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492 ND/DSB1-0672 복궤 HRAS-8형


   후나하/20 신장-146(임시)

   기타사항- (전)실험체


   액세서리 - 추가예정


   - 오드아이. 좌(회색) / 우(푸른색)

   - 외투 깃쪽을 팔에 걸침.

   - 정수리 작은 바보털.

   - 속에 얇은 목티류.

     


   주※ 순화시켰지만 고어/신체결손 등 피폐요소에 대해 불호이신 분은 펼치길 고민해주세요.

   [첫짤/자캐 배경 단편글 가내수공업]

글 불러오기(접기)












   듣거나 읽고 있을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다.



   어릴적에는 고아원에서 자란 기억밖에 없다. 그야 당연히 한두 살 시절부터 눈에 보인 풍경과 건물은 고아원이 처음이었으며, 자라난 곳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달리 다른 누구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주변 내 또래 아이들 또한 전부 같거나 비슷한 처지였었으니.

   하지만 이후 지식이 쌓이고, 살다보니 가족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이해하며ㅡ궁금증을 가졌다.


   나는 누구에게서부터 낳아졌을까. 자신을 낳은 부모에 대한 궁금증으로 여러가지 파헤쳐보고 얄팍한 지식으로 정보를 모아보았다.



   고아원 내부 건물을 아무도 모르게 쥐잡듯 뒤져보며 때론 어른들에게 물어보고-찾아가다보니 결국엔 원장실까지 들어가게 되어버렸다.


   달리 누군가가 찾아오지도 않고, 아이들밖에 없어서 그랬던 것인지 보안체계는 허술해서 들어가기 쉬웠다.

   선반의 여러 파일들을 뒤지다가, 무언가가 발치에 툭 떨어져서 보았더니 기록장으로 보였다.



   앞장을 펼쳐보니 지금 현재 아이들이 고아원에 들어오게 된 경위를 적어논 기록장이었다.

   연도별로 정리된 기록장을 몰래 찾아서 문서를 본 결과 자신의 부모는 출생신고도 하지 않은 채 품 안에 소정의 금액과 같이 고아원에 두고갔다고 적혀있었다.


   이게 뭐지? 처음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리고 적은 지식으로도 가족이라는것을 배우고, 그 단어를 떠올렸을 때 결코 혈육끼리는 이런 결과로 이어지지가 않았다.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잠시 그저 얇디 얇은 종잇장을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모르는것이 약이라고 했던가··· 살면서 경험해보지 못한 감정이 가슴과 머릿속을 휘젓는 충격에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몰랐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는지 감이 잡히지 않을때 쯤, 저 멀리서 고아원의 원장이 누군가와 대화하며 이쪽으로 다가오는것을 느끼자마자 정신을 차렸다.

   허겁지겁 날랜 손짓으로 뒤처리를 하며 작은 몸을 이용해 몰래 빠져나왔다.



   자신은 얼굴조차 보지 못한 부모에 대해 그 편린을 알게 되었을 때의 느낌은, 무언가 다시 느끼기 싫은 섬짓한 감각이었다.


   시간이 지나 가끔씩 떨리던 몸도 매 순간 찾아오는 섬짓한 감각도 우울한 기분도 약간은 나아졌을 때, 문득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낳은 사람ㅡ부모는 어째서 나를 버려두고 갔을까.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이 경제적인 빈곤인지, 불법체류자인지ㅡ범법자인지, 불화로 인한 이혼인지. 아니면, 부모가 결혼조차 하지 않았던건지··· 결국 어린 나이에 알 수 있는것은 없었다.



   아무도 모를 추운 달동네의 지방 고아원에서 삶을 이어갔다. 주변 동네 사람들의 고아에 대한 안좋은 시선과 그들의 거처 가까운 곳에 지어질 예정이었던 고아원에 대해 외치던 반대의사 때문인지, 밀집된 중앙과 좀 떨어진 끝자락에 고아원이 있었다.


   그곳에서 삶을 살아갔다. 그렇게나 궁금하던 자신의 부모에 대한 궁금증은 매번 자신을 배신하는 느낌이었으며, 년단위로 생각을 하고 알아보려 이리저리 돌아다녀도 돌아오는것은 안쓰러운 것을 보는 시선과 점점 어린나이에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 체념하고 순응하고 있던 모습이었다.



   그렇게 무탈하게 생을 이어가나 싶은 순간, 눈이 미칠듯 쏟아지던 지방에서의 어두운 밤. 모든 사람들이 곤히 자고 있을 시간. 귀청이 멀 듯한 엄청난 폭음이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몸이 움찔 튀었다. 심장이 미친듯이 뛰었다.


   주변에서 들리는 모든 소음은 소리가 지향성을 잃은듯 여기저기 울렁이고 반사되어 들리는 것 같았으며 날카로운 고음의 이명이 귓가를 찔렀다.



   머리를 타격당한 느낌이다. 시야에 보이는 모든것들엔 잔상이 남으며 세상이 늘어진다.


   상황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도대체 뭐지?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정신을 바로잡아보려 해도 휘청이는 몸과 함깨 자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강제로 깨어난 머리로는 정상적인 사고가 힘들었다.


   아까보다는 작은 것 같지만, 그럼에도 큰 폭발음이 한차례 더 세상을 뒤흔들었다. 이정도 소리라면 저기 떨어진 마을의 주민들도 크게 들릴것 같았다.



   이명이 차차 잦아들고 두 귀는 조금씩 예민해져갔다. 소리가 들린다. 어른들의 고함이 들려왔다. 아이들의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혼돈, 그 자체였다. 달동네의 허술한 가구와 건축물은 하염없이 스러져가고, 아이들이 울고, 어른이 성대가 찢어질듯 한 고통의 소리를 내지르며ㅡ 주변에서는 밖으로 나가라. 도망쳐라. 건물이 무너진다.


   정신 나갈 것 같은 상황에서 패닉에 빠지려 했다. 치솟은 불길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잠싯동안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위에서 갑자기 불에 타고 있는 나무 쪼가리가 오른쪽 팔에 여러개 후두둑 떨어졌다.



   팔에서부터 온몸으로 끔찍한 격통이 퍼져나갔다. 나도 다른 아이들과 다를 바 없이 어느 순간부터 목에서 언어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소리가 터져나왔다.


