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채널

2-14 마부 무쌍



"하아, 하아, 쳇, 빌어먹을!"


 어깨와 두 다리, 그리고 옆구리에서 피를 흘리며 나자르는 용병 3명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한 사람에게는 상처를 입히고 후퇴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치명상을 입힌 것은 아니며 아직도 네 사람을 상대로 싸움을 강요당하고 있었다.

 장비에서 뒤지는 그가 네 사람을 상대로 이렇게까지 쓰러지지 않고 있었던 것은 분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끝이 가까워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네놈들은 대체 뭐야? 내가 목적이 아니잖아, 이러고 있어도 되나?"


 나자르는 남자들을 흔들어 놓을 심산으로 말했다.

 여기서 뮤셀을 쫓아 인원이 줄어든다면 아직 조금은 승기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자들은 히죽히죽 웃는다.


"너야말로, 이러고 있어도 되겠나? 지금쯤 그 여자는 붙잡혀 모욕을 당하고 있을 텐데?"


"뭐!?"


 나자는 자신의 부주의함에 깜짝 놀랐다.

 상대는 이 네 사람만이 아니다. 이 녀석들은 처음부터 자신과 뮤셀을 떼어내기 위한 미끼였던 것이다.


"빌어먹을! 거기를 비켜라!"


 격앙돼 나자르는 앞을 가로막는 남자에게 돌진했다.

 남자는 가늠한 듯 살짝 몸을 피해 다리를 걸었다.

 나자르는 기세 때문에 넘어지며 손에 든 장검을 떨어뜨린다.

 주우려는 것을 노린 창이 덮쳐, 몸을 피하는 사이 남자 하나가 그 검을 길 끝까지 걷어차 날렸다.

 검을 잃은 나자르에게 더는 승산이 없었다.


"수고를 많이 하게 해줬는데, 여기까지인가 보군?"


 용병들은 승리를 확신하며 미소를 지었다.


 ( 아가씨, 지켜주지 못했어...미안하다...!)


 나자루가 단도를 빼들고 자포자기로 돌파를 시도하려 각오를 다졌을 때, 문득 길 건너에서 소리가 다가오고 있음을 깨달았다.


"뭐야...? 저건!?"


 남자들도 그쪽을 주시한다.

 몇 마리의 말발굽 소리와 바퀴가 무섭게 땅을 구르는 소리.

 이윽고 그것은 조용한 빈민가 슬럼에 소음을 동반하고 맹렬한 속도로 달려왔다.


"전차라고!?"


  전면에 장갑을 두른 네 마리의 군마가 전차를 이끌고 달려나간다.


"나자르! 오른쪽으로 뛰어!"


"갸악!!"


 순식간에 남자 한 명이 맹렬한 군마에 넘어져 짓밟히고, 다른 한 명도 바퀴에 달린 회전하는 날붙이에 맞고 튕겨 나갔다.

 나자르는 아슬아슬하게 몸을 굴려 토네이도처럼 지나가는 주홍색으로 칠해진 전차를 보았다.

 그 기수는 잘 알고 있는 두 사람, 뮤셀을 마음에 둔 자작과 자주 만나는 마부 소녀였다.


"케이트양, 고삐 다루는 솜씨가 대단해!"


 여러 고삐를 조종해 전차를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소녀에게 자작은 회심의 미소로 칭송했다.


"아니요, 둘밖에 못 했어요. 세 명 칠 생각이었지만 빗나갔네요. 돌아가서 나머지 두 명도 칠거에요."


"와, 승합마차 마부가 할 말은 아니지, 그거."


 처녀의 시끄러운 말에 믿음직함마저 느끼며 웃는 자작.


 전차는 총독의 호위를 위해 동반해 주차돼 있던 물건이었다.

 전쟁터에서는 기마병에게 주역 자리를 내준 구식 무기차량이었지만 겉으로 보이는 위엄으로 연방의 권위를 자랑하기 위해 지금도 총독부에서 사용되고 있다.

 총독과의 면담 자리에서 뜻밖의 소식을 듣고 뮤셀의 위기를 느낀 케이트는 곧바로 이 전차를 빌려 뛰어올랐다.

 사람의 왕래가 적고 속도를 낼 수 있는 최적의 길을 선택해 달려간 것은 승합마차의 마부로 길에 정통한 그녀이기에 할수 있던 일이지만, 여기까지의 솜씨는 대단하다 한마디에 그치는 것이었다.


"케이트양, 길이 좁지만 선회해서 뒤로 돌려야겠어."


"맡겨주세요, 두 바퀴라 마차보다 쉬워요. 자작님, 마상창 시합은 잘하세요?"


"마상창시합? 자잘한 귀족의 취미 정도라면."


