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무슨 소리야? 이해가 안되는데...'


'지금은 몰라도 돼, 언젠가 알게 될테니까.'


'또 이런 꿈인가...'


분명 기분 좋게 시작해야 할 아침이건만, 요즘 들어 잦아진 괴이한 꿈 때문에 아침부터 기분이 꿀꿀하다. 그리고 더 짜증나는건...


"캐르릉...캐르릉..."


'얘는 뭐 숨소리가 이래?'


내 팔을 배게삼아 곤히 잠들어있는 옥형성 각청, 아무리 연인이라지만 나는 제대로 자지도 못했는데 지 혼자 편히 잠든 모습을 보고있자니 왠지 모르게 짜증이 밀려왔다.


"야, 일어나."


"우우웅..."


"야! 죽순대가리!"


"우으... 내 머리는 죽순이 아니야..."


'이게 진짜...'


도저히 일어날 생각을 안한다, 이 방법만은 안쓰려 했는데 어쩔 수 없네.


"적당히 자고 일어나!! 리월 칠성이라는 애가, 출근 안하냐!?"


"으갸아악!!"


침대에서 일어나 이불을 뒤집어 엎으니 그대로 바닥에 철푸덕 소리를 내며 엎어지는 각청.


"아야야야... 뭐하는 짓이야!!"


"바닥에 카페트 깔아놨으면서 엄살은, 그리고 지금 시간이 몇시인데 이제야 일어나냐? 빨리 씻기나 해."


"모닝 키스."


"뭐?"


"빨리, 안해주면 안움직일꺼...으아아악!"


"이게 아직 잠이 덜 깼나!?"


헛소리에 대한 응징의 아이언 클로, 내 손이 커다란건지 각청의 얼굴이 작은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한 손으로 얼굴 대부분을 잡을 수 있기 때문에 파괴력이 더욱 뛰어나다.


"아우으으..."


많이 아팠는지 얼굴을 감싸며 나를 바라보는 각청, 어쩔 
수 없나...


'쪽'


"에엣?"


"크흠, 이제 됐지? 빨리 씻기나... 우와앗?!"


"에헤헷♡ 사랑해 성찬아!!"


키스 한 번 해줬더니 그대로 나를 끌어안는 그녀, 어째 껴안는 힘이 점점 강해지는 것 같은... 끄아악!!


"야!! 아파!! 적당히 껴안아!!!"


"성찬이는 내꺼야! 아무한테도 안줄꺼야!!"


"그러니까 나는 아무데도 안 간다고!!"


조금 집착이 심한 연인과 정신없는 아침을 보내다보니 꿈에 대해서는 어느새 잊어버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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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뭐지? 마코토에게 바치는 공물인가? 그렇다면 내가 전해... 뭐?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무슨 속셈이지? 그냥 나에게 주고싶어서 주는거라고? 흠... 그렇다면 가,감사히 받으마...'


'아, 여기 있었구나. 그.. 이전의 선물에 대한 답례를 하고 싶어서... 이나즈마의 특산품인 경단 우유다. 네 입맛에 맞으면 좋겠구나. 내 것도 사왔는데
.. 괜찮으면 같이 걸으면서 먹지 않겠느냐?'


'그러고 보니 통성명도 하지 않았구나, 나는 라이덴 에이라고 한다. 너는? 그런가, ----이라고 하는군, 기억해두마.'


"...찬아! 성찬아!"


"으으윽..."


또 이상한 꿈이다. 어지러운 머리를 진정시키려 몸을 일으키니 각청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안좋은 꿈이라도 꾼거야? 온 몸이 식은 땀 투성이야."


"아니, 괜찮아. 걱정하지 않아도..."


"걱정을 어떻게 안해! 요즘들어 잠도 제대로 못잤잖아! 다크서클이 엄청나게 내려왔다고! 안돼겠어, 의원에 가보자."


