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하늘은 사람의 감성을 자극한다. 더불어 그것이 태양이 제 모습을 감춘 새까만 밤이라면, 그 감성은 배가 된다.

 

때문에 사내, 모항에서 지휘관이라 불리는 남성 역시 발코니에 기대어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손가에 들린 담배는 덤이었다.

 

쏴아아, 비가 내린다. 하염없이 내려 바닥을 적시고, 흐른다. 그 끝이 어딘지 모르는 여행, 사내는 허여멀건한 연기를 내뿜으며 그 광경을 조용히 감상했다.

 

……어디 갔나 했더니, 또 여기인가.”

 

반가워.”

 

허나 그것도 잠시, 발코니의 문이 열리며 등장한 여성이 미간을 부여잡았다. 사내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반겼고, 손에 들린 담배를 순식간에 던져버렸다.

 

담배, 끊어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말이야 쉽지, 한 번만 봐줘.”

 

……하아.”

 

여성, 그러니까 울리히는 가벼운 한숨과 함께 조용히 문을 닫은 뒤 사내가 바라보는 광경으로 시선을 옮겼다. 질척하고, 어두웠다.

 

그래도 뭐, 나쁘지 않았다. 울리히의 감상이었다.

 

이 늦은 시각에 안 자고 뭐 하는 거지.”

 

가만히 밖을 바라보던 울리히의 질문, 마찬가지로 멍하니 밖을 바라보던 사내의 고개가 그녀를 향했다.

 

나도 물어보고 싶었어. 이 늦은 시간에 왜 안 자?”

 

……질문은 내가 먼저 한 것 같은데 말이야.”

 

빨리 말해줘. 궁금하단 말이야.”

 

……미치겠군, 정말.”

 

지휘관은 뻔뻔했다. 맞은 편에 있는 울리히의 미간이 찌푸려지는 건 필연적인 결과였다.

 

물론, 그렇다고 지휘관의 미소가 지워지는 건 아니었지만.

 

그냥, 네가 안 잘 거 같아서 와봤다. 넌 항상 비 오는 날에 밤을 새우잖아.”

 

이야, 걱정해 준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 딱히 부정은 하지 않겠다.”

 

그럼 고마워. 진심이야.”

 

사내, 지휘관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애써 웃고 있다만, 눈가에 피든 피로는 숨길 수 없었다.

 

길게 내려앉은 다크서클, 창백한 피부, 그리고 탁한 눈동자까지, 누가 보아도 정상적인 컨디션은 아니었다.

 

그럼 이제 내 질문에 대답해라. 이 시간에 왜 항상 안 자고 이러고 있는 거지?”

 

들으면 놀랄 수도 있는데, 괜찮겠어?”

 

얼마나 대단한 이야기길래, 한번 말해봐라.”

 

품에서 담배를 꺼내려던 지휘관이었지만, 아까 던져버린 것이 마지막 담배였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지휘관이 가볍게 혀를 찼다.

 

비 오는 날에는 잠을 못 자겠거든. 정말 도저히.”

 

그게 무슨 소리지.”

 

간단한 대답이지만, 무언가 이상하다는 건 확실했다. 안 그래도 탁한 지휘관의 눈빛이 한 층 더 가라앉은 것이 그 증거였다.

 

비 오는 날 무서워하거든.”

 

하지만 곧 이어지는 대답에, 울리히는 지휘관의 손이 떨리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정말 미세했지만, 그것은 두려움에서 비롯된 떨림이었다울리히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혹시 그 이유까지 물어봐도 좋을까.”

 

이건 진짜 들으면 후회할 수도 있을 텐데. 괜찮겠어?”

 

겁주는 건가?”

 

아니. 나는 상관없어. 근데 네가 걱정되는 거지.”

 

말없이 손을 뻗어 흐르는 비를 받아내는 지휘관의 모습은 어딘가 아련하다 못해 처연했다. 울리히의 동공이 약간 커졌다.

 

말 해봐라.”

 

, 일말의 망설임도 없네, 멋있어. 박수라도 쳐주고 싶은 정도야.”

 

……됐고, 빨리 말 해봐라.”

 

……. 그래야지.”

 

조용히 고개 숙인 지휘관은 난간을 손가락으로 두들기기 시작했다. , , 손짓은 가벼웠지만, 마음은 무거워 보였다.

 

그렇게 톡, , , 가볍게 세 번, 난간이 비명을 지르고, 지휘관은 다시금 고개를 치켜들어 말한다.

 

우리 부모님, 비 오는 날 사고로 죽었거든, 나 어릴 때.”

 

……뭐라고?”

 

, 그래도 어차피 오래 살 운명은 아니었지만 말이야.’ 짧게 한 마디 덧붙인 지휘관이 쓰게 웃었다. 아니, 웃지 않았다. 저건 웃음이 아니었다.