   미친듯이 비산하는 불똥을 피하며 어른을 찾는데 석면으로 이루어진 천장에서 판떼기 들이 떨어져 길을 가로막았다. 자신이 있는 쪽에서 고아원 정문으로 나가려고 한다면 이 앞을 지나가야 한다.


   하지만 어린 자신의 힘으로 석고보드나 시멘트를 짧은 시간 안에 사람이 지나갈 크기로 부술 수도 없고, 저 무너진 잔해를 헤치고 갈 수도 없었다.


   연쇄 폭발인지, 다시 한 번 쾅ㅡ 하며 진동이 일었다. 얼타는 사이 주변에 있던 아이들은 이미 복도를 지나간지 오래다. 그 탓인지 비명소리도 조금씩 멀어지는 것 같았다.



   계속되는 어른들의 도망치라는 고함소리에 어쩔 수 없이 아이들과 어른들이 모여있는 큰 정문쪽으로 갈 수 없어서 작게 이어진 좁은 뒷문으로 몸을 날렸다. 아이들과 달리기 내기를 했을때도 이렇게 빨리 움직이지는 못했다.


   당연히 신발 또한 챙기지 못했고 입고있는 옷 또한 조금 두꺼운 잠옷이었다. 하지만 잠옷은 잠옷인지라 밖의 추위에는 몸을 따뜻하게 해주지 못했다.


   화상을 심하게 입은 채 생존본능에 몸을 맡겨 미친듯이 달렸다. 건물이 터지며 돌가루가 휘날리는 광경에 더더욱 멀리 떨어지고 싶었다.

   언제 자신쪽으로 파편이 튈 지 모른다. 정문쪽으로 가는 길목 또한 갖가지 파편들로 꽉 막혀있었다.



   무작정 달렸다. 나중에라도 어른들이 나를 찾으러 와 줄 것이라 생각했다. 솔직히 정상적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내 머릿속은 어른들이 빨리 나가라고, 도망치라고 하는 말만을 계속 상기시켰다.


   밖의 매서운 추위와 곱게 포장되지 않아 거칠거칠한 눈쌓인 바닥에 양말도 신지 않은 맨발은 쓸려 생채기가 나고 상처에 맺힌 핏방울이 발걸음에 늘어져 눈밭에 붉은 선을 그었다. 그리고 차가운 눈밭에 오래 서 있어 서서히 감각이 없어져 가는 것 같았다.


   뒷문으로 나와 달리던 골목길, 치워지지 않은 금속 조각이 발을 찔렀다. 따끔했지만 크게 아프지가 않았다.

   그렇지만 이제는 달릴 수 조차 없었다. 아니, 어차피 체력은 이미 다 떨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힘들었다. 그리고 추웠다. 으슬으슬 몸이 떨렸다. 그 상태로 걷다 갑자기 힘이 빠지더니 눈밭 위에 쓰러졌다.

   몸이 바닥에 엎어졌을 때 아프지는 않았다. 아니면 감각이 사라졌던 것일지도 모른다.



   한번 몸이 누워버리니 다시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일어날 수가 없었다. 눈 앞에 보이는 하얀 눈 사이로 아름답고 반짝이는 결정이 보이는 듯 싶었다.


   무언가 눈이 감긴다. 피곤하다. 이대로 자고싶다. 사라져가는 감각 사이로, 눈덮인 땅을 밟는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와 짜증섞인 듯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몸이 붕 뜨는 느낌이다. 누군가가 나를 들고 있는 건가? 누구지? 자주 높게 들어주셨던··· 선생님인가? 아니면 누구지····.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이미 완전히 감겨버린 눈은 피로해진 몸을 바로 잠에 빠지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렇게 눈을 뜨고, 잠시 기절하고. 다시 두 눈을 열어 세상을 확인한 순간 눈에 보인것은 모든것을 불태우던 강렬한 화염이 아닌, 정 반대의 눈덮인 설원과도 같은 서늘한 감각이 느껴지는 하얀 바닥과ㅡ



   소리없이 울먹이며, 얼굴을 파묻고, 서로를 껴안으며 떨거나ㅡ허공을 초점없이 바라보고 있는 열댓명의 아이들이었다.

    당혹스러웠다. 내가 알던 애들이 아니었다. 나이는 다양했다. 초등학생, 중학생, 한두 명의 고등학생이었을까.


   처음 본 상황속에 대한 당황과 미지에 대한 공포, 두려움. 그리고 암울한 분위기. 주변 상황으로 인해 새하얀 공간에 대한 호기심은 들 수 없었다.


   우울한 분위기 속 나도 저들처럼 무릎을 가슴쪽으로 모으고 머리를 숙이며 가만히 있자니 대략 한두 시간이 지난 때 쯤, 흰색 가운을 입은 남성이 들어와 무미건조한 표정과 몸짓, 어투로 아이들을 어딘가로 인솔하려 했다.



   반응은 다양했다. 가기 싫다는 아이와, 체념한 듯 아무말 없이 따라가거나ㅡ 그 외 몸을떨며 가만히 있던 아이 등등 다른 나오지 않는 인원을 굳이 나오라고 윽박지르거나 때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한두 명씩 서서히 부름에 따라 사라지며 혼자 남겨진다는 공포감에 결국은 전부 고민끝에 따라나섰다. 가는 도중, 다른 방향으로 가는 몇몇의 아이들이 보였다.



   그렇게 어디인지 모를 밝지만 스산하고, 인위적이고ㅡ기계적인 건물 내를 걷고 걸으며 도착한 곳에서 한명한명 여러가지 검사를 진행했다.

   언젠가 한번, 고아원에 자원봉사 목적으로 왔던 분들의 신체검사와는 사뭇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이었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나는 지금 자신이 왜 이런 곳에 발을 들여놓은 채 며칠동안 이름모를 검사를 받는 생활을 하고 있는지, 자신이 있던 고아원의 상황은 어떻게 되었는지. 저들은 또 누구이고 무엇을 하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고아원에서처럼 지나다니는 누군가에게 물어봐도 수확은 없었다. 그저 관심 없다는 느낌과, 귀찮다는 시선을 보내며 무시했다.

