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순이는 내 친우(親友)의 여동생이었다.


 나이는 나보다 네 살쯤 어렸던가.


 나와 친우, 그리고 얀순이는 늘 같이 다녔다.


 우리는 모두 전쟁에서 부모님을 잃었다.


 우리가 의지할 사람이라곤 서로밖에 없었다.


 얀순이는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하고, 병치레도 잦았다.


 어릴 때 심하게 아픈 이후로, 병은 나았지만, 불행하게도 눈이 멀고 말았다.


 우리는 그녀의 눈을 치료하기 위해 열심히 돈을 모았다.


 그러나, 전쟁통에 그녀의 눈을 고칠 수 있는 의사를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나마 수소문 끝에 수도 출신 의사를 소개받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치료비는 도저히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비쌌다.


 나와 친우는 얀순이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는 사실에 무력감을 느꼈다.


*


 얀순이는 오빠를 참 잘 따랐다.


 어릴 때부터 의지해서 그런지, 모든 일에서 오빠를 가장 우선시했다.


 가끔은 일반적인 남매의 사랑, 그 이상인 것도 같았다.


 친우 역시 여동생을 정말 아꼈다.


 겉으로는 귀찮아했지만, 늘 여동생을 위해 무엇인가 해 주려고 애썼다.


 나는 형제자매가 없었기에 둘의 사이가 조금 부러웠다.


 눈이 보이지 않게 된 이후 그녀는 간신히 운영되고 있는 구호원에 들어갔다.


 비록 예전처럼 밖에 나가서 같이 놀 수는 없었지만, 우리는 구호원에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얀순이는 구호원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우리가 다른 구호원 아이들, 특히 여자아이들과 노는 것도 격렬하게 싫어했다.


 우리가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할 때도, 얀순이는 오빠를 잡고 한참 동안 놓아주지 않았다.


 그런 모습이 어딘가 가엾고, 사랑스러웠다.


 나는 조금씩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다.


*


 신은 얀순이에게만 잔혹하기 그지없었다.


 그녀가 또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와 친우는 일을 내팽개치고 곧바로 구호원으로 달려갔다.


 “얀순아!”


 문이 부서질 것 같은 정도로 세차게 문을 열었다.


 얀순이가 침대에 누운 채로 멍하니 소리가 난 쪽을 응시했다.


 처음에는 그녀가 아무렇지도 않은 줄로만 알았다.


 “오빠……? 얀붕 오빠……?”


 위화감이 느껴졌다.


 그녀의 발음이 조금 부정확했다.


 “뭐라고 하는 거야? 안 들려…….”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이었다.


 친우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얀순아, 우리 왔어.”


 나는 뒤에 서서 바보처럼 입을 열었다.


 그녀가 내 말을 들은 기색은 없었다.


 “오빠, 거기 있는 거야? 있으면 대답 좀 해줘…….”


 친우는 참고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나는 그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헛웃음을 지었다.


*


 “야, 얼굴에 웬 상처냐?”


 그로부터 몇 주가 지났다.


 일이 끝나고 오랜만에 친우와 함께 구호원으로 가는 길이었다.


 나는 그의 얼굴에 난 상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아, 이거? 그게 말이야…….”


 친우는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말하기 곤란한 사실을 말해야 할 때 나오는 그의 버릇이었다.


 “얀순이한테, 혼났어.”


 “혼났다니?”


 “……나, 군에 들어가기로 했어.”


 그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내 표정이 급속도로 굳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군……?”


 “어. 사실을 말했더니, 갑자기 칼을 휘두르더라고.”


 “…….”


 “나 참, 그런 건 또 어디서 구했는지. 눈도 안 보이면서, 못 가게 할 거라고. 나를 불구로 만들어 버릴 거라고. 그러더라.”


 시력에 이어 청력까지 잃은 이후로, 얀순이는 점점 더 오빠에게 집착했다.


 그녀는 한시라도 오빠와 떨어져 있고 싶지 않아 했다.


 겨우겨우 설득해서 평일 오전 시간에만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나머지 시간에는 계속 얀순이와 함께였다.


 나는 얀순이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친우가 일하지 못하게 된 만큼, 내가 더 열심히 일했다.


 구역질이 날 정도로 힘들었지만, 아무 상관 없었다.


 그렇게라도 두 사람이 소중한 시간을 보내기를 원했다.


 그런데, 그는 지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었다.


 “너…미쳤냐?”


 “…….”


 “얀순이가…혼자 남을 얀순이가, 불쌍하지도 않아?”


 나는 분노를 간신히 억누르며 그에게 일갈했다.


 그는 냉소적인 미소를 지으며 맞받아쳤다.


 “아니? 내가 더 불쌍한데.”


 “뭐?”


 “지금까지 장님에 귀머거리인 여동생 돌보느라, 낭비된 내 인생이 더 불쌍해.”


 “뭐라……고?”


