었다고 한다. 결혼 생활 6개월 까지는 말이다. 어느 날 아내가 집에 오는 시간이 점점 늦어지고, 어느 순간부턴가 밤일도 그렇게까지 자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같은 회사인데도 왜 몰랐느냐고 묻자, 그가 다른 부서로 옮겼다고 말씀드리지 않았냐는 대답을 듣고 머쓱해져 담배를 한 대 더 피웠다. 그의 쓸데없는 연애사와 함께 흘려 들은 모양이다.


계기가 된 것은 어느 날, 그가 잠든 아내의 휴대폰에 카톡 착신음을 들었을 때였다. 여느 때였다면 아내의 휴대폰을 들여다보지 않았을 테지만, 그 날은 유독 아내가 걱정됐다고 한다. 요새 밤에 늦게 들어오는데 일 때문에 걱정이 많은 것은 아닌지, 너무 자신을 혹사시키는 건 아닐까 하고. 그리고 의뢰인은 아내의 휴대폰 비밀번호를 무심코 봤기 때문에 그걸 기억하고 있었고, 그는 번호를 눌러 아내의 휴대폰을 해금했다. 그리고… .


"모르는 남자한테 사랑 고백이라도 적혀 있었던 거요?"


무심코 던진 말에 남자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머쓱해져 입을 다물었다. 사무실 안에 정적이 감돌았다. 시간과 함께 변하는 것은 점점 짧아지는 내 줄담배 뿐이었다. 나는 담배를 뭉게며 짧게나마 위로의 말을 건넸다.


"미안하군."

"아뇨, 괜찮습니다."


남자는 애써 웃음을 띄웠지만 의례용 웃음이라는 건 딱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제 아내를 미행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불륜 증거를?"

"네."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기대 섞인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기대보다는 절망 쪽에 더 무게를 둔 듯한 시선이었지만. 나는 두 손을 모가 깍지를 끼며 의뢰인을 바라보았다.


"얀붕 씨, 그래서 돈은 얼마나 낼 수 있소?"

"돈 말이지요."

"미행, 도촬, 이런 건 비용이 상당하다는 건 알고 있겠지? 제법 많이 내야 할 거요."

"얼마입니까?"

"1주일에 5백."


남자는 거리낌 없이 가방을 뒤져 책상 위에 종이 뭉치를 올려놓았다. 한 치의 망설임 없는 태도에 잠깐 놀랐지만, 바로 돈뭉치를 낚아채 지폐 계수기에 밀어넣었다. 10번씩 나눠서 세어 보니 5백 하고도 60이 남았다.


"돈이 남는데."

"가지셔도 됩니다."


방금까지도 절망에 젖었던 남자의 눈에 불이 붙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그대로 돈을 금고 안에 밀어 넣었다.


"환불은 안 되는데."

"상관 없습니다."


남자의 얼굴에서 비틀린 미소가 흘러나왔다. 일단 흥신소에 돈을 내고 나니 복수에 대한 그의 열망이 다시 한 번 삶에 의욕을 부어준 모양이다. 나는 수첩을 꺼내 그에게 물었다.


"일단 의심 가는 곳을 다 말해 보쇼."


**********


저기 있군.


사진 속의 여성이 보였다. 역시 생각했던 대로 말총머리가 잘 어울렸고, 그녀의 손엔 남편의 팔뚝이 아닌 다른 남자의 팔뚝이 걸려 있었다. 행복해하는 얼굴로 상점가를 누비고 있다. 나는 조용히 카메라를 들고 그 뒤를 따랐다. 등산용 모자와 조끼를 차려 입고 최대한 사진 작가나 트래커인 것처럼 꾸미고 그들의 뒤를 따랐다. 상점가를 벗어나 그들은 한 양식당에 들어섰다.