그렇게 나는 그녀의 손에 이끌려 백출 선생님이 운영하시는 의원으로 발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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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옥형성님, 그리고 성찬님이시군요. 무슨 일로 오셨는지 얼굴만 봐도 알 것 같네요."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도 되죠? 성찬이가 불면증이 심한데 치료받고 싶어요."


"네. 그 전에 몸을 한번 검사해봐야 할 것 같아요, 잠시만 기다려 주실래요?"


-잠시 후-


"몸에는 별 다른 이상이 없네요, 원래 불면증이 신체적인 문제로도 정신적인 문제로도 발생할 수 있는데 성찬님의 경우에는 정신적인 문제가 원인인것 같아요. 혹시 무슨 일이 있었나요?"


"그게... 이전부터 이상한 꿈을 자주 꿨습니다. 리월에 온 이후 한동안은 그런 꿈을 꾸지 않았지만 최근들어 다시 꾸고 있습니다."


"음... 사실 우리가 꾸는 꿈은 대부분 일상생활에 영향을 받아요. 성찬님이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그 기억자체는 무의식속에 남아있어서 꿈에 나오는게 아닐까 하네요."


"이해하기 힘든걸요, 무의식에라도 남아있다면 조금이나마 기억이 나야하는데..."


"확답을 내리기는 힘들지만 분명 어떤 이유가 있을 겁니다, 일단 약을 처방해 드릴테니 드시고 푹 쉬세요."



그렇게 진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각청도 내가 걱정되었는지 팔짱만 낀 채 조용히 걷고 있었다.


나를 괴롭히는 이 꿈이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열심히 머리를 굴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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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그 날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학교에 가서 강의를 듣고, 점심을 먹고, 알바를 하고, 집에 돌아와 조별과제에 고통받다가 기절하듯 잠든것 뿐이었다.



'이건 꿈인가?'



정신을 차려보니 이상한 공간에 있었다. 다다미가 깔려있는 복도가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의식이 있는걸로 봐선 자각몽 같은데... 한 번 돌아다녀봐야지.'



자각몽이라는 현상을 들어는 봤지만 직접 경험해 보는건 처음, 조금은 흥분된 마음으로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아니 무슨 복도가 이렇게 길어?'



기나긴 복도를 정처없이 걷다보니 꿈인데도 슬슬 지친다는 생각이 들 무렵, 눈 앞에 왠 장지문이 나타났다.



'음... 열어봐도 문제 없겠지?'



잠깐의 고민 끝에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그리고 그 방에서 본 것은...



'아아...----, 어째서....'



'이...이건 뭐야?'



방 안의 풍경은 무척 이상했다. 기괴하다고도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마치 박물관처럼 여러 물건들이 투명한 비닐에 쌓인채로 전시되어 있었고 한 쪽 벽면에는 나와 비슷하게 생긴 남자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네 목소리가, 네 숨결이, 네 체온이 느껴지는데... 왜... 왜 나를 떠난 거야...'



더 이상한 것은 방에 있는 여자였다.



자색의 아름다운 머리카락, 눈부신 미모와 풍만한 몸매, 일본풍의 옷을 입은, 한 눈에 봐도 알 수 있을 정도의 엄청난 미인.



하지만 마치 망부석처럼 미동도 없이 주저앉아, 그림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그녀의 모습은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 헉...헉... 깜빡 잠들었나? 무슨 꿈이 이래?"



간신히 깨어나기는 했지만 그 꿈이 도저히 잊혀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날부터, 이상한 꿈들이 계속해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숲은 마코토의 허가가 없으면 들어올 수 없는 곳이다. 즉, 이 숲에 있는 건 너와 나 둘 뿐이지. 조용하지 않나? 서로의 숨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아니다, 이 말은 잊어줘. 내 얼굴이 붉다고? 그..그게 무슨 소리...'



'이 호수에는 몇백년을 산 거대한 물고기가 있다고 하더군, 한 번 잡아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앗 잡혔ㄷ... 꺄아악! 뭐가 이렇게 커!! 어? ----! 잡아먹히면 안돼!!'