   아니면 알지 못한다고 둘러대었다. 그중 일부 사람은 나와는 다른 언어를 사용했다. 머리칼의 색도 달랐다.



   며칠이 지나도 찾아오지 않는 고아원의 어른들에 대해 큰 사고때문에 잠시 나를 잊어버린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부모때 처럼 다시 한 번 더 버려진것인가 생각했다.


   밝지 않은 분위기 속 그래도 한가지 위안이 되는것이 있다면, 아이들이 몸을 뉘일 새하얗고 검은 가구와 벽지의 방을 배정받을 때 당시 13살 즈음의 나보다 더 성숙한···

    아마, 고등학생이지 않을까 싶은 기댈 수 있는 연장자와 같은 방에 있고 또 의지할 수 있게 다듬어준 온화한 여학생 언니 때문일까. 그나마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름모를 기계에 머리부터 발 끝을 집어넣고, 뭔지모를 기계를 몸에 부착시키고 무언갈 두드리고, 알기싫을 무언갈 마시라고-먹으라고 주며 점점 뭔지모를 공포감과 심리적 불안함이 커져가는 동시에, 자신보다 더 오래 살고 버팀목이 되어주는 언니에 대한 의존감과 신뢰감은 커져갔다.


   그렇게 이 공간에 발을 들인지 한 달 남짓의 시간이 흘렀을까. 최근따라 유난히 소란스러워진 느낌이다.

   아니, 소란스럽다고 해도 방음ㅡ밀폐처리가 완벽하게 되어있는 내가 있는 검정과 흰 방에서는 딱히 무언가 들리진 않았지만, 검사를 목적으로 나갈 때 그런 느낌을 받았다.



   어느때와 같은 자신을 부르는 상황에, 군말 없이 따라 나갔다. 하지만 그 날은 무언가가 달랐다. 걸어가는 방향부터 달랐다. 평소 검사실로 가던 쪽 보다 훨씬 깊이 들어갔다.


   평소보다 느껴지는 차가운 바닥의 서늘함이 더욱 더 잘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미 하얀색의 밝은 주변이지만, 앞의 수술실 같이 보이는 공간은 그 주위보다 매우 밝았다.


   여러 사람이 오갔다. 분주하게 준비하는 듯 바삐 움직였다. 이중을 넘어 삼중으로 가려진 수술실을 나를 데려온 흰색 의사복의 남자가 여러 개의 카드키를 통해 열고 들어갔다.



   눈에 보이는 공간에 들어갔다. 수많은 기계와 도구들. 돟그랗고, 네모낳다. 뾰족하고, 뭉툭하다. 빛이 반사된다ㅡ예리하다. 명령에 따라 하얀 침대에 몸을 뉘었다. 그리고 묵직한 차가운 금속성의 도구가 몸을 고정시켰다.


   여러 섬뜩한 도구들과 장치가 가득한 방 안에서 갑자기 온 몸이 구속되니 이미 불안정한 정신상태가 더욱 악화되는 것 같았다. 입에서 작게 신음성이 나도 모르게 새어 나왔다.


   이후 머리까지 고정된 탓에 어쩔 수 없이 바로 앞의 공중을 응시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여러개의 불빛에, 눈을 찡그렸다. 숨을 쉴 때 마다 무언가 몸이 나른해져만 갔다.


   무언가 오른팔과 왼팔에 약간 따끔한 느낌이 들었지만, 제대로 고통이 전달되지 않았다. 뾰족한 것이 양 팔을 뚫는 느낌이 들었지만 느낌만 날 뿐 아픔은 없었다. 그리고, 애초에 고정된 머리 때문에 볼 수도 없었다.



   약간의 시간이 흘렀다. 힘이 들어가고 있는건지 힘이 빠진건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밝은 불빛에 찡그린 눈이, 제대로 힘을 줘 찡그러뜨리고 있는것인지 잘 감이 잡히지 않았다.


   머릿속에 뿌연 안개가 낀 것 같다. 그 안에 있으면, 매우 축축해질 것 같은 불쾌하기 짝이없는 그런 안개가.


   점점 양 다리부터 감각이 없어졌다. 그게, 신체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 없어지는 느낌이다. 제대로 붙어있겠지만 점점 몸체만 남은 토르소처럼 되어가는 그런 느낌이다.


   무섭다. 오한이 오는 것 같다. 무섭다. 눈 앞이 일그러진다. 무서워. 정신만 따로 떨어진 것 같다.

   왜? 어째서? 이해하지 못했다. 왜 등도 이제는 차갑지 않지? 왜 감각이 없지? 왜 점점 앞이 보이지 않지? 왜ㅡ 어째서ㅡ



   점점, 달궈지는, 뜨거워지는 것 같지····. 갖가지 약을 먹어, 아픔이 느껴지지 않아야 할 텐데 어째선지 오른팔과 다른 화상 흉터에서 그때와 똑같은 아픔이 다시 팔을 타고 올라왔다.



   그렇게 시야가 완전히 거뭇하게 변했다. 마지막으로 기억하는것은 속이 메스껍게 느껴질듯 울렁이는 시야와 정신 나갈듯한 공포감이었다.




   그 이후의 기억은 잘 떠올려지지 않는다. 무언가, 머릿속에 떠오르는것이 흐릿한 안개처럼 잡힐듯 하다가 흩어졌다.


   기억하기 싫은 것일까···· 아. 무언가 조금 기억이 났다. 결국에는 머릿속의 안개낀 하늘이 일렁인다. 노이즈가 낀 흰색이 일렁인다.

   약간씩 들리던 내 숨소리도. 분주히 움직이고 덜그럭 거리던 소음도. 낮은 저음의 울림을 내던 기계의 떨림도. 내 심장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음날, 앞이 보이지 않았다.



   일어나서 눈을 뜬 것 같았지만 시야는 여전히 검은색이었다. 당혹감에 눈에 더욱 힘을 주었지만 보이는것은 여전히 검은 시야.

   자글자글한 무언가가 수없이 많은 형태를 이루면서 돌아다니는 것 같았지만 그 어느것도 형태가 확실치 않았다.



