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채널

2-5 총독의 요구와 소녀의 결의 2



"뭐...뭐라고?!"


 총독부 집무실에서 총독은 괴성을 질렀다.


"거리에서 온통 이 얘기로 떠들썩해요. 아니, 거리라고 해도 그녀의 영지에만 머물지 않고, 이 근린 일대까지 소문이 퍼지고 있습니다."


 여성 보좌관의 말에 총독은 벌떡 일어나 책상에 앉아 있었다.


"아아, 확실히, 알몸으로 영지를 돌면 이야기를 들어주겠다고 했지! ……설마 그 계집애, 정말 할 작정인가!?"


"우천결행, 영민들은 가능한 한 거리에 나가 구경할 것. 아무쪼록 기대! 라는 종이 전단이......."


"아무쪼록 기대…라니, 바보같은!"


"벌거벗은 소녀가 행진하는 것을 보려는 구경꾼들이 전 주에서 오려한다고, 상인들은 벌써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당일까지 소문이 속주 전역에 퍼질 거에요.


 보좌관은 마을에 뿌려졌다는 종이 쪽지를 총독의 책상 위에 내밀었다.

 과중세의 탄원과 대신 뮤셀이 알몸으로 마을을 행진함으로써 교섭의 장을 마련한다고 총독으로부터 정식으로 제시된 조건임을 강조해 기록되어 있고, 유명한 풍자가의 손으로 사랑스럽게 데포르메 된 뮤셀의 그림까지 그려져 있었다.

 인쇄물이며 상당한 장수가 시중에 나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각하께서도 보러 가시겠습니까? 총독의 요구에 따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을 보여 드린다고 합니다."


"가, 가고말고. 가자꾸나. 계, 계집애와의 약속이야. 지켜봐야 해…헤헤, 헤헤헤."


 호색적인 미소를 지으면서도 눈을 둘곳없이 굴리는 총독을 보좌관은 싸늘하게 쳐다봤다.


"그럼, 과세 면제의 요구를 받아 들입니까? 목표 징수 세액을 큰 폭으로 밑도는 사안을 이러한 장난같은 일의 교환으로 약속해 버린다면, 본국으로부터의 비판은 면할 수 없습니다만"


"나, 난 아직 면제 약속 같은 건 안 했어!? 이야기를 들어주겠다고 했을 뿐이야!"


"네, 확실히 요구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거절하는 것도 가능하긴 합니다."


"음, 그래, 그말대로야. 무슨 일에도 단계라는 것이 있어서 말이지, 본국이나 다른 영주들과의 조정을 하면서 몇 년에 걸쳐 조금씩 징수액의 분담 조정을 하는 정도라면…"


 스스로의 보신을 생각해 땀을 뻘뻘 흘리며 보좌관을 향해 무의미한 변명을 늘어놓는 총독.


"그렇습니다만 괜찮으시겠습니까? 이미 각하의 인격이 의심되는 일은 피할 수 없으나, 재차 이걸로 요구를 무위로 한다면 속이거나 협박하여 소녀를 욕보인 것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건 위험한 일이야! 내 추방을 노리는 본국의 놈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겠나!"


 통치하는 백성의 분노는 개의치 않아도 되겠습니까? 라는 쓴소리를 보좌관은 삼켰다.


"그렇다면 무모한 요구를 사과하고, 세금의 재검토를 들으시겠습니까?"


"그…그만두게 해, 그래 체포해라! 죄상은 뭐든지 좋아. 공연외설의 기획 같은걸로 적당히. 하룻밤정도 감옥에 처넣으면 눈을 뜨지 않을까!?"


"서투르게 처리되면, 각하의 관여까지 거론되는데요?"


"뭐!? 잠깐만 기다려……그렇다면 일을 복잡하게 만들지 않고, 그 이야기는 없던 것으로 하겠다고 당장 계집애에게 전해야겠어."


