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기-공시생 1편: https://arca.live/b/yandere/8297847

안녕하세요 주말까지 올리겠다는 약속을 못지킨 쓰레기 얀붕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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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난 곧장 내 마음을 남편에게 전할 수가 없었다. 그러기엔 그와 나 사이에 놓인 장애물들이 너무 많았다.


'최얀진'


언제나 분수도 모르고 남편의 옆에 착 달라붙어선 시시한 농담따먹기나 지껄여대는 꼴을 보고있으면 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남편이 몇번의 고백을 받았던 이후로 이 스토커 같은 년은 몸이 달았는지 단 한순간도 남편 곁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내가 남편에게 말이라도 걸어볼라치면 득달같이 대화에 끼어들어 자연스럽게 남편을 데리고 나가는 그년 때문에 우리의 재결합은 늦어지고만 있었다.


'그리고 그 눈...'


남편 앞에서는 착한 척, 순진한 척 아양떨고 있지만 언제나 나를 보는 그년의 눈빛에는 남모를 우월감이 깃들어 있었다. 자신이 이 남자에게 선택받은 여성이라는 듯 내려다보는 눈빛을 느낄 때마다 내 안에는 질척이는 감정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넌 그이를 가질 자격이 없어.'


나는 그년의 실체를 안다. 아니, 오직 나만이 그년의 실체를 안다. 전생의 그년도 나와 별다를바 없는 년이었다. 주변의 관심을 덜기 위해 남자친구를 사귀라는 년이 제정신일리가 없지 않은가.


난 저년과는 다르다. 난 이미 회귀를 통해 남편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내게 어떤 의미인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런 나야말로 진정으로 남편에게 걸맞는 반려가 될 자격이 있는 것이다. 남편은 저 독사같은 년에게 속고 있는 것이다. 내가, 내가 남편을 구해야만 한다.


나는 이런 생각들을 하며, 마음을 다잡고 조별과제 회의를 위해 카페로 향했다. 카페에 도착하자, 테이블에 남편이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남편을 보자마자 가슴이 따듯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고보니 이 카페... 예전에 둘이 자주 오던 곳이었는데.'


그렇게 아련한 행복감에 젖는 것도 잠시, 남편의 옆에 붙어있는 그년을 보자마자 내 기분은 곧 불쾌감으로 변했다. 남편과의 추억이 저년에게 짓밟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 나는 곧장 그 둘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또다른 장애물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얀순아 이제와?"


야비한 웃음을 지으며 자연스럽게 스킨쉽을 하는 선배를 보며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지금 당장이라도 눈 앞의 이 쓰레기를 치워버리고 싶었지만 아직 때가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참기로 했다. 쓰레기도 쓰레기 나름대로의 활용도가 있는 법이다. 오늘... 오늘만을 생각하며 나는 철저히 계획을 짰고, 그 계획에 어떠한 변수도 들어가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들어가요 선배."


선배는 내가 차갑게 말하자 조금 놀란것 같았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언성만 높여도 벌벌 떨며 눈치만 보던 사람이 갑자기 태도가 돌변했으니 그럴만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약한 나와는 달랐다. 남편은 나 때문에, 내 이기심 때문에 이것보다 훨씬 아팠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이까짓 위협과 폭력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감당할 수 있었다.


어리벙벙해하는 선배를 버려두고 나는 곧장 카페로 들어갔다. 한시라도 빨리 남편과 저 여자를 떼어놔야 했기 때문에.


"다 온거 같으니까 그만 노닥거리고 빨리 시작하지?"


나는 그렇게 말하며 자연스럽게 남편의 맞은편에 자리했다. 쌜쭉해진 그년의 표정을 보자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시선이 그년의 얼굴에서 몸으로 내려가자 기분은 더욱 좋아졌다. 나에 비하면 너무나도 빈약한 몸매, a컵은 되는 지 의심스러운 가슴. 남편은 예전부터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더 좋아했다. 부부관계를 가질 때에도 언제나 내 몸의 굴곡을 사랑스럽다는 듯이 쓰다듬곤 했다.

저런 몸으로 어떻게든 남편을 유혹하려고 했을 그년의 꼴사나운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을 참기 어려웠다.


"오늘 얀순이가 기분이 좋나보네?"


따라앉은 민우 선배가 기분 나쁘다는 티를 팍팍 내면서 비꼬듯이 말했다. 나는 듣는둥 마는둥 하면서 그이에게 말을 걸었다."


"그래서 오늘 뭐부터 할까 얀붕아?"