'방금 마코토랑 대화한 거 들었다... 어째서 떠나겠다고 하는거지? 여기 있을 자격이 없는 것 같다고? 그게 무슨 소리냐!! 마코토도, 이나즈마도, 그리고 나도... 네가 있었기 때문에 무사할 수 있었어. 넌 충분히 이곳에 머물 자격이 있단 말이다!!'



'미치겠네, 잠을 잘 수가 없어...'



꿈을 꿀 때마다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슬픔과 그리움에 제대로 잠들지도 못한 채 일주일을 보내다 보니 내 몸은 걸어다니는 시체와 같은 상태가 되었고, 결국 길을 건너다 의식이 끊기고 말았다.



'으으... 여긴?'



'아, 아직 움직이면 안돼요. 잘못하면 붙여놓은 뼈들이 다시 떨어질 수 있어요.'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붕대를 잔뜩 맨 채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여기는 또 어디인지 의문으로 가득찬 내게 자신을 백출이라고 밝힌 선생님이 하신 말은 이랬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의원 앞에 엎어져있는 나를 발견하고 상태가 안좋아보여 치료 중 내가 깨어났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 몸은 완전히 나았지만 나에게는 치료비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백출 선생님의 의원일을 돕는 것으로 치료비를 대신하게 되었고 그렇게 나의 리월 생활이 시작되었다.



치료비를 모두 갚은 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던 나는 우연히 리월 칠성의 일원인 옥형성 각청이 수주한 서류 작성 의뢰를 받게 되었다. 서류 작업에는 자신 있었던 나는 의뢰를 완벽하게 수행했고 그녀는 내 일처리 솜씨가 맘에 들었는지 그 자리에서 나를 그녀의 비서로 채용했다. 그 후 여차저차해서 그녀와 연인관계까지 맺게 되었지만 그 이야기는 패스하고.



아무튼, 이렇게 리월에 적응하는 동안 이상한 꿈을 꾼 적이 없었기에, 나는 그 일을 머리 한 구석에 밀어넣고 서서히 잊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다시 꾸게 된거야...'



어째서 그 꿈을 다시 꾸게 된 걸까, 애초에 왜 이런 꿈을 꾸는 걸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지만 시원한 해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 그렇게 걷다 보니 어느새 집에 도착했다.



"성찬아 오늘은 들어가서 쉬어, 일은 나 혼자 해도 되니까."



"그래, 그럼 좀 이따 보자."



각청을 보내고 집에 들어와 침대에 몸을 뉘였다. 의원에서 먹은 약의 효과가 이제야 들기 시작했는지 점점 눈이 감겨온다.



'오늘만큼은 편히 잘 수 있었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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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네... --가네...'



'쿠로가네.'



'!!!'



오늘만이라도 편히 자고 싶었건만, 그 소원조차 과분한 것이었나보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중요한건 그게 아니었다.



"쿠로가네...?"



쿠로가네, 철을 뜻하는 일본어다. 성씨로도 쓰이지만 이름으로 쓰이지는 않는 걸로 알고 있는데...



'어쩌면 이 문제를 해결할 열쇠를 찾은 걸지도 몰라.'



아직 해가 지려면 시간이 남았다. 한시라도 빨리 움직이는 게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겠지.



'하지만 어디서 정보를 얻어야 하지? 아!'



어떻게 정보를 얻을까 고민하던 내 머리에 불현듯 한 인물이 떠올랐다.



'감우님이라면 혹시?'



감우, 삼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모락스와 리월 칠성을 보좌한, 리월의 역사를 만들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존재. 그녀라면 쿠로가네에 대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쿠로가네가 이 티바트의 사람이 맞다면 말이지만...



'빈 손으로 가는 건 예의가 아닐테니 선물로 드릴 청심이라도 사 갈까.'



자연산 청심이 비싸기는 하지만 지금의 나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흠, 어느게 더 신선하려나?'



청심을 사기 위해 나온 리월 시내, 더 신선한 청심을 찾기 위해 여러 상점을 돌아보던 중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성찬씨, 오랜만이네요."