"이미, 소문이 천리 밖으로 뻗어....가고 있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전 주에서 축제분위기입니다. 각하의 파벌에 헌금하는 여행 사업사도 이미 선박 조합 길드 및 숙박 업계와 거래를 시작했습니다.각하께서 번복하신다면 손해에 대해 고소할지도 모릅니다."


"천한 장사꾼들 같으니라고, 이놈이고 저놈이고 돈이나 벌자고!"


"대사제님도 매우 흥미가 있으신 것 같아 관람에 강한 의향을 보이고 오셨습니다. 여러 가지로 늦은 것 같습니다."


"뭐야!? 그 무뚝뚝한 신부까지ㅡ!? 크으……!"


 총독은 힘없이 의자에 기대자 책상 위에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왜.... 왜 진작에 보고하지 않았어!? 더 빨리 말할 수 있었잖아?!"


"실례입니다만, 무도회의 준비가 있으니까 긴급 이외에는 정례 보고까지 가져오지 말라, 각하 자신의 지시가 있었으므로"


"이건 급한 용건이 아닌가, 넌.."


"송구합니다만, 공연외설 스트리킹 같은 류가 긴급사태라고는 들은적이없어서요."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총독에게 반성의 태도 따위는 추호도 없이 내뱉는 보좌관.

 총독은 질책의 말을 찾지 못하고 이를 갈았다.


"그 계집애 영주, 설마 이렇게 대담무쌍할 줄이야… 계집애라고 생각해 얕잡아 봤을지도 몰라……"


 자신이 부주의하게 뿌린 씨앗이겠죠. 그저 약간 잘나신 남자는 금방 여자를 얕잡아 보고, 발목을 잡힌다.

 여자 보좌관은 속으로 비웃었다.





"에에이, 뭔지 몰라도 열받는구만."


 영주의 저택 집무실에서, 하인이 화가 난 듯 소파에 주저앉았다.


"그 뭐시기 자작놈, 웃기지 말라고!"


"아직도 그러고 있었나?"


 불이 켜진 램프를 들고 노집사가 책상으로 향한다.

 하인은 초조한 듯 구두 뒤꿈치로 바닥을 또각또각 울린다.


"정실이라면 몰라도 첩이라니! 아ㅡ젠장, 살려서 부지에서 내보낸 건 역시 물렀다. 그 자리에서 죽도록 팼어야 했다구!"


"결투를 신청하다니 터무니없는 짓을 저지르는구먼"


 기세등등한 하인을 달래는 초로의 집사.


"네가 첩으로 권유받은 것도 아닐 텐데."


"당연하지, 날 첩으로 삼아서 어떡해? 기분 나쁜 소리나하고."


 기세가 꺾인 남자의 싫은 얼굴을 보고 집사는 킬킬 웃는다.


"여기서만의 이야기지만, 아가씨도 자작님에 대해서는 신경 쓰이는 것 같아서. 너무 무심하게 할순 없지."


"아가씨가!? 난 결사반대야, 저런 시건방진 놈에게 주려고 아가씨를 받들어 온 게 아냐!"


"꼭 아버지 같은 말투구먼."


 나이 어린 하인을 바라보며 집사는 책상 위에 지도를 펼쳤다.


"그런데……결과는 어땠나?"


"그래, 잘 풀렸지. 조직의 영감님들, 종이 전단을 순식간에 전 주에 퍼뜨려, 돈벌이에 눈먼 상인들을 부추겨 축제로 만들었어."


"좋아. 이로써 총독은 앞서 한 말을 철회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손을 치워지기 전에 먼저 기정사실화해야지."


"그야말로 늙은 여우로군, 투사 세바스. 일찍이 민족독립전선의 투사였던 어르신들의 솜씨에는 혀를 내둘러. 당신네 조직은 아직 살아있구만."


"투쟁의 시대는 끝났다. 지금의 저것은 모닥불 자국이 피어오르는 거나 다름없어."


 노집사의 말에 하인은 피식 웃었다.


"그 피어오르는 곳에 입김을 불어 다시 불을 피울 수는 없을까? 투쟁은 끝났다면서, 사실은 손톱을 갈고 있지?"