애정이 담뿍 담긴 내 말에 남편은 잠시 당황한 것 같았지만, 이내 자기가 생각해온 대략적인 진행 방안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민우 선배는 그런 그이가 맘에 들지 않는지 계속해서 딴죽을 걸고 넘어졌지만, 남편은 조리있게 반박하며 회의를 진행해 나갔다. 계속 자신의 의견이 반려되자 민우 선배의 말투는 거칠어져만 갔고 이내 폭발하고 말았다.


"아니 그러니까 그게 아니라니까? 내가 맞다고!" 


"하지만 선배 여기 논문이나 우리 전공책을 보면..."


"내가 작년에도 이 수업 들었었다고 2학년 따위가 뭘안다고 나대?"


다른 사람의 눈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큰 소리로 외쳐대는 선배의 모습을 보며 나는 한마디를 보탰다.


"근데 선배 이 과목 F 맞아서 재수강하는 거잖아요. 제가 듣기에도 얀붕이가 말하는 게 더 맞는 거 같은데?"


예상치 못한 일격을 받은 선배는 잠시 할 말을 잊은 것 같았다. 언제 그가 이런 대접을, 그것도 자기 여자친구라고 생각햤던 사람에게서 받아봤을까.


"뭐, 뭐? 너 지금 뭐라고 그랬냐?"


분노와 모멸감으로 몸을 떨던 선배가 간신히 내뱉은 말에 내가 다시금 쐐기를 박아넣는다.


"아니 그렇잖아요, 선배보다 얀붕이가 중간고사 더 잘봐서 조장이 된건데 이런 건 조장 의견을 따라야죠. 떼를 쓰는 게 아니라."


선배는 내 손목을 거칠게 붙잡고는 나를 카페 밖으로 이끌었다.


"나와. 나와 이 개년아. 이 씨발 좆같은 년이 말로 했더니 내가 우습냐? 오늘 아주 작살을 내버리게 나와."


"선배 그 손 놓으시죠."


나를 끌고 나가려는 선배를 남편이 막아섰다.


"우리 커플 일에 끼지 말고 꺼져 병신아."


그렇게 옥신각신 하기를 잠시, 짜증이 날대로 난 선배는 자신 앞을 막아서는 남편에게 거칠게 주먹을 날렸다.


"꺄아악!"


얀진이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이 비명은 남편이 민우 선배의 주먹에 맞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얀순 선배 괜찮아요?"


"얀순아 괜찮아?"


내가 대신 맞았으니까.


갑작스럽게 내가 끼어들자 당황한 선배는 내지른 주먹을 내 얼굴에 적중시키고 말았다.


"얀순 선배 머리에서 피나요!"


"빨리 119 불러 119!"


피가 흐르는 내 머리를 감싸안은 남편의 온기를 느끼며 나는 고개를 떨궜다.


"얀순아? 얀순아! 고개 좀 들어봐 얀순아!"


남편은 내가 걱정되는 듯 연신 내 이름을 불러댔지만, 나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야 고개를 들면....







웃고 있는 내 얼굴을 들킬테니까.


모든 것이 너무나도 딱딱 맞아떨어져 준 것에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야말로 최상의 시나리오 였다.


 나는 오늘 민우 선배를 치워버릴 계획을 세웠다. 어차피 내가 민우 선배를 통해 얻고자 했던 것은 학과의 우호적인 여론이었다. 민우 선배가 내게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한 것은 나에게 오히려 기회가 되었다. 누군가가 민우 선배가 내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목격하기만 해준다면, 나는 가련한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를 연기하면서 빠져나오면 된다.


거기에 더해 나는 이 상황을 이용해 남편에게 다시 접근하고자 했다. 이런 폭력 상황을 다름아닌 그가 목격하게 된다면 그의 성격상 절대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다. 그렇게 남편과 민우 선배가 다투게 됐을 때, 남편을 대신해 민우 선배의 폭력에 노출 된다면? 소기의 목적도 달성하면서 남편을 묶어둘 수 있을 것이다. 남편은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었다. 내가 자신 때문에 다쳤다고 생각한다면 그에 대한 책임감을 느껴 내 곁에 남아줄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나...나는 이러려던 게..."


이제야 머리가 식은 건지, 민우 선배는 말을 더듬거리다가 이내 도망치듯 카페를 나가버렸다. 남편이 그런 그를 쫓아가려했지만, 나는 남편을 만류했다.


"무서워.... 내 곁에 있어줘...."


나의 가냘픈 목소리에 남편은 다시금 나를 껴안아 주었다.

나는 그렇게 앰뷸런스가 오기 전까지, 남편에게 안겨있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