   머리를 만져보았다. 긴 머리카락 사이로, 머리 절반을 뒤덮은 거칠면서도 부드러운 붕대와 또 양 팔뚝에는 거즈같은것이 느껴졌다.

   머리의 측면에, 금속재질의 무언가가 달려있었다. 그것의 안쪽으로, 머리카락을 헤집으며 손끝으로 파고 들었다. 머리를 감싼 붕대보다 더 안쪽에 있는 것 같았다.


   더이상 이것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머리와 무언가가 연결된 느낌과 촉감, 무게감, 그 어느것도 파고 들고 싶지 않았다.



   붕대가 눈을 막고있지는 않았다. 몸을 움직이는 감각과, 눈꺼풀이 깜빡이는것은 아마도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앞이 왜 보이지 않는거지?


   눈 주변을 계속 만져보았다. 짧은 손톱으로 주변을 긁어보았다. 마사지하듯, 문질러 보았다. 으으,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진다.


   계속 그러자 무언가 끈쩍하고 물컹한, 점액질의 액체와 약간 물렁하지만 탄력있는듯한. 소름돋는 촉감이 손가락 끝을 타고 흘러들어왔다.



     순간, 온 몸이 경직되는 것 같았다. 모든 행동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근데, 손가락 끝은 여전히 물컹한ㅡ안구를 헤집고 있었다.


   반대쪽 팔로 정신이 혼미해질 것 같은 불쾌감이 느껴지는 팔목을 잡고, 떼어내려 했다. 잘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어떻게든 굳은것 같은 근육에 힘을 줘 떼어냈다.


   뭐지? 내 팔이 내 팔이 아닌 것 같다. 팔을 떼어내기 너무 힘들었다. 힘이 안 들어가는 팔뚝을 정말 어거지로 쥐어잡은 손의 손톱이 피부를 짓누르다 못해 결국 파고 들어가는것 같았지만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얼마나 자신의 팔과 싸움을 했을까. 잠시 후 압력이 빠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개폐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귓가가 멍했다. 소리는, 반사되어 울리는 것 같았다. 공명하는 것 같았다.


   말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문장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실험체? 시작? 설계? 시간이 없다? 뭐라고 하는거지? 그러고보니 언니는? 어디있는거지? 왜 없었지?


   한숨을 쉬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들어온 누군가가 갑자기 팔목을 붙잡는 것 같았다. 강제로 몸이 휘청였다. 누군가가 팔뚝을 잡으니 그제서야 알았다.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게 아니었다. 손가락 끝이 눈을 멋대로 헤집고 있던것이 아니었다. 내 팔은. 아니, 내 몸은ㅡ



   미친듯이 떨리고 있었다.



   실험은 끝나지 않았다.



   그다음 날에는 머리에 이상한 것이 달려있던 쪽의 귀만 소리가 들렸다. 정확힌, 몸의 절반만 감각이 느껴졌다. 걸으려고 해보니 발이 꼬여 넘어지기만 했다.



   또 다음날에는 절반만 느껴지던 감각이 조금 돌아왔지만, 한쪽 팔의 감각은 아직도 없었다. 아직 감각이 덜 돌아온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시야가 서서히 눈에 들어오는 것 같았다.



   그 다음날에는 사물의 형태를 분간할 수 있을 정도로 눈 앞이 밝아졌다. 그런데, 한쪽 팔을 보니 축 늘어진 옷자락만 보일 뿐 본래 있어야 할 것이 없었다.

  ····오른팔이었다. 뭐지? 머리가 지금 이것에 대해 이해를 하려하지 않았다. 다시, 몸이 미친듯이 떨려왔다.



   또 그 다음날에는 확연히 시야가 밝아졌다. 그런데 가끔 오른쪽 눈에 지직거리는 노이즈가 끼었다. 오른쪽 시야만 디지털 패널로 출력된 사진을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오늘은 흰색의 가운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굉장히 반가운 얼굴이 들어왔다. 언니였다. 어째선지 이름을 알려주진 않지만 그래도...잠깐. 뭐지?



   기쁜 마음에 달려들려던 두 다리가 다시 멈춰섰다. ···언니의 다리가 없었다. 하얀색의 얇은 바지는 축 늘어져 있었고, 한쪽 바지는 조금 잘려 있어서 절단면이 그대로 드러났다.  ···절단면에는 쇠사슬이 꽂혀있었다.


   배급해주는 맛이 있지도, 없지도 않은 말 그대로 맛 자체가 없는 음식물이 위에서 역류했다. 미친듯이 속을 게워냈다.

   오른팔에서 끔찍하게 지져지는 듯 한 고통이 느껴졌다. 오늘 처음 일어났을 때 손톱으로 허벅지를 찢듯 그어봐도 아픔이 느껴지지 않음에도.



   다음날 흰 가운의 남성이··· 아니, 여성이 들어왔다. 여전히 실험체라고 불렸다. 나가자고 하였다. 가기 싫었다. 강요하는 여성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애원했다.

   두 눈에서 무언가가 흐르는 듯 했다. 여성은 소름이 돋은듯 놀라며 고함치더니 내 고개가 갑자기 한쪽으로 급격히 돌아갔다.


   이후, 코에서도 무언가가 흐르는 느낌이 났다. 눈에서 흐르던 것 보다, 더욱 점성있고 꾸덕한 무언가가. 이후 언니가 그만 하라며 소리쳤다.

   다리가 없어서 굴러 떨어지듯 떨어지고, 팔로 기어왔다. 여성은 실험체에게 위해를 가하는 행위를 금하라 했건만, 어떻게 그러냐.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언니를 발로 차려 했다.


   나는 곧바로 다시 일어나서 말했다. 갈 테니까. 갈 테니까요. 처음과는 다르게 애원했다. 이때부터였을까 누구에게 말하든 존댓말이 입에 붙어버렸다.

    적어도, 말을 했을때 상황이 더욱 나빠지지는 않았다. 고아원에서는 명량한 느낌의 반말투였던 것 같긴 하지만 이제와서 그다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수술실로 들어가고 그 다음날 일어났을 때 이번에는 한쪽 눈이 보이지 않았다. 노이즈가 끼던 오른쪽 눈이었다.