"나자르, 이미 자웅은 정해졌어. 왕조가 통치권을 연방에 넘기고 속주로 전락한 때부터다."


"마음에 안 드네. 이제 총독을 때려죽이고 민족의 자긍심을 되찾기 위해 일어설 때가 아닌가?"


"궐기라도 해봐라. 잡혀가서 책임을 지게 되는건 아가씨야. 왜 우리 같은 위험분자를 아가씨께서 곁에 두고 있는지 모르나?"


 집사의 말에 혀를 차는 하인.


"쳇, 알아. 늑대에 목줄을 걸어 매고 있는거지."


"그래. 아가씨는 무력 궐기 같은 건 원치 않으셔. 영민이 많이 죽게 될 테니까. 긍지 따위를 위해 백성들을 전쟁의 한복판에 내팽개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굴욕의 삶이냐 긍지의 죽음이냐', 당신들의 구호는?"


 불을 질러 오는 사내를 째려보는 노집사.


"긍지란 패거리를 지어 날뛰는 일도, 요인을 암살하는 일도 아니다. 아가씨를 보아라. 무거운 세금에 시달리는 백성들을 위해 젊은 몸으로 도시를 돌아다닌다니 얼마나 뜻이 고귀한가. 긍지란 건 아가씨 같은 분을 영주로 받드는 일이야."


"난 모르겠어. 솔직히, 이건 수치스런 조리돌림이 아닌가? 아니, 총독에게 예속된 굴욕의 날일 수도 있어. 단념하도록 설득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설득했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군."


 노집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동네, 아니 전 주에서 구경거리가 된 아가씨라니, 며느리감으로 삼을 사람도 없을 것이다. 가엾은 이야기야."


"쳇. 내게 작위만 있었다면 기꺼이 받아들이겠는데. 귀족들은 왜 저렇게 외면만 신경쓰는지."


"너, 아가씨를 좋아하나?"


 노 집사의 물음에 하인은 약간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그런 이야기가 아니야. 나는 귀족과 달리 외면을 꺼릴 속셈은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어."


 말은 잘 하지만 젊구만, 하고 노집사는 수염을 쓰다듬었다.


"귀족이라고 하니, 예브게니프 자작은 어떻게 나오려나."


"알 바야? 첩으로나 들이려 꾀는 교만한 녀석이다, 알몸으로 길거리를 헤매던 여자가 있는 곳에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거야.아니, 이번엔 성노예로서 시중들어 달라고 하지 않겠어?(웃음)"


 꺼림칙하게 말하는 하인을 알기쉬운 남자라고 집사는 생각한다.


 귀족과 하인의 혼인 같은 것은 들어본 적이 없다. 한편, 연방 본국의 자작이 원한다고 한다면 속주의 보잘것없는 영주 뮤셀에게는 지위상승의 기회라 할 수 있다.

 원래라면 하인에게 승산이 있을 수는 없지만, 그러나 결혼만이 사랑은 아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그들은 어떻게 되어 가는 것인가.

 배우가 갖추어져 있다면 뮤셀의 앞길은 그리 암울하지만은 않을지도 모른다며 싱글벙글하는 노집사.


 날이 저물고 방이 어두워지자 집사는 램프를 또 켰다.


"지금쯤 아가씨는 성교회 주최 만찬에 참석하고 계실 거다. 잘 되면, 대사제의 마음을 잘 끌수 있으면 좋을 텐데."


"대사제라 하면 뒷편에서는 에로에 탐욕스러운 주제에 무뚝뚝한 신부라고 뒤에서 손가락질을 받는다지 않아?"


"아가씨를 발가벗기려는 일념으로 총독에게 압력을 가하기를 기대할 수 있다. 결행 전에 총독이 말을 철회하면 곤란하지. 이 축제, 쓸 수 있는 것은 뭐든지 쓰게 할 생각이야."


"핫, 그렇구만, 아무리 성직자라 해도 남자라면 꼭 간절히 보고 싶을 거야(웃음)."


 비웃는 사나이를 곁눈길하며, 집사는 지도를 노려보았다.