 소녀는 능숙하게 고삐를 조종해 전차를 선회시키면서 차량 전면에서 바로 위에 걸려 연방 군기를 펄럭이고 있는 깃대를 건넸다.

 평소에는 군기를 겸하던 모양이지만, 그것은 돌진하는 마상에서 사용하는 것을 상정한 랜스였다.


"다음엔 기습이 되지 않으니 지나치게 되면 등을 화살로 노립니다. 말발굽을 회피하면 그 랜스로 숨통을 끊어 주세요."


 그녀의 냉정한 관찰안과 상황 파악, 그리고 그 호담함에 자작은 감탄을 넘어 반쯤 아연실색했다.

 창관 속옷 차림으로 어리광을 부리는 그녀와는 전혀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그, 그래. 대회에서 한 번 본직 기사를 이긴 적도 있어, 해 주지!"


 자작은 기주로 된 마상창 랜스를 떼어내 내걸었던 군기를 버리고 앞을 향해 세웠다.

 앞길에는 깊은 상처를 입고 벽을 등에 기대는 나자르와 검을 들고 그에게 달라붙는 남자 하나, 그리고 전차에 치여 길바닥에 누운 동료의 뺨을 때리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나자르 씨, 지금 도와드릴게요, 돌격!"


 고삐를 잡은 소녀가 말을 채찍질한다.

 과거 세계를 제패한 대제의 군단처럼 기세를 올리며 돌진하는 전차.

 용병 두 사람은 침착을 잃었다.


"빌어먹을, 저 전차 다시 이리 오잖아! 어떡하지!?"


"정면으로 덤벼서 어떻게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도망가자!"


 발굽과 바퀴 소리를 내며 달려오는 전차.

 용병 두 명이 등을 보이고 달려가다 한 명은 아슬하게 건물 틈새로 몸을 내던져 바퀴의 위협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다른 한 명은 도망칠 수 없다고 판단해 무모하게도 멈춰 서서 창을 겨눈다.

 장갑을 두른 군마는 쉽게 창을 튕겨내 덤벼들고 남자는 간신히 말발굽을 피한다.

 그러나 거기에 자작의 랜스가 질주하는 전차의 속력을 탄 엄청난 위력으로 금속 가슴받이를 꿰뚫는다.


"하, 하하! 꼴좋다, 어떠냐! 봐, 봤느냐 케이트양, 끝장냈어!"


 남자를 꿰뚫은 충격 때문에 자작은 랜스를 떨어 뜨렸지만 손의 아픔을 참으면서도 주먹을 들어 기염을 토한다.


"죄송합니다. 치지 못했네요. 모습이 보이지 않지만 아직 한명. 활은 가지고 있지 않은 모양입니다만 주의해 주세요."


 싸움이 익숙하지 않은 것은 그녀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녀의 무인 같은 냉정하고 당당한 태도에 자작은 혀를 내두른다.


 다시 선회한 전차는 나자르 옆에서 정차했다.

 자작은 차에서 뛰어내려 만신창이가 된 나자르의 목덜미를 잡았다.


"어이, 하인! 뮤셀 공은 어찌 됐어!"


"아가씨는 먼저 보냈어! 하지만, 매복을...!"


"뭐라고!?...이러고 있을 수 없어! 케이트, 서두르자!"


 마부와 자작은 다시 전차에 올라 발을 질질 끄는 나자르를 기다리지 않고 달리기 시작한다.


"나 좀......!"


"유감이야! 공교롭게도 이 전차는 3인승으로 나와 케이트와 뮤셀 공, 네 자리는 없어!"


 자작이 내뱉는 와중에 마부 소녀는 뒤를 돌아보며 한 손으로 크로스 보우를 당기고 순식간에 겨냥해 쿼렐을 쏜다.

 쿼렐은 나자르의 귀 바로 옆을 스쳐 어느새 그의 등뒤로 살금살금 다가가던 잔당의 목을 꿰뚫었다.


"이걸로 나자르 씨를 두고 가도 상관없겠죠."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렇게 말하는 마부 소녀에게 자작은 묻지 않고는 있을 수 없었다.


"케이트 야...아니, 케이트 씨, 그 활은 어디서?"


"거기 굴러다녔어요. 저 용병들 거겠죠."


"아니, 어느 군에서 훈련을…?"


"그런 거창한건.. 그저 자잘한 처녀의 취미 정도입니다."


 자잘한 처녀의 취미를 가지고 전투를 생업으로 삼는 숙련자들을 이토록 시원하게 처치할 수 있겠는가.

 이 처녀는 어느 용사의 후예인가, 패왕의 일족의 피라도 흐르는 것인가, 아니면 신화처럼 전처녀 발키리의 축복이라도 받은 것인가?