   더욱 정확히는, 신체적 기관이 있어야 할 동그란 공간 안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손가락을 찔러넣어 안쪽을 긁어보았다. 서걱, 사각사각. 소리가 들려왔다.


   사각, 사각ㅡ. 고통은 딱히 없었다.



   다음날 일어났을땐 이번엔 절단되어 있었던 오른팔이 다시 붙어있었다. 또한 일어나자마자 들어온 사람은 여러 약물을 투여시키고 대여섯 개의 약을 먹였다.

   있었던 것이 하루아침에 없어지고, 없었던 것이 하루아침만에 다시 생기니 미칠듯한. 정말 진짜 미칠듯한 위화감이 들었다.


   언니 또한 불려나가고 돌아오길 반복했다. 두 다리가 없다는 것만 빼면, 아직까진 별다른 변화점은 없다. 아. 추가로 점점 머리카락이 푸석해지고 코피가 자주 터진다는 것 빼면.



   그 후 며칠간은 하루에 두 번, 연구원이 들어와서 태블릿에 무언갈 적거나 체크하거나 하는 등의 일만 있었다. 나의 등에 무언가 손바닥보다 작은 기계장치를 붙혔다.

   언니는 나랑은 매우 다른걸 붙혔다. 나는 괜찮았지만 언니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저정도는 가끔씩 봐와서 익숙하다.



   약물 주사와 약을 복용하기 시작한 지 며칠 안되었을 때다. 점점 몸이 뒤틀려가고 돌아오길 반복했다.


   어떨때는 귀가 미친듯이 밝아져서 잠도 못자거나, 다리나 팔, 가슴 등이 심히 비대해지거나, 심장이 매우 빠르게 뛰던가 등등. 많았다.



   어떤날은 절단 후 붙혔던 팔에 붉은 반점이 약간 생기더니 한쪽 면이 조금씩 갈라졌다. 무언가 부풀었다.

   그러더니-찌지직, 쩌적ㅡ. 질척이는 무언가가 얼굴과 몸에 튀었다. 눈에도 들어간 것 같다. 앞이 빨갛게 물들었다.


   옆에서 언니의 끔찍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안에서 열리지 않는 굳게 닫힌 문을 미친듯 정신나간 사람처럼 두드리면서 도움을 요청했다.



    아, 아으. 아아아··· 하는, 바보같은 말 밖에는 내지 못했던 것 같다. 사람의 몸에서 이런 소리가 나올 수 있구나 싶은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미친생각이 들었다. 따뜻한 액체가 뭉텅이로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아까 전 부터 무언가 귓가를 찌르는 비프음이 들렸었는데, 내 등에 전에 붙혔던 기계장치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이런 용도였구나. 빠르게 열린 문에서 관련 인원들이 들어와 언니를 거칠게 밀치는것을 끝으로 의식을 잃었다.



   그 후 며칠 뒤, 새 눈이 비어있던 공간에 새로이 무언가가 끼워졌다. 당연히 순탄할 리 없었다. 며칠 안가 눈을 까뒤집고 개거품을 물며 발작했다.

   결국에는 오른팔도, 안구도 깨끗히 내 몸과 똑같이 제대로 붙혀졌다. 어깨에는 꼬맨 자국이랑은 다른 흉터가 남아 있었지만.


   언니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속에서부터 가끔 무언가 울렁이는 느낌이야. 요즘 입에서 쇠맛이 너무 쎈데... 입냄새 나진 않지? 하는, 말이나 하더니 결국 방 안에는 비릿한 혈향이 없는 날이 드물었다.


   계속되는 약물 투여와 신체변형, 몸 속에 자꾸 무언가가 들어차는 기계장치들. 전선과 보조장치들을 매일같이 달고 있었다. 이젠, 아무것도 모르겠다.



   별달리 할 것도 없는 방 안에서는 크게 유흥거리라거나 그런것은 당연히 없었다. 그저 새로운 생각을 하며 그것을 입 밖으로 내뱉고 머리카락으로 무언갈 만든다던지 하는 그런 것 밖에는 말이다.


   그냥 이번에도 실없는 대화나 나눌까····? 아무렇게나 생각해 말하는 것이어도 말이다.



   그래, 둘이 같이 영양가 없는 농담이라도 하자. 시간이라도 죽이자.



   흐음. 하하하. 뭔가 재밌지 않아요? 저, 이거 어때요. 뭔가 막 전선도 달려있고 옆구리 보면 피부가 없이 기계장치들이 들어차 있어요. 뭔가 멋지지 않아요? 남자애들이 그렇게 로봇을 좋아했는데.


   음, 아마 다른데도 더 이럴것 같긴 한데요... 아ㅡ 맞다! 저 머리도 엄청 잘 돌아가요. 어으음, 도대체 이런게 왜 떠오르는진 모르겠는데.... 35m 거리에 있는 농구골대에 슛 넣는 방법을 알려드릴까요? 대답해 줄래요? 네? ...잘 안들려요.



   좀, 더, 크게. 말해주실래요?



   으음... 그으래요. 피곤하실 수도 있죠. 요즘 엄청 힘드셨던 것 같은데... 아아, 생각하니까 저도 좀 피곤한 것 같네요... 오늘도 같이 껴안고 자도 되죠?


   오늘따라 좀 몸이 매우 차갑네요. 아, 괜찮아요. 전 차가운걸 엄청 좋아하니까요. 뜨거운거는 딱히... 아니, 싫네요. 그런데... 갑자기 떠오르는 말이 있네요. 네, 정말 갑작스럽게 말이에요...


   ....조금만, 들어주실래요?



  ...지금 나는 아노라 저 무지개가


   내 머리위 높은 곳에 걸려있음을


   내가 걸어가는 이 좁은 길 위로 멀리 한참을 떨어진 자리에 있음을


   그 때문에 내 옆에 함깨 서는 자도  나를 깊이 이해한다 여기는 자도


   누구든지 그 모습을 보지 못하리라


   나를 위로하듯 반짝이는 무지개를



   ...히히..이, ....음.. 흠... 그냥 말하지 말 걸 그랬어요. 무지개는.... 흔히 키우던 애묘나 동물이 죽을때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하잖아요.

   언니가 키우던 동물은 아니지만, 그냥.... 네. 그냥 뭔가 기분나쁘네요.


