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다시, 찬찬히 설명해볼까? 그 식당의 재료부터 기자재까지 몽땅 터뜨린 이유를.”


“그 식당은 충분히 그렇게 될 자격이 있다구요. 선생님.

 양고기라고 내온 건, 늙어서 질기고 냄새가 나고.

 피도 제대로 빠지지 않았고

 향신료를 쓰거나 전처리를 하지도 않은데다가.

 그렇다고 저렴하지도 않고

 기름덩어리가 둥둥 떠서는 정말…


 만약 제가 아니라도 미식연구회가.. 아니, 학교의 그 누구든지

 이 가게에 왔다 하더라도,  결과는 똑같을 거에요”


전 지역 어디서나 긴급출동은 5분 이내.

경찰학교든, 선도부든  이곳에 오려면 3분 30초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선생은 과거의 비슷한 상황을 떠올리며 머리를 부여 잡는다.

상가건물 1층엔, 다행히도 긴급소화설비가 제대로 작동했다.

폭발의 중심지인 조리실 일부에서 잿가루만 휘날린다.


“그래, 일단 지금 상황을…”


“도망부터 쳐야죠! 아무리 저라도, 선도부는 싫답니다.”


범행장소에서 탈출은 빠르게.

미식연구회의 회장은 자신의 하는일에 정의가 있어도

사회 통념상 잘못된 일이란걸 인지하는 듯 하다.


그게 더 나쁘다. 


선생은 학생의 교육을 위해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하는지

학생의 손아귀에 이끌려가는 와중에도

갈피를 잡지 못한다.


—-


“자, 회장님! 저번에도 나랑 약속했잖니.

 식사는 조용히

 반듯하게

 예의를 갖추어서.

 혼자 먹더라도, 주변 손님들을 배려하고”


“예의라는건 상호 존중이랍니다.

 그 식당은 저에게 예의가 없었다구요.

 그러니, 저도 챙겨줄 필요가 없죠”


능수능란하게 현장을 빠져나온 범죄자는

훈계를 시작하는 선생에게 말대꾸를 한다.


“그런 가게는 정말… 누구랑 가도 최악이라구요”

오히려 자신에게 그런 경험을 하게 만든 식당 사장에게

분노를 느끼는 미식연구회 회장.


식사란건 누구와 같이 먹는지도 중요하단걸 알지만

그래도 정도라는게 있다.

맛 없는 음식은, 어떠한 미사여구를 붙여도 맛이 없다.


“무슨 가게인데 그래?”


“유목민족에서 유래된 이국적인 음식이라고.

 여기선 먹기 힘든 음식이라니까 한껏 기대햇는데…정말.”


소중한 한끼 식사를 망쳐버렸단 사실에

미식연구회 회장은 분노가 풀리지 않는다.


“흐음…그럼, 오늘 저녁엔 선생님이 만들어줄까?

 진짜 이국적인, 맛있는 양고기 요리를”


“정말요?!”


미식연구회장은 눈을 반짝인다.


“그래, 재료를 구하려면…어디보자…”


“잠시만요!”


선생이 레시피와 재료를 떠올리며 고민하는 사이.

미식연구회장이 전화기를 든다.


“네. 네. 전데요. 부탁을 드리려구요.

신선한 양 한마리하고.

네. 네. 통째로. 긴급으로. 맞아요.


선생님? 더 필요하신건 없으세요?”


도대체 긴급은 뭐고, 통째로 라는건 어떻게 하려는걸까?

선생은 통화하는 학생을 보며 쓴 웃음을 짓는다.


“감자하고, 당근, 파… 소금? 그정도면 되겠다.”


“들으셨죠? 준비는…4시간. 더 빠르겐 안되나요?

 하아. 알겠습니다.


 배송지는…”


‘코우사기 공원으로. 부탁해”


“코우사기 공원으로. 가져다주세요”


미식연구회장은 전화를 끊는다.

선생님을 신뢰하지 못하는건 아니지만. 미심쩍은 눈빛으로, 선생을 쳐다본다.