 농담처럼 웃는 얼굴을 보이는 마부 소녀에, 자작은 얼굴을 찌푸렸다.





2-15 자작의 분노



뮤셀의 태내에 백탁을 부어넣으며, 괴로워하며 몸부림치는 소녀의 육통의 조임을 더욱 즐기려고 남자는 목을 조르는 손에 더욱 힘을 실었다.

 생명의 불이 꺼지기 직전에 나타나는 매혹의 열락을 짜내기 위해, 바짝 조인다.


"아………그……으으……윽……"


 움찔움찔 경련하며 옥죄는 육단지의 쾌감에 남자의 육창은 다시 발기한다.

 다시 소녀의 몸을 탐하며 반복적으로 마구 꽂아 범하며 태내에 뷰룻뷰룻 오탁을 방출한다.


 남자의 사타구니에 따뜻한 감촉이 닿았다.

 경련이나 두려움 때문일까, 뮤셀의 사타구니에서 따뜻한 액체가 살짝 뿜어져 나와 남자의 사타구니를 적셨다.


"어, 벌써 싸버렸나. 빠른 거 아냐?"


 물은 성난 물건과 육통이 연결되는 곳에서 방울방울 떨어지며 회음에서 항문까지 적신다.

 소녀를 공포와 괴로움으로 실금시키고 욕되게 하는, 그 유열 때문에 더욱 젖어드는 남자.

 남자에게는 속주의 이민족 여자 따위 남자를 즐겁게 하기 위해 어떤 굴욕을 당해도 상관없는 육노예에 불과했다.


"저승가는 선물로 들려주마."


 서서히 핏기가 가시는 소녀의 얼굴에 엷은 웃음을 머금고 남자는 말한다.


"총독은 실패한 거야. 연방본국이 속주에 부과하는 징수세는 줄어들지 않는다. 그렇다면 주 전체에 분담시킬 수밖에 없겠지만 인근 영주가 납득할 것으로 생각하는가?"


 남자는 득의양양하게 말하지만 의식이 멀어진 뮤셀은 발을 하늘로 올려 허공을 걷어차기만 했다.


"잘못하면 또 반란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너 같은 계집애를 재미삼아 이용해서 오늘의 사태를 초래한 어리석은 총독이다, 놈의 실추를 기도하는 자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지. 넌 바보 총독의 뒤치다꺼리에 지워지는 거라구. 딱하구나. 큭큭"


 비웃는 남자였지만 그 목덜미에 날카롭고 차가운 물건이 닿는다.


"재밌는 얘기로군?"


 남자는 소녀의 목에서 손을 떼더니 천천히 뒤의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장식깃이 달린 챙이 뾰족한 모자를 쓰는 좋은 몸매의 남자가 레이피어의 칼끝을 들이대고 있었다.


"지금 좋은 참이야, 방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목을 조르는 손에서 풀려나 심하게 기침하는 소녀에게서 츄륵 음란한 소리를 내며 흉기를 빼내는 남자.

 양손을 들고 남자는 일어선다.

 레이피어를 들이대고 있는 자작의 눈에는 음액과 피와 백탁으로 범벅이 된 뮤셀의 음구가 포착됐다.

 유린당한 소녀의 육단지는 입을 딱 벌리고 격한 왕복운동으로 탁한 거품이 일며 씰룩거리고 있다.


"어째서 범했는지 일단 들려줄까?"


 자작의 눈에 증오가 깃들었다.

 들이대는 레이피어의 끝부분이 떨리고 남자의 목에 상처를 내 피가 한 줄기 방울져 떨어진다.


"어째서? 나는 지배하는 편의 인간이다. 보아하니 당신도 그렇군. 지배자가 지배받는 민족 여자의 몸을 즐겼던, 그뿐인 일이잖아."


"확실히 나도 본국의 인간이지만, 같은 취급 하지 마라, 더러운 상놈아."


"나를 끌고 갈 셈인가?"


"설마. 이 손으로 죽인다. 지금 여기서 말이야."


 자작의 목소리에 살의가 깃들자 남자는 웃었다.


"바지 좀 여며도 될까? 아니면 죽인 후에 당신이 여며줄래?"


"헛소리를"


"헤헤헤, 그건 어떨까………"


 남자는 두 손을 내리고 바지를 들어올리는 동시에 숨겨둔 칼을 자작의 얼굴을 들어 던졌다.

 피하려고 자작이 크게 뒤로 젖힌 틈을 타 남자는 목에 들이댄 칼끝을 피한다.

 두었던 장검을 집어들고 뽑는다.


"네, 네놈!"