   ....잘, 자요.


   ····.



   다음날 일어났을때는 껴안고 자던 언니는 보이지 않았다. 너무 오래 잔 탓인지, 잠에서 깬 지 얼마 안 되었음에도 연구원이 들어왔다.


   저번처럼 시간이 없다며 따라 나오길 재촉했다. 여전히 실험은 계속되었다.



   실험은 쉬지않고, 계속 이어졌다. 정말 죽을듯 싶을때에만 일시중단한 정도일까. 몇 번 째일까 생각하는것은 그만두었다.


   팔과 다리는 딱히 건들지 않았다. 보통 몸체쪽이나 특히, 머리쪽을 많이 건드렸다.

   고통이 없는데 일부 신체가 적출되거나, 떨어지거나, 붙혀지거나, 하는데 느낌만 느껴지지 아픔이 없으니 미칠 노릇이었다. ···아니면, 이미 미챠있거나.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그냥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이 공간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의 나이가 열 세살 즈음이었으니··· 얼마나 흐른거지.

   달력이라도 있었으면 좋았겠다. 체크할 연필은 없었지만, 피를 내어 적으면 그만이었으니까 말이다.


   며칠, 몇 달. 아니···· 년단위로 시간이 흘렀을 수도 있다. 솔직히 시간개념이란 건 이제와서 의미가 없었다.

   어차피 고통을 못 느끼는데 매번 쓸데없는 마취제로 인해 기절하고ㅡ 깨어나고ㅡ 하는 일의 반복이 너무나도 많아서.



   나는 언제까지 여기에 갇혀서 저들의 모르모트가 되어야 할까? 도대체 무슨 이득이 있을까. 목적이 무엇일까.


   솔직히, 알 것 같기도 하다. 내 몸에 심어진 기계와 인공장기들. 머릿속에 박힌 반영구적인 칩셋들.


   배우지도 않았던 방대한 데이터의 지식들이 밀려 들어온다. 나로 인해 저들이 얻는 데이터와 결과, 목적은 굳이 크게 생각을 안 해도 알 것 같다.



   모르겠다. 내가 매번 이 끔찍하고 지랄맞은 실험을 왜 당하는지, 그런것에 대한건 아니다. 그저·····


   나는 어떻게 될까. 겉보기에는 평범하지만, 안은 진탕인 내가 과연 인간이라 부르는것의 정의에 부합하는지 모르겠다.


  몇번이고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해보아도 결과로 떠오르는 텍스트는 결국 밝은 상황은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밝은 상황은 무엇이었지? 이런 류의 밝다는것에 대한건··· 뭐였지. 이러한 것에 대한 데이터는 없었다. 하지만 떠오를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생각이, 기억이 떠오르진 않는다.



   아아, 나는 어쩌면 행복한게 아닐까. 사회에선, 남들과 치열한 경쟁을 하고. 감정의 소모를 하며 머리를 싸매고 어떻게 살아남을지 궁리하며, 자신이 인정받기 위해 재능과 그 가치를 갈고닦으려고 한다.


   그런데, 나는 그딴거 필요 없어. 아니, 하지도 못해. 그렇지만 괜찮지 않을까.


   나는 그냥 가만히 탱자탱자 시간을 죽이거나 자면서 방에 박혀있으면 돼.


   다른 누군과 경쟁을 할 필요도 없어. 대부분의 애들은 이미 다 죽거나 폐기처분이 이루어지거나··· 그다지 알고싶진 않았어. 종종 직전의 상황을 보기도 했으니.


   그러니까 남들과의 불화로 감정소모를 하지 않아도 돼. 연구자들과의 갈등? 굳이 갈등을 맺을 필요가 있을까?


   살아남으려 재능과 가치를 갈고닦지 않아도 이미 충분해. 내 몸 자체가 이미 저들에게 충분하고 훌륭한 결과를 가져다 주고, 그로인한 생존 가치는 충분하니까.


   생각해보면 마냥 나쁘지만은 않는 것 같기도 해. 비록 자유가 저들에 의해 단단히 묶여있다곤 해도, 이정도는 버릴 수 있어.


   오락은 그냥 내 머릿속 자체가 오락거리야. 체스라는거 은근 할만은 한데, 짜증나더라. 음악은···· 주파수를 재생할 발음체가 없네. 아, 이건 좀... 많이 아쉬워.



   그래도 지금 상황에 불만은 크게 없으려나. 근데 미래에 대한것은 딱히 생각하기는 싫네. 아니, 생각해도 의미는 없겠지. 저 벽지 의외로 예쁘네. 미래에 대한건 벽지가 이쁘다는거. 뭐랄까, 지금 아무리 생각해도 의미가 잠시 누울까. 없을거야.



   미래는 지금 어어, 알 수 있지않을까? 일어나거나, 일어나려는 거에 종이비행기를 접어 모든 환경변수를 연산해 정확히 일직선상으로 쭉 날린다거나. 대해서는 계산과 예측이 가능하지만 그런 말도 안 되는 기적을 계산한다라... 라플라스의 마녀야? 정해지지 않은 미래는 몰라.



   타임머신이 개발되어도 과거는 갈 수 있어도 딱히 과거로 갈 필요가 있어? 미래로 이동하는건 미래가 있어? 불가능 할 것 같다는게 내 생각 을 할 필요가 있어? 이긴 하다만.


   근데 뭐, 왜그래? 이런 생각은 집어 치우고 필요하지 않아? 아무튼 나는 그럭저럭 만족한 만족하지 않잖아. 생활을 보내고 있는데,



   그리 많진 않지만 샐 수 없이 많잖아. 그 기적을 계산해봐도 결과값은 항상 처참했잖아. 딱히, 신경은 안썻 다고 할 수는 절대 없잖아. 지만.


   모든 예측이 내 생각대로 흘러갔는데, 이건 도대체 너가 바라왔던거잖아. 은연중에. 뭘까. 정말. 이해가 이해하고 싶잖아. 정말 가지 않는다.



   내 앞에 내밀어진 저 머뭇거리는 손을 잡아. 너가 매번 바라왔던 이 손은 뭘까. 거잖아.


