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었다. 그러나 살아있다.



모순적이지만 내게 가장 적절한 문장이라 할 수 있다.

아카데미 졸업 요건 중 하나인 중급 던전 클리어를 위해 탐사를 하던 중이었다.

역대 마법계 아카데미생 중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가진 나 였기에 2학년이라는 적은 나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동기생들과 선후배들이 모두 나를 말렸으나 나는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 때문에.

어쨌든, 아카데미 최연소 졸업. 그것만이 내 목표일 뿐이었다.








중급 던전은 일개 아카데미생 혼자 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카데미의 교육 과정에 따라 팀을 짜고, 훈련을 하고 다른 하급 던전들을 경험하고 난 뒤 도전하는 것이다.

던전의 함정을 파악하고, 혹시 모를 저주를 해제할 파티원을 찾고, 아카데미의 낡은 기본 장비가 아닌 사제 장비를 갖춰야 한다.

이 모든 것을 해낸다 해도 중급 던전은 깨기 험난한 난이도를 갖고 있다.

그 사실을 무시하고 고작 2년밖에 되지 않은 새내기가 혼자서 도전한 것이다.





그 도전의 결과는 내가 처음 말한 문장이 설명해준다.



나는 죽었다. 그러나 살아있다.

내 육신은 그 던전에서 사그라들었지만 내 영혼은 이 땅에 남아있었다.

어찌되었건, 내 시신은 아카데미에서 잘 수습해 줬고 장례식까지 치뤄줬다.

학생들과 교수들이 내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부끄러워 고개가 들어지지 않았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이상한 점이 있었다.

이미 영혼이 된 나를 빤히 쳐다보는 여학생이 있었다.








장례식이 끝난 뒤, 으슥한 길거리로 가는 그 여학생을 쫓아갔다.

막힌 길을 바라보던 그녀는 숨을 몇 번 내쉬더니 다짐을 한 듯 몸을 돌려 나를 쳐다봤다.

이내,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맺혀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 얀붕아.. 얀붕아..! "

그녀는 내게 달려들어 껴안으려 했지만 영혼인 내 몸을 스쳐 지나갈 뿐 이었다.

" 아아... 얀붕아.. "

바닥에 털썩 주저 앉은 그녀는 계속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누군지 잘 기억은 안 났지만 측은함이 들어 그녀의 숙인 얼굴에 손을 대었다.

그러자 그녀는 눈물로 엉망이 된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는 다시 일어나 기숙사 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내게 따라오라는 듯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녀의 이름은 얀진. 내 동기생이며 같은 마법계였다.

영혼은 본 것은 아마 내 장례식 부터인 것 같다고 한다.

내 죽음에 능력을 각성한 것이라도 되는 것인가?

" 그런걸지도 모르겠네.. 그래도 널 다시 볼 수 있다는게 너무 좋아.. "

" 아직 마음도 전하지 못했는데.. 다시 못 본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슬펐어.. "

" 얼굴이라도 다시 보게 해 달라는 내 기도를 들어준게 아닐까? 헤헤.. "

얀진이에겐 나를 다시 볼 수 있다는 것 만이 중요한가 보다.











다른 사람하고도 대화를 할 수 있나 했지만 나는 얀진이에게만 보이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것은 포기하고 얀진이에게 붙어 아카데미 생활을 도와주었다.

아카데미 역사상 최고의 재능을 가졌던 나였기에 얀진이는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 할 수 있었다.

얀진이는 졸업 후 어느 마탑에 들어가 나와 함께 마법을 연구했다.

분명 더 나은 조건으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진로가 있었으나 나와의 안전한 생활을 위해 포기한 것이다.

얀진이는 마탑에 들어간지 3년만에 부마탑주가 되었다.

물론 어느정도는 내 덕분이다.












얀진이가 마탑에 있는 동안 새로 익힌 마법이 있다.

바로 영혼 실체화라는 내게 아주 유용한 마법이다.

마탑의 서재에 아주 깊숙한 곳에 꽂혀져 있었던 서적을 통해 익힌 것이었다.

몇 개월간은 그 마법에만 몰두했을 정도로 얀진이는 그 마법에 꽂혀있었다.

마침내 적은 시간동안이지만 그 마법을 이뤄냈고 얀진이는 기뻐했다.

" 드디어..! 아아아... 얀붕아..! "

얀진이는 내게 팔을 뻗어 포옹했다.

" 하으으... 드디어.. 만질 수 있어.. "

황홀한 경험을 한 듯한 표정을 짓는 얀진이었다.

" 얀붕아.. 키스해 줘.. 으음... "

아카데미 2년과 마탑에서의 3년 동안 얀진이와 같이 있던 나였기에 나를 좋아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 츄릅... 츄르릅... 하아.. "

그동안 나를 위해 열심히 노력한 얀진이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사랑스러운 마음이 들어 격렬한 키스를 나눴다.