"헤헤헤, 가늘고 의지가 안되는 검이로군, 응?"


 자작은 후퇴 후 물러난다.

 그가 평소 들던 레이피어는 결투 등에 사용하기 위한 검으로 전쟁터에서 사용하는 무기가 아니다.

 남자가 가진 두툼한 칼날의 장검을 상대로 도신이 가는 레이피아로 정면으로 맞부딪치면 도신이 부러져 버릴 것이다.

 장소도 만족스럽게 싸우지 못하는 좁은 골목길이라 지극히 불리했다.


"좋아, 거리로 나가 결투야. 특기지? 귀족님에게는 말야, 헤헤"


 두 사람이 마주한 채 거리까지 나서자 주위를 경계하던 케이트가 남자에게 크로스보우를 돌렸다.


"자작님!"


"케이트, 나한테 맡겨.이놈은 내가 죽인다."


"헤헷, 또 여자인가. 네놈을 처치하면 그 여자도 예뻐해 줄 거야."


"그렇게 두지 않는다. 그 아이의 몸은 내가 이번 달에 전세로 점유하고 있으니까 말야."


 자작은 레이피어를 똑바로 남자를 향해 결투 형식으로 준비한다.

 남자는 두 손으로 장검을 상단으로 든다. 내려치면 일격의 위력은 레이피어보다 훨씬 위일 것이다.


"상관없어. 나나, 너나 할 것 없어. 강한 남자가 그 여자를 손에 넣는 거야. 헤헤헤."


"헛소리 마. 네놈의 본체는 불알이잖아."


"무슨 소리야. 남자란 다 그런 거야!"


"그러니까 같이 취급하지 마라, 더러운 자식이!"


 자작이 날리는 날카로운 찌르기가 남자의 어깨를 스쳤다.

 남자가 철 가슴받침을 두르고 있어 그 장갑이 없는 목을 노렸지만 남자는 교묘하게 몸을 피했다.

 퓩퓩 바람이 찢어지는 소리를 내며 연거푸 찌른다.

 하지만 남자는 약간의 찰과상을 입는 대신 날카로운 참격을 날렸다.


"이얏!"


"큭!"


 자작이 입는 가죽 상의가 찢어지고 약간의 피가 튀었다.

 자세를 무너뜨린 자작에 대해 남자는 발을 디뎌 다시 장검을 들었다. 칼날은 자작의 팔을 살짝 베었다.


"자작님!?"


 케이트가 비명과 비슷한 소리를 지르다.

 남자는 입맛을 다셨다.


"헤헤, 기다려. 곧 이놈 처리하고 범해줄게. 헤헤헤."


"우쭐하지 마라 쓰레기 같은 것아!"


 자작은 다시 달려들어 남자의 틈을 타듯 검을 쳐낸다.남자도 교차하듯 장검을 찔러 마주치는 칼끝이 불꽃을 튀겼다.

 그대로 어깨와 어깨를 부딪치고 둘은 서로 밀친다.

 지근거리에서 서로 노려보면서도 남자는 웃었다.


"헤헤, 그 영주의 아가씨 말인데, 조임이 엄청 좋았어. 처음이였지, 그건. 마구 찔러박아 줬더니, 좋은 목소리로 지저귀더라고."


"네, 네놈......!"


"너, 본국의 귀족이면서, 고작 시골 영주 아가씨 하나 손에 못 넣은 것 같군? 얼간이 같은 녀석."


"웃기지 마라!"


"내 육봉에 울면서 기뻐하더라고. 보지 움찔움찔 하면서 "


"……!!"


"아무튼, 전희도 필요 없을 정도로 흠뻑 적시면서 거리를 활보하던 치녀니 말야."


"닥치거라. 이 자식아!!"


 자작의 얼굴이 귀신의 형상으로 변했다.

 머리를 휘둘러 이마를 남자의 안면에 격렬하게 부딪치고 남자는 뒤로 튕긴다.

 거기에 연거푸 검을 들지 않는 쪽의 철권으로 남자의 안면을 후려갈겼고, 부러진 이가 튀었다.


"핫!! 하악!! 이야앗!!"


 자작의 몸이 허공을 날아, 돌려차기가 남자의 머리를 가격하고, 이어진 발차기로 복부를 강렬하게 걷어차 올린다.


"케에에엑ㅡ!! "


 자작은 레이피어를 내던지고 팔꿈치로 마구 찍어 남자의 검을 든 팔을 꺾는다.

 건물 벽가로 몰아넣어 폭풍 같은 정권찌르기 연타로 남자를 후려갈긴다.

 무시무시한 타격이 가슴받침을 우그러들게 하고 턱을 부수고 내장을 으스러뜨렸다.