"감우님? 이 시간에 여기에는 무슨 일로?"



"잠시 류운진군을 뵙고 왔어요, 변함없이 잘 지내고 계셨지만요. 월해정으로 돌아가는 길에 성찬씨가 보여서 온거에요."



"아하, 마침 잘됐네요. 감우님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 만나려 했거든요. 혹시 괜찮으실까요?"



"좋아요, 가면서 말해주실래요?"



"네, 그럼 하나만 여쭤볼게요. 혹시 쿠로가네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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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전까지만 해도 따뜻했던 공기가 급작스레 얼어붙는다.



"성찬씨."



아까와는 전혀 다른 차가운 목소리, 무언가 잘못되었다.



"그 이름을, 어디서 들으셨나요?"



"그..그게, 그러니까..."



"어디서 들었냐고 묻고 있잖아요. 변명할 생각하지 말고 똑바로 말하세요."



죽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감우, 그녀의 감정을 대변하듯 허리춤에 있는 신의 눈에서 서리원소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큰일났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일단 감우를 진정시켜야 한다. 안 그러면 진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니까, 어떻게 된거냐면..."



나는 감우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쿠로가네라는 이름을 알게 된 이유, 그리고 나를 괴롭히는 꿈까지.



"... 그 말을 저보고 믿으라는 건가요?"



"믿기 힘드시겠지만 전부 사실이에요. 암왕제군께서 만드신 리월의 법에 걸고 맹세할 수 있습니다."



"음... 좋아요, 믿어드리죠. 단, 거짓말이었다면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겠어요."



다행히 믿어주는것 같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갈까.



"그나저나 방금 전 반응으로 보아 무언가 알고 계신 것 같은데... 말해주실 수 있나요?"



"여기서 하기에는 좀 그러니까 월해정으로 가서 해 드릴게요. 단, 제가 말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겠다고 맹세해주세요."



"맹세하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월해정으로 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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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해정 내부에 있는 감우의 집무실,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걸 보니 감우에 대한 경외감이 커지는 것 같았다.



"방금 전 안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서 죄송해요. 설마 그 이름을 다시 들을거라고는 생각도 못해서..."



"괜찮아요, 그러신 이유가 있을거라고 믿어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감우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눈을 감았다가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쿠로가네님을 처음 만난 건 리월이 세워지고 얼마되지 않았을 때였어요. 수많은 마신들의 난립으로 티바트 대륙자체가 무척 혼란스럽던 시기였죠."



"암왕제군과 비견될 정도로 강력한 힘을 지닌 마신이셨지만 군림하는 것보다는 그저 조용하고 평온하게 사는 것을 소망하던 분이셨어요."



"그 분이 계셨기에 리월은 수없이 많은 멸망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어요. 그 외에도 리월을 위해 하신 일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지금은 전설로도 전해지지 않아요."



"어째서죠? 감우님이 말해주신 대로라면 그 쿠로가네라는 마신은 리월에 있어 둘도 없는 은인일텐데요."



"마신전쟁이 끝나고 전쟁의 피해가 어느정도 수습되었을 때 암왕제군께서는 쿠로가네님께 정식으로 계약을 맺고 리월에 정착하지 않겠나고 제안하셨어요. 하지만 쿠로가네님은 그 제안을 거절하고 대신 한 가지 부탁을 하셨죠."



"자신이 떠나면 자신과 관련된 모든 기록을 지워서 자신의 존재가 잊혀지게 해 달라고요."



"예? 그게 무슨..."



"암왕제군도 저희도 무척 당황스러웠어요. 이유를 물어봐도 사정이 있다는 말만 하실 뿐 다른 말을 하지 않으셨죠."



"쿠로가네님이 어떤 생각이셨는지는 모르지만 부탁은 부탁, 그 분이 떠나신 후 리월에서는 쿠로가네님의 기록을 서서히 지워갔고 그 결과 지금은 일부 선인을 제외하면 그 이름조차 아는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전에 그런 반응을 보이셨군요. 원래대로라면 제가 그 이름을 알면 안되는 것이니까요."



