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일이 있고 한 달이 지났다.

아침햇살에 눈을 뜨고 문을 열고 나오자 마침 여동생의 방문도 열렸다.

하지만.

 

“…….”

 

이혜진은 날 보고도 독설도 날리지 않고 휑하니 계단을 내려갔다.

 

“…….”

 

나는 그 뒷모습을 우두커니 쳐다봤다.

 

‘내가 오빠인 게 잘못이다.’

 

그 울음 섞인 외침이 잊혀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계속해서 각인됐다.

그렇다고 저렇게 피하는데 말해줄 리 없다.

그때처럼 억지로 잡아챘다간 역효과만 날 뿐이다.

사춘기라서 그런걸까? 난 그런 것따위 없었는데 아직 안와서 그런걸까?

저 나이대 여자들이 굉장히 민감해진다는 사실을 피부로 절절하게 느꼈다.

 

“좀… 그렇지만 찾아가 봐야겠네….”

 

생각을 굳힌 나는 서서히 계단을 내려갔다.

가끔 우리 집에 놀러왔던 이혜진의 절친 안유화를 오늘 찾아갈 생각이다.

 

 

 

 

************

 

 

 

상림중학교 대문 앞.

나는 끝나는 시간에 맞춰 남은 2교시를 빼먹고 조퇴했다.

다른 학교 교복을 입은 내가 서성이자 경비원이 내게 다가왔다.

 

“고등학교 벌써 끝났어? 누구 기다리는데? 동생?”

 

목적은 다르지만 난 대충 얼버무렸다.

 

“네네. 여기 동생이 다니거든요.”

“착한 오빠네. 그려. 알았다.”

 

경비원이 다시 돌아간다. 곧이어 학교 종이 울렸다.

띵동.댕동.

상림중학교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기다렸다는 듯 우루루 몰려나온다.

나는 벽에 몸을 가리고 고개만 빼꼼 내밀어 동생과 동생의 절친이 나오기를 주시했다.

곧이어 두 명이 나왔다. 알아채는 건 쉬웠다.

딱 그 두 명만 화질이 다르듯 풍겨져오는 오라가 확연히 달랐기 때문이다.

왼쪽에서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걸어오는 것이 우리 여동생이고 오른쪽은 허리까지 내려오는 약간 곱슬한 흑발에 환한 미소가 인상적인 안유화였다.

이혜진은 안유화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짓곤 했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바깥에선 멀쩡히 웃네. 나한테만 그러네. 나한테만….’

 

나는 서둘러 차 뒤에 몸을 숨겼다.

이래서야 아까 경비원에게 말한 동생을 기다리는 오빠의 모습따윈 없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혜진과 마주치면 질색할 게 뻔한데….

 

“그래서 말이야… 오늘 카페 신메뉴가 나왔는데……”

“응응…”

 

스쳐 지나가면서 대화 내용이 슬쩍 들렸다.

방금 안유화의 말처럼 카페라도 가려는 걸까?

그럼 나는 계속 뒤에서 숨어서 헤어질 때를 쭉 기다려야 하나? 대체 얼마나?

그런 걱정을 하며 조심스레 뒤를 밞았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발걸음은 시내가 아니라 우리 집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길이 갈라지는 사거리에 이르자.

 

“그럼 내일 봐. 혜진아.”

“응. 너도 잘가.”

 

안유화가 손을 흔들며 우리 집쪽으로 걸어가는 이혜진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 장면을 전봇대로 몸을 가리며 몰래 지켜보던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휴우.”

 

다행히 이혜진에게 들키지 않고 안유화에게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빨리 찾아왔다.

절친이라면 여동생이 날 싫어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친김에 좋아하는 상대방의 정체도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건 사생활이지만 단순히 오빠로써 걱정돼서 물어보는거다. 정말이다.

 

‘근데 말이지….’

 

안유화와는 2년 전에 집에 놀러 왔을 때 마주친 것이 최근이다. 굉장히 오랜만에 보는거다.

여동생과 헤어지자마자 나와 마주치면 좀 수상하게 보지 않을까 걱정됐다.

그래서 고민됐다.

어떻게 다가가야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접촉을 할 수 있을……

 

“저기요.”

 

누구야? 작전 짜고 있는…

 

“어?”