 주먹 한 발이 목표를 빗나가 배후벽을 치자 석벽은 표면이 부서져 구멍이 뚫렸다.

 속수무책으로 자작의 철권 세례를 맞는 남자는 얼굴은커녕 사는지 죽은 사람인지도 모를 새빨간 살덩어리가 되어 갔다.


"뮤셀은 네놈 같은 추잡한 상놈이 손대도 좋은 여자가 아니야. 죽어서 속죄해라!"


 자작은 남자의 머리를 겨드랑이 밑에 안더니 턱에 팔을 걸고 비틀었다.

 근육으로 팔이 부풀어 오르자 뚜둑하는 둔탁한 소리가 나면서 남자의 몸은 축 늘어졌다.


"하아ㅡㅡ"


 고깃덩이로 변한 남자를 그 자리에 내팽개치고 아직도 투쟁의 여운을 남기며 내뱉는 자작.

 케이트는 떨면서도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 자작님, 오…강하시군요."


 경외한 태도를 보이는 처녀에게 자작은 멋쩍은 듯 화답한다.


"에, 그, 뭐야, 화가 나서 그만 보기 흉한 모습을. 미안, 겁나게 했는지…."


"아, 아니요! 머, 멋졌어요! 자작님 멋져요!"


"쓰레기 하나 치우는데 이래서야….이런 볼썽사나운 만용, 남에게 보일 만한게 아니야. 그리고 뮤셀 공도ㅡ"


 흥분하는 케이트와 대조적으로 자작의 얼굴은 개운치 않았다.





2-16 치욕의 개선



케이트는 자작을 거리에 기다리게 하고 홀로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자작은 그녀에게 뮤셀을 데리러 가 달라고 했다.

 뮤셀이 아무것도 입지 않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남자인 그가 데리러 가는 것을 꺼리는 이유는 케이트에게는 짐작이 갔다.

 건물에 낀 어두컴컴하고 햇볕이 들지 않는 막다른 골목 안쪽에 희고 둥근 엉덩이가 이쪽을 향해 누워 있는 것이 보였다.


"뮤셀님!"


"오......, 오지마......오지말아 줘요......"


 케이트는 달려가려다 뮤셀의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누운 그녀의 사타구니 사이는 음액과 백탁과 파과의 피로 얼룩졌고, 땅에도 퍼져 있는 것을 알수 있었다.

 양손은 뒷짐을 지고 끈으로 묶여 있었다. 단지 이것만으로 남자는 뮤셀의 저항을 막고 격렬하게 폭행한 것이다.


"부탁이야......보지마....케혹, 커헉"


 비참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고 호소하는 뮤셀의 말에 개의치 않고 케이트는 땅에 누워 있는 뮤셀을 안아 일으킨다.

 얼굴은 눈물로 얼룩졌고 맞은 것일까 뺨이 조금 부어 있었다.목에도 졸린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고 깨끗했던 유방에도 파고든 손톱자국에 피가 배고 있다.


"뮤셀님 정신차려! 어딘가 다친 곳은!? 아, 다행이다, 살해당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야!"


"...나 이렇게...더러워져서...아아아...."


 눈물도 말라버린 듯한 뮤셀의 얼굴에 케이트는 참을 수 없어 눈물을 글썽였다.

 뮤셀의 눈동자는 의사의 힘을 잃고 공허했다.


"괜찮아요, 뮤셀님은 제대로 살아 있어요. 목욕을 하고 깨끗해지면 원래대로입니다. 아아 뮤셀님, 무사해서 다행이야!"


 뮤셀에게 볼을 대고 힘껏 껴안고 눈물을 흘리는 케이트.

 무사함을 확인하고 치유하듯 뮤셀의 몸을 이리저리 만진다.

 그런 그녀의 포옹에 뮤셀은 쓰레기장에서 건져올려진 아기 고양이 같은 구원을 받은 것 같았다.


 (다시 일어서지 않으면...)


 순결뿐만 아니라 의사마저 빼앗기고 말았다면 케이트를 비롯한 영민은 누구도 구하지 못하고 모든 것이 허사가 되어 버린다.

 다시 한번 일어나 비참한 모습을 드러내고라도 해내야 한다.


 ( 살아만 있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어...!)


 문득 몸 전체에 따뜻하고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손을 뒤로 젖힌 채 케이트에게 꽉 껴안겨 있었다.

 좀처럼 눈동자에 의사의 빛이 돌아오지 않는 뮤셀의 모습이 그녀에게는 불안한 것이다.


"...부탁이에요, 끈 좀 풀어 줄래요?"


 두 손이 묶여 있는 대로 뮤셀을 무작정 끌어안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케이트는 황급히 비켰다.