"맞아요. 그런데... 그 이름을 꿈에서 들었다고 하셨죠?"



"네. 이전부터 이상한 꿈을 계속해서 꾸었는데 혹시 그 이름이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내 말을 들은 감우는 골똘히 생각하는듯한 표정을 짓다가 불현듯 나를 바라보았다.



"성찬씨, 혹시 '모든 꿈은 또 하나의 현실' 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아니요? 생전 처음 들어보는 말인데요."



"말 그대로, 우리가 꾸는 모든 꿈은 어딘가에서 일어난 현실이라는 뜻이에요. 그것이 과거든, 현재든, 미래든 말이에요."



"그렇다면 제가 꾼 이상한 꿈들이 모두 실제로 일어난 현실이란 말입니까?"



"가능성은 있어요. 쿠로가네님의 이름도 그 꿈에서 들었으니 그냥 넘어가기에는 미심쩍은 부분이잖아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좀 전에 꿈에 대해 말해주셨을 때 이나즈마에 대해 말하셨죠? 마침 쇄국령도 풀렸다고 하니 잠시 방문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음... 한 번 생각해 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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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우님과 대화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어느새 노을이 지는 저녁이 되어 있었다.



'모든 꿈이 또 하나의 현실이라니... 그렇다고 해도 그 꿈과 내가 무슨 관련이 있다는거지? 이나즈마로 간다고 해서 이 꿈에 대한 해결책을 얻을 수 있는걸까?'



계속해서 나타나는 의문들, 생각을 정리하며 걷다보니 어느새 집에 도착했고 나는 조용히 집에 들어갔다.



"성찬아! 나 왔어!!"



복잡한 머리를 식히기 위해 침대에 누워있다 보니 퇴근한 각청이 돌아왔다.



"몸은 좀 어때? 좀 괜찮아졌어?"



"응, 쉬었더니 어느정도는 좋아진 것 같아."



"다행이다... 배고프지? 금방 저녁 준비할께."



"얻어먹기만 하는 건 좀 그런데, 나도 요리는 할 수 있으니까 같이 만들자."



"응!"



그렇게 같이 저녁을 만들어먹고, 설거지를 하고, 씻고, 하루동안 있었던 일을 나누다보니 어느새 잠들 시간이 되었다.



언제나처럼 같이 자기위해 침실에 들어가니 그... 중요 부위만 간신히 가린 옷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천 조각을 걸친 각청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성찬아... 이리 와서 안아줘..."



"...각청? 그 옷은 뭐야?"



"그... 이국에서 유행한다는 속옷이야. 자주 가는 옷가게의 직원이 추천해줬어. 그것보다... 안 안아줄꺼야?"



나름대로 과감한 유혹이었지만 역시 부끄러운지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져 있는 각청, 평소와 다른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자, 이리와."



각청의 옆에 누워 그녀를 부드럽게 껴안았다. 그녀의 숨소리와 심장박동이 들려온다.



"음... 츄우..."



부드럽게 섞이는 입술과 혀, 나를 절대 놓지 않겠다는 듯이 나를 강하게 끌어안는 그녀.



"성찬아... 이제 슬슬..."



"응..."



격렬하게 서로의 몸을 탐하는 나와 그녀, 우리의 뜨거운 밤은 그렇게 깊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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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청, 해야할 말이 있어."



"응? 뭔데?"



거사를 끝낸 후 서로를 끌어안은 채 침대에 누워있는 우리, 마음같아선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지만 나에게는 매듭지어야 할 일이 있었다.



"나, 아무래도 이나즈마에 잠깐 다녀와야할 것 같아."



"...뭐?"



행복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각청의 얼굴이 서서히 굳는다.



"그게... 왜냐하면..."



나는 그녀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나를 괴롭히는 꿈, 꿈에서 알게 된 쿠로가네라는 이름, 그로 인해 감우님과 상담한것까지 모두.