" 얀붕아... 안아줘.. "

이후 얀진이와는 영혼 실체화를 사용할 때 마다 사랑을 나눴다.

얀진이와의 마탑생활은 행복했다.














" 으음! 역시 얀붕이가 타준 커피가 제일 맛있어! "

마탑에서는 얀진이의 업무를 보조하며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 얀붕...... "

얀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얘기를 나누던 중 갑자기 시야가 전환되며 이상한 곳으로 이동되었다.

어두캄캄한 시야에 몸을 이리저리 굴려보니 좁은 공간에 갇힌 것 같았다.

틈새로 슬며시 빛이 들어 오는 것 같아 팔을 위로 밀어본다.

뚜껑이 열리듯 덜컹 소리를 내며 빛이 내 눈을 비춘다.

자리에서 일어나 슬며시 주위를 둘러보니 마탑의 실험실과도 비슷하면서 무언가 으슥한 분위기를 풍기는 공간에 있었다.

내 몸에는 아카데미의 교복이 입혀져 있었다.

어색한 공간에 고개를 돌려 계속 둘러보던 중 로브를 둘러 싼 한 여인이 서 있었다.









" 하아... 하아... "

상태가 좋지 않은 듯 계속 거친 숨을 내뱉고 있었다.

" 선배..! 선배..! 선배! 드디어.... 성공했어..! "

그녀는 갑자기 내게 달려들었고 알 수 없는 얘기를 해댔다.

" 5년이에요, 선배. 5년. "

아마 나를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선배라고 부르는 것을 보아 아마 아카데미 후배였던 것인가.

" 5년동안 선배를 다시 되살리기 위해서.. 하하..! 제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면 놀라실걸요? "

그녀의 말을 듣다보니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생긴다.

" 그래.. 근데, 너는 누구야? "










그 순간, 생글생글 웃던 그녀의 얼굴이 굳는다.

" 하.. 선배. 저 모르세요? 저, 얀순이잖아요. "

얀순. 그녀의 이름인가 보다. 하지만 내 기억에 그녀의 이름은 없었다.

" 진짜 기억 안 나세요? 음.. 부활 부작용인가.. "

그녀는 알 수 없는 말을 해대며 골똘히 생각하는 듯 턱을 어루만지고 있다.

" 선배가 저 구해주셨잖아요. 하급 던전 실습에서. 낙오되서 죽을 뻔한 저를..! 구해주셨잖아요!.. "

어렴풋이 기억 날 것 같지만 5년도 더 된 일인 탓일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

" 뭐, 기억 못하셔도 좋아요. 이제는 제가 지켜드릴게요.. 여기서, 평생.. "







그녀는 멍하니 앉아있던 내게 점점 다가온다.

" 스읍... 하아... 선배 냄새... 역시 선배의 옷하고는 비교도 안돼... "

나를 껴안으며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쉰다.

" 5년동안 제가 혼자서 얼마나 쓸쓸하게 살았는지 알아요? 아, 뭐 선배도 마찬가지 였겠지만.. 아무튼.. "

그녀의 말에 갑자기 사라진 나를 걱정하고 있을 얀진이가 생각났다.

" 무슨 소리야.. 난 얀진이하고 잘 살고 있었거든? 아 씨... 마탑 좌표가 뭐더라.. "

나를 다시 껴안으려는 그녀의 손길을 뿌리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텔레포트를 준비한다.

" 어어? 뭐야? 왜 마력이 안 모여? "

마법을 시전하려 했지만 마력이 모이지 않아 실패했다.

" 선배. "






" 너, 내 몸에 무슨 짓을 한 거야? "

고개를 숙인 그녀가 점점 내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 뭐, 뭐..! 다가오지 마! "

오랜만에 느껴보는 공포에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 너.. 지금 보니까 그 스토커년이지..! 기억 났어... "

그녀에 대한 기억이 났다.

그녀, 얀순이는 아카데미 시절 내 스토커였다.

하급 던전에서 목숨 한 번 살려줬다고 내게 반해서는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얀순이가 입학했을 당시 나와 비슷한 재능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그 천재적인 재능을 내 기숙사의 결계를 뚫는 데에 사용했을 뿐이다.

자고 일어나면 매일 하나씩 없어지는 옷들에 공포심을 느꼈다.

이후 결계를 늘려가며 저항했지만 얀순이는 자는 내 뺨에 입술자국을 내는 것으로 보답했다.

내가 조기졸업에 집착한 이유도 얀순이 때문이기도 했다.









" 흐히익..! "

" 선배. "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고 얀순이는 마침내 내 앞에 섰다.