 

…….”

 

울리히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저 쪼그라든 동공으로 그를 바라보는 게 최선이었다. 입꼬리도 살짝 내려가 있었다.

 

그래서 무서워, 비 오는 날 그 광경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이따금 꿈에 나오거든.”

 

……그럼 그 이따금이 설마.”

 

정답. 바로 비 오는 날이지.”

 

짝짝짝, 지휘관이 가볍게 박수치며 그녀를 칭찬했다. 물론 전혀 달갑게 느껴지지 않는 울리히였지만, 이것은 그 나름대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한 노력이었다.

 

울리히 역시 그 점을 이해하고 있었기에 딱히 뭐라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냥 비 오는 날 유독 슬퍼 보이던 그의 눈을 이제야 이해했을 뿐이지.

 

그런가, 그런 건가…….”

 

무언가 깨달음을 얻은 듯한 그녀의 말을 끝으로, 침묵이 이어졌다. 무거웠고, 또 싸늘했다. 그 날카로운 침묵의 장막 아래, 오직 지휘관만 웃고 있었다.

 

어때, 내가 후회할 거라고 했지?”

 

그렇기에 그 냉담한 침묵을 깨는 건 당연히 지휘관의 몫, 큭큭, 짧은 웃음은 덤이었다.

 

……지휘관. 그러니까.”

 

혹시 미안하다는 말 하려는 거면 미리 거절할게, 언젠간 꺼내야 했을 이야기니까.”

 

너한테는 특히.’ 울리히의 말을 끊어버린 지휘관이 살짝 눈웃음 지으며 말했다.

 

울리히의 동공이 잠시 작아졌다가 이내 제자리로 돌아왔다. 저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할 그녀가 아니었던 까닭이다.

 

그런데 혹시, 네가 너무너무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른다면, 부탁 하나 하고 싶은데 어때?”

 

……, 사심 채우기인가. 말 해봐라.”

 

어느새 뻔뻔한 모습으로 돌아온 지휘관의 모습을 보며 울리히는 쓰게 웃었다. , 뭐라 말 못 할 정도로 오묘한 감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추우니까, 손 좀 잡아줘.”

 

물론 지휘관은 그것보다 더 뻔뻔한 행동을 할 수 있었다.

 

……진심인가?”

 

잠깐의 침묵 후의 나온 한 마디, 지휘관은 대답으로 말 대신 행동을 택했다. 조용히 장갑을 벗어 그녀에게 손을 뻗어 보인 것이다.

 

창백했다. 여러모로.

 

그래. , 이 정도면 싸게 먹히는 거지.”

 

잠시 멍하니 바라보던 울리히였으나, 곧 지휘관의 손을 맞잡았다. 차가운 데다,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덕분에 울리히는 망설임 없이 손을 접어 그와 깍지를 꼈다. 둘의 사이가 더 좁혀졌고, 손의 떨림은 차츰 가라앉아 완전히 사라졌다. 온기가 차오른 것은 덤이다.

 

따듯하네.”

 

그럼 다행이지.”

 

그렇게 한참이나, 지휘관과 울리히는 손을 맞잡은 채로 밖을 바라봤다. 풍경은 그대로였지만, 딱히 질척하게도, 어둡게도 느껴지지 않았다. 둘의 공통 된 감상이었다.

 

혹시 내일 시간 있어?”

 

내일? 나야 별일 없지. 늘 바쁜 너와 달리.”

 

무언가 비교하듯 말한 울리히였지만, 이는 그녀 나름의 걱정이었다. 지휘관 역시 그 속내를 이해했기에, 조용히 입꼬리를 올릴 수 있었고.

 

그럼 같이 사내로 나갈래? 내일은 나도 별일 없거든.”

 

갑자기?”

 

로맨틱이라는 단어랑 거리가 많이 멀긴 한데, 이거 데이트 신청이야.”

 

순간 턱, 하고, 울리히의 말문이 막혔다. 무언가 싫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순수하게 당황한 것이 그 이유였다.

 

, 나 정도면 괜찮지 않아?”

 

하지만 그것도 잠시, 뻔뻔하게 얼굴을 들이미는 지휘관을 보며 울리히는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말문도 트였다.

 

그래. 너 정도면 훌륭하지.”

 

그리 말하며 울리히는 지휘관과 시선을 교차했다. 둘의 눈동자가 섞이는 그 순간, 지휘관의 탁한 눈에 약간이나마 생기가 들어찼다. 마찬가지로 미소도 옮겨갔다.

 

그럼, 승낙으로 받아들여도 좋을까?”

 

당연하지. 잔뜩 기대하마.”

 

그거 다행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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