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채널

2-9 에로 신부



희고 유려한 건물이 앞에 나타나고 문 앞에는 교회 성기사 파수병 두 명이 규율을 갖추고 서 있었다.

 다가오는 벌거벗은 소녀를 잠시 눈여겨보던 이들도 말이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자 영내로 나가라고 재촉했다.

 교회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우뚝 솟은 교회 건물까지의 돌 층계참에는 아까까지의 거리와 달리 관객이 아무도 없었다. 교회 건물 입구에 신관과 수녀들이 몇 명 정렬해 이쪽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사제의 모습은 없지만 이미 기다리다 지쳐 어느 창문에서 괄목하고 있을 것이다.


"아가씨, 조금만 기다려. 접사다리 맡겨 놓았으니까 가져올게."


 하인이 말의 걸음을 멈추자 뮤셀은 마음을 먹고 남자에게 고한다.

 이제 이 남자에게 매달리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기.... 기다려 나자르. 부탁이 있어요...."


 눈에 눈물이 글썽이는 뮤셀을 남자는 의아스러운 얼굴로 올려다보았다.


"젖어……적셔져 있을지도 몰라요."


"뭐가?"


"안장...."


"안장? 안장을 적셔? 어째서... 앗"


 남자의 얼굴이 뭔가 이물질을 머금은 듯한 것으로 변했다.


"몸이 안 좋은가!? 더울 정도라고 생각했지만, 아무것도 입지 않으면 역시 힘들었나!?"


"그, 그게 아니야……"


 수치로 뮤셀의 얼굴은 순식간에 일그러지고 굵은 눈물이 쏟아졌다.


"그런 거 아니에요. 제발 적신 걸 남들에게 보이지 않도록 도와줘요."


 뮤셀의 말에 하인 남자는 주변을 보았다.다행히도 이곳은 사람이 물리쳐지고 있어 조금 전까지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구경꾼들은 문밖에서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건물 정면의 신관들까지는 조금 거리가 있어 일단 모르도록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 게 아니면, 실금한게 아니면 뭐라는 거야? 측간에 가고 싶은 건 아닌거야?"


"……。"


 헤아려 줘, 라고 호소하는 뮤셀의 우는 얼굴에, 남자는 더욱 당황했다.


"전혀 요령부득이야. 내가 등을 빌려 줄 테니까, 붙잡혀 내려서 그대로 내 뒤에서 가랑이를 닦아. 안장은 보이지 않게 닦아줄게."


 하인은 수건을 꺼내 뮤셀에 등을 돌렸다.

 그 넓은 어깨에 양손을 얹고, 등에 뛰어 오르듯이 해 뮤셀은 말에서 내린다.

 남자의 등에 숨으면서 뮤셀은 비소에 손을 미끄러뜨렸다.

 꽉 닫힌 비열에서 약간의 음즙이 배어 있었지만 생각했던 것만큼 흠뻑 적신 것은 아니었다.이 정도라면 사타구니를 들여다보기라도 하지 않는 한 적시고 있는 것 따위는 알 수 없을 것이다.

 이어서 앉아 있던 안장을 보았다.

 젖어 있는 것이 분명할 정도로 보이지는 않았다. 손가락을 뻗어 보면 약간 축축해진 느낌일까.


 걱정이 과했다는 것을 알고 소녀는 안도했고 동시에 하인에게 도움을 청한 것을 후회했다.


"고마워요. 괜찮아, 기분 탓이었나 봐요. 미안해."


 뮤셀은 고개를 숙인 채 남자의 등뒤에서 떨어져 벌거벗은 채 신관들이 기다리는 교회 건물로 향했다.


 신관 한 명이 건물 안으로 사라지자 잠시 후 대사제를 동반하고 뮤셀 앞으로 돌아왔다.

 찾아온 뮤셀을 맞는다는 체면을 형태만으로도 유지했지만, 늦어서 기다리고 있던 대사제는 위엄 같은 건 내팽개치고 완전히 헤벌레 하고 있었다.