나는 창 밖에 서 그들의 모습을 지켜봤다. 둘은 웃으며 오순도순 말을 주고받고 있다. 조용히 카메라를 들었다. 우선 그들이 대화하고 있는 모습을 찍었다. 사진을 찍고 얼마 지나지 않아 꽤 값비싸 보이는 와인이 나왔고, 둘은 조용히 웃으며 건배를 했다. 그리고 한 모금 마시고, 서로의 입술을 서로 맞추었다. 다시 한 번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잠깐 밖에서 오뎅을 먹으며 노가리를 까고 있자 두 사람이 나란히 손을 잡고 식당을 빠져나왔다. 나는 포차 주인에게 천 원짜리 지폐 세 장을 들이밀고 그 둘을 쫒았다. 상점가, 식당가를 차례로 벗어난 그들이 향한 곳은 모텔촌이었다. 둘은 모텔 앞에 서 서로에게 다시 한 번 입을 맞추었다. 이것만큼 확실한 증거는 없을 것이다. 나는 다시 카메라를 들고 중얼거렸다.


"자, 웃으세요…"


**********


나는 그에게 내가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남자의 손이 아내의 엉덩이를 만지는 사진, 둘이 식당가에 들어가는 사진, 남자가 아내의 머리를 붙잡고 모텔 앞에서 키스하는 사진을. 나머지 것들은 보여주지 않았다. 둘이 히히덕거리는 사진까지 보여주기엔 의뢰인의 정신 상태도 걱정됐을 뿐더러, 아직 이 사진들은 쓸 곳이 남아 있었다.


내 증거 사진들을 본 남자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남자는 머리를 부여잡고 고개를 숙여 크게 울음을 했다. 홰까닥 돌아 난장판을 피우지 않은 것엔 감사했다. 그러다간 내 사무실이 남아나질 않을 테니까. 남자는 한참을 울다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두 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퉁퉁 부어 있었다.


"씨발년…… 내가, 내가 얼마나…"


남자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이번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단지 괴로운 신음을 내며 그 자리에 쓰러지듯 엎드렸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를 지켜보았다. 그렇게 그는 한 시간을 더 울다 다시 한 번 고개를 들었다. 한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그의 얼굴엔 10년이란 시간이 흐른 듯 했다.


남자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더 이상 의뢰인의 얼굴엔 슬픔을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방금 전 흘린 눈물로 슬픔이란 감정이 모조리 뽑혀나간 것 같았다. 그는 공허하게 내가 찍은 사진을 집어 가방 안에 넣었다. 퀭한 눈동자가 나와 마주쳤다. 그가 나에게 고개를 숙이며 웃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사장님."


그의 웃음엔 아무 감정도 찾아볼 수 없었다.


"잘 되길 바라우."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품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게 건네 주었다. 작은 상자였다. 나는 고개를 까딱거리고 상자를 열었다. 작은 목걸이가 있었다. 다이아몬드로 보이는 보석으로 치장된 예쁜 목걸이었다. 나는 코웃음을 치며 농을 건넸다.


"나한테 프러포즈라도 하려는 거요?"

"아내에게 주려고 했던 물건입니다.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을 기념하려고 특수 제작한 거에요."


남자가 다시 한 번 웃었다. 방금보단 생기가 있었지만 역시나 아무 감정이 없는 웃음이었다.


"이제 저한테 쓸모가 없는 물건이니까요."


남자는 그 뒤로 아무 말도 꺼내지 않고 내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곤 빠르게 사무실을 빠져 나갔다. 나는 목걸이를 집어 들었다. 상자 속에서 꺼내 자세히 보니 목걸이가 아니라 브로치였다. 브로치 역시 꽤나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었다. 이 금박 장식은 진짜 금일까, 도금일까? 나는 브로치를 비틀어 열었다.


브로치 안엔 유원지를 배경으로 한 풋풋한 커플의 사진이 찍혀 있었다.