"총독에게 구실을 주지 않기 위해, 아가씨에게는 머리끈 하나 없는 발가벗은 몸으로 영지 바깥 주변을 말로 한 바퀴 돌도록 한다. 대사제가 체류할 교회에도 들를 거야."


 집사가 예정 경로를 가리키며 하루가 걸릴 것 같다고 하인은 턱에 손을 얹었다.


"조직원들에 부탁해 행진 경로로의 인적 정리 유도를 맡았다. 그리고 뒷간을 빌린다.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곳에서 말이야."


"여자가 발가벗고 활보하면 얽혀드는 망할 놈이 나오겠는데? 어떡하지?"


"위병은 총독부의 입김이 붙어 있으니 믿을 수 없다.나자르, 네가 때려눕혀라."


"헷, 말하지 않아도. 하지만 빈민가 슬럼에는 깡패들이 많은데. 꼭 지나가야 하나?"


 하인은 영지의 바깥 둘레에 해당하는 획을 나타냈다.

 빈민가 슬럼이라고 불리는 치안이 나쁜 그 구획을 피하려면 영지를 크게 안쪽으로 우회하거나 영외로 나가야 한다. 그걸 약속을 어겼다는 구실로 삼을 가능성을 우려했다. 총독은 찬합의 구석을 쿡쿡 찌르듯 사소한 것들을 거론하기를 좋아하는 쪼잔한 남자라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다투는 것도 위험하군. 그걸 구실로 아가씨를 연행해갈 수도 있어. 그렇다고 해서 지나가지 않을 수는... 골치 아픈 일이야."


 램프불이 흔들리고, 노집사의 눈이 날카롭게 변했다.







2-6 창부와 귀족 2



"저기, 자작님, 무슨 일이십니까? 기운이 없어 보이십니다……"


 소파에 기대어 생각에 잠긴 듯한 사내에게 속옷 차림의 처녀가 다가앉았다.


"음, 그렇게 보여? 아무 일도 없어, 케이트 양이 걱정할 일은 아니야. 뭐 좀 먹을까."


 자작은 술을 따르려다가 술병이 비어 있다는 걸 알고는 재차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작님, 괜찮으시다면 제게 말씀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름을 잊을 수도 있지요?"


"그런가."


"저, 자작님에 대해 더 알고 싶어요."


"케이트양의 안쪽 허벅지에 있는 검은점은, 왜 그런 야한 곳에 있는지 고민했어."


"앗, 싫어! 자작님은 색골!"


"하하, 농담이야(웃음)."


 두 손으로 허벅지 사이를 누르는 처녀를 보며 자작은 웃었다.


 그녀와 함께한 뒤 밤마다 이 창관의 객실에서 지냈고 하나밖에 없는 침대에서 속옷만 입은 그녀와 함께 잠들었지만, 그녀의 순결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그녀로부터 거절당하거나 거리를 두는 것이 아니고, 품을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것도 아닌, 남자의 사소한 생각에서였다.

 원치 않는 창부로 전락하겠다는 이 처녀의 앞날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던 뮤셀에게 마음이 동해, 그 다정함에 응할 심산이었다.

 이 처녀를 돈으로 둘러싸고 그녀가 빚을 갚을 때까지 독점하며, 다른 손님이 손을 대지 못하게 하여 그녀의 순결을 지켜준다. 그런데도 자신이 그녀에게 손을 댄다면 지킨 것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였다.


"나, 뮤셀 공에 그……결혼이라고 할까…첩이 되어 주지 않겠느냐고 청했어."


"에ㅡ, 첩 말씀인가요?"


"물론, 가능하다면 정실로서 맞이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아. 하지만 나는 본국에 약혼녀가 있어서, 그래서 결례를 무릅쓰고 어쩔 수 없지."


"자작님은 바람둥이구나!"


"아ㅡ, 확실히 약혼녀지만, 난 내키지 않아. 그 녀석 공작가의 막내딸로 말이야, 왜 나 같은 곳에 혼담을 가지고 오나 했더니, 걸핏하면 가문의 콧대만 높여대는 노처녀로, 어디에서도 데려갈 사람이 없더라구."