"오, 오, 뮤셀 공, 얼마나 애처로운 모습인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대사제님, 인사드리러 왔습니다.이렇게 망측한 모습을 보여 드리는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눈꼬리를 숙이고 분주하게 소녀의 나신을 바라보는 초로의 남자에게 뮤셀은 궁정 예절대로 인사를 해 보였다. 본래 갖추어야 할 치맛자락을 걷어올리는 듯한 행동은, 소녀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것이 보다 강조되어 골계스럽고 음탕해 보였다.


"좋아요, 괜찮아요. 아무런 때묻지 않은 아름다운 모습이예요. 그대의 사랑과 희생의 마음을 하느님께서 보시리라. 우홋, 홋홋홋"


 쥐엄쥐엄하던 양손을 뮤셀의 젖가슴을 주무르듯 가까이 가져가는 대사제를 향해 뮤셀은 시선을 떨구고 가만히 몸을 굳혔다.

 대사제가 음행을 저지른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해놓고 거부하거나 심상을 나쁘게 해서는 안 된다.

 적어도 총독으로부터 과중세의 폐지를 쟁취할 때까지는 자기편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몸에 닿는 정도의 일은 참아야 했다.


 그런 것을 생각하는 뮤셀이었지만, 몸은 생각하고 있는 것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았다.

 바들바들 떨리는 젖꼭지 끝은 금방이라도 건드릴 것 같은 예감에 봄 싹처럼 뭉실뭉실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자의 아랫입은 남자의 손에 더럽혀질 예감에 침을 흘리듯 음즙을 머금고 있었던 것이다.


"그대의 용기 있는 마음과 아름다운 그 몸에 신의 가호가 있기를."


 뮤셀의 모습에 그녀가 몸에 닿는 것을 거절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믿은 대사제는 기분이 좋아졌다.

 그럴 듯한 말을 하면서 대사제의 손가락이 뮤셀의 젖꼭지에 닿아 그대로 음흉하게 원을 그리듯 쓰다듬었다.

 늙고 옹이진 손끝이, 소녀의 더러움을 모르는 연분홍색 유륜의 부드러운 감촉을 즐긴다.


"으응..."


 뮤셀이 소녀다운 귀여운 한숨을 내쉬자 남자의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고 유방이 포옹하고 작게 흔들린다.

 참을 수 없다는 얼굴로 대사제는 빙긋 웃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신관이 섬뜩한 듯 고개를 돌린다.


"고맙습니다, 대사제님. 신의 뜻에 따른다면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 행위는 신의 축복을 받는 것으로 결코 의심스러운 일이 아니라고 하여 음행 같은 것은 없었던 것처럼 공손히 고개를 숙이는 뮤셀.


 하지만 속은 공황에 빠져 있었다.

 젖가슴에 음란한 사내의 손 세례를 받은 몸은 전에 없이 들떠 있었고 소녀의 은밀한 음구는 애욕의 꿀을 떨어트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 그럼 아직 갈 길이 멀어서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기다리시오, 그 모습으로는 역시 춥겠지."


 눈치채기 전에 떠나려는 뮤셀이었지만 대사제에게 만류된다.

 대사제는 걸치고 있던 십자 문장이 그려진 얇은 망토를 풀어 뮤셀의 어깨에 걸치게 했다.


"이걸 입고 가는 게 좋겠소."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허나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다는 총독의 조건이니 배려로만 받겠습니다."


"흠, 그랬어. 그래도 말 안장에 바로 앉는 건 엉덩이가 차가울 거야. 깔고 앉으면 되오."


"에. ……아, 아니, 성십자를 엉덩이로 깔고 앉는 따위의 일을 어찌……!"