정원이 딸린 선생의 집무실도 아니고

굳이 공원 한복판에서 무엇을 어찌 해먹겠다는걸까?


“그럼, 우리도 가자.”


“네? 어디로..?”


“4시간 남았다며, 요리할 준비를 해야지”






“선생님… 진짜 이게 맞나요?”


미식연구회장은 계속해서 선생을 바라본다.


요리 준비를 하자며 코우사키 공원으로 온 것 까지는 좋다.

하지만 선생은, 도저히 먹을 수 없는 것들을 한 곳에 모은다.


호숫가에 있던 맨질맨질한 돌 여러개

솔방울,

나뭇가지.

나뭇잎.


아무리 선생이라지만, 

미식연구회장이 기껏 준비한 최고급 양고기,

그것도 6개월령 램을 고작 BBQ를 해먹는건, 미식과는 거리가 멀다.


“어디보자… 얼추 모은 것 같은데?”


“설마, 양고기를 그냥 숯불에 굽는건가요?”


“아니야, 구울거긴 하지만, 지금 생각하는것과는 달라.”


“그러면…”




“뭐야, 선생도 노숙해?

 켁. 테러리스트”


머리에 토끼 귀 모양의 안테나를 쓴 2번 토끼. 분장된 업무는 지정사수.

학교도 다르고 하물며 출신이나 생활상도 거리가 먼 미식연구회의 회장을

대번에 테러리스트 취급을 하며 알아본다.


“호오. 학교도 없고, 소속도 없는 특수부대원이라.

 정말이지. 주인도 목적의식도 없는 부대답군요”


테러리스트가 소속없는 부대원을 까내린다.


이곳 학생들은 이게 문제다.

자신과 다름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고집은 모두가 있는데로 세다.

더군다나, 가장 훌륭하고 직관적인 대화수단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닌다.

스마트폰마냥…


선생은 두 개의 총구가 겨누는 방향 한 가운데를 막아선다.


“자자. 너희도 곧 밥먹을 시간이지?

 혹시… 나이프랑 냄비좀 빌릴 수 있을까?”


“천날 만날 도시락이나 먹는데. 냄비같은게 어디 있어?


“있지. 토끼탕 끓이는 드럼통이라면…”


3번 토끼가 뒤에서 살며시 나타난다.

분장된 업무는….간단히 말해서… 행보관.


“그걸 주면 우리 목욕은 어디서 하라고!”


2번 토끼가 3번 토끼에게 소리를 지른다.


“설마, 그걸 진짜로 주겠어?


선생님 우리도 식솔이 많아서 냄비같은건 안키워. 

대신 탄통이라면 있는데. 철로 된 것”



“그래. 그거면 충분해”


“깨끗하진 않을텐데…요리할 때 쓰려고?”


“상관없어. 닦기만 하면 돼”



미식연구회 회장은 도저히 지금의 대화를 따라잡기 힘들다.

요리의 기본은 위생이다.


천원짜리 붕어빵이라도

10만원짜리 고급 케이크도

들어가는 재료와, 만드는 사람의 전문성이 다를지언정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인건 똑같다.


맛과 가격보다 더욱 먼저 따지는게 위생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선생이 하는 요리준비는 위생과는 거리가 매우 멀다.


미식연구회의 회장의 눈살이 계속해서 찌푸려진다.


“하아. 몰라요 이제. 선생님이 나한테 흙가루 섞인 음식이라도 내오면

 먹고나서 펑펑 울 거예요. 정말”


결국, 공원 한가운데 미식연구회장이 주저앉는다.

배는 고파오고, 약속된 4시간도 거진 다 지나간다.


요리준비는 무슨, 이대로라면 양고기를 날것 그대로 뜯게 생겼다.


“선생님만 믿어보라고. 괜찮으니까”




“선생…님? 

여기서 노숙하시는것 까진 괜찮은데.


 혹시 돌을 드실건가요?

 저희가 통조림이라도 나눠드릴게요”


소대장인 1번토끼가 절찬리 숯불에 돌을 굽는 선생을 바라본다.

