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죽을 펐던 국자를 들며 생글생글 웃는 타락 마법소녀.

   

허나 얀붕은 하늘에 맹세코 이 타락 마법소녀를 만난 적이 없었다. 

   

그가 마법소녀들의 관리자로서 만들고 키워 온 마법소녀는 셋 뿐.

   

얀붕을 배신한 바람의 마법소녀, 잠의 마법소녀, 그리고 정의의 마법소녀였다. 

   

무엇보다 그는 동료 마법소녀는 물론, 

   

자신이 키운 마법소녀들에게 절대 마물 외의 지성체를 죽이지 못하게 했다. 

   

배신한 관리자나 마인을 죽일 때는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처치했다. 

   

그녀들이 당당하게 정의로운 마법소녀로 서길 바랐기에.

   

좋아했던 그녀들의 손에 피를 묻히고 싶지 않았기에.

   

악의 제국에게서 마법소녀 협회와 시스템을 지키기 위해 더럽혀지는 이는 자신이면 충분하다 생각했다.

   

허나 돌아온 것은 배신이었다. 

   

머릿속에서 애써 세 마법소녀를 지운 그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저 마법소녀는 TV나 인터넷에서 나를 보고 멋대로 좋아하는 게 틀림없군.’

   

자신의 악질 팬이나 다름없는 악당에게 목숨을 빚을 졌다. 

   

그녀들에게 배신당해 악의 제국의 포로가 된 후. 

   

얀붕은 말 그대로 자신을 지탱해 주던 모든 것을 잃었다.

   

그는 삶의 의욕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마법소녀들에게 복수하려 해도, 그녀들은 이미 관리자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었다.

   

"그냥 죽게 내버려 두지 그랬어."

   

얀붕의 목소리에 울음과 분노가 서려 있었다.

   

타락 마법소녀는 그의 마음을 아는 듯 모르는 듯 천진난만한 미소를 유지했다.

   

그리고 타락의 영향으로 검붉어진 입술을 열었다.

   

“싫어요.”

   

콰앙-

   

그녀의 대답을 들은 얀붕이 주먹으로 상을 내리쳤다.

   

죽이 엎어지고 침대가 더러워졌지만, 타락 마법소녀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얀붕이 어떤 행동을 하든 상관없이 좋아 죽겠다는 표정.

   

“역겨운 새끼!”

   

그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내가 죽는 꼴은 보기 싫다? 그래서 평생 가둬 키우려고? 역시 악인답군. 

   

악의 제국이건 인간이건... 너희 같은 종자의 사고방식은 언제나 똑같았지. 

   

남들이 어떻든 지들만 행복하면 그만인 이기적인인간 말종들!”

   

얀붕은 항상 마법소녀들에게 다정했던, 모범적인 관리자답지 않게 울분을 토해 냈다. 

   

타락 마법소녀는 그의 일갈을 듣고 풀이 죽었다. 

   

“그건 아닌데...”

   

그녀의 머리카락을 장식한 리본이 타락 마법소녀의 감정을 반영하듯 추욱 늘어졌다. 

   

상이 아닌 타락 마법소녀를 치려고 했던 얀붕의 주먹이 멈칫했다.

   

수많은 배신과 고문을 거쳤지만 얀붕의 심성은 변하지 않았다. 

   

고난과 역경을 겪고도 여전히 바르고 올곧은 그는, 자신을 구해준 소녀를 때릴 수 없었다. 

   

얀붕은 천천히 주먹을 내렸다. 

   

“그럼 너는 내가 어떻게 되길 바라는 거지?”

   

그는 타락 마법소녀가 어떤 대답을 할지 두려워졌다.

   

그녀는 자신을 가지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다. 

   

잠든 자신을 해치거나 범하지도 않았다. 

   

도대체 무엇을 바라는지 알 수가 없어서 두려웠다. 

   

한참 동안의 침묵이 이어지고, 우물쭈물거리던 타락 마법소녀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저는 얀붕 관리자님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내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당연하죠. 좋아하는 사람이 불행한 걸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아, 있었구나! 그 쓰레기 같은 마법소녀 년들.”

   

자신을 배신한 마법소녀들을 저격하는 말투.

   

그녀도 얀붕처럼 세 마법소녀들을 증오하고 있었다. 

   

타락 마법소녀는 그에게 되물었다. 

   

“관리자님은 행복해지기 위해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

   

얀붕은 떠올렸다. 

   

행복.

   

얻기 쉬우면서도 어려운 것.

   

얀붕은 고작 10대 후반의 나이에 마법소녀 관리자로서 각성했다.

   

지구가 위기에 빠졌는데 학교에 다닐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는 그동안 관리자의 의무를 다하느라 얻지 못했던 행복들을 떠올려 보았다. 

   

악의 제국이 패망하고 평화로워진 지구.

   

다니지 못했던 학교에 다니고,

   

자기 또래들처럼 PC방에 가거나 술을 마시는 자신.

   

그 옆에는 친구들이 있다. 

   

배신당해 악의 제국에 잡혀가기 전에는 마법소녀들의 얼굴을 한 친구들이었다. 

   

허나 그 친구들의 얼굴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얀붕은 행복한 자신의 모습을 지우고 대답했다.