"그대의 거룩한 행동에 앞서 하느님도 사소한 일이라 말씀하시겠지. 훗날 돌려 주면 그만이야. 세탁도 필요 없네. 우홋, 홋홋홋"


 교회 권위의 상징을 엉덩이 밑에 깔다니 무례하기 짝이 없을 뿐더러, 그조차 세탁하지 말고 반납하라니ㅡㅡ

 막연한 불안에 휩싸인 소녀였지만, 어쨌든 한시라도 빨리 이 자리를 떠나고 싶은 일념으로 받아들였다.

 떠나는 소녀의 동그란 엉덩이를 대사제의 눈이 아쉬운 듯 전송한다.


"그건?"


 하인이 말 옆에 다리를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대사제님이 깔고 앉으라고……"


"그런 것 깔다가는 안장에서 미끄러져 떨어져."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야 에로신부가 하고 하인은 내뱉었다.


"이놈 목에라도 걸어줄까?"


 남자가 장난스럽게 대사제의 망토를 말의 목에 매다는 사이 적시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뮤셀은 얼른 다리를 올려 안장에 걸터앉았다.


 질척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이제 뮤셀의 사타구니는 털 없는 치구 둘레뿐 아니라 넓적다리 관절 근처까지 음란한 액체가 넘쳐흐르고 젖어 있었던 것이다.

 손으로 부랴부랴 닦으려다 전송하는 대사제의 시선을 눈치채고는 사타구니를 살짝 손으로 가리는 정도로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그 에로 신부에게 무슨 말이라도 들었어?"


"아, 아니. 신의 가호가 있기를, 이라고."


 젖가슴을 만졌다는 둥 말하고 싶지 않았다.


"아까 적셨다는 얘기는 뭐야? 아가씨, 여럿에 둘러싸여 겁이 나서 쪼그라든다는 거야?"


"아니에요……!"


 심하게 착각되고 있어 소녀는 당황했지만, 성적 흥분으로 젖었다고 자백할 수 없어 고개를 숙이고 고개만 흔들 뿐이었다.


"측간은 괜찮지?……벌써 시작한 일이야. 무서워도 이제 와서 말릴 수는 없지? 구경하는 놈들에게는 내가 아무 짓도 못 하게 할테니 안심해."


 하인은 그렇게 말하고 고삐를 잡고 말머리를 돌리며 말 위의 뮤셀을 흘끗 보았다.

 그 눈에 멸시나 연민은 없고, 언제나 대로의 조금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태도의 시선이었다.




2-10 젖었어요....



큰길로 돌아오자 다시 많은 관람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길거리에는 이제 영외에서 발길을 옮긴 구경꾼들만 가득했고 영민은 건물 2층 3층 거리의 잘 보이는 창문으로 몸을 내밀어 벌거벗은 소녀의 행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와, 가슴을 내놓고 있어! 굉장해!"


"벌거벗은 채 밖에 나와 부끄럽지도 않은걸까?"


"얘, 저거 벌 받고 있는거야? 무슨 나쁜 짓 했어?"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일 것이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상하게 보고 있는 아이들의 시선을 받자 뮤셀은 치솟는 배덕감에 떨었다.


(아, 또......)


 뮤셀의 비소는 햇살에 마를 새도 없이, 닫힌 여음에서 계속해 꿀을 떨어뜨려 말안장을 음란하게 더럽히기 시작했다.

 다음에 말을 내려올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뮤셀은 더 이상 생각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적어도 말을 이끄는 하인에게는 이번에야말로 치태를 보이는 것은 불가피할 것이다.


 그걸 보고 남자가 어떤 얼굴을 할까? 어떤 조롱의 말을 할까? 음란한 나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만약 관중들이 그걸 알 수 있도록 큰 소리로 비웃음을 받는다면?

 엄청난 치욕을 상상하며 뮤셀은 몸서리를 쳤다.


 하인의 사소한 태도 하나로 나락으로 떨어지고 마는 상황에 그에게 모든 것을 쥐여주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이 많은 그에게 오만한 태도를 취한 적은 없었겠지만 귀족과 하인 사이여서 늘 뮤셀이 명령하고 그가 따라왔다.