10분 전, 커다란 아이스박스를 헬기가 완충제와 함께 공원부지에 투하했다.


원인을 조사하러 와보니.

2번과 3번토끼는 탄통을 닦고 있고

테러리스트는 풀이 죽어서 모닥불만 바라보고


그 위에서 맨질맨질한 돌멩이를 선생이 고기굽듯 뒤집는다.


“하하…돌이다 돌. 살다살다, 돌멩이도 다 먹어보겠네

 맛있겠다…”


미식연구회 회장은 얼이 빠진 채로 모닥불만을 바라본다.


“저녁 같이 먹을까?

 둘이서 먹기엔 양 한마리가 통째로 와선… 힘들겠네”


“야..양고기요? 정말요?”


1번토끼가 먹어보지 못한 식재료에 안테나를 쫑긋거린다.


“괜찮지? 미식연구회 회장님?”


“그럼요. 되고 말구요. 선생님이 저에게 먹일 돌을

 정성스럽게 굽기 시작한 시점에서  저는 뭐든지 괜찮답니다~”


이 테러리스트, 단단히 정신이 나갔다.

선생은 1번 토끼에게 돌을 뒤집던 집게를 건넨다.


“한 5분만 더 구우면 될거야. 

 탄통도 다른 학생들이 다 닦아준 것 같고.


 어디보자.. 양고기를 준비해볼까?”


선생은 아이스박스를 열어 양 한마리를 바라본다.


식당에서 볼법한 잘 손질된 양갈빗대가 아니라

커다란 덩어리로 나누어진 양 한마리.

아이스박스에 같이 놓인, 저 털이 벗겨진 가죽을 다시 씌운다면

지금이라도 이 공원을 뛰어다닐 수 있을 것 같다.


선생은 본격적인 요리를 시작한다.

아무리 그래도, 이 크기론 먹을 수 없다.


그나마 정형사가 부위별로 칼집을 내어 나누어주긴 했지만

큰 덩어리 째로 무언가 할 수 없는건 매한가지다.


“앉아있지만 말고, 이리 와서 도와줘!”


멍한 테러리스트를 그제서야 부르는 선생.


토끼소대에게 빌린 나이프를 닦아서

고기를 조각내기 시작한다.


“아. 선생. 그거 녹슬면 어쩌려구. 기껏 갈아놓은건데!”


2번 토끼가 자신의 컴벳나이프를 든 선생을 타박한다.


하하… 하다못해 정육도도 아니라

군용 컴벳나이프로 고기를 자르다니.

자칭 미식가는 어디서 어디까지 이 요리를 포기해야하는지 알 수가 없다.



“정말이죠?…이게 끝인가요?”


1번 토끼가 조심스럽게 선생에게 묻는다.


“으웩. 그로테스크한데?”


2번 토끼가 있는 그대로의 감상을 내뱉는다.


“돌은 먹는게 아니죠?

 열 전도를 활용해서 내용물을 굽는건가?”


3번 토끼가 유심히 양가죽을 살핀다.


양고기 가죽 안에, 양의 내장과 살코기, 야채 몇 조각을 집어넣어놓고

방금까지 굽던 돌멩이들을 같이 집어넣는다.


내용물이 새지 않도록 가죽을 봉합하고

안에서 잘 섞일 수 있도록 흔들어준 뒤에

불 옆에 놓아둔다. 


“30분이면, 다 익을거야.”


선생은 학생들과 함게 양가죽더미를 바라본다.

가죽 안에 들어있는 뜨거운 돌이, 내장과 고기와 야채와 가죽까지 구워낸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른다.


그리고 가죽 대신 탄통 안에 똑같이 내장과 살코기, 야채 몇 조각을 집어넣고선

모닥불에 탄통을 끓인다.


어쨋든 먹을 수 있게 조리를 했다지만

모양새가 그리 좋지는 못하다.


“이게… 당췌 무슨 요리죠?”


그래도, 자신에게 내어주는게 돌멩이가 아니라는 점에서

미식연구회 회장의 정신이 돌아온다.