"...그래서, 그것때문에 날 떠나겠다는거야?"


"나도 널 떠나고싶지 않아. 하지만 난 답을 알고 싶어, 나를 괴롭히는 이 꿈이 어째서 시작된건지."



"... 아무데도 가지 않겠다고 말했잖아... 절대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했잖아..."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미안해, 하지만 영영 떠나는게 아니야. 최대한 빨리 끝내고 네게로 돌아올게. 그리고 절대 떠나지 않을게."



울먹이며 나를 끌어안는 각청, 내 가슴이 그녀의 눈물로 젖어간다. 지금 내가 각청에게 할 수 있는건 그녀를 끌어안고 사과하는 것 뿐이었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정도 진정된 듯 울음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는 각청.



"으흑... 흐아... 알겠어... 그 대신, 네가 약속을 어겼으니 그 대가로 내 소원을 하나 들어줘..."



"무슨 소원인데?"



그녀는 손으로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지금부터 일주일, 나와 잔뜩 놀아줘. 일같은건 잠시 미뤄두고."



"그게 네 소원이라면... 그래, 알겠어."

.

.

.

.

그로부터 일주일 후. 나와 각청은 헐벗은 채로 침대에 누워 민달팽이처럼 얽혀있었다.



"시간이 정말 빠르네, 벌써 일주일이 지나가다니..."



아쉽다는듯 나를 끌어안는 각청.



"그..그러게..."



그녀와 함께한 일주일은 내 인생에서 가장 즐겁고 행복한시간이었지만 한편으로는 힘들고 피곤했던 시간이기도 했다.



낮에는 이전에는 바빠서 가지 못했던 리월의 여러 명소나 맛집, 시장을 돌아다니느라 바빴고 밤에는 집에서 서로를 뜨겁게 탐하였다.



오랜 시간동안 떨어져야 한다는 것에 대한 반동인지 그녀는 평소보다 적극적으로 나를 덮쳤고 그 결과 일주일동안 매일 쥐어짜이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어쩐지 다음 날부터 식탁에 장어랑 아스파라거스, 부추가 매일같이 올라와 있더라니...'



일주일을 먹다보니 엄청나게 질렸지만 그것들을 꾸역꾸역 입 안에 밀어넣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나는 미라가 되어버리지 않았을까?



"저기, 성찬아..."



"응, 왜그래?"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있던 나를 일깨우는 그녀의 목소리. 그녀는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꼭, 빨리 해결하고 돌아와야해... 알았지?"



조금씩 몸을 떠는 그녀를 부드럽게 끌어안으며, 나는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걱정하지마. 반드시, 그리고 최대한 빨리 너에게 돌아올게."



"응... 약속한거다?"



나는 대답 대신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것이 좋았는지 내 품안으로 더욱 파고드는 그녀, 서로의 체온을 만끽하며 우리는 잠에 빠져들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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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이나즈마인가..."



리월에서 3일 정도 배를 탄 끝에 뇌명의 땅이라고 불리는 이나즈마에 도착했다.



"리월처럼 활기차네. 뭐,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지만."



도착시간이 저녁시간대라 그런지 도심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어 왁자지껄했다. 길다면 긴 항해로 피로가 쌓인 나는 곧장 숙소로 발을 옮겼다.



"으그그그극! 우선 짐은 다 풀었고, 그럼 이제부터 어떻게 한담?"



먼저 쿠로가네의 정보를 모아야 한다, 그가 정확히 어떤 존재인지 아는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리월처럼 기록을 지웠을텐데..."



쿠로가네는 분명히  그가 머문 모든 지역의 이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지워달라 요청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를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 부터가 하늘의 별따기겠지.



"어휴... 일단은 쉬자.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돌아다녀봐야지."