 무조건 충성을 기대할 수 있는 집안도 아니고 진심으로 감사받을 만한 급여나 보수를 주는 것도 아니다.

 속으로는 어떻게 여겨지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그때는 자신의 업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치더라도 언제부터 나는 이토록 음란한 여자가 되어 있었을까?

 이런 망신을 당할 위험이 뒤따른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행진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 음란한 여자이기에 총독에게서 나온 추잡한 요구를 못이긴 척 받아들이는 등 정숙한 여자라면 불가능할 파렴치한 행위를 감행했을지도 모른다.

 뮤셀은 자신에 대한 인식을 고치지 않을 수 없었다.


 광장에 나가니 누가 한 짓인지 종루에서 커다란 현수막이 내려져 있다. 여기에는 종이 전단과 똑같은 화가의 데포르메 터치로 뮤셀의 그림이 그려져 요염한 포즈로 애교를 부리고 있었다.

 호화 마차가 여러 대 세워져 있고, 차 안에서 내려오는 것은 연방 본국에서 온 고귀한 귀족들일 것이다. 차려입은 여자들은 무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말 위의 뮤셀을 가리키고 진귀한 동물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즐거워하고 있다.


"아가씨, 이 가게를 다 빌렸어. 좀 쉬는 게 좋겠군."


 광장 한 구석의 작은 식당 입구에 주인인 듯한 노인이 서 있었다.

 나자르는 말의 걸음을 멈추자 구경꾼의 시선을 차단하듯 입구 바로 앞까지 재주 있게 말을 대었다.


"영주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서 안으로 들어오세요."


 노인은 호기심에 찬 목소리로 마상의 뮤셀을 올려다보다 눈치를 보며 허둥지둥 가게 안으로 사라졌다.


"나자르, 젖었어요….제발…"


 사라질 듯한 목소리로 뮤셀은 간청한다.

 남자가 안장에 앉은 뮤셀의 다리 그늘을 보니 한 줄기 방울이 눈에 보였다.


"…. 그런가 보군."


 남자는 대사제가 준 외투 망토를 말의 목에서 빼내더니 뮤셀의 엉덩이 둘레로 넘겼다.


"이걸로 바로 숨길게. 천천히 내리는 거야."


 다리를 내려 나자르가 시키는 대로 천천히 안장에서 엉덩이를 떼자 남자는 재빨리 외투로 안장을 덮었다.


"이제 괜찮아, 금방 마른다. 어쨌든 안으로."


 발밑에는 푹신한 신발이 준비되어 있었다. 나자르의 권유로 어두운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주인에게 담요를 건네받았다.


"큰일을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대단한 치욕이었겠죠. 지금이라도 몸을 따뜻하게 하시죠. 지금 수프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측간을 좀 빌리겠어."


 나자르는 담요에 싸인 뮤셀을 가게 안쪽으로 데려간다.

 측간의 문 앞까지 데려오면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듯한 작은 소리로 뮤셀에게 묻는다.


"아가씨, 계속 얼굴이 빨갛다. 괜찮아? 무서웠어?"


"아니에요..."


 지금 뮤셀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이 하인 남자뿐이었다.

 그의 협조 없이는 더 이상 이 가게에서 다시 밖으로 나갈 수도 없을 것이다.

 사실을 알리지 않고 숨겼다는 것을 알고 그에게 버림받거나 하면 모든 것이 끝나 버린다.

 그렇게 생각하니 더 이상 속일 수는 없었다.


"아...... 파렴치한 일이에요...."


 뮤셀은 떨리는 몸을 두 손으로 감싸며 고개를 숙이며 고백을 시작한다.

 도저히 남자에게 얼굴을 돌릴 수는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보여져, 괴롭고, 하지만 그게 기분좋아서 영문을 모르겠고, 참으려고 해도 몸이 마음대로, 저... 젖어버려서ㅡㅡㅡ"


 뚝뚝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는 뮤셀.