 

나는 멍청히 날 부른 상대를 바라봤다.

언제 다가왔는지 안유화가 싱그럽게 웃으며 오른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살짝 매만지고 있었다.

 

“저한테 볼일 있는 거 맞죠? 후후. 혜진이 오빠분.”

 

아니냐고 하면 당연히 아니라고 말 못하지만 대체 언제부터 어떻게 안 거야?

 

“어,어… 그….”

 

생각과 달리 당황스러움에 내가 말을 못잇자 

 

“마침 가고 싶은 카페가 있거든요. 일단 따라오실래요? 후후.”

 

안유화가 천연덕스럽게 말하며 앞장서며 걸었다.

분명 3살 연하인데 그 여유로움이 나보다 3살 연상같다는 느낌을 나는 받고 말았다.

 

 

 

 

*************

 

 

 

안유화에 대해서 내가 아는 정보는 예전에 사이가 좋았을 때 여동생이 말해준 정보가 다다. 

 

-집이 엄청 잘 산다던데? 아빠가 KSL 회사 사장이래.

 

KSL는 엔터테인먼트 회사 빅쓰리 중 하나다.

 

-아이돌 준비한다더라. 럭키세븐이라 했나?

 

KSL은 특히 걸그룹을 대박치기로 소문난 회사다.

거기다 그 회사 사장의 딸이라고? 데뷔하고 대박치는 그림이 벌써부터 그려졌다.

 

‘이거 미리 좀 잘 보여야 나중에 싸인이라도 받지. 마침 여동생 친구기도 하니깐.’

 

내가 안유화에 대해 더 꼬치꼬치 캐묻자 이혜진은 굉장히 싫은 듯한 얼굴을 지었었다.

 

-혹시… 내 친구한테 관심 있어?

 

그때 나는 솔직히 말했다.

 

-아니, 아이돌 준비한다니깐 뭔가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하하하….

 

이혜진은 차갑고 무겁게 말했었다.

 

-안 돼.

-어?

-오빠가 계속 징그럽게 구니깐! 이제 우리집에 안데려 올 거야! 알았어?!

 

갑작스럽게 화내고 삐진 이혜진을 어르고 달래느라 고생을 한 기억이 났다.

하긴 나 같아도 그때 내 행동은 추하긴 했다.

자기 친구한테 친한 척 굴려는 오빠라니.

 

‘혹시 그것 때문인가…? 아니야. 삐진 거 풀어주고 그때 다시 엄청 사이좋았잖아.’

 

이곳은 굉장히 넓은 카페 2층.

때마침 안유화가 1층에서 올라와 거대한 파르페 두 개를 양손에 들며 내가 있는 구석 테이블로 걸어왔다.

 

“자, 여기요.”

“응응. 내가 받으려 했는데… 고마워.”

“괜찮아요. 저도 오빠분이랑 대화하고 싶었거든요. 후후.”

 

‘나랑…?’

 

일단 의문을 감추고 파르페를 한 입 먹었다.

초코가 가득 묻혀있는 파르페였다.

안유화가 신이 나듯 말했다.

 

“어때요? 신작 메뉴 트리플더블초코파르페는?!”

 

나는 먹으면서 솔직히 말했다.

 

“응. 맛있는데. 쩝쩝.”

 

안유화가 싱긋 웃었다.

 

“다행이네요! 원래 오늘 혜진이랑 먹으려고 한건데. 갑자기 웬 스토커가 따라붙어서…….”

 

켁켁. 갑자기 기침이…….

그러자 안유화가 걱정된다는 듯 옆에 있는 휴지를 뽑아 내게 내밀었다.

 

“괜찮아요? 제가 이상한 말 했나요?”

 

그러면서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나는 할 말이 없어졌다.

초코 파르페를 먹을 때가 아니다.

일단 사과를 먼저해야한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 스토킹하려고 한 건 아닌데…….”

“그렇겠죠. 오빠분은 혜진이랑 사이가 안좋으니깐 볼 일이 있다면 저한테 있지 않을까? 싶어서 일단 혜진이와 먼저 헤어졌어요. 잘했죠? 후후.”

 

안유화의 싱그러운 웃음에 나는 감격했다.

 

‘어쩜 내 마음을 그리 잘 아니?!’