   

“...복수.”

   

“네?”

   

“악의 제국에 복수하고 싶어. 

   

지구를 침공해 인류가 살 곳과 자유를 앗아간 놈들이 자기들이 했던 것의 열 배, 아니 백 배로 고통 받았으면 좋겠어.

   

그 후에는 학교도 다니고... 농구랑 게임도 하고... 바에서 비싼 칵테일도 마셔 보고 싶어...”

   

모두 지금의 얀붕은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그는 한없이 슬퍼졌다.

   

자신이 원하는 것들이 그저 허상에 지나지 않아서.

   

어느새 눈물이 얀붕의 뺨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타락 마법소녀는 말없이 그런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얀붕을 갑자기 껴안거나 가까이 다가와 눈물을 닦아 주지 않았다. 

   

타락 마법소녀는 한 사람을 납치 감금한 악당 치고 물렀다.

   

그녀는 얀붕이 싫어할 까봐 신체 접촉조차 하지 않았다.

   

타락 마법소녀는 그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할 뿐이었다. 

   

“그럼 도와드릴게요. 복수도, 농구도, 게임도, 흠... 그리고 칵테일 마시는 것도요.”

   

“...날 도와준다고?”

   

“그럼요! 저는 관리자님의 행복을 위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

   

타락 마법소녀는 손을 모으고 한 바퀴 빙그르르 돌았다. 

   

자신이 타락 마법소녀가 아니라 정의를 지키는 히어로가 된 것처럼.

   

얀붕은 하늘하늘 휘날리는 그녀의 드레스와 리본을 보았다. 

   

그녀는 진심이었다. 

   

빙글빙글 돌고 있으면서도 붉은 눈동자는 오직 얀붕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쩌면 연기일 수도 있다. 

   

얀붕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일이 질린다면 순식간에 돌변해 자신의 욕망을 채울 것이다.

   

허나 지금 그의 편이라고는 타락 마법소녀밖에 없었다.

   

얀붕은 반 토막이 난 오른팔 대신 왼팔을 내밀었다.

   

“그럼 잘 부탁한다.”

   

“저, 저한테 악수를 청해 주신 건가요? 영광이에요!”

   

타락 마법소녀는 그가 내민 손을 잡고 위아래로 흔들었다. 

   

“이 손 평생 안 씻을래요!”

   

그것도 부족한지 팔짝팔짝 뛰었다. 

   

질퍽.

   

그러다가 그녀는 바닥에 흘린 죽을 밟고 미끄러졌다. 

   

“꺄아아악!”

   

“괘, 괜찮아?”

   

“저는 괜찮아요! 타락 마법소녀지만 마법소녀니까요! 관리자님 앞에서 못난 모습을 보여드렸네요.” 

   

“미안하다. 방 치우는 거... 도와줄까?”

   

“얼마든지요!”

   

복수의 첫 걸음을 내딛기 직전.

   

몰락한 관리자와 타락 마법소녀는 더러워진 방을 치웠다.

   

□□□□□

   

 감금 2일차.

   

타락 마법소녀는 얀붕의 눈앞에 액정에 금이 간 휴대폰을 내밀었다. 

   

“찾았어요! 바람의 마법소녀 SNS!”

   

“바람의 마법소녀라고?”

   

“네! 충전기 살 돈이 없어서 오래 걸리긴 했지만, 어쨌든 찾아 냈네요!”

   

악의 제국이 사들인 호텔 수영장에서 비키니를 입고 튜브 위에 여유롭게 누워 있는 바람의 마법소녀.

   

머리카락이 엷은 연두색인 것을 보니 변신복을 벗어 두고 맨몸 위에 수영복을 입은 것 같았다. 

   

인류와 마법소녀 협회, 그리고 팔아넘긴 대가로 호의호식 하는 모습을 본 얀붕의 속에서 뭔가가 끓어올랐다. 

   

허나 그는 눈을 감았다. 

   

「솔직히 다른 애들과는 달리 관리자님한테는 고마워하고 있어요.

   

이 힘 덕분에 부와 명예,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얻었으니까요.

   

그런데 관리자님이 뭐라고 제 자유를 침범해요? 저도 이제 성인이라고요.

   

이제 날 귀찮게 하는 당신은 필요 없어.」 

   

그 말을 남긴 바람의 마법소녀는 바람을 조종해 얀붕을 구속했다.

   

그리고 다른 마법소녀들은...

   

짝-

   

타락 마법소녀가 박수를 쳐 한없는 우울에 빠지려는 얀붕을 현실로 불러왔다.

   

“복수해야죠!”

   

“그 애들은 더 이상 신경 쓰고 싶지 않아. 아니, 보고 싶지도 않아.”

   

“아니요, 얀붕 관리자님은 그녀에게 복수해야 해요.”

   

“어째서? 그녀는 강하지만 마법소녀야. 악의 제국을 멸망시키는 것과는 상관없어.”

   

“감옥에 갇혀 있느라 모르셨군요. 

   

바람의 마법소녀는 악의 제국에 투항한 마법소녀들 중 서열 3위예요. 

   

당연히 악의 제국 의회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죠.

   

악의 제국에 복수하시려면 꼭 없애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