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사람과 이어지고싶다고?"


이제 막 마을의 서당을 다니기 시작한걸로 보이는 사내아이가 그렇게 말했다.


"으음... 우리 신사는 딱히 연애쪽을 관장하는건 아닌데."


모리야 신사.


요괴의 산 정상에 위치한 신사로, 파리만 날리는 여느 신사와는 다르게 나름대로 참배객도 있는 잘나가는 신사였다.


그런 유명한 신사이니만큼 어린아이 혼자서 드나드는것도 이상한일은 아니지만.


사랑이라.


재물이나 명예나 장수도 아닌 사랑이라니.


참으로 순수한 아이의 염원에 모리야 신사의 토착신, 모리야 스와코의 입가가 꿈틀거렸다.


마침 벗은 외출중이었고, 이 신사의 무녀또한 이변을 해결하러 신사를 비운 상태였기에 심심하던 찰나.


재밌어 보이는 인간이 재밌는 이야기를 들고 나타난것이었다.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사랑에 눈을 뜨다니. 상대는 서당에 다니는 아이인것이느냐?"


계속해서 물어봐도 돌아오는것은 침묵뿐.


얼굴을 잔뜩 붉힌채로 아무말도 하지않았음에도, 오히려 이쪽에서 파고들 수고를 치룰정도였으니.


"얘기를 하지않으면 신님께서도 소원을 들어줄수가 없지않느냐."


그녀로서는 두눈을 반짝이며 그가 품은 연심의 상대가 궁금했지만, 좀처럼 그가 말문을 열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하여, 그녀는 조금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아아, 이대로라면 질린 신님이 소원을 들어주지 않을지도 모르겠구나."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강경책을 써보자.


화들짝 놀란 아이가 그제서야 조심스레 입을 열기 시작하였다.


개구리 모자를 눌러 쓴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는 소녀.


옛날에 요괴의 산을 오르다 길을 잃어 울상이 된 그를 도와준 소녀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말. 


그 말을 들은 스와코는 그제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어째서 그가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고, 어떻게든 돌려서 말하려고 했는지를.


그가 연심을 품은 상대가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들은 그녀의 반응은.


'곤란하구나.'


다름아닌 당황이었다.


인간과 신, 이라는 차이는 둘째치더라도.


그 나이대의 아이는 원래 좋아하는것이 금방금방 바뀌는 법이었으니.


"그, 그러면 소원을 이루기 위해 매일매일 참배를 하러 신사에 오는것은 어떠느냐?"


지금 당장 그의 마음을 받아주더라도 나중에는 귀찮은 일로 번질것이 분명하였기에.


"백일즈음 온다면 분명 신님께서도 너의 마음에 답해주실 것이니."


나중일로 미루기로 하였다.


어차피, 일주일도 채 지나지 못해서 포기할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     *     *




"역시 어린아이의 사랑이 그리 오래 지속될리가 없지."


한바퀴.


"아니, 그걸 사랑이라고 부를수나 있을까. 자신의 감정조차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나이일터인데!"


두바퀴.


"거기서 받아주었더라면 오히려 일이 복잡해졌겠지. 적당한 말로 돌려보낸 나의 책략은 가히 현자의 것이라 부를 만한것이로구나."


세바퀴.


스와코는 아무런 이유 없이 신사의 주위를 돌고있던것은 아니었다.


그날 이후로 하루도 빠짐없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참배를 하러온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스와코가 내뱉은 말과는 다르게, 그는 자신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착실하게 참배를 하러왔지만.


바로 오늘.


약속한 백일을 채우기 위한 오늘, 그의 발걸음은 끊기고 말았으니.


스와코의 속은 타들어갈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처음 들었던 그의 마음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하루하루 그와 만난 날이 늘어날수록 사라져갔고.


이제는 고백한다면 받아들여주지 못할건 없는 수준으로 발전하였지만.


도대체 이유가 무엇일까.


'나 이외에 다른 계집이 마음에 들었다던가?'


그런 부정적인 생각이 들자 속에서 검은 무언가가 꿈틀거렸고.


카각! 하는 마찰음과 함께 신사의 마루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 직접 만나러 가야겠구나."


계속 이대로 있다가는 신사의 마루바닥뿐만 아니라 신사를 통째로 부숴버릴것 같았기에.


지금 당장이라도 그를 만나러 가겠다고, 그것이 옳은 판단이라고, 모리야 스와코는 생각했다.


자신의 망상이 사실이라면 그를 금이간 마루바닥처럼 만들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사과로도 받아야겠구나.'


신의 마음을 가지고 논 대가로 그정도면 싼편이 아니겠는가.


만약 망상대로라면 단순한 사과로 끝낼 생각은 조금도 없었지만.


그녀는 필사적으로 자기합리화를 하였다.


그렇게 그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기로 생각한 찰나.


신사의 입구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럼 그렇지. 늦잠이라도 잔것이로구나!'


방금까지의 부정적인 생각이 증발하며 스와코는 서둘러 그를 마중나갔다.


"좋은 아침, 이라기 보다는 점심이지. 오늘은 조금 늦었구나!"


벗이 들었더라면 비웃을법한 신난 목소리. 하지만 그녀는 그런것쯤은 조금도 신경쓰지 않았다.


"그래도 아직 늦지않았다, 자자. 서둘러 참배를하러 가자꾸나."


늘 하던것처럼 참배라는 명목으로 그와 수다를 떨며 요괴의 산을 산책할 생각으로 손을 내밀었지만.


그는 고개를 저으며 스와코의 손을 거절하였다.


허공으로 뻗어나간 손.


분명 그의 손이 맞잡아야 할터인데, 어째서인지 오늘은 조금 반응이 느렸다.


주먹을 꽉 쥔채로, 무언가를 다짐한듯한 그의 표정에 스와코는 불안함을 느끼며.


뒤늦게 나온, 오늘부터 참배를 그만두겠다는 그의 말에 그 불안함이 착각이 아니라는것을 깨달았다.


'역시 다른 계집이 생긴거로구나.'


아까 들었던 부정적인 생각이 다시금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어째서 약속까지 하루남은 오늘에서야 참배를 멈춘것이냐. 신에게 빈 소원을 번복한다는것은, 신을 우롱한다는 뜻이더냐?"


두려움에 가득찬 눈길.


어째서 그런 살기를 품은채로 자신을 노려보는지 모르겠다는 무지의 표정.


지금 당장이라도 무릎꿇고 빌어도 모자를 판에 저리도 무지한 모습을 보이자, 어이가 없어 화가 사라질 지경이었다.


"... 되었다. 이유나 말해보거라."


하여 더이상 화를 내는것은 그만두기로했다.


대신, 그를 유혹한 계집에게 대신 벌을 내리기로 결심했다.


신의 공물을 탐한 죄값은 인간의 목숨으로도 갚기 어려운것이었으니.


그정도 대가는 치뤄야하지 않겠는가.


스와코는 그렇게 생각했다.


"저는 스와코 누나랑 참배의 힘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노력해서 소원을 이루고 싶어요..."


떨리는 목소리로 그가 그렇게 말하기 전까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