"훌쩍, 겨...경멸하겠지만, 제발, 도와줘요."


 남자는 입이 반쯤 벌어진 채 온몸이 굳어 있었다.


"기분좋아서라..."


"이런 부끄러운 일, 누구에게도 알려지고 싶지 않아. 흑"


"하하...."


 남자의 얼굴에 얼빠진 웃음이 떠올랐다.


"다시 말해 아가씨, 여럿에게 보여지는 흥분으로 달아올라서, 하고 싶어져 버렸다, 고?"


"그런식으로 말하지 마아."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는 뮤셀.

 남자는 힘이 빠져 턱에 손을 얹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가씨도 한창때의 여자가 되었다는 건가? 그렇다 치더라도 좀 밝히는 것 같은데."


"스스로도 왜 이렇게 되는지 모르겠어요."


"한 번 해버려서 가라앉는다면 지금 당장 상대가 되어 줘도? 이층 방을 빌리면 돼. 침대는 없지만 큰 소파가 있다."


"심술궂게 굴지 말아요."


"괴롭힐 생각은 없는데? 하긴, 몸에 불이 붙어서 오히려 멈추지 않을 지도 모르나. 그럼, 생리 때 쓰는 물건이라도 거기에 넣어?"


"그 모습으로 거리를 돌라고요?"


"아, 그거 안 되나. 너무 추잡한걸."


 어떡하란 거야, 하고 남자가 얼굴을 찡그리니 주인이 객석으로 식사를 옮기고 있었다.


"일단 지금도 적시고 있다면 닦고, 그 김에 볼일도 봐. 수프나 마시고 좀 진정해."


 그렇게 말한 뒤 남자는 주인이 기다리는 식탁으로 향했다.




"총독 무리가 마차로 보러 오고 있습니다. 장소는 이 앞 빈민가 슬럼 건너 십자광장입니다."


 노점주가 테이블에 지도를 펼쳤다. 그도 뮤셀의 집사와 마찬가지로 과거 무력투쟁 조직의 일원이였다.

 뮤셀은 담요에 싸여 고개를 숙이고 철 지난 벽난로의 불을 쬐고 있었다.

 부끄러워서 하인과 얼굴을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흠, 총독 녀석에게 인사해 줘야겠군. 당신네 조직의 정보망은 대단하구나."


"조직 따위는 별거 아니지. 한가한 영감들이 옛날을 그리워하며 노는 거나 다름없어."


 남자의 말에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노점주는 어딘가 자랑스럽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 하고 곧바로 노인은 표정을 험악하게 했다.


"빈민가 슬럼이지만, 애들 집단이 길거리 갱단으로 난동을 부리고 있다. 닥치는 대로 싸움을 걸어서 습격당한 사람도 있는 것 같아. 위험해서 주민 말고는 접근할 수 없는 형편이야."


"쳇, 위병들은? 여전히 보고만 있는 건가?" 


"애들이 얌전해질 때까지 관망하는 게 아닐까?"


"세력 싸움이라도 시작했나."


"영주님이 행진하는 것은 빈민가 슬럼의 주민에게도 알려져 있다. 하지만 호의적인지는 알 수 없어. 어쨋든 사회에서 탈락한 자들의 모임이다. 세금에 시달리는 영민을 냉소하고 있는 녀석들도 있을 거야."


"깡패 몇 명 정도면 내가 날려버리겠지만 유혈 소동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아가씨, 어떡하지?"


 남자는 준비한 검을 칼집에서 빼내 칼날을 보고 집어들었다.

 뮤셀은 자리에 앉은 뒤 처음으로 하인에게 고개를 돌렸다.


"저를......보호해줄래요?"


"깡패 정도라면. 그렇지만 놈들의 야한 시선은 어떻게 할수 없어."