"죄송해요, 지금 풀게요!"


 조금 떨어진 곳에 나뒹굴던 억수같은 칼을 주워와 꺼림칙한 끈에서 뮤셀을 풀어준다.


"얼굴이...잠깐 실례할게요."


 두꺼운 손수건을 꺼내 눈물과 침에 더러워진 뮤셀의 얼굴을 닦는 케이트.

 뺨은 붓고 붉어져 있었지만 상당히 비참한 느낌이 없어져 원래의 늠름함이 돌아왔다.


 몸에 눈을 돌리면 파과의 피와 강간으로 인한 음액으로 얼룩진 비소도 눈에 띄었다.

 케이트는 거기에 손수건을 대고 정성스레 닦기 시작한다.


"아앗, 나, 혼자 할 수 있으니까ㅡ."


 어린아이가 엉덩이를 닦이는 듯한 부끄러움에 뮤셀이 당황하자 케이트는 웃으며 화답했다.


"여자들끼리잖아요. 봐요, 이제 깨끗하게 됐어요."


 대략 비슷한 나이일 터인 뮤셀이 보여준 소녀다운 부끄러움에 친밀감을 느끼는 케이트.


"고마워. 이젠 괜찮아. 정말 고마워."


 뮤셀도 그녀에게 겨우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다시 일어섰다.



"자작님…"


 케이트의 목소리에 골목 어귀에서 기다리던 자작은 고개를 돌렸다.


 뮤셀이 어떤 일을 당했는지는 알고 있었다.

 남자인 자신이 가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해 뮤셀의 곁에는 먼저 케이트를 보내고 골목길에서 데리고 나오기를 기다렸다.


"자작님, 뮤셀님은 괜찮다고…"


 보고하는 케이트 뒤에 덧없이 서 있는 뮤셀의 나신이 있었다.


"자작님, 케이틀린, 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콜록."


 목이 졸렸기 때문일 것이다, 마른 듯한 목소리로 기침하는 뮤셀. 그 몸은 애처로웠다.

 뺨에는 맞은 멍과 눈물자국이 보였고 목덜미에 조여진 남자의 손가락 자국이 있었다.

 유방도 손톱자국이 애처롭고, 저항 때문인지 몸 곳곳은 상처투성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녀의 비열에서는 다시 피와 음액과 백탁의 혼돈의 즙이 방울져 굵은 허벅지를 타고 능욕당한 사실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뮤셀 공, 그 뭐라고 해야 할지…"


"저......더럽혀져 버렸어요...."


"뮤셀 공"


 참다못한 마음에 자작은 벌거벗은 뮤셀을 껴안는다.

 외투망토나 겉옷 하나라도 걸쳐 주고 싶은 차이지만 전라행진을 감행하는 지금의 그녀에 대해서는 그마저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내겐 사소한 일. 뮤셀 공이 더럽혀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소."


"자작님…"


 남자의 포옹에 휩싸여 뮤셀은 조용히 울었다.

 폭한의 음욕의 장난감이 된 직후의 그녀는 애정에 굶주려 있었다.


 뚝뚝 핏자국을 남기고 발을 질질 끄는 나자르가 이제야 겨우 도착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아가씨를 이렇게 더럽히고...!"


 나자르가 그렇게 말하자마자 자작의 뒷주먹에 얻어맞는다.


"오오옥!?"


 이미 걷지도 못할 정도로 다친 나자르는 넘어져 기며 웅크린다.


"뭐 하고 자빠졌냐!"


"더럽혀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만? 헛소리 할거면 아예 땅속에나 들어가버려라!"


 하인을 호통치는 자작.


"네놈, 왜 뮤셀 공을 혼자 뒀어!? 그녀가 혼자서 얼마나 무서웠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이.....입 다물어라, 이 방탕한 귀족이..."


 힐문을 당해 굴욕에 이를 가는 나사르.

 자작은 갈 곳 없는 분노를 사정없이 하인에게 내동댕이친다.


"존심만 큰 주제에, 정작 무슨 일이 있을 땐 이런 꼴인가! 이후 뮤셀 공은 '님'으로 호칭하고 예외없이 머리를 숙여라! 나에게는 자작'님'이다! 알았나, 이 쓸모없는 자식!"


"누가, 네놈 따위......!"


 웅크린 채 일어서지 못하고, 나자는 주먹으로 땅을 친다.

 그 어깨에 뮤셀은 살며시 손을 얹었다.


"나자르, 살아줘서 다행이에요. 이런 일로 당신이 죽으면, 나……"


 방울방울 굵은 눈물을 흘리며 하인에게 매달리는 뮤셀.