"그럼, 거절하면 되는 게?"


"상대는 공작가, 이쪽에서 거절할 수는 없어. 귀족의 계급사회는 딱딱한거야. 그래서 나는 본국에 있고 싶지 않기 때문에 속주 쪽을 어슬렁어슬렁 떠돌아다니는거야."


"뮤셀 님을 첩으로 삼고는, 어떻게 합니까?"


"아내는 본국에 내버려두고, 이쪽에서 뮤셀 공과 조신한 가정을. 꿈이려나..."


"그래서?! 뮤셀님은 뭐라고?!"


 지금부터가 이야기의 본제에요! 하고 처녀는 눈을 반짝였다.

 하지만 남자의 얼굴은 여전히 침울했다.


"나중에 답변을 약속해줬는데 반기는 느낌은 아니었어. 물론 거절해도 좋다고 했지. 하지만 난 훌륭한 본국의 귀족이고, 그녀는 속주의 보잘것없는 하급귀족이잖아. 알고는 있어, 나쁜 짓을 하고 있다는 건."


"뮤셀 님은 싫으면 단호히 거절하실 걸요? 괜찮아요, 남자분이 재촉해서 귀찮아하는 것도 처녀의 즐거움이니까요"


 독특한 인생관을 선보이는 처녀에게 남자는 살며시 종이 전단을 내밀었다.

 전단에 적힌 내용을 읽고 눈이 휘둥그레지는 소녀.


"뮤셀 님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거리를!? 아무쪼록 기대라니, 이게 뭐야!"


"내가 첩으로 들어오라는 식으로 몰아세웠기 때문에, 이런식으로 단호하게 거부를 당했을 거라고 생각하면 말이야……"


 고개를 푹 숙이는 사나이

 종이 전단에 그려진 데포르메된 뮤셀 그림이 그를 비웃는 듯하다.


"영민들이 모인 가운데에서 발가벗고 다니는 아가씨한테 적어도 귀족들 사이에서는 며느리감을 구할 사람은 없어. 내 첩으로 전락할 바에야 패가망신하는 편이 낫다고.... 속이 쓰려 죽을거 같아."


"과중세 재검토 교섭의 교환 조건으로서 총독의 요구ㅡㅡ라고 쓰여 있고, 별로 자작님을 겨냥하는 것은 아닌가 한데……"


 아가씨는 눈썹을 치켜뜨고 종이쪽지를 주시하고 있었다.


"뮤셀 님, 총독한테 협박당하고 있는 거 아냐!? 다시 생각해 보라고 해 줘요!"


"여러번 갔었지. 만날 수 없었어. 세를 걷는 일의 상담에 바빠서, 그 외에도 영외에 공무로 당분간 집을 비울 것이라고."


 남자는 나른하게 일어나 분홍색으로 장식된 커다란 침대에 벌렁 쓰러져 몸을 눕히더니 이마에 손을 얹고 신음했다.


"뮤셀 공이 궁지에 몰리고 있는데,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그녀가 안고 있는 귀찮은 일의 하나에 지나지 않잖아. 맙소사, 한심해……"


 문득 침대 위 남자의 몸이 더 가라앉았다.

 속옷 차림의 딸이 남자 위에 덮듯이 네 발로 침대에 올라오고 있었다.


"자작님……"


 남자의 얼굴을 내려다보는 아가씨

 뺨을 물들이고 애달픈 눈동자가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작님은 한심할 게 없어요. 사랑하는 뮤셀님의 마음에 부응하여, 아무 관계도 없는 저를 이렇게 지켜주고 있습니다……."


"돈을 냈을 뿐이야. 게다가 일해서 번 돈이 아니야. 그리고 곤경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은 너 한 사람이 고작이야. 뮤셀 공은 백성들을 모두 짊어지려는데."


"그래도……제겐 멋진 자작님이세요……."