 

아이돌에게 팬이 정화된다는 마음이 이런 마음일까?

지금까지 걸그룹에 큰 관심은 없었지만 안유화가 데뷔한다면 앨범 한 장 사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들었다.

물론 이건 지금 당장 쓸데없는 상념이다.

나는 바로 본론을 꺼냈다.

 

“파르페 먹으면서 들어줘. 유화가 날 이해해줘서 고맙단 말을 먼저 하고 싶어.”

“쩝쩝. 별 말씀을요.”

 

안유화가 파르페를 먹으면서 말한다.

마치 아름다운 나비가 꿀을 파먹는 듯한 느낌이다.

나는 내 쪽에 있는 파르페를 잠깐 옆으로 치웠다.

 

“혹시 혜진이가 날 왜 싫어하는지에 대해 알고 있는 거 있어?”

“음…. 쩝쩝.”

 

안유화는 생각하는 듯 파르페를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반절 이상을 먹자 싱긋 웃으며 말했다.

 

“모르겠는데요?”

 

모,모른다고?

 

“네. 초등학생때처럼 오빠분 애기도 잘 안하길래 제가 궁금해서 물어보니깐 어두운 얼굴로 한숨 푹푹 쉬길래 싸웠구나 짐작만 해본걸요?”

 

그,그렇구나….

 

순간 시무룩해져 고개를 숙이자 안유화가 테이블에 고개를 바짝 들이대며 내 귀에 간지럽게 속삭였다.

 

“…제가 조심스레 여쭤볼까요?”

 

나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순간 너무 가까이 시선이 맞붙어 반사적으로 등을 뒤로 젖혔는데 안유화는 가만히 내 모습이 재밌다는 듯 웃었다.

나는 기회를 놓칠세라 말했다.

 

“정말 그래줄 수 있어…?”

“물론이죠. 저도 왜 싸웠는지 갑자기 궁금하기도 하고요. 외동인 제가 질투날 정도로 사이가 서로 좋았잖아요?”

 

그랬지. 지금은 과거형이 됐지만. 

 

“이건 제 번호예요.”

“어?”

 

안유화가 자신의 휴대폰 화면에 번호를 적고 내게 내밀었다.

안유화는 당황하는 내가 귀엽다는 듯 실실 웃었다.

 

“또 스토커하면서 저 기다리실려고요? 그러다 혜진이한테 들키면 어쩌시게요?”

“아, 맞다. 그, 그렇지.”

 

얼른 내 휴대폰을 꺼내 그 번호를 저장했다.

갑자기 미래에 대박이 확정난 아이돌의 전화번호를 저장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궁색맞은 생각을 지우려고 얼른 다음 화제로 옮겼다.

 

“저기 한 가지 더 물어볼 게 있는데….”

“뭔데요?”

 

안유화가 파르페의 꽂힌 빨대에 입을 가져다댄다. 이제 바닥이 슬슬 보였다.

 

“혜진이한테 말이지. 혹시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지 애기라던가, 낌새라던가 좀 느끼는 거 없어?”

“…혜진이한테요?”

 

안유화은 눈을 치켜뜨고 한참을 생각했지만 이내 고개를 순순히 저었다.

 

“없어요. 항상 학교에서 붙어다니니깐, 최소한 학교 안에는 그런 느낌조차 받은 적이 없어요.”

“그, 그렇구나.”

“고백은 매일같이 받지만.”

“뭐?!”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카페에 내 외마디 비명이 튀어나왔다.

순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내쪽으로 몰렸다.

나는 살짝 고개를 연신 숙이며 사과하고 다시 앉았다.

안유화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쿡쿡 숨죽이며 웃었다.

 

“큭큭…. 뭐 다 까버리지만 저나 혜진이나 중학교 올라오고부터 계속 일상인걸요. 주변 친구들도 저희가 이뻐지는 걸 아나봐요. 큭큭.”

 

당돌한 말이지만 그게 사실이면 꾸밈 없는 솔직함이 된다.

 

‘학교 안에는 없다.’

 

안유화가 했던 말을 다시 떠올렸다.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찾고 싶지만 찾고 싶지 않은 감정.

만약 양아치 새끼면 어쩌지란 생각이 들었는데 학교는 아닌 것 같다고 한다. 다행인가?