하지만, 이런 조리법은 어디에서도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이게 유목민족의 요리다. 그것도 잔칫날이나 먹을 수 있는 요리지.

 이름은... 이게 허르헉, 가죽더미에 있는건 버덕”


허르헉과 버덕,

유목민족의 최고급 요리.


춥고, 건조하고, 영양분을 섭취할 방법이 제한적인 

사막이나 다름 없는 초원에서

유목민들은 산다.


극한의 환경에서, 살아가고, 살아남는다.


양과 말을 방목시키고,

가축들이 먹을 풀을 찾아 1년 365일을 돌아다닌다.


인류 최초의 가축인 양은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버릴 데가 없다.


털은 옷감으로 쓰이고

가죽은 말려서 물건을 만든다.


살은 단백질을 보충해주고

내장은 생존에 중요한 열량을 채워주고

피는 필수 비타민을 공급한다.


유목민 게르에서 만드는 진짜 허르헉과 버덕은

피도 제대로 빼지 않은채로 조리를 하지만

그나마 선생이 하는 허르헉과 버덕은 핏물만큼은 말끔히 빠져있다.


원본에 가까운 허르헉과 버덕은,

금일 12시 35분에 폭파되어버린 식당에서 만들어지고 있었을 것이다. 


유목민은 생고기를 즐겨먹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가축에게서 얻어내는 털, 고기, 내장, 뼈 그 모든것이 거래의 대상이다.

때로는 농경민들에게 약탈을 하기도 하지만

농경사회에서 만들어낸 밀이나 쌀부터, 옷감, 철제 도구를 구하는데 쓰인다.


유목민들이 먹는 식재료는

다 늙고 힘이 없어 겨울을 날 수 없는 양을 도축한 고기와 

사냥으로 얻어낸 작은 짐승들과

어린 가축들이 먹고 남은 유제품이 전부다.


그나마도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건조한 초원의 환경을 이용하여 수분을 극한까지 제거한다.

보존식을 만들어 생존을 대비한다.


결국, 평소에 먹는건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은 육포나

그것을 갈아만든 고깃가루…를 물에 개어 스프처럼 마신다.


초원의 풀은 한정되어 있다.

무턱대고 가축의 수를 불리면, 사람부터 동물까지 싸그리 굶어 죽는다.


이런 혹독한 자연환경해서

다 늙은 양이라 할지라도

가죽과 내장과 고기와 피, 그리고 귀한 곡물이나 야채까지

모두 때려박아 만드는 이 허르헉과 버덕은


유목민족에게 최선이자 최고의 음식이다.


조리방법이 좋게 표현해서 간편한…

어찌보면 야만적이고 그로테스크 한 이유도

여러 조리기구를 준비하기 힘든 유목민족에서 나온 조리법이기 때문이다.


선생은 고기가 익어가는 30분동안

학생들에게 교육을 한다.


어째서 이러한 요리가 생겨났는지

이 음식이 그들의 문화에서 어떠한 위상을 가지는지

유목민들의 문화는 우리와 어떤 점에서 다른지.


시간만 더 있다면, 과거 유목민족이 어떻게 전 세계를 호령했고

그걸 뒷받침하는데 유목민족의 훌륭한 보존식문화가 있었음을 알려줄테지만.


고기가 다 익어간다.


“슬슬 먹을까?”


선생은 나이프를 들어서 양가죽의 배를 가른다.

탄통에 끓이는 것보다. 내부의 뜨거운 돌이 고기를 더욱 빠르게 익힌다.


알맞게 익은 내장과 고기, 각종 야채들, 


국자로 가죽 속을 퍼내자

육수라고도 말하기 힘들정도의 기름국물이

건더기들과 함깨 퍼내진다.


학생들에게 한접시씩 나누어준다.


미식연구회 회장은, 기름국물을 한 입 마셔본다.

내장인지 살코기인지 알 수 없는 건더기를 포크로 집어서.

입에다 밀어넣는다.


“어때. 맛있니?’


선생은 아무것도 모른 채 가게를 폭파시킨 자신의 학생을 바라본다.