 그렇게 말하고 처녀는 몸을 슬며시 자작에게 포갰다.

 부드러운 젖가슴의 감촉이 남자의 셔츠를 통해 전해진다.


"케이트 양?"


"저 자작님이 좋아요. 자작님은...뮤셀님이 좋아..."


"아아, 그래."


"자작님, 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케이트양은 귀여워. 그러니 지켜ㅡ."


 남자의 입을 딸의 입술이 막았다.


 쪽......쪽.....쿠츗....쿠쯋......푸쯋..........쮸웁...


 탐하는 듯한 처녀의 입맞춤에, 처음에는 억제적이던 남자의 입이, 이윽고 처녀의 입안으로 혀를 침입시켜 그녀의 혀끝과 얽혔다.


 츄....쮸웃... 쿠츗.....푸쯋.... 쿠츄......쮸웃.....쯋......


"……푸하, 케이트양, 왜 이래? 굉장히 정열적이네."


 거슴츠레한 눈으로 바라보는 처녀에게 남자는 쓴웃음을 지었다.

 또 술을 마셨나 하고 살며시 그녀의 한숨을 맡았으나 그런 기색은 없었다.


"처음은, 좋아하게 된 남자분께 바치고 싶습니다……"


"아아ㅡ, 나쁜 말 안 할 테니 나자르는 그만둬라. 괜찮아. 저런 것보다는 케이트 양의 처음에 걸맞는 녀석은 절대로 나타날 거야."


"벌써 눈앞에 계십니다"


"...나? 나야? 아니 잠깐, 난 뮤셀 공의 일로 머리가 꽉 차 있는데? 다른 여자 쪽을 쳐다보는 남자한테, 처음을, 이라니 그건 아니지?"


"좋아. 그런 자작님이 좋아요. 멋진 자작님."


"기다려, 기다려. 나는 뮤셀 공이 나중에 웃어줄 수 있도록, 그것을 위해 케이트양을 지켜주겠다고. 그런데도 내가 케이트양을 안으면ㅡ"


"자작님이 빼앗아 주신다면 저는 행복해요. 그럼 뮤셀 님도 웃어주실 거예요."


"어? 어? 그렇게…… 되는 건가?"


"자작님, 저의 첫 번째 사람이 되어 주시겠습니까……?"


"그렇다고 해도 그래? 여자애에게 사랑을 고했던 그 입에 침이 마르기도 전에 다른 여자애를 안는 남자는 여자애에게 어때? 최악이잖아?"


"....... 최악일지도?"


"나 이래봬도 로맨티스트야. 뮤셀 공을 우롱하는 그런 남자는 되고 싶지 않아."


"그래도, 놀면서 몰래 다른 여자를 안는 것은, 그건 괜찮은 거에요."


"........ 놀면서 케이트양을 안는 것도, 괜찮은거야?"


"괜찮아요. 하룻밤의 장난에, 저를 안아주세요……"


 침대에 누운 남자에게 바싹 달라붙어 귀까지 빨갛게 물들이며 처녀는 애원한다.

 남자는 꿀꺽하고 목을 울리며 그녀의 등에 손을 감았다.


"아이라도 생기면 하룻밤의 장난으로 끝나지 않는다. 곤란한것은 케이트양인데……?"


 남자의 손이 매듭을 풀자 프릴 달린 속옷이 남자의 가슴 위로 풀리면서 풍만한 젖가슴이 드러났다.

 처녀가 부끄러움도 기쁨도 느낄 수 있는 얼굴로 대답했다.


"제가 키울거에요. 여기서 창녀를 계속하면 어떻게든 살 수 있어요. 결코 자작님께 방해가 되지 않으니까요."


"그건 안 된다. 키운다면 하다못해 양육비 정도는 돌봐주지."


"자작님, 상냥하시네요. 세상의 많은 남자들은 놀다가 안고서는 상황이 나빠지면 버리는데."


 남자의 손이 딸의 등에서 가슴으로 옮겨갔다.

 감싸안듯이, 성장이 좋은 유방을 어루만진다.