 

‘그럼 학교 바깥에서 만난 사람이란 애긴데….’

 

바깥이라고 하니 더 불안감이 든다.

찾는 범위가 또래 남자 중학생에서 뚱뚱한 성인 남자까지 확장돼버렸다.

내가 아무 말 없이 생각에 빠지자 안유화는 내 심정을 헤아린 듯 말을 덧붙였다.

 

“이것도 물어봐 볼까요?”

 

나는 입술을 달싹이며 고민했지만 끝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나도 너무 주책이고, 혜진이가 누굴 좋아하든 자기 마음이니깐. 호기심도 이제 접어야지. 안다고 내가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음…….”

 

안유화는 처음으로 웃는 표정을 지우며 이성재가 한 말을 곱씹었다.

 

‘이혜진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학교 안에서는 전혀 낌새를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저렇게 확신하면서 포기한 듯한 오빠분의 말을 들어보니 뭔가 있긴 있는 모양이다.

 

‘……이거 궁금하네.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어.’

 

그리고 다시 웃는 표정으로 돌아온다.

속내를 웃음으로 감추는 건 데뷔 예정의 아이돌에겐 너무나 쉬운 일이다.

그리고 이성재를 위로하듯 말했다.

 

“일단 좋아하는 사람이 누군지는 오빠분이랑 싸운 거랑 아무 연관 없으니 머릿속에 지우세요.”

 

이성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응. 그렇지.”

 

물론 혼자 몰래 파헤쳐볼 생각이다.

안유화가 싱긋 웃는다.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더 곰곰이 생각해보세요. 저도 내일 물어보고 연락 드릴게요.”

“저, 정말 고마워!”

 

덥석.

이성재가 고마움에 반사적으로 안유화의 부드러운 손을 잡았다.

안유화의 어깨가 움찔했다.

 

“그 손을…”

“진짜 고마워! 얼굴도 이쁜데 마음은 이렇게 천사니? 아까 너한테 들켜서 큰일났다 싶었는데 이렇게 속 깊은 친구인 줄 몰랐다! 진짜 고마워!”

 

안유화가 당황함을 계속해서 감추고 말했다.

 

“그, 잠깐 손을…”

“진짜 고맙다. 혹시라도 혜진이랑 사이 풀어지면 갖고 싶은거 무리해서라도 사줄게! 안그래도 답답했는데 절친인 너 만나서 다행이다! 고맙다! 정말!”

 

답답한 마음이 안유화덕분에 좀 풀어진 듯 이성재는 손을 맞잡은 것도 모르고 감사함을 속사포로 풀어댔다.

안유화가 다시 웃으며 말했다.

 

“오빠분. 손 좀….”

“아!”

 

만지면 안될 것을 만진 걸 깨달은 듯 이성재는 헐레벌떡 손을 뺐다.

그리고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미안해….”

“괜찮아요! 모르고 그러신 거니깐.”

“…….”

“…….”

 

이상한 적막감이 흘렀다.

이성재는 안되겠다는 듯 벌떡 일어났다.

 

“내가 계산하고 나갈게. 오늘 애기 들어줘서 고마웠어.”

“아, 제가 오자고 했으……”

“아니야. 당연히 내가 사야지. 진짜 고마웠어. 천천히 나와. 하하하….”

 

미안함을 아직 가시지 않은 듯 이성재는 서둘러 1층으로 내려갔다.

안유화는 그 뒷모습을 보고 아까까지 움켜졌던 손을 바라봤다.

 

“남자 손은…… 크구나.”

 

손에서 손으로 느껴지는 온기가 남아 있다.

자신에 대한 고마움과 감사함, 그리고 여동생과 화해하고 싶다는 열의가 느껴지는 온기다.

 

“혜진이는 대체 뭣 때문에 오빠분을 싫어하는 거지? 전엔 좋아죽었으면서…….”

 

그리고 자신에게 여동생과 화해하고 싶은 진심을 보여주던 이성재의 모습들을 찬찬히 떠올렸다.

그러자 갑자기 말이 튀어나왔다.

 

“부럽네.”

 

그러면서 손바닥으로 손등을 포갰다.

 

“나도 저런 오빠 있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