 남자는 비꼬는 미소를 지었다. 언외로 그 음탕하게 젖는 몸을 어떻게 할 생각이냐고 놀리고 있었다.


"참아볼게요. 조금 정도라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거예요…"


 다시 남자의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숙이는 뮤셀.

 그 지적만으로 몸은 다시 쑤시기 시작하는 모양이었다.


"예정대로 가고 싶어요. 회피해서 가면 영지 안쪽으로 크게 벗어나야 합니다."


"총독이 트집을 잡는 구실이 될 수도 있으니까."


 씁쓸한 얼굴로 남자는 말하고 자리를 떠났다.


"구경꾼이 적으면 단숨에 빠져나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앉으면 위험해. 어떡하지?"


"죄송해요. 도저히 다리를 벌리고 올라타는 건...."


"역시 가랑이를 벌리고는 행진은 할 수 없나. 뭐, 어떻게든 해볼게."


 뮤셀에게 있어 이 입버릇 나쁜 남자는 지금 이런 상황에서는 의지할 만한 기사와도 같이 느껴졌다.






2-11 협박과 음모



십자광장으로 불리는 변두리 광장에 유달리 크고 호사스러운 마차가 주차돼 있었다. 차체에는 연방 문장이 그려져 그 권위를 보이고 있다.

 마차 사방에는 연방군의 갑옷을 두른 총독부 직속 기사가 지키고 있고 그 밖에도 중장기병 군마와 전차도 주차돼 있다.


 간이 응접실로도 쓸 수 있는 크기를 자랑하는 그 마차 안에서 총독은 손님을 맞고 있었다.

 차내 중앙에 홍차를 늘어놓은 작은 테이블과 그것을 사이에 두고 앞뒤 각각 세 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소파가 있고, 총독이 손님 두 명과 마주보고 있었다.


"예브게니프 자작 공. 성명은 진작부터 듣고 있었소.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되어 반갑소. 그리고.. 그쪽이 사모님이지요?"


"아니요, 저를 사주시ㅡㅡ 무욱"


"실례. 그녀는 케이트. 나의 종자요. 이 지역의 풍속……아니, 풍토에 뛰어난 전문가로, 매우 우수한 기수이기도 하오. 그렇지? 케이트군."


"어, 음, 전문가 같네요, 네."


"그래서, 무슨 일이시오?"


 두 사람의 거동이 수상쩍어 총독은 의아해한다.

 총독은 뮤셀의 행진을 지켜보기 위해 총독부에서 이 마을까지 나온 곳에서 자작을 자처하는 남자에게 면회를 요구받았다.

 자작의 소식은 사실 사교계에서도 듣지 못했지만, 보좌관은 분명 본국 명문의 유지를 이어가는 자작이라고 밝혀 면담에 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름이 아니오. 뮤셀 공과의 약속 건이요 총독. 징수세 감면 건에 대해서 총독의 방침을 솔직하게 듣고 싶소."


 잘난 체하는 자작에 총독은 입가를 찌푸렸다.

 총독은 연방본국에서 이 속주의 전권을 위임받은 지배자이긴 했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권력이고, 그걸 제하면 똑같은 자작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 갑작스런 손님의 심상을 나쁘게 하는 것은 차후에 신상에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이 그의 처세술이었다.


"어디까지나 영주와 대화의 장을 마련하겠다고 했을 뿐, 세금 면제를 약속하지는 않았소."


"그런 거라고는 알고 있었어. 그런데, 설마 그 대화의 장이라든가 하면서, 결국 없었던 일로 하려는 생각은 아니겠지요?"


"그, 그건 의논해 보지 않으면 뭐라 말할 수는......어차피 본국이 요구하는 징수세액을 채우기 위해서라도, 갑자기 전액 면제 같은 일에는...."


"흠? 그것을 능숙하게 조정하는 것이 총독, 당신의 일이잖소?"


 총독이 어물어물거리자 자작은 유난히 거만한 태도를 취했다.