**********


다음 의뢰인이 찾아온 건 다섯 달 뒤였다. 이번엔 한 여성이 의뢰를, 아니, 한탄을 하기 위해 사무실을 찾아왔다. 의뢰인의 신원은 빠르게 알 수 있었다. 사진 속의 여자였다. 역시 그 남편에 그 아내라는 듯, 여자는 남자가 처음 사무실을 찾아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퀭한 눈에 헝클어진 머리칼을 하고 있었다. 남자와 다른 점은 그래도 안각에 낀 눈곱은 뗐고, 옷도 잘 다린 듯 구겨진 듯한 흔적은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구겨진 곳은 여자가 세게 붙잡기라도 한 곳이겠지. 아니, 어쩌면 불륜남이나 남편과 몸싸움을 하다 잡힌 것일지도 모르겠다.


여자는 나를 거칠게 노려보았다. 먹이를 노리는 맹수와도 같은 눈빛이었다. 안 그래도 날카로운 눈매로 그런 시선을 보내니 마치 눈이 칼날이라도 된 것만 같았다. 그녀의 입이 비틀리며 떨리는 목소리를 냈다.


"남편이 여기 왔었죠?"

"그건 또 어떻게 알았수?"


부정은 하지 않았다. 여자가 떨리는 손으로 명함을 꺼내 책상 위에 집어던지듯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분명 내 사무실 이름과 함께 내 이름과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 멍청한 양반 같으니, 볼 일 끝났으면 명함은 제대로 처분했어야지. 나는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여자는 내가 담배를 피우는 건 아랑곳하지 않는 듯한 눈치였다. 그보단 내 존재 자체를 원망하고 있는 모양이다. 여자 향수 냄새와 담배 냄새가 섞여 괴악한 냄새를 풍겼지만, 홀애비 냄새보단 견딜 만 했다.


"어차피 이젠 당신 남편도 아니잖아."

"아니야!!"


여자가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머리를 잔뜩 헝클이고서 일어나는 그 꼴은 처녀귀신이나 다름 없었다. 아니, 이미 여러 번 외간 남자한테 대줬을 테니 처녀귀신은 아니겠군. 여자는 숨을 잔뜩 씩씩거리며 나를 노려보다 다시 소파에 주저앉아 얼굴을 감싸며 흐느꼈다. 그녀의 옛 남편 때도 그랬지만, 그녀가 이성을 잃고 사무실을 깨부수지 않아 참 다행이었다.


"난 아직 그 이를… ."


하지만 그녀의 남편 때처럼 한 시간을 허공에 버릴 순 없었다. 그녀가 흐느끼는 동안 난 사무실을 청소하기로 결심했다. 담배가 잔뜩 쌓인 재떨이를 비우고 어지러진 책상을 정리했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할까 생각도 했지만, 또 이 여자가 비명을 지르면 민원이 들어올지도 모르니 그만 두기로 했다. 이것저것 파일을 정리할 때쯤, 마침내 그녀는 울음을 마치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 번 헛기침을 한 다음 그녀의 앞에 앉았다.


"그래서 여기 왜 온거요?"


여자가 텅 빈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팔짱을 끼고 다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요새 담배 필 일이 많군.


"뭐, 날 칼로 쑤시기라도 할 거요?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CCTV도 있으니 엄한 생각 안 하는 게 좋을걸."

"……요."

"뭐라고?"

"도와주세요."


여자가 다시 한 번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펑펑 울고도 흘릴 눈물이 남아 있다는 게 참 신기했다. 하지만 방금처럼 자빠져 울음을 하진 않았고, 닭똥 같은 눈물 방울만을 하염없이 흘리고 있었다. 그렇게 눈물만을 흘리고 있던 여자가 무너지듯 입을 열었다. 그녀가 지금까지 어떤 인생을 보냈는지에 대해.