"이 크기로, 험한 길을 달려도 흔들리지 않는 걸까?」


"아앙.... 가끔 일부러 속옷을 안 입고 달려요. 탱글탱글하고 흔들리는데 맡기고, 길 가는 사람에게 과시하는 것이 기분이 좋아서……응"


"우와, 케이트양, 너무 음란한걸."


 지난 며칠을 허무맹랑한 대화로 즐기면서 남자는 딸의 성벽을 대충 이해하고 있었다.

 음란한 행위를 하는 대신에, "여자의 부끄러운 행태"를 말하게 했지만 그녀는 부끄러워하면서도 남자의 기대 이상으로 적나라하게 생생하게 말했다.

 그런 그녀의 태도를 남자는 그녀 나름대로의 정성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아, 저, 음란하죠.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었어요……흐아아!"


 남자의 손가락이 붉은색 젖꼭지를 손으로 주물렀다.

 그러다 처녀의 입에서 달콤한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앗, 앗, 너무 느껴버리는 거 같아. 아앙, 으으응. 기분 좋아요오. 하아아, 거기가 축축해져 버린 것 같아……"


"케이트양, 음란한 것도 적당히 하지그래?"


"으음……!"


"처녀애라면 보통 초보 아니야? 하고 싶은 한창때의 애라도 젖가슴 주무른 것만으로 이렇게 적신다던가 하지 않아?"


"읏, 으으으ㅡ응! 자, 자작님... 너무해요오... 갑자기... 그렇게 격렬하게... 괴롭히다니... 으으응!"


 젖가슴을 움켜쥔 남자의 손에서 처녀가 몸을 부르르 떠는 것이 느껴졌다.

 남자는 딸의 하복부에 손을 뻗어 사타구니를 속옷 위로 살짝 갖다대자 흠뻑 젖어 있었다.


"이런 음란한 몸매를 하고 있는 음란녀면서 처녀처럼 굴어도 설득력이 없네. 발정기의 암코양이도 이렇게 천박하진 않은데?"


"히아악! 악, 아악, 아아아앙!"


 딸은 사타구니를 누르고 몸을 뒤틀어 자작의 몸 위에서 굴러 떨어졌다.

 몸을 굽히며 부들부들 떠는 그녀의 엉덩이를 보니, 실금한 것처럼 속옷이 엉덩이 쪽까지 젖어 있었다.


"아악, 우아앗, 크, 크흐으으ㅡ읏!"


"이거 중증인데……"


 남자의 비아냥거림에 격하게 흥분하며 끝없이 반복되는 조수를 참으려 애쓰는 처녀의 모습에 남자는 쓴웃음을 지었다.


"조수는 멈췄나?"


"히잇, 에윽, 이런, 애처럼, 히극……."


 역시 처녀 케이트양은 아직 오줌싸개를 졸업 못했구나.

 흐느껴 우는 처녀의 등을 보면서 그런 못된 말을 떠올렸지만 남자는 자중했다.


"자위하다가 조수가 나올 때까지 갔던 적이 있었지?"


"이, 이렇게 된 적 따위.......아무리 해도 약간 뭔가 나온 것 같은 정도였는데..."


 음란한 행위와의 교환 조건이었던 적나라한 고해성사는 그만해도 될 것 같지만 남자는 잠자코 있기로 했다.


"케이트양은 마조네. 욕을 먹는 게 쾌감이라는 건 좀 특이한 성벽인 것 같은데."


 그에 비해 평범하게 수치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런 것일까?

 남자는 흥미를 끌었지만 그것을 확인해 보는 일은 적어도 지금은 그만 두자고 생각한다.


"팬티가 흠뻑 젖었네. 갈아입을까?"


 남자가 딸의 속옷 끈에 손을 대자 처녀는 다시 한심하게 얼굴을 찡그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이, 이런, 오줌이라도 싼 것처럼... 우에에에~에엣"


 남자는 짐작했다.

 어쩌면 좀더 에로틱한 분위기로 벗거나 벗겨지는 것을 꿈꾸기라도 했을 것이다.