" 선배. 선배. 선배.. "

" 켁! 케흑..! "

얀순이의 두 손이 내 목을 졸랐고, 그 힘에 못 이긴 나머지 넘어지고 말았다.

" 선배.. 제가.. 5년동안 무슨 일을 했는지 알려드릴까요? "

" 케흑..! 으읍.. 읍..! "

바닥에 넘어진 나를 덮쳐오듯 내 위에 오르는 얀순이를 보고 저항해 봤지만 돌아오는 것은 입술이었다.

" ..파하.. 선배가 죽었다는 걸 알고 나서.. 저 때문에.. 그런 것 같아서.. 장례식도 못 가고.. 자퇴하고 선배만을 생각하며 살았어요.. "

얀순이를 장례식과 아카데미에서 보지 못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나 보다.

" 그래서 죽을려다가.. 문득 생각이 난 거예요.. "

얀순이는 내 목에서 손을 풀고 목을 빨기 시작한다.

" 우음.. 선배를 다시 부활시키고 그 전 처럼 행복하게 살자고.. "

"..행복? 내가 너한테 얼마나 시달렸는데 행복했을 거 같아?! 그리고 난 이미 얀진.. "

" 선배, 쉿. "

얀순이가 내 입술에 손가락을 올리자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는다.

" 아무튼.. 힘든 여정이었어요. 선배를 부활시키기 위해 드래곤도 잡고.. "

얀순이의 손길이 점점 아래로 향한다.

" 물론 선배니까, 힘들더라도 부활한 선배를 상상하며 꼭 참았아요. "











잠시 멈칫 하더니 얀순이의 두 손이 내 목으로 향한다.

" 근데. 선배는 그 년이랑, 알콩달콩, 물고빨고 다 했다는 거 아니에요? "

" 읍... 으읍..! "

얀순이의 손길이 거세진다.

" 용서는 안 되지만, 이제는 제 손 안에 들어왔으니.. 후후... 후후후.. "

얀순이는 나를 껴안았다.

" 역시.. 아무 말도 못하시네요? 당황스럽죠? "

얀순이가 손을 풀고 내 입술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 공포에 질린 선배도.. 아름답네요.. "

이내 다시 내 갈비뼈가 부러질 정도로 껴안는다.

" 자아.. 이제 말 해도 돼요.. "

" 허억..! 어떻게.. "

얀순이가 내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댄 이후로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아 당황했다.

" 후후후... 대가 없는 행위가 어디있을까요? 제가 부활시켜주는 대신 선배의 영혼과 계약을 맺었거든요. 물론 강제 계약이지만.. "

얀순이는 나를 일으켜 세웠지만 계속 껴안고 있었다.

" 난 부활 시켜달라고 한 적 없어! 날 얀진이한테 돌려보내줘! "

이 악마같은 스토커에게서 벗어나 얀진이와 지내고 싶었다.

" 하. 씨발, 선배. 아직도 이해가 안 돼요? 입 닥치고 무릎 꿇어. "

얀순이의 말에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고 얀순이의 품에서 벗어나 자동으로 무릎을 꿇었다.










" 선배는 제거라고요. 평생. 영원히. "

얀순이가 내 턱을 잡아 올린다.

" 츄릅.. 츄르릅.. 혀 내밀어. 하으읍.. "

얀순이는 허리를 숙여 무릎을 꿇는 내게 입을 맞췄다.

" 제 멋대로 죽지도 못하고. 평생 제 곁에만 있어야 되는. "

다시 나를 밀어 바닥에 눕혔다.

" 제 소유물이 되신거라고요. "

얀순이가 내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 그 년은 이제 잊으세요. "

얀순이는 자신의 로브도 벗었다.

" 선배는 그냥, 제 옆에서 제게 사랑만 나눠주면 되요. "

얀순이는 내 위에 올라타 다시 내 입술을  어루만졌다.

" 자.. 사랑한다고 해 주세요.. "

" ...사... 랑.. 한다.. "

내 의지와는 다르게 입술이 저절로 움직였다.

" 후후후.. 아뇨.. 얀순아 사랑해 라고 해 주세요.. "

" 얀.. 순아.. 사랑.. 해.. "

내 의지대로 살 수 없다는 생각과 얀진이에 대한 그리움에 눈물이 흘러내린다.

" 후후.. 이 즐거운 날에 왜 울고 그러세요? 혹시, 그 년 생각이라도 하신 건 아니죠? "

얀순이가 내 눈과 눈을 마주친다.

" 뭐, 상관없죠. "

얀순이의 손이 내 턱과 뒷목을 잡는다.

" 이제는 저 밖에 모르게 될 거예요. "



얀순이의 혀가 내 입 안으로 들어왔다.
















얀갤때부터 눈팅만 하다가 작년에 쓴 글 휴지통에서 발견해서 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