의뢰인이 증거를 받아간 그 순간부터, 그는 치밀하게 이혼을 준비했다고 한다. 어차피 맞벌이에 같은 회사인데다 개인 용품도 철저히 구별하며 쓰고 있었으니, 재산 분할은 생각보다 쉬웠던 듯 하다. 남자는 아내가 잠든 사이 쪽지 한 장만을 남긴 채 그대로 도주했다고 한다. 내게 오기 몇 달 전부터 이직을 준비하고 있었고, 집을 나오자마자 오피스텔에 계약해 그 곳에서 지내며 회사를 옮겼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가 아침에 일어나자 침실 책상에 놓인 쪽지를 봤다고 한다. 쪽지엔 네 불륜 사실을 알았으니 더 이상 같이 못 살겠다. 이혼 청구서도 써 놨으니 작성한 다음 회사로 보내라, 안 쓰겠다면 법정에서 볼 줄 알아라, 그리도 기타 이혼과 재산 분할에 대한 것이 짤막하게 쓰여 있었다고 한다. 남자는 이미 핸드폰 번호를 바꿨고, 주변인들에게도 소문이 쫙 퍼진 탓에 그녀를 도우려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그런 일을 저지르고도 회사 사장과의 연줄로 계속 회사에 붙어 있다며 업무에 지장이 생기고, 끝내는 좌천될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다 자업자득이지만, 그녀는 납득하지 못한 모양이다. 가엾게도. 나는 그녀의 안일함에 혀를 찼다.


그녀가 불륜을 저지른 이유는 다름 아닌 남편의 사랑을 되돌리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야근이 지속되는 탓에 남편과의 관계도 서먹해지고, 부부의 일도 점점 치루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남편이 여자 동료들과 같이 어울리며 떠드는 모습을 보자 의심이 생겼다고 한다. 남편에게 물어봐도 물론 아니라는 답변을 들었지만 그녀는 믿지 않았다. 누가 불륜을 저질렀다고 솔직하게 말하겠는가, 라는 게 그녀의 주장이었다.


물론 남편이 그럴 리가 없다는 건 그녀가 제일 잘 알고 있었지만, 그렇기에 그녀는 남편을 더 추궁하기보단 그녀도 똑같이 행동하기로 했다고 한다. 남편이 그녀를 되돌아보길 바라며. 하지만 그녀의 불륜의 면죄부가 되어주진 않았다. 처음엔 그저 장단 맞추기로 시작한 불륜이 점점 데이트로 변해갔고, 결국 불륜남과 거사를 치르며 화려하게 선을 넘었다.


"전 아직 그 사람을 사랑해요. 제발, 제발…."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눈물을 흘리는 그녀를 한참을 바라보았다. 담배가 점점 짧아질수록 그녀의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의 양도 많아졌다. 아마 의뢰인은 내가 담배를 다 피면 뭔가 말을 꺼내지 않을까 기대하는 듯한 눈치였다. 결국 마저 담배를 빨아들인 나는 꽁초를 재떨이에 던져버리고 한숨을 쉬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파일을 뒤적거렸다. 그리고 내용물을 책상 위에 집어던지듯 흐뜨려놓았다.


내용물을 본 의뢰인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졌다. 사진은 그녀의 불륜이 적나라하게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웃으며 불륜남과 식사를 하는 사진, 사랑스러운 키스를 나누는 사진, 모텔에서 손을 잡고 나오는 사진까지. 확실한 증거 앞에 그녀의 어깨가 더욱 더 움츠러들었다.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증거를 늘어놓으면 거짓말이다, 조작이다 우기며 내 멱살을 쥐어흔드는 놈들도 여럿 있었으니까. 나는 입을 열었다.


"이게 뭔지 알고 있겠지?"


여자는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금고를 열어 증거품을 꺼내 그녀에게 던져주었다. 증거품은 남편의 사랑에 대한 증거였다. 비록 브로치에 붙어 있던 다이아몬드는 빼 버린 지 오래였지만, 중요한 건 다이아몬드가 아닌 그 브로치에 담긴 사진이었다. 그녀가 그걸 조심스럽게 집어드는 사이 나는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그거는 뭔지 아쇼?"