"당신을 불렀지만 와주지 않았기 때문에, 어떻게 되어 있는지, 설마 살해당하고 말았을까 하고 가슴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아아….."


"미안, 아가씨, 미안...!"


"많은 사람을 상대로 싸우고 살아준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저도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살아 있는 한,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나자르는 조심조심 뮤셀을 끌어안는다.

 그 나신은 작고 부드러우며 덧없었다.

 이런 그녀가 온 나라의 이목을 끌 만한 일을 수행한다는데 악한으로부터 보호해 주지 못한 자신의 무능력함을 한탄하는 나자르.


 케이트는 뮤셀을 싣고 있던 말을 붙잡아 견인해 온다.


"뮤셀님, 그...여기서, 끝내셔도 될거라고 생각해요. 저택까지 전차를 타고 지름길을 안내하겠습니다."


"아가씨, 이런 일을 당했잖아, 단념해도 영민은 알아줄거야."


"빌어먹을……최선이었는데. 뮤셀 공은 할 수 있을 만큼 했소. 이제 더 이상 상처받지 않아도 될 거요."


 치욕의 행진을 끝내라고 권하는 세 사람이었지만 뮤셀은 고개를 움직이지 않았다.


"케이틀린, 당신은 앞으로 어떻게 돼요...?"


"앞으로요? 음......자작님께서 사주신 답례를 하고 싶습니다. 빚이 끝나면 그 다음은…하지만, 말은 놔두고라도 마차는 세금 대신에 압류될 테고, 에…"


"작은 동생들이 있다고 했는데, 그 애들은?"


"........ 모르겠어요. 기르기에도 마을은 폐업이나 폐점 이야기뿐이라 일은…. 멀리 돈을 벌러 나가거나 창녀를 계속할 정도밖에."


"당신이 그 여동생의 입장이었다면 어떻게 생각할까요?"


 뮤셀의 물음에 생각을 돌려, 이윽고 케이트는 고개를 숙이고 입을 다물고 말았다.

 쓸쓸한 미소를 짓는 뮤셀.


"저는 여자로서 잃을 것은 모두 잃었습니다. 영주로서의 긍지까지 내려놓으면 나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음란하고 우스꽝스럽고 더러운 여자입니다."


"뮤셀 공, 우스꽝스럽다니 전혀…"


"난 괜찮아. 계속하게 해주세요."


 골목길에서 케이트에게 발견됐을 때 넋이 나간 듯한 허망한 눈을 하고 누워있던 뮤셀이었지만 어느덧 그 눈동자에 의지의 힘이 돌아와 있었다.




십자광장에 환호성이 터졌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행진하는 뮤셀의 도착을 맞았다.

 지나간 뮤셀을 다시 보려고 앞질러 온 사람들도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왔다! 영주님이다! 이제야 왔군, 어디선가 쉬고 있었나!?"


"빈민가 슬럼에서? 무슨 일 있었던 것 아니야?"


"말 끄는 녀석, 누구야? 하인 녀석이 아닌데. 귀족인가?"


"뮤셀님, 얼굴 좀 부은 거 아니야? 그보다, 울었던 것 같아…"


"어? 가슴 다친 거 아니야?"


"저 귀족 남자에게 무슨 일 당한 거 아냐...!?"


 의심스러워하는 일부 자들이 앞을 가로막고 자작은 미간을 찌푸렸다.


"지나가게 해 주게, 나는 뮤셀 공의 호위기사로 나왔을 뿐이다. 부탁이네, 총독이 있는 곳까지 지나가게 해 줘."


 구경으로 북적이는 광장에도 한 곳만 넓게 펼쳐진 곳이 있었다. 총독과 그 위병들이 왔다갔다하는 주변은 구경꾼들이 가까이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의 줄이 갈라지고 그곳에 자작과 말을 탄 뮤셀이 나타나자 주차된 마차에서 총독이 나타났다.


 말의 걸음을 멈추자 자작은 뮤셀에게 공손히 절을 하며 말했다.


"내릴 사다리가 없어서, 실례지만 내게..."


"자작님, 그…, 안장을… 더럽히고 있습니다…"


"…. 폭한의 소행으로 뮤셀 공이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오. 괜찮아,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소."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는 뮤셀에게 자작은 평정으로 화답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자작은 벌거벗은 소녀의 두 발과 허리에 손을 얹자 껴안고 말에서 내려놓았다.

 안장은 약간의 피와 음즙에 젖어 있었지만 자작은 은근히 대사제의 외투로 덮는다. 총독에게 보이도록, 그려진 성십자 문장을 넓히는 일도 잊지 않는다.


 그러다가 소녀의 뒷모습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사타구니에서 넓적다리에 걸쳐 다시 피가 방울져 있었다.