"연안 마을은 요즘 매일이 만선이고, 산쪽에서는 새로운 광맥이 나와 윤택하다 하지 않소. 세금이라면 그쪽에서 많이 거두는게 어떻소 총독."


"거, 거기에는 사전교섭을 어찌어찌하고, 본국 의회의 모임에서 저찌하고, 각 영주와 어찌어찌 그거를 쌓아서 저찌하지 않으면 거시기하니까 말이오."


 총독은 땀을 닦으며 강론한다.


"케이트군, 지금 총독 얘기 알아듣겠어?"


"아니요, 전혀요."


 자작과 처녀는 총독의 변명을 일축했다.

 손가락으로 앞머리를 거슬리게 긁어올리며 자작은 말했다.


"나의 부친께서 교황님과 알고 지내서 말이오. 내가 부탁하면 뭐든지 교황님의 귀에 넣어 줄 거요."


"교황님의!?"


"이번에 부친께 부탁드려 영주 뮤셀은 자애와 자기희생의 마음이 가득해, 이른바 성녀라고 부를 만한 처녀라고 교황님께 알려드릴 생각이오."


 입을 삐죽 내밀면서 자작은 시치미를 떼며 자랑하듯 말한다.

 자작에게 말을 맞추듯 케이트가 계속했다.


"뮤셀님은 대사제님께도 무척 총애하고 계십니다. 오늘 아침도 대사제님께 직접 축복을 받았다던가."


 사실은 대사제의 그것은 음행 이외의 그 무엇도 아니었지만, 성교회 견해로는 대사제로부터 직접 축복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그 무뚝뚝이 신부가…!"


"대사제님으로부터의 천거라면, 뮤셀 공이 성녀의 서열에 합류할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소."


 깔보는 듯한 말투로 자작이 말을 계속한다.


"그 성녀 같은 순진무구한 소녀가, 장난으로 모욕을 당해, 그 소원도 짓밟혔다는 것을 알게 되면 자비로운 교황님은 뭐라고 하실까?"


"그, 그건, 협박이오!?"


"반론이 있다면 당신도 교황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게 좋을 것 같소만? 뭐, 당신한테는 무리라고 생각하지만 말이야."


 탁자 위의 찻잔을 바라보며 손을 꼭 쥐는 총독에게 자작은 말한다.


"총독. 이제 답은 나와 있지 않소? 자신의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고 결단해 주시길."


 거기에, 마차 밖에서 노크하는 사람이 있었다.


"뭐야? 뮤셀이 온 건가!?"


 총독이 문을 열자 여보좌관이 고한다.


"아니요. 긴급한 요건입니다. 여기서는…"


"괜찮아, 됐으니까 말해. 여긴 바빠."


"본국에서 용병이 몇 명 파견되어 이 마을의 빈민가 슬럼에 잠복했다고 합니다."


"용병...?"


 여보좌관의 보고를 듣고 일어선 자작은 마차 천장에 머리를 부딪친다.


"빈민가 슬럼에 무슨 일로......설마!?어윽!"


 당황하는 자작처럼 케이트도 짐작한다.


"뮤셀님의 행진 경로에 빈민가 슬럼도 들어 있습니다!"


 자작은 총독의 목덜미를 잡아 올리고 고함을 질렀다.


"이봐 총독! 용병 따위를 불러들여, 네놈 뭘 꾸미고 있어!"


"난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아! 정말이오."


 당황하는 총독을 대신해 여보좌관이 말했다.


"본국에서 각하에 적대하는 파벌이 고용한 듯합니다. 어떤 형태로든 각하에게 불리한 상황을 만들어 실추를 꾀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막판에 뮤셀 공을 덮쳐 총독부에 소동의 책임을 떠넘기겠다는 생각인가…!"


"자작님, 함께 하겠습니다! 총독님, 저걸... 잠시 빌리겠습니다!"


 케이트는 마차를 뛰쳐나와 달리기 시작했다.




작가 : asteri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