"이건……"

"당신 옛 남편이 첫 날 기념일인가 뭔가, 아무튼 기념하려고 특수 제작한 건데, 이젠 자기한테 쓸모 없으니까 나보고 가지라더군."


브로치 안을 본 의뢰인은 결국 또 다시 무너지고 말았다. 아마 지금까지의 걱정이 쓰잘데기 없는 오해였던 데다, 선을 넘은 죄책감이 더해진 것 때문이리라. 그녀는 무너지듯 책상 위의 브로치를 붙잡고 쓰러졌고, 남편의 이름을 부르며 하염없이 통곡을 했다. 이대로 울게 내버려둔다면 또 몇 시간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아 나는 그녀를 흔들어 깨웠다.


"그만 질질 짜고 내말 들어보쇼. 저 사진들은 댁 남편한테 보여주지 않았거든?"


의뢰인이 울음을 그치며 나를 올려보았지만, 히끅거리며 허리를 들썩이는 건 멈추지 않았다.


"이렇게 합시다. 증거를 조작하는 거야. 당신 불륜남은 마침 경쟁사의 이사요, 맞지?"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부러 당신 얼굴이 나온 사진은 보여주지 않았어. 그리고 뒷조사로 살짝 엿봤는데 말이야, 이 이사라는 양반은 여성 편력이 꽤나 대단하더군."

"그, 그럼……"

"당신은 이 남자에게 협박당해서 어쩔 수 없이 만난 거지. 증거는 남편에게 건네준 사진, 그리고 조작할 이 사진들. 어차피 이 남자 행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쉽게 납득할 테고, 어떻수?"


여자는 멍하니 나를 쳐다보았다.


"그, 그건 불법……"

"그럼 불륜은 불법이 아니니까 떳떳하슈?"


그녀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나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값은 비싸게 치루게 될 거야. 일단 댁 남편이 낸 의뢰비의 두 배는 내야 할 거요. 속죄의 의미로 말이야. 잘 나가는 회사 부장이라고 하던데 돈은 좀 있겠지?"

"그, 그게, 위자료로 다 준 바람에 돈이"

"씨발, 가지가지 하는군. 그럼 돈 대신 낼 게 있소?"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 몸으로라도 때우겠어요."

"허,"


나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댁 남편이랑 이 이사놈이랑 구멍 동서라도 되라는 거요 뭐요?"

"그, 그런 의미로 말한 게!"

"알았으니까 닥쳐 보쇼."


나는 조용히 품 속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그녀는 내 계획대로 불륜남과 만났고, 증거를 조작할 만한 대화를 녹음했다. 사진도 훌륭하게 조작됐고, 의뢰인은 옛 남편과 만나 사정을 들려주었다. 물론 집주소를 알 수 있었던 건 내 뒷조사 덕분이었다. 그 결과 남편은 아내와 포옹하며 몇 시간을 울었다고 한다. 참 울음이 많은 부부로군. 결국 이사는 성폭행으로 검찰에 입건됐고, 굳이 그 부부의 일이 아니더라도 워낙 저지른 일이 많아 그대로 유죄 판결을 받고 빵에 쳐넣어졌다고 한다.


나는 기분 좋게 고깃집에서 고기를 구웠다. 사람들은 혼자 고깃집에 가는 걸 어려워 한다지만, 이런 일을 생업으로 삼으면 주변에 아무도 남질 않으니 혼자도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당분간 월세 때문에 고통받을 일도 없다는 점이 내 어깨를 가볍게 해 주었다. 어느새 쇠고기 2인분을 후딱 해치운 나는 점원에게 1인분 더 주문하고 휴대폰을 열었다. 문자 메세지가 와 있었다.


「OO은행 얀순 님이 1,000,000 원을 입금하셨습니다.」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맥주를 목구멍으로 쏟아보냈다.

역시 돈은 모든 걸 해결해준다.

물론 사랑도 예외는 아니다.




요새 얀챈에 후회물 많이 올라오길래 한 편 써봄

그 2ch 이혼썰인가 그거 참고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