 “그리고 얀순이 집착도 이제 슬슬 지겨워져서 말이야. 걔 때문에 나 여자도 한 명 못 만났어. 나도 이제 군대 가서 간호사들도 좀 만나고 그래야지. 걔는 나 없이 사는 법을 좀 배워야…….”


 “이 개새끼가!”


 욕설보다 먼저 주먹이 나갔다.


 인형처럼 힘없이 친우가 나가떨어졌다.


 벌겋게 부어오른 볼의 상처가 터져 그의 얼굴에서 피가 흘렀다.


 그는 마치 나에게 맞은 것이 당연하다는 듯, 무덤덤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꼭, 그래야 했었냐고…….”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내가 맞은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눈물이 나왔다.


 “미안하다, 이런 인간이라서.”


 그는 손등으로 흐르는 피를 닦으며 중얼거렸다.


 조용히 내 옆을 지나치는 친우의 얼굴을, 나는 두 번 다시 볼 수 없었다.


*


 다음날, 정말로 친우는 말도 없이 떠나고 말았다.


 나는 그가 살던 작은 오두막집으로 향했다.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그곳은, 여전히 어릴 적의 추억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나는 삐걱거리는 나무문을 열었다.


 화기애애한 남매의 웃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낡은 책상 위에는 신문 기사와 편지 두 통이 놓여 있었다.


 [극동 전선 최전방 징집 중, 보험금 보장.]


 신문에는 전시 상황을 고려하여, 최전방에 지원하는 자들에게 적절한 보수와 사망 시 보험금도 지급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 액수는, 수도 출신 의사에게 얀순이를 맡길 수 있을 정도의 금액이었다.


 “…….”


 나는 신문을 내려놓고 편지 두 통을 집어 들었다.


 수신인은 나 그리고 얀순이었다.


 나는 얀순이가 받을 편지는 품속에 넣은 뒤, 내 이름이 적힌 편지 봉투를 열었다.


 그 녀석의 투박한 필체로, 몇 마디 말이 쓰여 있었다.


 ‘얀붕아, 미안하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솔직해질 수 없는 것도 있더라.


 그래도 내가 마음을 굳게 먹을 수 있었던 건, 네가 있었기 때문이다.


 얀순이는 분명 슬퍼하겠지. 다음에 만났을 땐 날 죽이려고 할지도.


 그래도 난 믿는다.


 언젠가 얀순이도 나라는 좁은 세계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상에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을 거라고.


 네가 그걸 얀순이에게 가르쳐 줬으면 한다.


 얀순이를, 잘 부탁한다.


 그리고, 꼭 살아서 보자.’


 편지를 잡은 두 손이 떨렸다.


 나는 그를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휩싸였다.


*


 세월이 흘렀다.


 나는 친우가 쓴 편지를 얀순이의 손바닥에 찬찬히 써 주었다.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갈 때마다, 그녀의 눈에서 소리 없는 눈물이 흘렀다.


 처음에는 그렇게 힘들어하던 얀순이도, 이제는 오빠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집착하는 모습도 더는 보이지 않았다.


 또 점차 구호원 아이들과 어울리기 시작하기도 했다.


 나는 안심했다.


 그녀는 내 생각보다 강한 아이였다.


 하지만 내가 그녀를 찾아갈 때마다, 그녀의 목소리는 조금씩 떨렸다.


 여전히 오빠를 잊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가 오빠를 떠올리지 않게 하기 위해, 점차 그녀를 찾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몰래 돈을 부치는 것이 전부였다.


*


 또 세월이 흘렀다.


 마침내 그가 돌아왔다.


 “얀붕 씨 맞나요?”


 “네, 그렇습니다만?”


 “아아, 친구분이 신변에 문제가 생길 시 당신한테 전해지도록 해 놨더군요. 받으세요.”


 신변에 문제가 생겼다는 말에, 가슴이 철렁거렸다.


 나는 조용히 집배원이 건넨 봉투를 열었다.


 ‘실종……확인서…….’


 친우는, 전장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군번줄과 시신이 모두 발견되지 않아, 국고 재정 상 보험금 지급이 보류되었다는 통보와 함께.


 한 마디로, 개죽음을 당한 셈이었다.


 “…….”


 분노. 허탈감. 절망감. 상실감.


 어떤 말로도 이 감정을 형용할 수 없었다.


 나는 해가 저물 때까지 그 자리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


*


 오랜만에 찾은 구호원은 여전히 시끌벅적했다.


 아이들이 나를 둘러싸며 누구를 찾으러 왔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얀순이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익숙한 건물에 들어가, 익숙한 계단을 오르고, 익숙한 문 앞에 섰다.


 그러나 익숙하게 문을 열 수는 없었다.


 얀순이를 보는 것이 너무나도 오랜만이었다.


 나는 잘 전달할 수 있을까?


 친우가 나에게 했던 부탁을, 잘 해낼 수 있을까?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마음을 안고, 나는 문을 열었다.


 “…….”


 얀순이는 점자책을 읽고 있었다.


 그녀의 오빠가 그녀에게 선물했던, 낡디 낡은 책이었다.