   지금와서. 정말 지금와서 이러면ㅡ 지금이라도. 잖아. 너가 계산한 결과값은 애초에일어나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어. 나는 어떻게ㅡ 굳이 어떻게 해야할까는 중요하지 않잖아. 답이 있잖아. 해야할까.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인걸까.



   어떤 행동을ㅡ 몸이 안 움직이면 움직이지 마. 말로 해. 해야할까. 몸이 이상하리만치 굳어서 정말 모르겠다ㅡ 한마디만 해. 딱, 그. 한 마디만.


   그 한 마디가 뭘까ㅡ 알잖아. 정말 잘 알잖아. 매번 외쳐왔잖아. 갑자기 몸이 떨려왔다. 항상 몸이 진동하듯 떨리는 그런것이 아닌, 다른 느낌.



   눈에서 무언가가 흘러나왔다. 이건···· 눈물인데. 나는 왜 울고있ㅡ 모르는 척 하지마. 는거지? 여태까지의 느낌이랑 이것또한 다르다.


   앞을 다시 바라보았다. 흰 가운. 뾰족하고 복슬한 머리칼. 네모난 안경. 지나다니면서 꽤나 보았던 연구자였다.

   매번 마주칠 때 마다 내게 말을 걸어오거나 했었다. 물론, 나는 실험체의 신분이라 요구하는것이 있는지 다른 실험이 있는지 정도만 매번 정중히 답했었다.



   어느 순간부터 자주 보였었잖아. 그러면 당신 또한 이 실험실의 일원이잖아ㅡ 그의 뒤를 봐. 그런데 지금와서. 왜, 그러는건데.


   왜 나에게 이런 거짓된 희망을ㅡ 드디어 희망이라 생각하는구나. 주려는걸까. ...이런 거짓을ㅡ 아니, 거짓이 아니야.



   ㅡ앞을. 그를 넘어 그 앞을 봐봐. 너머를 보았다. 청결하고 새하얗던 공간은, 여기저기 그을음이 생기고 찢겨나가고 터져나간 자국 사이로 새벽의 빛이 전등이 꺼진 공간을 은은히 밝히고 있었다.



   언제부터 이 빌어먹을 공간이 무너진건지 모르겠다. 내가 살아있다는것을 의식하며 시간을 보내지 않았었다.


   눈을 뜨면 매번 나는 어딘가로 이동해 있었고, 내 의식은 깜빡깜빡 점멸하듯 했다. 눈을 떠보니 쓰러져 있을때도 있었다. 기절하고 깼다.


   ···그렇게 수도없이 똑같은 반복만을 계속해왔다. 눈을 뜨고, 다시 눈을 뜨고. 눈을 감지 않은 것 같았는데 다시 눈은 뜨여지고. 영원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영원한것은 없었다.



   하늘이, 보였다. 검은 하늘이 보였다. 



 하얀색의 무언가가 반짝였다. 언젠가 보았던, 아름다운 눈 결정과도 같았다. 그리고 푸른색 하늘이 보였다. 푸른색 하늘이었다.



   그 빛이 도달한 장소에는, 나와 같이 실험체의 아이들이 모여있었고,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웃고 있는 표정은 없었다. 다들 오래 남은 실험체였기에 웃는 법을 잊은건가. 다만, 눈가에서는 새벽의 풀잎에 맺힌 이슬이 떨어지는 것 처럼 눈물을 흘리고 있거나, 그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밝은 새벽의 태양빛이 노랗게 세상을 조금씩 물들였다. 푸르고 검은 하늘 그 너머의 지평선에서부터 빛이 다가왔다.




   나와, 그 손을 뻗은 사람과 아이들의 등에 새벽의 여명이 눈부시게 반짝였다. 바람이 불었다. 머리카락이 살살 흔들린다.




   검고, 별이 보이고. 푸르고 부드러운 구름과, 옅게 불어오는 바람. 강하게 밝아오는 새벽의 여명은 저도 모르게 전율을 자아내며ㅡ 황홀해지는 듯 했다.










   나는ㅡ 무심코, 머뭇거리며 내밀어진 그 손을··· 잡아버렸다.










   ···모든게 끝났다. 내 실험체의 생활도, 실험도. 그리고 이 건물도. 모든게 끝났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실험실에 쓰일 실험체들을 모으기 위해 내가 있던 한국뿐만이 아닌 몇몇개의 나라에서 정말 외진곳과 없어져도 아무도 모를 그런 곳에서 아이들을 납치했다고 한다.


   내가 있던 고아원 또한 의도적으로 사고를 빙자한 일을 터트린것이고. 어쩐지 금발과 벽안, 흑인 백인의 아이도 있었던 것에 대해 의문증이 풀렸었다. 어차피, 예상했던 사실이지만.



   이 실험실. 정확힌 내가 감금당했던 실험실은 미국에 위치해 있었다. 정말, 잘 숨겨놓은 위치에 말이다.

   각국의 윤리의식을 내다버린 과학자와 의료진 등이 모였다고. 이들은 인류의 발전에 이바지 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어찌보면 틀린말은, 아니었다.


   기계 부속품을 이용한 개조는 물론 인체 정보ㅡ 뇌를 데이터화 시키는것, 생·화학의 인체 실험, 인간뿐이 아닌 크리스퍼 시스템을 무차별적으로 이용해 한 종의 동물의 유전체를 편집하거나, 그것을 다른 종의 유전체에 이식한다던지. 방사능을 이용한 실험이든지. 여러가지를 실행했다.



   내가 있던곳이 가장 큰 본진이었으며, 이곳과 커넥션을 유지하면서 교류하던 이곳과 비슷한 실험실은 세계 여러곳에 작게 포진되어 있었다고 한다.


   너무 여러곳에 퍼진 결과 하나하나 제거하긴 힘들어 나라의 높으신분이 비밀리에 모여 기밀로 오랜시간 추적, 수색해 본진을 찾아내며 습격-침투보다는 시간을 들여 의학과 과학에 일가견이 있는 최정예 몇몇을 들여보내 내부부터 무너뜨렸다고 한다.



   ····솔직히 추후에, 저것까지 신나서 말한, 나에게 손을 내밀어준 연구자···· 뭐라 불러야 하지. 모르겠다.