“저기…그게…”


솔직히 말해서

점심에 폭파시켰던 그 가게와 별 차이가 없다.


다 늙어빠진 양이 어린 램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냄새가 좀 덜나고, 질긴게 좀 연할 뿐이다.


기름국물은 느끼하고, 야채가 적어서 풍미가 깊지도 않다.

야채를 한가득 더 집어넣고, 후추같은 조미료를 뿌린다면

먹을만 해지겠지만…


드넒은 초원 한복판에서 후추와 야채를 구하는건 불가능이나 다름없겠지.


방금 선생의 강연을 듣고 난 뒤로.

이 음식을 함부로 맛없다고 말하기 힘들다.


문화엔 강약도, 우열도 없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맛이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하는건 주관적인 사안이다.

이 도시에서 자라난 학생들이 겪은 문화는 

인류 문명 전체에 비하면 지극히 제한적이다.


꼴랑 10년 20년을 살아온 자신이

과거 전 세계를 호령한 유목민족의 최고의 음식을

단순히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맛없다 표한하는건


멍청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하. 생각보다 별로지? 그래도 이 친구들은 잘 먹네”


토끼모양 안테나를 머리에 둘러쓴 학생들은

선생이 내어준 접시를 음미한다.


‘스며든다…”


“얼마만에 제대로 된 음식인지 정말…”


“이것이 유목민족의 음식.  좋네요”


선생은 비어버린 학생들의 접시에

기름국물과 건더기를 가죽더미에서 퍼내어 채워준다.


생활이 유목민들만큼 척박한 이 학생들에게

핏물도 잘 빠지지 않고

기름덩어리에

내장에 살코기까지 끓여낸 이 버덕은

몸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열량과 영양소를 채워준다.


식도부터 에너지원을 흡수시킨다.


“근데… 다른 한 명은 어디있니?”


선생은 4명의 토끼 소대에서 가장 몸집이 작은 1학년 학생을 찾는다.


“아.”

“아.”

“아.”


토끼 3명이 서로를 바라보며 책임을 미룬다.


다급하게 1번 토끼가 무전을 날린다.


“4번 토끼. 4번 토끼 나와라.”


[...다들 어디있어….배고파….]


처량한 목소리가 토끼귀모양 안테나를 통해 송신된다.

다행히, 버덕도 허르헉도 아직 한가득이다.



—-


“흐흠. 선생님에게 배운 걸 확인할 뿐이니까요.

 평소 신념을 굽힌건 아니랍니다.”


미식연구회장은 선생의 집무실로 향한다.

아무도 없는 허공에 대고, 이야기를 한다.


‘먹는다. 아니면 죽는다’


식사는 인류에게 있어서 생존이 걸린 가장 중요한 문제다.

연구회의 모토는 인류 문명을 관통하는 대사다.


하지만, 꼭 맛있는 음식이 훌륭한 것은 아니다.


지금 자신이 들고가는 이 보르츠….

아무런 양념도 없이 돌덩이만큼 바짝 말려낸 육포와

그것을 갈아낸 가루를 선생과 먹어보기 위해 들고간다.


나름의 재력을 사용해 비싸게 구한 현지조달품이다.


미식연구회의 다른 인원이라면

비싸다고 엄두도 못내거나

씹고 삼키기도 힘든걸 한 입에 털어넣을 것이다.


선생에게 그 날 못들은 강의를 마저 들을 것이다.

뜨거운 물에 이 육포를 개어내고 불려가며 먹어보면서 말이지.


연구회의 다른 회원들과 먹어보는건 그 다음이다.

선생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해주면서

이 보르츠를 나누어먹으며


[음식이란건 문명의 일부라고,

 누구랑 먹는지도, 맛이 어떠한지도 중요하지만

 이 요리에 어떠한 이야기가 담겨있는지 알아보는것도 중요하단거야!]


라고 선생이 알려준 지식을 자랑해줄 것이다.


다른 회원들은 어떠한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어찌 되었든, 선생의 강의를 듣는게 먼저다.

다른 뜻이 있는것도 아니다.