 문을 여는 소리는 당연히 그녀에게 들리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제는 그녀를 현실로 데려와야만 한다.


 언젠가 친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얀순이 상태가 많이 안 좋아져서, 이제 거의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해.’


 ‘그래서, 갑자기 만지거나 하면 놀랄 수도 있어.’


 ‘그러니까, 우선 얀순이 옆으로 가서 볼에 살짝 바람을 불어 줘.’


 ‘그리고 손을 잡아주면, 아마 나나 너인 줄 알 거야.’


 나는 책에 집중하고 있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의 볼에 살짝 바람을 불었다.


 깜짝 놀란 그녀가 빈 동공으로 내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나는 곧바로 그녀의 손을 잡았다.


 따뜻했다.


 그 투명한 눈망울에서 폭포수처럼 눈물이 흘렀다.


 “오빠, 오빠야……?”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얀순이는 손을 허우적대며 침대에서 떨어졌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무릎에서 피가 흘렀다.


 그녀는 거하게 흐느끼며 내 다리를 두 팔로 꼬옥 껴안았다.


 “정말, 정말로……살아서 돌아온 거야?”


 그녀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눈은 나를 보고 있었지만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보고 싶었어……너무 보고 싶었어…….”


 우는 건지 웃는 건지 모를 표정이었다.


 나는 주먹을 꽉 쥐고 애써 그녀의 눈을 피했다.


 “죽은 줄 알았어……정말 죽은 줄로만 알았어……나 때문에…….”


 꺽꺽대는 목소리로 그녀는 오열했다.


 “내가 오빠를 구속해서 오빠가 떠났던 거지? 잘못했어……이제 다시는 안 그럴 테니까…….”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그녀에게, 나는 차마 진실을 고할 수 없었다.


 “오빠, 오빠아…….”


 ‘어떻게, 말하라는 거냐고, 이 개자식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역시, 무리였다.


 그녀에게 잔혹한 현실을 알려주는 것 따윈, 드넓은 세상을 알게 해주는 것 따윈, 나에겐 불가능했다.


 “나는 그냥 이대로도 좋으니까, 오빠만 있으면 되니까……제발…….”


 “얀순아, 나는…….”


 “아무 데도 가지 마…….”


 “네 오빠는 이미…….”


 “제발…….”


 나의 공허한 외침은, 그녀에게 닿지 않았다.


 나는 깨달았다.


 지금 그녀에게 닿을 수 있는 것은, 그 녀석뿐이라고.


 내가 사랑하는 이를 구원할 수 있는 길은, 나를 버리는 것뿐이라고.


 [걱정 마.]


 나는 자세를 낮추어 그녀를 살며시 끌어안았다.


 나의 울림이 그녀에게 닿기를 바라며.


 [어디에도 가지 않을게.]


 “오빠의 품……너무 그리웠어……안기고 싶어서……매일 울었어…….”


 [이제 평생 같이 있자.]


 “고마워……오빠……돌아와 줘서…….”


 [나도 고마워, 기다려 줘서.]


 “오빠…….”


 “나는, 나……는…….”


 “난…….”


 “오빠……를…….”


 “사랑, 해…….”


 간신히, 그녀가 진심 어린 고백을 내뱉었다.


 그녀가 사랑을 전하려는 사람은 이미 이 세상에 없는데도,


 자신이 그 사랑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그 말은 못내 달콤하고 씁쓸했다.


*


 “오빠, 여긴 어디야?”


 오랜만에 그녀를 이끌고 밖으로 나왔다.


 비록 구호원 앞에 있는 작은 정원이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어느새 눈이 멎고, 봄이 살며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아냐, 내가 맞춰볼게. 정원이지!”


 초록의 내음을 느끼며 그녀가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나는 그녀의 미소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나한테는 한 번도 보여주지 않던 미소였다.


 [응.]


 “와, 맞췄다! 야호!”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그녀는 신나게 웃었다.


 그래, 이걸로 된 거야.


 비록 거짓된 세상이라도…….


 “오빠. 근데……얀붕 오빠는 어딨어?”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자연스럽게 그녀의 휠체어도 멈췄다.


 [얀붕이는 일 때문에 바쁘대.]


 “그렇구나…….”


 쓸쓸한 듯이 그녀는 중얼거렸다.


 ‘미안하다.’


 나는 사과의 말을 속으로 읊조렸다.


 얀순이에게, 그리고 하늘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을 친우에게.


 ‘나는……이럴 수밖에 없나 보다.’


 나 자신을 죽이고, 그녀의 오빠가 되기로 한 날.


 그 거짓말을 했던 날부터, 나는 결심했다.


 비록 세상이 너의 모든 것을 앗아가도,


 비록 나 자신을 잃게 된다고 하더라도,


 내가 너의 전부가 되어 줄게.


 [사랑해.]


 나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손에 세 글자를 썼다.


 그녀가 놀란 표정을 지은 뒤,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도 사랑해, 오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