   그냥 연구자는 아무튼 다 말했는데 솔직히 말이 많았다. 높으신 분들의 생각은 딱히 듣고싶진 않았다. 하지만, 이때의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살아있는 시체일까.


   그렇지만 속은 제정신이 아니었어도 겉으로는 비교적 말끔했다. 칩셋으로 인해 어떤 행동을 하는것이 좋은지 나온 결과대로 행동할 뿐이었다.



   이동하는 중간중간에도 의식이 갑자기 멀어져가며, 익숙하게 눈을 뜨기를 반복했다.

 

의식하지 않았음에도 저장된 환경 데이터로 인해 그 연구자가 말한 모든 발언은 기억한다.


   아무튼 그 연구자도 한국 사람이었다. 그런데 실험체중 생존한 한국인은 나밖에 없었다고 한다. ·····내가 처음 눈을 떳을 때 그곳의 아이들은 전부 같은 인종이었는데, 다 죽었나보다.



   개인 의사에 따라 본국으로 돌아갈때, 나는 조심스럽게 부탁을 하나 했다.


   귀환을 원하지만, 보고서에 내 정보를 누락시켜줄 수 있느냐. 였다.

   나는 내가 그 실험실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을 알리기 싫었다. 정말로 싫었다. 관심을 받는것이 싫었다. 앞으로 일어날 가짓수를 시뮬레이션 했을 때, 하나같이 거지같았다.



   하지만 연구자는 가능하다며, 나중에 신분증까지 같이 주겠다고 하였다. 이름은··· 내가 새로 지었다. 만에 하나라도 특정하지 못하도록 외국식 이름이면 좋겠지.

   아무튼 생각해보면 정말 불가능에 가까운 부탁이었는데 생각보다 능력과 위치가 높은 것 같다.


   ···호칭에 대해 귀찮아서 아저씨라 불렀는데 매우 당황하며 그렇게 불릴 나이는 아니라고 한다. 귀찮아서 아저씨라 불러야겠다. 어깨가 쳐지고 뚱해있던데 그렇게 싫나.


   졸지에 집과 신분증. 그리고 많은 양의 돈 까지 받아버렸다. ·····진짜 뭐하는 놈인지 싶다가, 실험실 개박살낸거 보니까 납득했다.

   이런 사람이 왜 집과 비교적 가까운 대학병원에서 의료나 깨작깨작 하는지 참.



   실험실에 끌려갔을 때의 나이가 13살. 구출되어 나왔을 때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흘러서 18살에 나왔었다. 

  ····5년이라니. 지금은 그로부터 어색해 몸이 떨릴 정도의 평범한 일상을 2년간 보낸 스무 살의 성인이다.


   그곳에서 나왔음에도 내 몸은 그때랑 변하지 않았으며 각종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선단공포증, 환청-환각, 각혈, 가끔씩의 블랙아웃 등등 후유증은 여전했다. 나아진것도 있지만, 평생을 갖고 가야 할 것들이 많다.



   보통 사람이라면 피폐하다 못해 수천번은 자살하겠지만, 나는 머릿속에 박힌 칩셋 때문에 아직도 정신나갈 정도로 피폐해진 나 자신을 이어나가고 있다.


   아직도 생각한다. 나는, 도대체 뭘까. 기계와 공존하고 있는 지금의 나는, 사람일까. 아니면 사람이 아닌 무언가일까.



   갑자기 누군가가 내 몸을 부드럽게 안는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뭐하는거야.



   “ 너는 사람이야. 이건 절대 변하지 않아. 그러니, 그거에 대해 방황하지마. ”


   “ ...매번 멋대로 남 집에 와서 대청소를 하시지 않나, 사람이 그렇게 끼어들더니 이젠 제 정신머리마저 끼어드는겁니까. ”


   생각해보니 말투도 조금 변한 것 같다. 아무튼 이녀석은, 반파된 실험실에서 내가 새벽의 여명을 바라볼 때 그 앞에 있었던 실험체들중 한 명이다.


   ····쓸데없이 외모는 그때의 나를 지탱해준 언니와 비슷하게 생겼다. 이녀석도 실험체였었기에 후유증으로 수 번의 자살시도를 시도했었다.


   뭔가 잠시 다가가, 대충 한마디만 하고 떠났을 뿐인데 어느새 1년 전 부터 내가 사는곳 까지 찾아와 이사를했다.

   나는 그 전까지 최소한으로 죽은듯이 살고 있었다. ····다른 여성 실험체들도 몇몇 같이 따라온 것 같다.


   키 차이때문에 나를 안았지만, 큰 흉부 지방이 내 얼굴을 짓누르고 있었기에 슬슬 숨이 안 쉬어져 밀어냈다.


   내 머리 위에 올려져 움직이는 손을 작게 쳐내고 일어났다. 2년전에 봤던, 그 자살기도 충만한 애가 맞나 싶었다.



   대충 입은 셔츠 위에 아무거나 외투를 걸쳤다. 추운곳을 좋아하였기에, 밖의 날씨도 추웠다. 

   ···춥다는 생각이 들 뿐, 그로인해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밖이 춥다고 하니 외투를 챙겨입었다. 적어도 외관은 평범해 보여야 한다.


   갑작스럽게 나갈 채비를 하자, 내가 나간다니 오늘 누군가가 산체로 생매장 당할것이다. 유난떠는 녀석을 뒤로하고 나갔다. ····당연하게 따라나왔다.


   밖에 나온 이유는 딱히 별거 아니다. 시간대를 보니 해가 지고있던 참이기에 나온 것 뿐이다. 나는 조금조금씩 높은곳으로 이동했다.


   걷고, 걷다보니 건물이 점점 작아지며 내가 밑의 모든것보다 위에 서게 되었다. 저 너머 지평선이 보였다.




   그 지평선 뒤로, 해가 반쯤 가려지며 노을이 진다. 노란색. 주황색. 그리고 밝은 빛으로 인해 명암이 짙어진 구름들. 하늘.







   노을을 감상한다. 뒤에서 내 양 어깨 손을 얹었다. 나는 체중을 조금, 뒤로 실었다.











   내일도 나는 이 곳에서. 아침이 밝아오는 새벽의 여명을 볼 것이다.