“선생님~ 저번에 말해준 그 육포를 들고 왔는데….어?”


집무실을 열자. 선생은 혼자 오도카니 집무실 책상에 앉아있다.


서류들을 책상 한 켠에 밀어넣고

도시락을 여는 선생님.


도시락통은 밝은 하늘색이다.

내용물은 샐러드, 고기조림. 토마토,

비닐포장된 시판 드레싱이 같이 담겨있다.


전형적인 여성이 만든 수제 도시락이다.


저건 누가 만들어준 걸까?


천날만날 계산기나 두드리는 양갈래머리?

시녀복이나 입고 다니면서 온갖 먼지부터 문제거리까지 청소한다는 그녀석들?

급양부?

같은 학교인가?

다른 학교인가?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인물들중에서

저런 도시락을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은 한정적이지만


누가 만들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손에 든 고깃조각과

선생이 막 먹으려 하는 도시락이 너무나 비교된다.


가격이야 지금 자신이 들고있는 고깃조각이 훨씬 비싸다.

원재료로 선택된 양고기의 질, 가격은 물론이거니와

이곳까지 배송하기 위해 들인 운반비도 고려해야한다.


맛은 어떨까?

지금 자신이 들고 있는 고깃조각은 분명 맛없기로 유명한 음식이다.

때문에 맛을 비교하는건 적절치 않다.

애초에 문화와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맛만 비교하는게 멍청한 일이란걸

선생이 자신에게 직접 알려준 뒤다.


하지만, 

저 하늘색 반합에 들은 도시락과

자신이 구해온 육포가 너무나 비교된다.


손에 든 쇼핑백이 한없이 볼품없어 보인다.


“음? 누구 왔니?”


선생은 고개를 들어 집무실의 입구를 바라본다.

서류더미가 시야를 가려 보이지 않는다.


할 수 없이 도시락 뚜껑을 닫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누구니?”


계속해서 입구를 향해 자신을 찾은 사람을 불러보지만

반응이 없다.


“뭐지? ….쇼핑백? 택배인가?”


선생은 혼자 오도카니 남은 쇼핑백을 바라본다.

그 안쪽엔, 한 눈에 보아도 고급진 육포가 담겨있다.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이 집무실엔 선생 단 한명뿐이다.


—-

—-


“그래. 밥이나 먹으러갈까?”


미식연구회의 다른 회원들도 지금쯤이면 식사를 마쳤을 것이다.

급양부를 찾아간다 그래도 지금 시간에 식사가 준비되어 있진 않을 것이다.


오늘도 미식연구회 회장은 홀로 산해의 진미를 찾아 나선다.



한 가게에 들어선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오기를 벼르고 있던 고급 정식집

조명도 아름답고

접객원들도 친절하다.


가격도 입지나 재료를 생각한다면 합리적이다.


“여기, 메뉴판에 있는 음식들 전부 주세요”


“네?”


“안들려요? 전부 달라니까요, 전 메뉴를 하나씩”


회장은 아무런 잘못이 없는 접객원에게 짜증을 낸다.

이윽고 접객원은 사람 팔뚝만큼 길어진 영수증을 접어서 가져온다.


15분 정도 기다리자, 음식들이 하나씩 자리에 깔린다.


마치 만한전석을 먹는 서태후처럼

모든 음식을 한 입씩 먹어본다.


굽기도 적당하고

냄새도 나지 않고

간도 잘 베어 있고, 강하지 않다.


재료가 메뉴마다 크게 겹치지도 않으면서

서로가 서로의 맛을 가리지도 않는다.


충분히 맛있다고 생각될만한 음식점이다.


이정도면 충분히 합격점이다.


하지만 짜증이 머리끝까지 솟아오른다.

산해진미를 먹는 와중에도

머릿속엔 계속 그 하늘색 도시락 생각뿐이다.



12분 하고 30초 뒤


주문된 메뉴중 1/3이 나왔을 무렵에

가게에선 큰 폭발이 일어난다.


미식연구회 회장은 유유히 사건현장을 빠져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