 폭한에게 관철된 여음에서 눈물 같은 한 줄기가 넓적다리 안쪽을 수놓는다.


"뮤셀 공, 그, 피가..."


"……"


 말없이 뮤셀은 총독 곁으로 걸어갔다.

 어쩔 수 없이 자작도 그 뒤를 잇는다.


 많은 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손으로 몸을 숨기는 일 없이 총독 앞에까지 나선 뮤셀은 공손하게 궁중 예법으로 절을 해 보였다.

 알몸일 뿐 아니라 폭행으로 당한 상처도 아물지 않은 그 모습은 음란하고 애처롭고 덧없었다.


"총독각하께서 일부러 찾아와 주셔서 황송합니다."


 똑바로 쳐다보는 뮤셀에 총독은 기세에 눌려 침을 삼켰다.

 그의 눈도 뮤셀이 폭행당해 비소에서 피를 방울방울 흘리는 것을 포착했다.


"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나,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정, 정말이야!"


 총독에게는 이미 맨몸을 드러내는 뮤셀의 치태를 보고 즐거워할 여유가 없어져 있었다.

 반쯤 뒤집힌 목소리로 변명하는 총독에게 뮤셀은 잔잔하게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총독님은 사람을 속이거나 모함하는 비열한 것과는 거리가 먼 신사이실 테니까요."


"아, 어, 난 항상 총독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신사이려고 마음을, 먹었으니까..."


"제 영민을 생각하는 마음도 이해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저희의 영토에 부과된 중세의 감면을 해 주시기를, 잘 부탁드립니다."


"알았어, 약속이야, 교섭의 장소를 마련해 주겠어…. 하지만 말이야, 하지만 그…"


 뮤셀을 외면하고 입을 다무는 총독에게 자작이 나섰다.


"뮤셀 공을 덮친 자들에 대해서는 어디의 사주인지, 잡은 자들을 내가 직접 심문할 생각이오. 협상이 끝나는 날까지는 확실히 할 수 있을 것이오."


 협상 결과에 따라서는 "매우 불운한 사실"이 발표될 것이라고 언외적으로 위협하고 있었다.

 하얗게 질린 총독은 침을 튀기며 소리를 지른다.


"나는 아니야! 내 정적들이 계획한 일이야!"


"네, 저는 총독님을 믿습니다."


 뮤셀은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나를 믿나?"


 그 미소에 총독은 구원의 손길이 뻗친 듯한 감회를 느꼈다.

 계집애가 웃어보인 것뿐으로 마음이 움직일 만한 남자는 아니었지만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깊은 상처를 입었고, 그래도 미소 짓는 소녀의 모습은 덧없고 괴로웠다.


"네. 그렇지 않으면 이런 파렴치한 행동을 할 수 없습니다. 총독님을 믿습니다."


"그, 그렇구나……그랬던 건가.......나도 남자다, 너의 진심어린 소원이니, 어떻게든 하겠다. 응…."


 결단을 내리고 체념의 숨을 내쉬는 총독.


"감사합니다…!"


 꽃이 피는 듯한 미소를 보이는 뮤셀.

 소녀가 내민 손에 총독이 악수를 하자 지켜보는 구경꾼들로부터 일제히 박수와 갈채가 터져 나왔다.

 이렇게 되면 자포자기라는 듯 총독은 벌거벗은 뮤셀을 껴안고 요인 등을 맞이하는 것처럼 포옹을 나눴다.


 그치지 않는 박수 속에 멀어지는 뮤셀의 둥근 엉덩이를 배웅하는 총독.


 옆에서는 시중들던 여보좌관이 그에게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이로써 그는 본국에는 무능하다고 비난받을 것이고 속주의 각 영주들로부터는 여자의 색향에 얽매였다는 손가락질을 받을 것이다.


 이 어리석은 사내를 받들어도 더 이상의 출세는 기대할 수 없고, 그렇다면 얼른 관계를 청산할 뿐이지만, 그것은 좀 더 뒤로 미루기로 한다.

 그 대담무쌍한 소녀의 요청을 쳐내지 못했으니, 이 어리석은 남자 혼자서는 부족한 세금을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물밑에서 자신이 움직여야 총독은 권력자의 위엄을 유지할 수 있다.


 상사를 잘못 만나면 보좌 노릇은 고생뿐이다. 이번에도, 모든 것을 내팽개친 소녀를 위해서 발벗어 드릴까.

 자신이 먼 옛날에 잃어버린 소녀의 일편단심을 눈부시게 느끼며, 협상과 회의와 사전교섭, 밤샘 일에 시달리는 나날을 생각하며, 여보좌관은 자조했다.




작가 : asteri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