 이런 기분으로 해 나간다면 처음 그리던 꿈과는 거리가 멀 것이다.


"자...자작님...?"


 그렇다면, 하고 처녀를 벌렁 넘어뜨려 침대에 깔아 눕혔다.

 양 손목을 잡고 어깨 바깥쪽으로 밀어붙였다. 양 무릎 사이에도 허리를 끼어들어 두 다리를 벌린 자세를 강요한다.

 조금 전과는 반대로, 딸의 몸을 덮는다.


"남자에게 처녀를 바친다는 것은 여자의 부끄러운 곳을 모두 드러내는 일이야. 어때? 남자에게 오줌 싸는 것 같은 조수를 선보이는 기분은."


"부, 부끄러워……요…"


 부추기듯 말하는 자작에게 딸은 얼굴을 상기시키며 간신히 응수했다.


"이런 건 시작이야. 더욱 부끄러운 일을 하며 처녀를 바치는 거라구. 몰랐어?"


 순간 처녀의 얼굴이 굳어지는 것을 남자는 알아차렸다.


"무서워? 네가 꺼낸 얘기야, 그만해도 상관없어. 억지로 하는건 내 취미가 아니야. 어떡할래?"


 그러면서 꼼짝 못하게 된 처녀의 목덜미에 혀를 이리저리 옮기며 대답을 재촉한다.

 이렇게 스스로 창피한 꼴을 당하고 싶다고 졸라대면 싫어도 에로틱한 기분을 연출할 수 있으리라는 남자의 기대가 있었다.


"더 부끄러운 일이라니, 어떤 일을……?"


 조심조심 묻는 처녀에게 남자는 어떻게 대답할까 하고 망설인다.

 스스로 그곳을 손가락으로 펼쳐 여자가 아끼던 막을 보여 남자를 기쁘게 한다느니, 파과혈을 흘리며 아파하는 것을 보이고 남자를 흥분시킨다느니 하는 부추김을 떠올리지만 처녀를 괜히 불안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부드러운 표현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나오지 않는다.


"글쎄……알몸으로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만큼이나 부끄러운 일이야."


"...... 정말로 뮤셀님을 좋아하는군요..."


 남자에게 깔리면서 처녀는 불쑥 말했다.


"어, 어라...? 어...?"


 처녀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이런, 나, 아직 울고… 아아, 왜 멈추지 않는 거야"


 처녀의 눈물에 남자는 자신의 실패를 깨달았다.

 처녀는 입으로는 하룻밤의 장난으로 정교를 하자고 하면서 속으로는 사랑받고 싶어하는 것이다.

 남자는 귀족으로 뮤셀도 마찬가지. 평민인 처녀는 둘 사이에 끼여, 남자를 돌아보게 할 수 없다고 체념하고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던 것일까.


"아, 하하하……막이래? 무섭게 해버린건가? 오늘은 이쯤 해두자. 나, 목욕 안 해서 냄새가 날지도 몰라. 냄새나는 아저씨라고 미움받고 싶지는 않아서(웃음)."


"자작님……?"


"서랍에 팬티 새로운 것이 들어 있는 것 같으니까.목욕 먼저 해."


 처녀를 상처받게 하는 일이 없도록 남자는 애인에게 하는것처럼 되도록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고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하룻밤 장난으로 여자아이를 안는다면 그것도 좋다.

 하지만, 자신에게 연정을 느끼는 이 처녀의 마음을 희롱하면, 그런 처녀의 얼굴을 보고 뮤셀은 웃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까지 해놓고 손을 거두는 것은 서서히 괴롭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손에는 처녀의 유방의 부드러운 감촉과 젖꼭지의 미덥지 못한 감촉의 여운이 남아 있었다.


(이것뿐이라면 처음 미만이지?…….서툴렀나?)


 방 안쪽 욕실로 향하는 처녀의 엉덩이를 배웅하며 그녀의 유혹으로 음행에 다다른 경솔한 자신을 자책했다.




 작가 : asteri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