그 다음날, 이나즈마의 서점을 뒤져보며 각종 역사서나 기록들을 찾아봤지만 쿠로가네에 대한 이름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역시나 기록이 지워졌구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쿠로가네라는 마신은 광적일 정도로 본인의 기록을 지우는 데 집착한 것 같았다. 마치 본인이 존재하면 안되는 사람인 것처럼.



'... 그런데 여긴 어디지?'



이런저런 생각과 추측에 빠져있다 정신을 차려보니 왠 울창한 숲속에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망할... 길을 잃은건가?'



하다하다 이젠 길까지 잃다니, 생각에 몰두했던 자신에게 속으로 욕지거리를 날리며 숲을 빠져나가려 했지만 걸으면 걸을수록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드는것 같았다.



"허억... 허억... 여긴 대체... 어디..."



결국 숲속을 헤매다 탈진해 버렸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빠져나가야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망...할..."



다리에 힘이 풀리며 그대로 엎어진다. 머리는 일어나라고 아우성이지만 도저히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기껏 연인을 설득해가며 여기까지 왔건만, 숲에서 객사하는 신세가 되다니. 한심한 나 자신을 비웃으며 내 의식은 어둠속으로 떨어졌다.

.

.

.

.

'쿠로...가네? 쿠로가네!!! 어째서... 어째서 날 감싼거냐... 내가... 내가 조금만 더 빨랐어도... 아.. 안돼... 제발... 제발 날 떠나지 말아줘... 아... 아...'



'?!'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킨다. 온 몸이 비명을 지르는 듯 하다.



'뭐지? 아직 살아있는건가?'



몸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억누르며 주위를 살핀다. 바닥에 깔려있는 다다미와 눈에 들어오는 몇가지 가구들, 옛 일본의 집 내부같다.



'보아하니 평범한 집은 아닌것 같은데... 그리고 이 문양은 뭐지?'



뒤늦게 내가 덮은 이불을 살펴보니 알 수 없는 문양이 잔뜩 수놓아져 있었다. 마치 어디선가 본 듯한...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지...'



혼란스러운 머리를 어떻게든 진정시키려 애쓰던 그때, 드르륵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렸다.



"아... 아아..."



"당신은...!"



나를 끝없이 괴롭혔던 꿈에서 본 그 여인, 라이덴 에이가 지금 내 눈앞에 서있었다.



"드디어... 드디어 내게 돌아와줬구나... 쿠로가네..."



나에게 다가온 그녀는 내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나를 끌어안았다.



"알고있다. 네가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걸. 하지만 괜찮다, 이제부터 쭉 함께 있으면서 다시 알아가면 되니까..."



"저... 라이덴님... 저는..."



순간 내 품에 얼굴을 파묻던 에이가 나를 바라본다. 그 얼굴에는 놀람과 기쁨이 담겨있었다.



"기억하고 있었구나..."



"라이덴님... 말씀드려야 하는게... 흡!"



그녀가 손가락으로 내 입을 막는다.



"이름으로 불러줘, 그리고 존대도 금지."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서 무언의 압박을 느낀 나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는 만족스러운 듯 손을 땠다.



"저 에이... 물어보고 싶은게 있는데..."



"무엇이지? 뭐든 대답해주겠다."



"그... 쿠로... 아니, 나는 너와 어떤 관계였어?"

.

.

.

.




내 질문을 들은 그녀는 눈을 감고 무언가를 생각하는듯 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너는... 처음으로 나에게 다가와 준 존재였다."


"널 만나기 전의 나는 그저 그림자에 지나지 않았다. 내 언니를 지키는 것이 내가 존재하는 이유였고 나 역시 그것만이 내게 허락된 행동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우연히 너를 만났고... 내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처음에는 네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기에 너를 밀어냈지만 너는 아랑곳않고 계속해서 나에게 다가왔다. 너는 나를 감싸던 고독을 부수고 나를 끌어내고 무채색에 불과했던 나의 세계에 수많은 색을 입혀주었다."


"너를 볼 때마다 가슴이 욱씬거렸고 네가 다른 여자와 말할 때마다 몸속에서 무언가 끓어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결국 인정했지. 널 사랑하고 있다고."


"하지만 이별은 너무나도 빨리 찾아왔다. 이나즈마를 습격한 마신과의 전투에서 너는 나를 대신해 공격당했고 그 상처로 인해 내 품에서 소멸했다..."


그녀의 몸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나를 끌어안은 팔의 힘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하지만 너는 이렇게 돌아와줬다... 나와 함께하기 위해 내 곁에 와주었다... 이제 영원히 함께해다오..."


"..."


에이의 말을 듣고 내 머리속에서 수많은 생각들이 난무했지만 길다면 긴 고민끝에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그녀가 쿠로가네와 어떤 일을 했든, 어떤 감정을 품었든, 나와 관련 없는 일일 뿐이다. 나는 쿠로가네가 아니니까. 


생각을 정리하고 각오를 다진 후, 나는 입을 열었다.


"에이. 아니, 라이덴님. 말씀은 잘 들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저는 마신 쿠로가네가 아니라 인간 이성찬입니다."


나는 쿠로가네와는 관련이 없는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설령 쿠로가네가 과거의 나라고 해도, 나는 과거로 돌아가기보다 현재를 살고 싶다.


"그리고 저에게는 미래를 약속한 연인이 있습니다." 


리월의 집에서 나를 기다리는 각청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녀가 저를 기다리고 있으니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러니 이 팔 좀 풀어주시겠어요?"


말을 마치고 조심스럽게 바라본 에이의 얼굴은 무척이나 이상했다. 마치 내 말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쿠로가네, 그게 무슨 소리야...? 이상한 장난은 치지 마."


"장난같은게 아닙니다. 저는 쿠로가네와는 아무 관련도 없는 평범한 인간일 뿐입니다."


"아니... 아니야... 내가 느낀 그리움이 잘못 되었을리 없어..."


나를 끌어안은 팔의 힘이 약해진다. 두 팔을 힘없이 늘어뜨린 그녀를 뒤로 한채 문을 열고 나가려던 순간, 등 뒤에서 무언가 빨아들이는 듯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 이건 뭐야?!"


황급히 뒤를 돌아보니 에이를 중심으로 주변의 공간이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또다시 잃어버릴 바에는... 차라리..."


그녀는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내게 손을 뻗었고 나는 도망조차 치지 못하고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

.

.

.



"으윽... 여기는?"


눈을 떠보니 보이는 끝없이 펼쳐진 하늘과 대지, 그리고 거대한 나무 한그루.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여기서 빨리 나가야..."


"탈출구 따위는 없다."


'!'


여기서 빠져나가기 위해 출구를 찾으려던 순간, 에이가 내 앞에 나타났다.


"이곳은 일심정토. 내가 바라는 영원을 위해 만들어낸, 나만이 들여보내고 내보낼 수 있는 세계다."


"그게 무슨...!"


에이가 천천히 내게 다가온다. 그녀가 걸친 옷들이 하나하나 풀어진다.


"네가 기억을 되찾을 때까지, 아니, 되찾지 않아도 상관없어. 네 머리속에 오직 나라는 존재만 남을때까지 넌 여기서 나갈 수 없어."


"오... 오지마!!"


어떻게든 저항하기 위해 주먹을 마구잡이로 내질렀지만 그녀에게 간단히 제압당해 버렸다.


저항조차 불가능해진 나에게 그녀가 속삭였다.


"드디어 이 날이 왔구나... 나의 친우, 나의 구원자, 나의.부군..."


"아...아아..."


"그대에게 맹세하마, 나는 그대에게 순종적인 아내가 되겠다. 그리고 그대의 따뜻한 품에 영원이라는 선물을 한아름 안겨주겠다..."


황홀한 표정으로 입을 맞추는 그녀를 보며, 나는 모든 희망을 버리고 말았다.



마지막 에이의 대사는 노벨피아의 '있을 때 잘해주지...' 라는 작품의 대사를 인용함. 그리고 얀챈 2만 구독자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